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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법'? 인터넷 통제를 위한 푸닥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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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법'? 인터넷 통제를 위한 푸닥거리!"

[독자기고]"문제는 소외와 증오이지 '악플'이 아니다"

제임스 딘, 커트 코베인과 같이 한창 타오를 시기에 생을 마감하는 스타들은 영원한 전설로 집단의 기억에 각인된다. 특히나 그것이 자살에 의한 것일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실제로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자신의 의지로 세상에서 존재를 지워버리는 자살의 결과 자체는 묘한 비장미까지 풍기며 상실감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스타의 자살은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다.
  
  아마 스타의 자살이 집단의 기억을 뛰어넘어 법이라는 성문화된 영역에까지 이름을 남기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것이다. 최진실 씨의 죽음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한나라당은 '사이버 모욕죄' 와 '인터넷 실명제'가 골자를 이루는 일명 '최진실법'을 신설하자는 주장을 하였고 전여옥 의원과 홍준표 원내대표는 필봉을 휘두르며 진두지휘에 나섰다. 일방적인 마녀사냥 등 인터넷의 폐해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시점에서 피해를 입은 개인을 신속하게 구제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들의 문제제기 자체는 어느 정도 경청할 구석이 있다.
  
  그렇지만 시민의 대표가 사회의 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법에 제정에 있어서 연예인의 팬클럽과 같은 자세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최진실 씨의 죽음을 무작정 악플의 탓으로 몰아가며 푸닥거리를 벌이는 이들의 머릿속에는 인과관계를 추론하는 엄밀한 사회과학 방법론(위대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무릇 인과관계란 인간의 머릿속에서 자의적으로 설정한 관계라고 지적했다)에 대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칠 법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엄밀성과 심사숙고가 요구되지만 '악플 때문에 최진실이 죽었다' 는 식의, 가십에 가까운 논거를 들며 법의 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집권여당으로서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미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촛불시위로 한바탕 홍역을 앓은 지난 7월 22일 '사이버 모욕죄 신설' 의 화두를 던졌고 현재 '최진실법' 으로 논의되는 내용들이 저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한나라당은 최진실 씨의 죽음을 빌미로 삼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촛불정국 당시 '광우병 괴담' 에 대한 비난이나 현재의 '악플러' 들에 대한 비난이 모두 그 내용과 대책 면에서 대동소이하다. 죽은 자의 이름을 자신들의 정략을 위해 동원하고, 시민을 향한 칼에 전 시민에게 사랑받던 스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야 말로 정말 비겁한 태도이다. 이쯤 되면 도대체 누가 낙서를 하고 있는지 헷갈린다. 법전에 낙서를 하는 것보다는 화장실 벽에 낙서를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피해가 적지 않을까?
  
  물론 모든 사람은 부당한 모욕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국가로부터 피해를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비단 인터넷 공간에 한정된 것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상의 모욕에 대해 국가가 감시를 하겠다는 한나라당의 접근 방식-인터넷에 대하여 국가가 나서서 검열을 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이 있다-은 '모욕' 이 아닌 '인터넷' 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아마 모욕에 따른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따진다면 한나라당은 촛불시위에 나왔던 수많은 시민들에게 배상을 해주기 위해 다시 천막당사로 돌아가야 할 것이며 조선일보는 최장집 교수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배상을 해주기 위해 사옥을 팔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선동한 것은 루소와 볼테르의 세련된 계몽주의 이념이 아닌, 익명의 화가들이 그린 정치적 포르노였다. 이것은 분명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에 대한 모독이지만 그만큼 당시 구체제 아래에서 신음하던 민중의 울분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화가들을 고소하며 탄압을 휘두르던 부르봉 왕조의 말로는 이미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자신의 귀를 막거나 상대의 입을 막아서 비난을 잠재울 수는 있지만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하여 소리없는 불만이 임계치를 넘었을 때 폭발하고야 만다.
  
  인터넷을 통제한다고 하여 '악플' 의 형태로 표출되었던 감정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프라인 상의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항상 이성적이고 고운 말만이 오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전경들이 술집을 돌아다니며 술자리에서 욕하는 사람을 일일이 경찰서에 잡아넣는 것이 우습듯이 인터넷상의 악플에 대해서도 신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이 직접 나서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할 것이다. 악플러를 체포해놓고 보니 대학교수를 포함한 전문직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뉴스가 말해주듯 악플은 한나라당이 생각하듯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열성분자' 들의 소행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거대한 일반적 증오의 일면에 불과하다.
  
  모두가 모두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보지 않았을 때 소외와 증오가 발생하고 그것은 악플, 욕설, 심지어는 최근 일본의 사례가 보여주듯 무차별적인 범죄로까지 이어진다.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소외와 증오이지 악플 자체가 아니다. 칼을 없앤다고 살인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악플의 피해자를 줄이고 싶다면 힘써야 할 것은 악플에 대한 통제가 아닌, 정제된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하고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과 함께 악플로 표출할 수밖에 없는 감정 및 공격적인 충동을 줄여주는 사회적 관계의 회복이다.
  
  한나라당이 단순히 대통령의 친위대를 넘어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이 되기를 원한다면 자신들에 대한 비난에 감정적으로 발끈하여 강권을 휘두르는 것에 앞서 그렇게 밖에 울분을 표현할 길이 없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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