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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안정당이 무슨 사자성어입니까?"

[정세현의 정세토크] <7> 민주당이 진짜로 할 일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서 민주당의 대북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해요. 또 정 대표가 직접 북한에 한번 가서 협조를 요청한다고도 합니다. 내가 정세균 대표와 개인적으로 잘 알기 때문에 오해하지 않을 거라고 보고 쓴소리 좀 해야겠어요.

정 대표 밑에는 브레인들이 없나요? 지금 정부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이행하도록 서울에서 계속 압력을 넣고 여론을 조성해나가는 게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지, 막힌 구멍을 뚫겠다고 당 대표가 평양에 간다고 해서 길이 생깁니까? 안 생깁니다. 북한 사람들은 철저하게 집행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하고만 얘기합니다. 까딱 잘못하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통전(통일전선전술)에 걸려들기나 하는 겁니다.

민주당에 싱크탱크가 만약 있다면, 대표한테 그런 걸 얘기 해줘야죠. 민주당이 대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연조가 얼마나 된대요? 내가 북한사람들 만나고 안면 생긴 것이 그럭저럭 30년 세월이지만 그게 네트워크인지 뭔지 나는 자신 없어요. 평양 몇 번 다녀와서 네트워크 생기고 그렇게 해서 의미있는 대화가 된다면 지난 10년 세월에 벌써 통일되었을 겁니다. 그게 아니잖아요?

북쪽 사람들 미국이나 일본에서 거물이 가도 집행력이 없으면 부부장급이나 만나게 합니다. 그러니까 야당이 된 민주당이 올라가도 무게 있는 사람은 안 나옵니다. 여당 때였다면 달랐을 겁니다. 대충 조선사회민주당 사람들 내보내서 밥이나 먹이고 보내지. 김영대(조선사민당 위원장)가 무슨 힘이 있어요? 당내에서 정세균 대표 돕는다고 내놓은 아이디어가 결과적으로 당대표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일 개성공단 방문길에 그린닥터스 협력병원에서 북측 간호사로부터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10.4선언 비용 논란에 말 한마디 못하는 민주당

요즘 민주당은 대안정당이 되겠다거나 남북문제에 관련해서 초당적인 협력을 하겠다고 얘기하는데, 실질적으로 준비가 된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대안정당이니 초당적 협력이란 말이 그냥 멋지니까 그러는지 알 길이 없어요.

민주당도 10.4선언 1주년 맞아서 무슨 행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만약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표현한 대로 10.4선언을 버렸다면, 민주당이 10.4선언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구체적인 노력을 해줘야 될 거 아녜요. 민주당이니까. 근데,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별로 영양가 있는 조치나 주장도 안 나오는 것 같아요.

한나라당이 국감 앞두고 10.4선언을 이행할 때 드는 경비가 얼마냐고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그 내용이 벌써 신문에 났어요. 14조3000억 원 든다고. 그러니까 '끝나가는 (노무현) 정부가 무책임하게 국민 혈세가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는 약속을 했다'고 하면서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민주당은 그것에 대해 말 한마디를 못하고 있어요.

14조3000억 원이면 대한민국 경제 규모에서 절대 천문학적인 숫자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경제가 이상하게 나빠져서 1인당 국민소득이 떨어지게 됐지만, 작년 말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 가까이 돼서, 전체 GDP가 거의 1조 불 가까이, 한화로 계산하면 1000조 원에 가까이 됐으니까, 그 중에서 14조3000억 원은 1.43%입니다. 그리 큰돈이 아닙니다. 천문학적은 무슨...

또 전부 정부 투융자로 들어가는 돈도 아닙니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몫이 있고, 민간이 투자할 부분도 있어요. 작년 10월 정상회담 당시 우리 기업인들 여럿이 수행을 했는데 자기네 기업의 채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투자해야 되는 프로젝트도 많이 있어요. 예를 들어 조선협력단지는, 대우조선해양 같은 데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들하고 협상했었고, 사업 구상을 다져왔던 프로젝트예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만드는 해주공단도 개성공단 때와는 달리 기업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들어가서 만들면 된단 말예요. 그러니까 14조 3000억 원은 전부 혈세로 나가는 게 아니에요.

