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을 전공하는 교수를 비롯해 중등학교 교사 혹은 언론인이나 출판인과 이야기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나는 역사학자이지만 한국적 특수 상황 때문에 대부분 인도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하다가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한 이야기로 이야기가 끌려간다. 그런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한국 사람들이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역사라는 것에 대해 너무나 일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란다. 그래서 나는 인도라는 나라와 역사란 것에 대해 제대로 이해시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선무구나 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도라는 나라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내 말은 한국인들이 인도라는 나라로 대변되는 '우리' 혹은 '잘 나가는 나라'가 아닌 곳에 대한 '남' 특히 '못 사는 나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아니, '우리'와 '잘 나가는 나라'의 범주 밖에 있는 곳에 대한 편견과 왜곡을 지적하고자 하는 말이다. 그것은 그 한국인들이 저 서양 제국주의자들의 산물인 오리엔탈리즘에 늦게 편승해 더 강하게 일체화시키면서 흠뻑 자위자족 한 결과다.
한국은 식민주의와 분단 그리고 내전과 독재를 거치면서 전형적인 제3세계에 속해 있었지만 '불행한' 과거를 딛고, 경제 발전을 이루면서 지금은 당당히 OECD의 회원국이 되었다. 그리고 이젠 당당한 아류 제국주의자의 위치에 올라가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문턱에서 외쳤던 대동아공영은 어느덧 이곳에서 'Pride of Asia'와 '동아시아의 허브'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다.
분명한 국가에 의해 강제된 담론이다. 그리고 조작에 바탕을 둔 신화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것에 휘둘리는 것은 시민들이 역사를 주로 일본과의 경쟁 관계 속에서 전개된 국사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속에서만 역사를 보다 보니 결과적으로 세계의 교양 시민으로서 걸맞는 수준의 역사 인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의 역사 인식은 민족주의에 찌들어 있고, 국가주의에 함몰되어 있으며 한국의 특수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다. 여기에 권력을 탐하는 일부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은 국가보안법이 살아있는 현실을 등에 업고 분단이라는 상황을 악용하면서 건전한 역사 인식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한국전쟁은 내전이 아니고, 5.18은 국가폭력이 아니며,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좌파 정권이다. 결국 이 땅의 많은 시민들은 내전, 국가폭력, 좌파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강제로 봉쇄당해 버린 것이다. 세계의 '교양' 수준에서 보면 정말이지 한심하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서 한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희한한 나라로 불린다.
결국 이 부끄러운 꼴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역사 인식을 바로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러려면 세계사와 한국사를 같이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중고등 학교 입시와 교육 체계 그리고 대학에서의 커리큘럼과 파벌 중심의 체계 내에서는 불가능하다. 한국에서의 한국사는 세계사의 흐름에서 완전 동떨어져 교육이 이루어진다. 어떤 대학에서는 역사가 국사, 동양사, 서양사 셋으로 분리되어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대학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분류가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교육 체계에서 학생들은 조선 초기 금속활자의 발명을 세계 최초라고만 떠들어 댈 줄 알지, 그것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비교해서 볼 때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볼 수가 없다. 한국의 박정희는 이란의 팔레비,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과 같은 종류의 엄연한 독재자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히로시마나 전쟁 기념관을 가보면 그들이 마치 전쟁의 피해자로 그려져 있는데 그 사실은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왜 한국에서는 미국의 베트남전 쟁 참전에 대한 역사의 반성과 그를 통한 전쟁기념관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다. 민족주의-국가주의 인식 위에서 역사 교육을 받는 학생과 시민이 보편적 역사 인식을 갖추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재를 통해 역사를 통해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과제에 대해선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 같다는 자평을 하고 있다. 내 글에 대해 손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질문이 들어 왔다. 거의 반응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쉬웠지만 애초에 그리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으니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만큼 인도의 역사에 대해선 알려진 바도 없고, 우리가 관심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오로지 '우리' 것이나 우리와 가까운 것 혹은 성공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이는 세태나 그로부터 탈피를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역사학계의 전통이 아쉬울 뿐이다.
