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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서 바라보는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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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서 바라보는 천문학

박인규의 집중인터뷰[10/10] 역사천문학의 개척자 김일권 교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하늘에는 현대 천문학에서 말하는 서양식 별자리 이름이 가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옛 선인들은 하늘의 별자리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우리나라 고문헌과 유물에는 별자리에 관한 기록이 많이 남겨져 있고 이 별자리를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의 자리라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역사 천문학'을 개척한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와 함께.. '역사 천문학'이란 무엇인지, 역사에 투영된 별자리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는지 알아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역사천문학의 개척자, 김일권 교수입니다. 김일권 교수는 1987년 서울대 생물학과를 졸업했고, 1999년 같은 대학에서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를 비롯해, 고구려연구재단 고구려문화연구팀장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을 지냈고, 2007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저서로는 '동양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와 '동양천문사상 인간의 역사' '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 '고구려의 별자리와 신화' 등이 있습니다.

박인규 : 역사천문학, 좀 낯선 이름인데요. 천문학사 또는 한국천문학사가 다른 겁니까?

▲ ⓒ프레시안

김일권 :
같은 부분도 당연히 많고, 관점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단 천문학사 내지, 기존에는 이 분야를 고천문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쪽의 관심은 주로 옛날에 천문 관련된 자료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그걸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데 관심을 둔다면 제가 하는 역사천문학은 그런 관심과 더불어서 천문이라는 게 그 시대에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거나 제작됐고 소통됐고,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가를 풀어내는 데 더 역점을 두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인규 : 천문학자가 천문학 자체만을 봤다면 역사천문학은 천문학이 그 당시 어떻게 활용됐는지. 흔히 유행하는 인문적 관점이 많이 들어간 거군요.

김일권 : 그렇죠. 제가 하는 역사천문학은 인문학에서 바라보는 천문학이라고 볼 수 있고요. 또 왜 그런가 하면, 전근대시대에는 현대자연과학처럼 엄밀히 분류돼 있지 않습니다. 복합영역이기 때문에 복합적 관점 그 자체를 풀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그런 걸 풀어내는 방법론을 구축하다 보니 역사천문학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김교수께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역사천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왜 역사천문학이라는 게 왜 중요합니까?

김일권 : 항상 질문받고, 저도 늘 고민하는 문제기도 하고 아마 역사천문학의 중요성은 첫 번째는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유럽 중세 같은 경우는 신에 대한 학문인 신학이 유럽이나 현재 구미사회 저변에서 모든 사회 문화사상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면, 거기 대응할 만한 키워드가 바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하늘입니다. 그래서 천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기존 국내 학계에서, 성리학에서는 연구를 했지만 거기는 자연과학적 코드가 빠져 있어서 사변적으로 흐른 경향이 있고, 실제로 우리 역사 속의 자료나 유물을 들여다보면 천문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우리 문화화됐고 사회에 스며들었고 제도, 조직, 문화, 미술사, 모든 분야에 스며든 걸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제왕의 학문이라고 하는데, 연구를 하기 전에는 서양에서 나온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서양에서 어울리는 말 같지는 않고 동양에서 의미있는 말이 천문학을 제왕학으로 보는 겁니다.

박인규 : 우리 옛 천문학이 서양 중세의 신학과 같은 위치에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학문의 가장 최고의 학문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천문학을 잘 알면 옛사람의 사상이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고 정리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교수님의 이력이 독특해요. 자연대 생물학과를 나오셔서 종교학을 하시다가 역사천문학을 하셨어요. 어떻게 역사천문학에 눈을 뜨게 되신 겁니까?

김일권 : 인생이 항상 의도하는 대로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이 분야도 마찬가진데, 물론 별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 서울대 입학했을 때부터 아마추어 천문회에 입학하자마자 가입하고, 그런데 말 그대로 아마추어적이 관심이었다가 학문으로 하게 된 데에는 세 번 정도 우연이 겹치다 보니 이제는 필생의 주제다 이렇게 됐습니다.