이 정부는 전 정부의 합의사항이니까 그런 것까지 국민들한테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할지 몰라요. 통일부마저도. 눈치가 보이니까. 정부 차원에서 할 것은 40~50% 될 거고 나머지는 민자로 들어갈 거라고 얘기하면 '아, 그거 얼마 안 들어가네. 그렇다면 할만하네'라는 여론이 생길 거니까 이명박 정부로서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그럴 때 민주당이 나서야 한다 이겁니다. 민주당에도 정책 싱크탱크 같은 게 있잖아요. 당내나 당 밖에 있는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자료를 만들고 적극 설명도 해야죠.

또 하나. 14조3000억 원은 1년에 한꺼번에 들어가는 돈이 아닙니다. 합의한 사업중에는 1년짜리도 있고, 철도 개보수 사업같은 것은 5년 이상 걸립니다. 그러니까 연 평균 얼마가 들어가는지를 애기해야 우리 국민들이 겁을 안 내죠. 코스트(비용)가 얼마면 베네핏(수익)이 얼마다는 말도 해야 하고. 그런 걸 민주당이 안 하더라 이거야.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 측이 하는 10.4선언 행사에 와서 이명박 정부 비판하고 성토하고 하던데, 그게 그렇게 나갈 일이 아닙니다. 진짜 대안정당이 되려면.

대안정당은 사자성어가 아닙니다

14조3000억 원이 우리 경제규모에 비해서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던 게...우리나라에서 1999년 현재 음식물 쓰레기가 연간 14조7000억 원어치가 나왔답니다. 88년에 8조였고 99년 11년만에 1.7~8배 늘어났으니까 지금은 연간 거의 20조 정도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겠죠. 그것에 비할 때 14조3000억 원은...1년도 아니고 몇 년 동안 들어가는 거니까 정말 얼마 안 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만져볼 수도 없어요.

음식물 쓰레기가 1년에 20조 원어치 나오는 나라에서 5~6년짜리 프로젝트를 하는데 정부·민간 합쳐서 14조3000억 원 들어가는 걸 천문학적이라고 하면 국민을 아주 무식쟁이로 알고 우롱해도 한참을 우롱하는 거죠. 천문학적이라고 하면 몇 억 광년 이럴 때나 쓰는 거 아닙니까?

그런 걸 민주당이 나서서 '자, 우리가 계산을 해보니까 이렇다. 그러니 당신네 10.4선언 무시하는 건 안 된다. 돈 많이 들어간다고 자꾸 선동하지 마라' 이렇게 대안을 제시해야 대안정당이 되는 거지, 대안정당이라고 사자성어 비슷하게 얘기하고 다닌다고 해서 협력이 됩니까? 답답하기 짝이 없어요.

또, 99년 통계를 보니까 버려지는 곡물 쓰레기가 174만 톤입디다. 육류는 56만2,000천 톤인가 버려지고. 엄청나게 나가는 거죠. 174만 톤이면 북한 식량 부족분의 70~80%입니다. 그러면서 북에 쌀 지원하는 걸 퍼주기라고 욕하면 그건 벌 받을 짓입니다. 벌 받는다고요. 특히 '퍼주기'라면서 대북 지원에 인색한 사람들일수록 윤택한 사람들이 많고, 음식물 쓰레기를 그렇게 많이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음식물 쓰레기도 못 만들어요. 비싼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 시켜 놓고 손도 안 대고 나오는 그런 음식들이 결국 쓰레기가 되는 건데...

북한으로 들어간 달러가 무기로 돌아왔다고?

또 하나. 오늘 국감 기사를 보니까 참여정부 기간 중에 북한이 6500만 불 어치 무기를 사들였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한나라당 의원 한분이 "그간 우리가 무분별한 지원 논란으로 인해 남남갈등을 겪는 동안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체제 유지는 물론, 무기도입과 군력 증강을 이뤄냈다"고 했더라고요.

