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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의 한반도는 무슨 색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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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0월의 한반도는 무슨 색깔일까?

한반도브리핑 <102> '블루'를 '스카이블루'로 바꾸기 위해

10.4정상선언이 나온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감격적인 장면들이었지만 이제 기억조차 희미하다. 1년 전만 해도 남북정상회담은 향후 남북관계 진전의 대들보가 되리라 생각됐고 여기서 합의한 많은 내용들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지금은 남북관계의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이명박 정부와 북한 당국의 기싸움에 밀려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10.4선언은 오히려 남북관계 경색의 핵심원인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당시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필자에게도 10.4선언의 추억은 아련하기만 하다.

우울한 1주년

격세지감은 서명 당사자들의 최근 근황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북쪽 당사자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와병설로 시달리고 있다. 10.4선언에 사인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주최한 마지막 날 오찬은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훌륭한 음식에 와인까지 곁들이면서 모든 특별수행원이 김 위원장과 건배하고 말을 건네기도 했다. 거침없는 모습으로 좌중을 압도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활달한 모습이 지금의 와병설과 겹쳐지면서 10.4의 추억은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추억으로 묻힐 것인가 ⓒ청와대 사진기자단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공동체로의 발전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10.4선언일진대 지금 일각에서 북한 급변사태와 포스트 김정일 체제 운운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10.4선언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1년 만에 너무도 다른 담론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역으로 지금의 남북관계 악화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급변사태를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도 북한체제의 안정과 남북관계의 지속이 역설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중단된 상태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이상을 확대해석하는 움직임은 그래서 자극적이고 불필요하다.

선언의 또 다른 당사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1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착잡한 심경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자신의 합의가 후임 대통령에 의해 실천되리라 믿은 것 자체가 순진한 것일 수도 있다는 자괴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퇴임 후 고향에 내려가 있던 전 대통령의 첫 서울 나들이에서 10.4선언이라는 나무가 시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피력한 것이야말로 지금 10.4선언의 현주소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나무를 심어놓았고 그 나무가 물을 먹고 튼실하게 자라 훌륭한 큰 나무가 되기를 바랐지만 방치되어 물도 없이 시들고 있다는 10.4선언 당사자의 한숨어린 독백은 그냥 지나쳐버리기엔 너무도 비극적이다.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에 집착한 이명박 정부가 10.4선언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일차적 원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10.4선언의 기조를 계승할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지속시켜 나가고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설득해 결국 북미 협상을 진전시킨 노무현 정부는 분명 한반도 문제에서 과거와 다른 성과를 보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전에는 한 번도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 즉 정권 재창출의 실패와 그로 인한 대북정책의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절감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제기한 셈이 되었다.

결정적 국면에 놓인 북한 핵문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 역시 불안정성을 더해주고 있다. 단순히 남북관계만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10.4선언을 가능케 했던, 그리고 그를 통해 진전시키려 했던 북핵 문제마저도 지금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본래 지난해 10.4선언은 그 해 봄에 있었던 2.13합의의 추동력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노무현 정부 내내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의 주동적 진전이 필요하고 그 돌파구로서 남북정상회담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시각이 존재했지만 실제 정부의 정책결정은 그렇지 못했다. 북핵 문제가 일정하게 호전되지 않는 조건에서 남북정상회담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노무현 정부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2007년에 와서야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여곡절 끝에 북미가 2.13합의를 도출해내고 북핵문제가 일정부분 진전되었기 때문이었다. 2.13합의 이후에도 이른바 'BDA 문제'로 차일피일 합의이행이 지연됐고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그 추이에 밀려 조금씩 뒤로 연기되었다. 급기야 BDA 문제가 해결방향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남북정상회담은 실질적인 힘을 받아 추진되었고 결국 성사됐다. 철저히 북핵 문제와 연동되어 남북정상회담은 자리매김되었던 셈이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10.4선언 자체도 사실은 북핵 문제의 진전을 가능케 하는 연관 구조와 분리될 수 없었다. 시기적으로 10.4선언 합의가 있기 하루 전날 6자회담에서 불능화와 핵 신고에 대한 10.3합의가 도출되었던 것은 북핵과 남북관계의 상호 연관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2.13의 힘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지만 남북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나아가려고 했다. 즉 10.4선언으로 북핵 문제를 가능한 한 더 진전시켜보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3자 혹은 4자 정상의 종전선언 구상에 표출되었다. 이미 2006년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공식 종료하기 위한 평화조약에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서명하고 싶다는 공식발언을 한 바 있었고, 10.4선언에 포함된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 제의는 바로 이에 대한 남북의 공식 화답인 셈이었다.