박인규 : 특별하게 역사천문학을 필생의 업으로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김일권 :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과정에서 들여다 보면, 일단 고구려 벽화 속 별자리 연구를 하게 된 게 저로선 큰 계기였습니다. 고구려 벽화 속에 굉장히 많은 별자리가 그려져 있고, 이것은 해방 이전 이후에도 알려져 왔고. 그 자체를 학문적으로 처음 연구한 건 국내에서 어떻게 하다가 제가 처음이 돼서 그것이 계기가 돼서. 또 고구려에는 일반 동양천문학으로 해석되지 않는 별자리들이 많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걸 규명하는 과정에서 중국 천문학사, 중국 천문자료 전체를 훑어보게 됐고, 이러면서 지금은 동아시아 역사천문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박인규 : 아까 말씀하시면서 서양 중세가 신학이 최고의 학문이었다면 동아시아에서는 천문학이 최고의 학문이었다. 많은 분들은 천문학 하면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 해서 서양을 생각하거든요. 천문학은 서양학문이다. 그런데 예전에는 동양이 더 앞섰다는 말씀도 하신 것 같은데 중세, 그때의 동아시아 천문학 수준이 그렇게 높았나요?

김일권 : 일단 그 시대 입장에서 그 시대의 단면도를 잘라서 들여다본다면 고구려 같은 경우는 당시에 충분히 경쟁할 만한 자료와 관점이 있고. 고려도 일반 동양천문학으로 풀 수 없는 게 있고. 그래서 좀 더 복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박인규 : 궁금한 것은, 우리가 어렸을 때 카시오페아니 뭐니, 서양식으로 해서 서양의 별자리 이름하고 한국이나 중국 별자리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김일권 : 서양의 별자리에는 우리가 굉장히 익숙해졌는데, 동양의 천문도와 비교해 봤을 때 별자리는 모양을 이루는 별자리입니다. 모양이기 때문에 사람의 인문학적 관점이 반영되는 건데, 실제로 같은 모양을 이루는 별자리가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정돕니다. 대표적인 게 북두칠성은 당연히 서로 같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보는 별자리고, 오리온 별자리도 이름은 다르지만 모양은 같게 보고. 그런데 그 외에는 모양이 거의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다릅니다.

박인규 : 그 말씀은 서양과 동양이 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는 거네요.

김일권 : 동서양만 달랐던 게 아니고 중국과 고구려도 달랐던 거고. 그래서 역사천문을 연구할 때는 문화성의 관점, 문화권에 따라서 다르게 충분히 접근될 수 있는 관측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모르는 선인들만 아는 별자리도 많이 있었겠네요

김일권 :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해석한 건 소통을 시킬 수 있고 안 되는 것도 여전히 많습니다.

박인규 : 하늘을 볼 수 없어서 설명은 못하겠습니다만. 예전에 특별하게 중요시했던 혹은 보편적인 별자리가 있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김일권 : 여러 가지 면으로 볼 때 북극성 별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극성은 지축이 가리키는 천구상의 별이어서 한 개의 별이기는 합니다. 부동요별이라고는 하는데 문제는 하나만 보면 북극성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북극성좌라고 해서 자리로 만들게 됩니다. 지금은 예를 들어 작은곰자리 알파별... 현재 이렇게 부르고 이렇게 이미지화되는 거죠. 그렇듯이 각 시대마다 이미지화시키는 방식이 있는데 중국 같은 경우는 5개를 일직선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묘사해서 북극5성좌라고 말할 수 있고 고구려는 북극3성좌라고 합니다. 3개의 별로 북극성 별자리를 그리고 그 중 가운데가 북극성이죠.

박인규 : 그 북극성... 중국의 5성, 고구려의 북극3성에서 말하는 북극성이 서로 다릅니까?

김일권 : 그게 초기에는 같았다가 조금 어려운 문제가 개입됩니다만, DC 들어오면 달라지게 됩니다. 왜냐면 북극성을 부동의 별로 알았는데 실상은 이게 시대에 따라 조금씩 움직입니다. 그래서 한 1000년 정도 되면 몇 도 차이가 생겨서 북극성이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런 문제 때문에 북극성을 연구하는 데에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박인규 : 고구려 말씀을 하시는데 고구려의 별자리가 굉장히 중요한 건가요? 왜 고구려 쪽을 많이 하시게 된 겁니까?

김일권 : 일단 우리 역사상 처음, 다량으로 연도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양산돼 있는 상황이고 그 자체 연구가 국내에는 거의 없는 형편이었고. 또 그걸 연구함으로 해서 우리 한국 고대의 천문학의 세계, 천문의 관점들이 어떤가를 알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박인규 : 중국에서 말하는 북극5성 고구려가 말하는 북극3성이 갖는 의미가 크다면서요?