하...북한이 금강산 관광으로 연간 1200만 불 정도 벌고 개성공단으로도 그 정도 인건비가 들어가니까 매년 2000만 불 이상 올라갔다고 봐야죠. 참여정부 5년간 6000만 불 들어갔다는 얘긴 맞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그렇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표에는 북한에 지원된 돈이 무기로 둔갑되어 돌아왔다는 뉘앙스가 있어요. 무기 6500만 불 어치를 중국에서 사왔다, 중동에서 사왔다 이런 말들을 하는데, 조중무역 구조를 한 번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런 것도 민주당에서 구분해서 설명해줘야 합니다.

조(북)중무역은 절대 달러로 거래하지 않습니다. 구상무역 방식으로 하는 게 많고, 외상거래인 기장무역이란 게 있어요. 장부에 기록해 놓고 몇 년 동안 안 갚고 있다가 나중에 중국이 그냥 손비처리하는, 탕감해버리는 식으로 무역을 해왔어요. 핵이다 미사일이다 해서 북한 때문에 중국이 얼마나 골치가 아픈데...그런 상황에서 북한한테 중국이 무기를 팔겠어요? 석유, 식량 같은 전략물자하고 무기는 다릅니다. 거기에다가 조중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긴밀성 때문에 외상으로 남겨 놓고 하는 식으로 돼있고, 조중무역 구조 자체가 달러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에 대해 알고 의심을 해도 해야 돼요.

중동 국가들과의 무역은...북한은 중동 사람들하고 오래전부터 거래를 많이 했어요. 미사일 거래도 많이 한다는 거 아닙니까. 중동 국가들에 미사일 기술을 주고 가져오는 게 많이 있겠죠. 석유도 있고. 또 무기도 있을 수 있고. 그것도 일종의 구상무역, 물물교환 방식입니다. 북한이 부가가치가 큰 하이 테크놀로지를 가지고 거래하지 달러를 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문제는 이스라엘이 제일 민감하니까 혹시라도 위험한 기술이 중동 국가들로 들어가나 해서 따지는 과정에서 무기거래 상황이 드러났는지 모르겠지만, 북한과 중동 사이에는 물물교환이나 기술교류 방식으로 이뤄지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럼 그 돈(남쪽에서 올라간 돈)을 어디다 쓰느냐? 달러가 필요한 뉴욕대표부 같은 외교공관에도 보내고 프랑스 같은데서 뭘 사올 때도 쓰겠죠. 도덕적으로 칭찬받을 데다가 쓰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철갑상어 알을 사온다거나 와인을 비싼 거 사온다거나 이러면서 쓰고, 특히 통치자금이라고 해서 김정일 위원장이 간부들 수고하면 주는 모양이더라고. 외국에 나가서 쓸 수 있도록.

그런데 그건 말이죠, 나라가 가난할 때면 오히려 다 그런 짓을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에 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도 그랬대요. 그러니까 우리가 준 돈이 무기가 돼서 들어왔다는 식으로 등식화하는 것은...아무리 한나라당이라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그런 오해가 없도록 민주당이 풀어줘야 한다 이겁니다.

민주당이 그걸 안 해주면 지난 10년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세월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결과적으로 뒷받침해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명박 정부가 무슨 대북 경제협력 사업을 할 때도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까 한나라당도 조심해야 합니다. 제 발등 찍는 일은 하지 말아야죠.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경직됐지만 언젠가 이런 저런 이유로 대화가 풀리고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될 때가 옵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그럴 때 이명박 정부도 뭔가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전 정부 때리느라고 제 발등 찍는 일을 해놓으면 그 때가서 한 발짝도 못나가게 됩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먼저 나설 리는 없고, 민주당이 나서서 지난 10년 이러이런 성과가 있었으니, 지금 이 정부가 몰아붙이는 것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사리가 맞지 않다는 것을 얘기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대안정당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래야 수준 있는 초당적 협력이 되는 겁니다.

대북 지원으로 긴장완화가 안 됐다고?

