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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테러지원국 20년 굴레서 해방…6자회담 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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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테러지원국 20년 굴레서 해방…6자회담 정상화

美국무부, 검증 합의문 공개…부시 임기 내 북핵 2단계 완료 전망

북한이 20년 만에 테러지원국의 오명을 벗게 됐다. 또한 북한의 불능화 중단 등으로 좌초 위기에 놓였던 6자회담 프로세스는 다시 정상화됐다.

이로써 불능화를 목표로 한 북핵 폐기 2단계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임기 내에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증 합의문 공개와 테러지원국 해제 '동시행동'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오전(현지시간) 국무부에서 성 김 북핵 특사, 폴라 드서터 검증.준수.이행담당 차관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요소가 핵 검증 패키지에 포함됐다"며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북한은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으로 1988년 1월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 명단에 오른 뒤 20년 9개월 만에 테러지원국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 라이스 국무장관과 힐 차관보의 설득이 부시 대통령의 최종 결심을 굳혔다. ⓒ연합뉴스

미국의 이같은 조치는 지난 1~3일 북한을 방문한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핵 신고서 검증 내용을 합의한데 따른 것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신고서를 제출(6월 26일)한 후 45일이 지난 8월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할 수 있는 행정 재량을 확보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완전하고도 정확한' 핵 검증 체계 구축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그간 해제 조치를 유보해 왔다. 미국 내 강경파들의 반발, 그리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해선 안 된다는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핵 신고만 하면 테러지원국에서 삭제한다는 게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라며 반발했다. 그래도 미국의 행동이 없자 북한은 불능화 작업 중단과 원상복구 시작,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의 핵 시설 접근 금지 조치 등 '벼랑끝 전술'을 펼치며 미국을 압박해 왔다.

이에 미국은 힐 차관보를 평양에 보내 검증 내용에 타협을 봤고, 부시 대통령의 최종 재가를 거쳐 이날 테러지원국 해제를 발표하게 됐다.

국무부는 이날 홈페이지에 '검증에 관한 북미간 양해사항'이라는 합의문을 게시해 구체적인 합의 사항을 공개했다. 핵심은 △전문가들에 의한 핵물질 관련 시료(샘플) 채취 △신고한 핵시설에 대한 검증 △미신고 시설에 대해서는 양자간 상호 동의하에 검증 등이다.

또한 "검증 체계에 포함된 모든 조치들은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모든 우라늄 농축 및 핵확산 활동 등에 적용된다"고도 합의했다.
미 국무부가 공개한 구체적인 검증 방법

- 6자회담 당사국의 전문가들이 검증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의 전문가도 포함된다.

-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 검증에 중요한 자문과 지원 역할을 담당한다.

- 전문가들은 신고된 모든 시설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신고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상호 동의에 의해 접근한다.

- 과학적인 절차의 이용에 관해서도 합의했다. 샘플링과 과학적인 활동이 포함된다.

- 검증체계에 포함된 모든 조치들은 플루토늄을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 모든 우라늄 농축, 핵확산 활동 등에 적용된다. 여기에 6자회담 당사국들 사이에 이미 합의된 감시체계는 핵확산과 우라늄 농축 활동에 대해 적용된다.

누가 얼마나 양보했나

검증과 관련해 북미가 그간 입장 차이를 보였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시점의 문제로 미국은 테러지원국 해제 전에 검증의정서(계획서)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은 그건 합의 사항이 아니라면서 테러지원국 해제가 먼저라는 입장이었다.

두 번째 쟁점은 검증의 대상과 방법의 문제. 미국은 신고하지 않은 핵시설에 대해서도 검증을 해야 하며 시료채취가 가능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 신고서에 담긴 대상만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시료채취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었다.