김일권 : 저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벽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이미 중국 학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 학문도 도입하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천문학으로 완전히 덮어씌우지 않고, 그것을 고구려 자신들의 독자적인 형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아마 여기서 관측하는 전통이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고. 또 당시에는 하늘이 최고의 배경이기 때문에 하늘을 당시 제왕이 하늘의 아들이다, 이런 생각이 팽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 시대에서 북극성을 다르게 묘사하는 자체는 중국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병립하는 독자적인

박인규 : 독자적 천문관을 가졌고 중국에 예속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조선시대 와서는 많이 달라진다면서요.

김일권 : 예. 그러니까 어떤 유물 자료를 통해서 볼 때는 적어도 고구려의 북극3성이 고려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돼서 나타납니다. 고려 말까지, 14세기 초까지도 나타난 반면에

박인규 : 쉽게 말해 중국과 한국의 북극성이 달랐던 거죠?

김일권 : 그렇죠. 고려시대까지. 그런데 조선에 들어오면 어떤 이유인지 앞으로 또 연구를 해야 됩니다만 완전히 중국식에 편입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그건 말하자면 성리학적 전통, 소중화사상 그런 것 때문인가요?

김일권 : 물론 관련이 깊다고 생각합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
우선 궁금한 건 옛 조상들은 왜 별자리들을 열심히 관측했고 어떻게 관측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김일권 : 일단 별자리를 관측한다는 게 그냥 심미적으로 한다, 이런 것은 문화 차원이고 실제적인 목적은 시간의 문제 때문입니다. 1년이 365일이다, 지금은 우리가 다 달력을 쉽게 쓰기 때문에 문제가 적지만 이전 시대에 1년이 365일이다, 한 달이 몇일이다, 특히 일식과 월식을 예보할 때는 아주 정밀한 천문학이 아니고는 예측 자체는 어려운 문젭니다. 정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천체관측을 꾸준하게 해야 되고 그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해야 되고. 이 자체가 별자리 관측으로 나타나는 거고, 그래서 최종 목적은 역법이라고 볼 수 있고요

박인규 : 그 당시엔 망원경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천체를 관측했나요? 다 육안관측입니까

김일권 : 그렇습니다.

박인규 : 또 궁금한 건 그 당시의 역사천문학을 연구하시려면 여러 가지 기록 같은 걸 보셔야 할 텐데 많이 남아있습니까?

김일권 : 그래서 바로 그런 기록들을 제가 처음 발굴한 자료들이 다수 있어서 아마 개척한다는 표현을 붙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말씀 나온 김에 자랑을 좀 해보시죠.

김일권 : 일단 고구려 벽화 속의 25기... 25개 벽화 고분 속에 한 600여 개의 별들이 그려져 있고요.

박인규 : 그 당시에 천문학이 굉장히 중요했다는 얘기네요.

김일권 : 네. 중요했고, 당시에 중국은 한당시대에 해당합니다. 그 시대는 그만큼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 경쟁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고려시대로 오면 역시 왕릉에도 있고 일반 귀족벽화무덤에도 있고, 아마 그 시대에 문화가 천문을 무덤 속에 안치하려는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박인규 : 벽화에 별자리를 그리는 이유는, 나는 하늘과 관련있다 이런 건가요?

김일권 : 그렇죠. 지금은 잃어버린 문화형태일 텐데 당시는 무덤이, 죽음이 삶과 분리된다는 게 아니라 같이 같다고 보기 때문에 생사가 하나다. 조금 다분히 도교적인 생각을 깔고 있으니까

박인규 : 그렇지만 우리 한민족이 천손이다, 하늘의 자손이다, 그런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김일권 : 물론 당연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그런데, 고구려와 고려의 천문을 많이 말씀하시는데, 신라와 백제는 없습니까?

김일권 : 우리 학자는 자료를 구해서 연구를 하는데 신라 같은 경우는 유감스럽게도 유물자료가 남아있는 게 한두 점 외에는 없기 때문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는 문제가 있을 것 같고, 대신 삼국사기라는 기록, 역사서에는 관측기록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박인규 : 신라에 벽화 이런 건 없나요?