끝으로 대북 지원을 해봤자 군사적 긴장완화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간단히 얘기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기본 입장은 '그러니까 남북관계보다는 한미관계에 주력해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가 결국 안보도 보장하고 통일도 앞당긴다'라는 겁니다. 그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거예요. 논리의 시발점이기도 하고.

그런데 한반도의 군사구조를 보면 솔직히 말해서 남한이 군사 문제를 풀 여지가 현재로서는 별로 없습니다. 2012년에 전시작전통제권 돌아오면 상황이 달라질지 몰라요. 그런데 아직은 전작권이 없어서 북한이 군사 문제를 우리랑 얘기하지 않으려고 해요. 남한하고 약속해 봤자 지킬 능력이 없다 이겁니다. 결정권이 없으니까.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 현실 아닙니까?

또 하나.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가 미국과 함께 해마다 하는 군사훈련, 그거 굉장히 겁나는 거예요. 봄·가을 두 번 하잖아요. 옛날보다 규모가 많이 줄긴 했죠. 80년대 군사 정부 시절보다는 줄었고, 북한이 제일 두려워하던 팀 스피리트 훈련도 없고. 북한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연습이라지만 임의의 시각, 아무 때나 바로 우리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공격행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군사 문제를 남북간에 얼마나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구조적이고 전략적인 문제, 군비를 통제하거나 감축할 권한은 없지만 초보적인 문제, 예컨대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최소한의 긴장완화는 경협이나 인도지원을 통해서 끌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죠. 가령 서해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함정간 무선교신이나 비무장지대 내 오해로 인한 충돌 격화를 방지하기 위한 연락들은 해왔어요. 경의선 철도·도로를 운영하기 위한 남북의 최전방 실무 부대간 통신수단이 만들어지면서 쌍방의 군부대간에 오해소지를 없애는 수단으로도 쓰였단 말입니다.

지금은 그것도 안 되겠지만...그전에는, 예를 들어, '좀 전에 난 총성은 오발이니까 오해하지 마라'고 하는 얘기를 주고받게 되면서 작은 충돌이 큰 충돌로 확산되지 않게 만들어 놨어요. 이런 정도의 긴장완화나 신뢰구축은 해왔으나, 본격적인 긴장완화나 신뢰구축은 북·미군사적 적대관계가 풀리거나 전작권이 돌아와야만 가능해지는 겁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걸 이해해야 합니다. 2012년 전작권이 돌아오면 남북간 군사상황은 경협이나 지원에 걸맞게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일어납니다. 그 때 가서라도 많은 성과를 내게 하려면 지금부터 북쪽이 군사분야에서 긴장완화에 협력하는 게 결과적으로 크게 도움이 된다는 걸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효과를 내고 축적해 나가야 합니다.
▲ 지난 1일 평양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일행. 힐 차관보는 이번 방문에서 리찬복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표를 만났다. ⓒ연합뉴스

-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10월 1~3일 평양에 갔을 때, 북한이 리찬복 판문점대표부 대표를 만나게 한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과거에도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같은 사람들이 갔을 때 리찬복을 만났어요. 북한이 미국에 비중있는 메시지를 보낼 때는 군부 대표인 리찬복을 직접 내보내더라고요. 핵 검증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간 힐 일행을 리찬복이 만났다...정확하게는 리찬복 상장으로 하여금 힐을 만나도록 국방위원회가 결정했다는 건데, 그건 김정일 위원장의 결정이라고 봐요.