미 국무부가 이날 발표한 합의문을 보면 북한과 미국은 기존의 입장에서 한 걸음씩 양보해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시점과 관련해서는, 이날 발표된 합의문을 검증의정서의 일종으로 간주한다면 의정서합의와 테러지원국 해제가 '동시행동'으로 이뤄졌다. 북한이 어느 정도 양보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10월 중 열릴 것으로 점쳐지는 6자회담에서 형식적인 의정서가 별도로 채택된다면 테러지원국 해제가 먼저라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검증 대상 문제에서는 북미 양측이 한 걸음씩 물러났다. 북한은 신고된 시설만 검증한다는 요구사항을 관철시켰고, 미국은 미신고 시설 검증을 뒤로 미루는 대신 시료채취를 얻어 냈다.

미신고 시설에 대한 접근을 양자 동의하에 진행한다고 합의함으로써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거기에서는 '양자 동의'가 포인트다. 북한이 동의하지 않으면 못 한다는 것으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은 것이다.

"검증 체계에 포함된 모든 조치들이 모든 우라늄 농축 및 핵확산 활동 등에 적용된다"는 대목은 '신고된 시설에 접근한다'는 대목과 다소 어긋난다. 두 의혹과 관련된 내용은 공식 신고서가 아닌 북미간의 비밀의사록에 담아 따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미래의 검증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일 가능성이 크다. 이를 이른바 '분리검증안'이라고도 부르는데, 신고된 시설을 먼저 검증하고 미신고 시설(결국 핵확산과 UEP 관련 시설이 포함된다)은 나중에 한다는 것으로, 검증의 시점과 대상이 종합된 개념이다.

강경파 즉각 반발…국무부는 '설득'

이처럼 북한이 양보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기존의 입장을 100% 관철시키지 못하자 강경파들은 곧바로 '북한에 굴복했다'고 비난했다.

이를 예상한 듯 매코맥 대변인은 "미국의 모든 요소가 검증 패키지에 들어갔다"며 북한이 검증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또한 테러지원국 해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은 대북 제재들을 국무부 홈페이지에 게시함으로써 이번 조치가 그리 큰 '보상'은 아님을 보여줬다.

폴라 드서터 차관보는 "앞으로 장애물이 없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라며 "힘든 길을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길을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매코맥 대변인은 또 일본과도 밀도 있는 협의를 가졌고, 일본 정부도 테러지원국 해제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로 인해 미일관계가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발표에 앞서 아소 다로 일본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이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며 북한에 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경파들의 불만은 즉각 터져 나왔다. 하원 외교위원회의 일리아나 로스-레티넌(공화.플로리다) 의원은 "오늘 조치로 인해 부시 행정부는 중요한 레버리지를 포기한 셈"이라며 "북한이 자신들의 약속을 이행하기도 전에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불법적인 핵 프로그램을 계속하고 극단적인 정권에 핵협력을 제공하는 일을 부추기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란과 시리아 같은 불량 국가들을 향해 '약속을 안 지켜도 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표적인 대북 강경파인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가 가장 곤란한 이슈들을 '차버렸다'면서 "이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거부권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이번 협상은 북한의 확실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北, 분리검증안으로 실속 챙겼다고 평가한 듯

부시 행정부 내에서는 강경파들의 이같은 목소리를 의식해 테러지원국 해제 발표 전 치열한 내부 토론을 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그러나 임기 말에 이른 부시 대통령이 북핵 문제에서라도 외교적 성과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발표 강행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 일부를 받아들인 것도 핵 문제를 진전시켜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의 조급함을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고된 시설만 우선 검증하고 미신고 시설은 상호 동의하에 추후에 검증한다는 기본 구도를 흐트러트리지 않는다면 6자회담으로 돌아감으로써 얻는 게 더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숙원을 푼 것만으로도 '남는 장사'를 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재가동 움직임을 중단하고 핵 불능화 작업에 복귀하게 됐다. 또한 잠시 유보된 대북 에너지 지원도 정상화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핵 2단계인 불능화와 에너지 지원은 10월 말까지 끝내기로 돼있지만, 교착 기간 때문에 종료가 다소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부시 대통령 임기 내에 끝날 가능성은 높다.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상징적인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테러지원국 말고도 다른 수많은 제제의 그물에 얽혀있는 상황이어서 국제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차관 도입 등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효과는 크지 않지만 테러지원국 삭제가 경제 제재 해제의 중요한 조건이고 심리적 효과도 무시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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