김일권 : 벽화양식이 발달하지 않아서

박인규 : 언론보도를 보니까 북한에서도 우리 옛 고천문학을 연구하는 것 같은데, 북한의 어떤 교수분이 연구해 놓은 것의 오류를 지적하셨다는데 어떤 겁니까?

김일권 : 제가 고구려천문을 하게 된 계기가 북한 사회과학원 이준걸 교수의 연구로부터 시작됐는데. 이 분이 80년대 초반에 굉장히 많은 고구려 천문학 연구, 논문발표를 하셨습니다. 또 왜 그러냐 하면 1976년에 덕흥리 벽화고분이라고 국내에도 소개된 자료인데 그것이 발굴되면서 주제가 하나 중요한 고대사 연구 주제로 부각됐고

박인규 : 그렇다면 공정하게 말하면 역사천문학의 시작은 북한이네요

김일권 : 그럼요. 그래서 만약 거기서 제대로 했다면 아마 저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간단한 논문을 쓰려고 자료를 살피는 과정에 논문의 그림들이 한두 개 이상한 걸 발견하게 되고 전면 검토를 한 거죠. 그러다 보니 고구려 벽화 속에 실제 묘사된 것과는 다르게, 예를 들어 북쪽에 그려진 별자리를 남쪽에 있다고 옮기고, 별이 세 개인데 두 개로 그리고. 이렇게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이 분의 논문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박인규 : 그게 한두 개가 아니라 전체 체계에서 고증이 잘못된 부분이 많았군요.

김일권 : 네. 왜 그런가 생각하니까, 이 분이 고고학자라 천문학적 관점이 약하다 보니까. 무덤 속에서 본 걸 밖에서 본 것처럼 그리고. 어떤 건 안에서 본 것처럼 그리고, 동시에 표현하니까 완전히 혼선을 빚게 된 거죠.

박인규 : 김일권 교수의 여러 가지 지적에 대해서 혹시 이준걸 교수 측에서 반응이 왔습니까?

김일권 : 저는 1997년에 동경에서 고구려 국제학술대회를 했습니다. 고구려연구회에서 주최한. 거기에 저는 박사과정 중에 참여했기 때문에 평생 영광으로 생각하는 자리기도 합니다. 그때 이준걸 선생의 토론으로 나갔고, 이 분이 오셨으면 토론이 됐을 텐데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오지 못하시고 대신 조총련계 조선대학교 지구과학교수가 대신 나와서 대독하고 토론에 응하셨는데.

박인규 : 이준걸 교수가 글은 보내셨고

김일권 : 글은 물론 보내셨고. 거기서 바로 제가 지적하니까 이 분은 지구과학은 말 그대로 천문학을 하시는 분이니까 당연히 일리가 있다고, 그러면서 평양에서 한 번 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만나는 거라 속으로는 긴장을 하고

박인규 : 97년인데 그 뒤로 평양 가서 만나셨습니까?

김일권 : 아직 기회를 못 가졌습니다.

박인규 : 역사천문학을 통해서 남과 북의 학자들이 대화하고 교류하고 상당히 그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요.

김일권 :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요즘 통섭 말이 유행인데, 김일권 교수님이야 말로 종교와 역사, 천문학을 넘나들면서 아주 재미있는 연구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역사학계라든가 천문학계에서는 김교수의 연구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김일권 : 일단 제가 학부가 자연과학을 했고 대학원부터 인문학으로 옮겼는데, 제일 먼저 학문적으로 크게 기대고 실제로 도움을 준 쪽이 한국 고대사 학자들입니다.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은 제 연구의 필요성이나 맥락의 타당성 문제가 많이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인용해 주시는 입장이고요. 아직 다른 분야로도 많이 확장해야 되는 입장이고. 사상사 영역에서는 당연히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역사학계 출신이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연구에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 벽화를 보러 북한에 가야 되는데 한 번도 끼워주지 않는다. 이런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김일권 : 앞으로도 만나야 되는데 현실적으로는 조금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제가 더 연구를 해야 그런 게 오지 않을까

박인규 : 일단 역사천문학을 위해서는 고구려가 중요하고 고구려를 연구하려면 북한 쪽에 있는 벽화들을 많이 보셔야 되는군요.