그건 뭐냐? 미국이 지금 특별사찰급 검증을 요구하고 나서니까, 북한이 보기에 이건 단순한 핵문제 차원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군사적 균형과 관련된 문제고, 그래서 군사회담으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이미 최수헌 외무성 부상 같은 사람들이 유엔에서 핵군축 회담으로 가야 한다는 얘길 했었죠. 자기네는 핵무기를 가졌으니까 한반도에서 핵군축을 하려면 핵보유국끼리 회담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너희들이 지금 요구하는 건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이나 6자회담 참가국의 핵 검증단이 들어와서 볼 수 있는 정치적인 또는 기술적인 사안이 아니다. 불시사찰, 미신고시설 사찰을 해서 군사시설까지 뒤지겠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남쪽에 있는 미군 군사시설도 우리가 봐야 한다. 또 남쪽 해역에 출몰하는 미군의 함정에 탑재된 핵무기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의해 폐기하거나 감축해 나가야 한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을 거예요. 그것도 사실 오래된 얘깁니다. 그러니끼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특별사찰을 요구한다면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얘기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검증 대상과 시점의 문제인데...미국이 대상을 저렇게 벌려놔 버리면, 다시 말해서 미신고 시설 사찰, 불시사찰, 핵폐기물 저장시설에서의 시료채취를 요구한다면 군사시설까지 보겠다는 거기 때문에 군사회담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일 겁니다. 핵폐기물 저장시설에서 시료채취를 하면 완전히 발가벗는 겁니다.

94년 제네바합의 때도 사실은 미국이 핵폐기물 저장소에 대한 특별사찰을 하자고 요구했는데 북한이 안 받았어요. 군사시설이라고 얼버무리고 안 보여주고, 건물을 덮으려고 흙을 올리고 나무 심고 위장까지 한 걸 미국이 다 봤죠. 위성으로 찍혔으니까. 그래서 그걸 보자고 압박했지만 북한이 안 받았어요. 그걸 클린턴 정부가 어떻게 타협했느냐? 대상은 그대로 두고 시점을 뒤로 미뤘어요. 경수로가 2003년에 완공되기로 돼있는데, 그 공사가 거의 마무리 되고 핵심 부품이 들어가기 직전에 과거 핵 활동에 대한 특별사찰을 하기로 한 거죠.

이번에도 북한은 그렇게 시점 문제를 얘기했을 겁니다. '핵폐기는 확실히 한다. 대신 과거 핵활동까지 뒤지고 군사시설까지 보자고 하면 당신네 군사시설도 봐야겠지만 시점도 지금은 아니다'라고 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성공을 했으니까. 미국도 익숙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부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해요. 힐이 결정 못하죠. 미국이 대상을 크게 벌려놓는 만큼 시점에서라도 미국이 양보할 수밖에 없는 역제안을 했을 겁니다. 북한이... 그것마저 안 한다고 하면 부시 정부가 타격을 입죠. 그러나 조건을 걸어 놓고 한다고 하면 부시로서도 절반의 성공은 되니까...북한으로서도 절반의 성공은 되죠. 겁을 주는 겁니다. '이거 안 받으려면 아무것도 안 하겠어' 하는 식으로.

8월에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주변의 네오콘들의 압박을 슬기롭게 버티지 못한 부시 대통령이 잘못한 거예요. 다시 북한에 대한 요구를 완화하는 식으로 가고 있잖아요, 지금. 라이스-힐 라인에 힘을 실어주어서 7월 12일에 6자회담 수석대표간 합의가 나왔는데, 강경파가 세게 비판을 하니까 부시 대통령이 흔들려서 거꾸로 가다가 북한으로부터 역공을 당하는 거죠.
▲ 정세현 전 장관 ⓒ프레시안

미국은 항상 그래요. 미국만큼 북한에 끌려 다니는 나라가 없습니다. 결국 북한이 해달라는 거 많이 해줬어요. 클린턴 때도 처음에 무시했다가 벼랑끝 전술로 나오니까 '왜 그러냐'고 달려가서 제네바합의를 만들었죠. 그것도 북한이 하자는 대로 해 준 겁니다. 경수로 지어주고 수교협상 하기로.

외교에서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벼랑끝전술 쓰고, 약자의 공갈을 유일한 수단으로 삼는 북한과 같은 나라를 끌고 가겠다고 한다는 것 자체가 국격이 높아지면 불가능한 거예요. 끌려가기로 하자면 미국만한 나라가 없어요. 한국이 끌려간 건 끌려간 것도 아닙니다. 상대를 달래가면서 문제를 푸는 것을 끌려간다고 비난하면 외교는 못 합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 화요일마다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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