물론 종전선언이라는 공식 표현은 논란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의 정전체제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3자 혹은 4자간 정상회담'이 개최된다면 그 장면만으로도 한반도 평화가 일진보하는 것임은 분명했다.

특히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은 단순히 종전선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의 극적 진전을 위해서도 매우 유용한 계기일 수 있었다. 당시 10.3합의에 따라 불능화와 신고가 완료되고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가 행동 대 행동으로 이행된다면 마지막 단계이자 가장 어려운 고비인 핵 폐기 단계가 남게 되는 바, 이를 앞두고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남측 대통령과 중국 최고지도자와 함께 만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북핵문제 진전을 위한 각국의 신뢰를 형성하는 데는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고 복잡한 북핵문제가 한 걸음 내딛는데도 힘에 겨운 만큼, 최종 국면의 폐기단계를 놓고서는 사실 최고지도자의 정상회담 개최가 사실은 상호 신뢰와 합의 이행 의지를 확인하는 데 적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0.4선언에 포함된 종전선언의 노력은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고, 10.3합의마저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완료를 못하고 교착되고 있다. 어렵게 선순환의 관계를 형성했던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지금에 와서는 악순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사상 최악에 이르고 있고 그나마 동력을 유지하던 북핵 문제마저도 최근에 와서는 진퇴의 결정적 국면에 놓여 있다. 지난 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세 번째 방북이 있었고 북미간 '실질적' 논의가 교환되었지만 여전히 북핵 문제는 불안정의 영역에 놓여 있다.

북한과 미국, 그리고 한국 모두 지금 시기 대내적으로 임박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도 지금의 북핵 문제 진전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신상이 불안하고, 미국은 최악의 금융위기와 대선국면이며, 한국 역시 미국발 금융위기에 휘청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북핵 문제라는 대외 이슈에 힘을 다해 매달릴 수 없는 처지이다.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일수록 대외정책이 보다 원칙적이고 강경할 수밖에 없음은 정치학의 기본이다. 북한이 먼저 제의한 군사실무회담이 대표적인 바로미터다. 북핵 문제의 교착 가능성과 남북관계의 사상 최악의 파탄, 그리고 남·북·미 내부의 불안요인들이 겹쳐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사실 쉽게 호전시키기 힘든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연합뉴스

과거에 가능했으면 지금도 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한반도. 그러나 이럴수록 우리는 지난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10.4선언뿐 아니라 10.3합의마저 위기에 처해 있는 지금 상황에서 악순환의 구조를 그저 지켜볼 것이 아니라 그 악순환의 고리를 풀고 상황을 호전시킬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

그 길은 북한의 결정만 지켜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미국의 태도만 따른다고 해서 찾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꽉 막힌 지금에서는 오히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우리가 먼저 나서서 틈을 열어놓아야 한다. 한국이 먼저 움직여서 남북관계를 풀고 이를 통해 6자회담과 북미관계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와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물론 어렵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에 밀려 클린턴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기 위해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했지만 당시 김대중 정부는 끈질긴 한미간 협의와 설득을 통해 1999년 가을에 나온 페리 리포트를 결국 대북 포용기조로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 남북이 주도한 정상회담의 영향력은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가져왔고 급기야 조명록 북한 차수의 워싱턴 방문과 메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답방을 이끌어냈으며 역사적인 조미공동코뮈니케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북한이 극력 반발하고 북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 온 부시 대통령을 도라산역으로 데리고 가 남북화해의 필요성을 설명함으로써 결국 미국은 북한을 선제공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이끌어 냈다. 그리고 곧이어 임동원 특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함으로써 중단되었던 남북관계도 복원되었다.

2차 북핵 위기 이후 4차 6자회담이 장기교착 중이던 2005년 6월 노무현 정부는 통일부 장관을 특사로 보내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가졌고 결국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 냄으로써 그 추동력으로 그 해 9월 역사적인 9.19공동성명이 도출될 수 있었다.

꽉 막힌 한반도 정세에서 한국이 움직이면 그나마 상황을 호전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었다. 물론 상황을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최악의 위기 상황만은 이겨낼 수 있었고 북미간 극적 타협을 가져오는 윤활유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그것은 가능하다. 과거 정권과의 정치적 단절에 힘을 쏟아온 이명박 정부는 이제라도 한반도 정세를 직시하고 문제를 악화시키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지혜를 짜고 의미 있는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은 장기 중단된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시들고 있는 10.4선언의 정신을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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