김일권 : 특히 평양 지역에 있는 진파리 4호 고분이라고 있습니다. 이 고분의 천정 속에는 하나의 돌판에 별자리를 그렸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문도 제작의 하나의 진취, 성취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인데

박인규 : 그 말씀은 하늘 전체가 종합적으로

김일권 : 네. 그 이전에는 부분별로 방위로 그렸다면 하나의 판에 그렸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굉장히 중요한 제작기술의 발전이기도 합니다. 관측의 발전이기도 하고. 그게 금박으로 돼 있어서 금박천문도라고 불리는데, 이게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부부합장묘로 현재 북한에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나와 있는 사진자료 상에서는 그 자료가 온전히 파악되지 않고 있어서 그 자료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에 직접 실사를 하면서 1차 자료가 제대로 나와야만 연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구축되지 않고서는 이론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박인규 : 이준걸 교수님과도 제3자를 통해서긴 하지만 직접 요청을 해보시죠. 가서 보고 싶다.

김일권 : 그런데 그 분은 97년 몇 년 뒤에 작고하셔서 그 뒤에는

박인규 : 그럼 지금은 진파리 4호분에 들어가서 직접 천체도를 보고 싶은데 아직 갈 수 있는 길이 없는 겁니까?

김일권 : 네. 2004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사회과학원 연구하시는 선생님들과 만나서 토론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제가 일부러 가고 싶어서 그 주제가 왜 중요한가 집중적으로 발표했는데 북한에서는 당연히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준걸 선생 이후 끊겼던 자기들의 고구려 천문연구를 제자들에게 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미 그 분들은 제 논문도 편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 훑어보고 와서 이야기하는 거 보고 깜짝 놀랐는데, 앞으로는 그쪽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말씀 나누다 보니 궁금증이 드는데, 그렇다면 중국이나 일본에서의 역사천문학은 어느 정도인지

▲ ⓒ프레시안

김일권 :
그건 상대적으로 당연히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건데, 일본 같은 경우는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제국주의시대기도 하고 힘으로 동아시아천문학 전체를 가장 먼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인규 : 그럼 100년을 했다는 얘기네요.

김일권 : 근대 학문의 방법론으로 했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랬다가 곧이어서 중국 학자들도 자기들도 자료가 대다수기 때문에 이미 연구를 많이 했고 여기는 천문학적 연구, 역사학자, 고고학자, 아주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모여서 많은 자료를 해독하고 풀어내고 끊임없이 미국이나 구미학계에 소개하기도 하고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지금 한국에서는 혈혈단신으로 김교수님 혼자 역사천문학을 하고 있는데 혹시 역사천문학의 발전, 진흥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 같은 게 필요하다고 보세요?

김일권 : 일단 저로서는 학제간 연구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고요.

박인규 : 학제간이라면 어느 분야...

김일권 : 당연히 현대 천문학을 하시는 분의 전문적인 관점, 학식이 필요합니다. 깊이있게. 그런 분위기가 좀 더 조성되고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방식이 돼야 되지 않을까 싶고. 그쪽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 전근대시대 유물이 천문학적으로만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인문학적 방법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함께 풀어가는 이런 식이 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박인규 : 천문학자, 역사학자, 종교학자 이런 분들이 좀 참여했으면 좋겠다.
김일권 교수님은 최근 10년 동안의 역사천문학에 관련해서 90편의 논문을 발표하실 정도로 아주 정열적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앞으로 역사천문학 관련된 연구계획이라든가 혹시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무리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일권 : 일종의 상실된 하늘...잃어버린 하늘을 복원하고 싶은, 복원의 관점은 아주 다양할 수도 있고 특정적일 수도 있는데 그런 데에 주력하고 싶은 생각이 있고. 하늘을 복원함으로 해서 하늘에 대한 문화, 사상 이런 것이 현 시대에서도 다시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요. 서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로부터 현대 서양의 별자리가 다 나왔는데 우리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이 참여하고 기다려 주고 하면 더 좋은 분야가 연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요즘을 문화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문화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건 정체성이라고 얘기하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잃어버린 하늘을 되찾아서 우리의 정체성을 온전하게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일권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역사 천문학'을 개척한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와 함께.. '역사 천문학' 연구의 중요성과 역사에 투영된 별자리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있는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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