그렇지만 비록 적은 수이지만, 역사에 대한 인식에 대한 나의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상당한 문제 제기를 받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수용할 수 있는 즉 깊이 토론해 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기존 역사에 대한 도전을 수용하기 거북해 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 대부분의 것은 주로 식민주의, 근대화,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런 주제들이었으니 얼마나 한국 사회에서 이런 중요한 주제가 일방적으로 교육되어 왔고 널리 자리 잡혔는지를 새삼스럽게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될 수 있다. 특히 그 가운데 근대화에 관한 부분에 대한 비판은 소위 좌파 진영에서조차도 받아들이기를 무척 거북스러워 하였다. 그들은 자꾸 일제의 경우와 비교하는 것을 떨쳐버리지 못했는데,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왜 식민주의는 모두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왜 식민주의는 모두 다 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단언하건대, 식민주의, 민족주의, 마르크스주의에 토대를 둔 역사학은 실재 역사에서 존재하는 매우 다양하고 잡다한 의미를 하나의 담론으로 치환한 것일 뿐이다. 모두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역사일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단일하게 구성되지도 않고, 일목요연하게 진보하지도 않으며, 명쾌한 논리로 해석,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를 하자면, 난 역사학자로서의 사명도 중요하지만 역사가로서의 사명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믿는다. 역사학을 업으로 삼아 그것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삶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유리된 채 연구실에서만 주어진 일을 하는 것보다는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실천하는 운동가로서의 사명도 중요하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현실 속에서 나는 역사를 이해하고 분석할 때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면서 사용한 일정한 틀 (혹은 사관)이 갖는 한계를 많이 느꼈다. 그래서 연구실 밖으로 나와 보고 난 후 역사란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 고민은 진행 중에 있지만...
80대 20을 넘어 이제 90 대 10을 향해 치닫는 이 미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기 위해 난, 학자로서 이념을 지키고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현실의 삶에서는 이념을 지키는 것보다는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설 《남한산성》이 주는 메시지에 더 큰 감화를 받았다. 그가 이명박을 지지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의 메시지가 이명박의 '실용'과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마찬가지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역사라고 하는 것이 국가, 역사가, 기득권자, 전위 행동가 등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흔한 이야기지만 역사의 주체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인민이든, 민중이든, 민초든, 시민이든 난 개의치 않는다. 그 의미를 실제의 현장에서 찾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개인 혹은 소수의 역사는 보통 무시 당하기 일쑤다. 인도에서 1500년 넘게 핍박 받아 온 그리고 지금도 법으로만 금지되어 있을 뿐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최하층 중의 최하층민인 불가촉천민의 사회적 위치가 그나마 개선된 것은 다름 아닌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가지고 온 근대화에 의해서였다. 이 분명한 사실을 일부 진보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의 역사를 묻어 버리거나 왜곡하는 우파의 입장과 하등에 다를 것이 없다. 구체적 삶은 이념이 내뱉는 구호와 수사와는 관계없이 지엄한 현실 속에서 살아 있다,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역사가가 통찰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 이질적이고 복잡한 현실이다. 그래서 기존의 식민주의 역사학, 민족주의 역사학,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라는 거대 담론은 일종의 '역사 만들기'일 수 있다. 식민주의 역사학은 피식민지를 일정한 본질을 갖는 그리고 그 위에서 후진적 사회와 문화를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생산하면서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지배 담론이었고, 민족주의 역사학 또한 민족을 본질적 실체로 간주하는 오리엔탈리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 있는 여러 복합성을 하나로 단순화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역사 만들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민족주의 역사학에서의 '민족'을 '계급'으로 대체한 환원론이라서 마찬가지로 실재 안의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여러 삶은 재현하지 못한다.
일제 강점기 시대라 해서 한국 민족이 모두 반일 민족주의자라고는 볼 수 없고, 친일을 하였다고 해서 모두 다 매국의 입장에서 한 것은 아니다. 특히 인민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민족주의자든 식민주의자든 어떤 종류의 엘리트가 구성하는 헤게모니에 포섭되지 않은 채 독자적 영역을 확보한다. 그러면서 하나로 정리되지도 않는 매우 이질적이고 애매모호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역사가 엘리트에 의해 하나의 역사 안으로 강제 수용되어 그 일원론적 역사 안에 얹혀 져 버린 것이다. 한국전쟁이나 5·18 혹은 IMF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대하는 태도가 그럴 것이지만 그에 대한 역사는 좌와 우 둘로만 나뉘어 있다. 그 안에 이질적이고, 애매한 부문이 있을 것임에도 그들이 소수이고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애써 무시당하고 있다. 이러한 단층적인 역사 해석에 대해 도전하고 싶었다.
한국의 교육계와 학계가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지금의 체제 안에서 그런 중층적인 역사학의 의미를 가르치고, 배우고, 익히고 나아가 사회에 널리 허용되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비록 한정된 공간이고 개인적인 일의 일환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인도사를 통해 그러한 일의 단초를 제공해주고 싶었다. 워낙에 아는 게 부족한 데다 글재주 또한 부족하여 애초 목표했던 바를 달성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런 의도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시작한 것만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단순하게 믿고 싶다.
그 동안 부족한 글, 읽어 주고, 댓글 달아 주고, 메일 보내주면서 좋은 의견 같이 나눈 많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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