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10.4 합의 쳐다보지도 않아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은 7년 뒤, 10.4 남북 정상회담과 상호 경제협력의 보다 확대된 구상을 낳게 된다. 그러나 2008년 등장한 이명박 정권은 이 모두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의지나 동북아시아 전체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발상은 이명박 정권에게서 찾기 어렵다. 말로는 "상생과 공영"을 내세우면서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려는 단체 인사들은 체포와 함께 수사대상이 되고 있고 10.4 합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남쪽 민간인 관광객 총격사망 사건 이후 경직된 금강산 관광 사업은 이명박 정권에게서 관심사도 아니다. 남과 북의 소중한 민간 소통구조의 하나인 금강산 관광은 그렇게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원칙적으로 따지고 들면 민간기업 현대아산의 사업이지만 그 의미는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차원의 것인데, 남북 간에 가로놓인 답답한 상황에 돌파구를 열고자 하는 정부 수준의 노력은 실감되지 않고 있다. 육로관광의 길이 열린 다음에 이어져야 할 다채로운 계획들은 구석 선반위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중이다.
금강산 관광, 올해로 10주년
개성공단의 경우는 보다 확대된 세계시장 진출의 기반을 만들어 내야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현상유지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금강산 관광 사업은 관광의 최대 적기인 가을철이 왔음에도 기대하는 만큼의 진척을 보이고 있지 않다. 펼쳐진 밥상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것도 챙겨 남북관계의 막힌 곳을 뚫어내는 전략적 지혜는 이명박 정권의 능력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1998년 11월에 처음 금강산으로 가는 뱃길이 열렸으니 오는 11월이면 벌써 10주년이다. 지난 해 11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백두산, 개성, 비로봉 관광을 포함해서 관광지역 확대와 사업 확장을 합의하고 돌아왔는데 그 성과는 우리 모두의 공유되는 자산임에도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담는 국가적 화두가 들리지 않는다.
이번 11월의 금강산 관광 10주년 행사는 이런 기조가 계속되면 과연 어떤 분위기가 되겠는가? 8주년 기념행사 때 다녀왔던 경험으로는 그간 2년이 지난 지금쯤 그때보다 훨씬 왕성한 기운이 솟구쳐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다. 올해가 금강산 관광 10주년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총론과 각론의 조화
금강산 관광의 현실은 오늘의 남북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여기서부터 우선 매듭을 푸는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관광자원인 금강산이 다시 부각되는 것은 여러모로 타산이 맞는다. 그런데 그 이전에, 우선 10.4 남북합의에 대한 국가적 의의를 보다 강력하게 부여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0.4 합의라는 총론과 금강산 관광이라는 각론이 서로 맞아 떨어져야 남북 간 상호신뢰가 보다 심화된 현실로 나타나고 대화가 차단된 상황에 훈기가 돌 가능성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럴 마음을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에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 남북 공동선언에 기초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사회적 역량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탁월한 역량을 가진 역대 통일부 장관들이 즐비하다. 임동원, 정세현, 이재정, 이종석 등은 남북관계에 대한 학구적인 깊이와 민족적 애정이 투철한 인물들이다. 대권후보 정치인 정동영의 이름까지 추가하면 더욱 다채로운 목록이 된다. 10.4 남북합의는 노무현 정권 당시의 작업이면서도 김대중 정권 시대의 노력,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역량이 뛰어난 각료들의 주도적 기여, 우리 사회의 오랜 합의가 서로 어우러져서 이루어낸 귀중한 성취다.
역대 통일부 장관들의 역량
가령 황해경제권의 발전은 경제적으로나 안보상으로나 향후 세계체제 내부에서 역동적인 역할을 해야 할 통일된 민족경제의 기반마련에 있어서나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이명박 정권은 이러한 사업구상에 대해 어떤 후속조처를 통해 실현해나갈 것인지, 그걸 기반으로 해서 어떤 남북 간의 새로운 미래적 현실을 만들어낼 것인지 도통 말이 없다. 아예 생각이 없는 것인지, 다른 정권의 성과라는 점에서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 그 구상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인지 종잡을 수 없다.
10.4 남북 합의 관련 행사에는 통일부 장관 대신 차관을 보내기로 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이명박 정권이 10.4 합의를 얼마나 냉대하고 있는지 확연해지고 있다. 전 정권의 자축 행사에 정치적 들러리를 서고 싶은 마음이 없다, 는 식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이유가 어쨌건 간에 이건 너무 졸장부의 자세가 아닐까? 정부 차원의 기념행사를 하면서 적극 이를 추진할 의지를 보이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해도, 그래가지고서야 통 크게 남북 관계를 풀어갈 수가 있겠는가?
공격적 대북 정책이 결과할 것은?
그간 이명박 정권이 남북 관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한 공격적 대비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그런 일련의 태세가 한반도 정세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생각이나 해보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은 대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은 일체 하지 않은 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때때로 뜬금없이 던지니 누가 그 진정성을 받아들이겠는가?
제안한다. 아니 촉구한다. 첫째, 6.15 공동선언 실천 관련 단체 수사를 중지하라. 6.15 정신에 대한 공세와 파괴는 남북관계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둘째, 10.4 합의 1주년 행사에 국가적 의의를 부여하는 노력을 보이라.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어려운 경제난국을 돌파하는 이른바 <불루 오션>의 하나는 각기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남북 경제 역량의 단단한 결합이다. 셋째, 역대 통일부 장관들의 조언을 경청하고 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새롭게 정리하라. 민족적 관점까지 기대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렇게 요란하게 내세우는 실용외교라는 관점을 하필 남북관계에는 왜 적용시키지 못하는가?
촉구하노니…
국가적 과제 해결에 때를 놓쳐 기회를 복구하는 시간과 비용을 쓸데없이 더 들이지 말고 적절한 선택과 지혜를 발휘할 줄 아는 것이 국가를 책임진 권력의 의무다. 이 난국에서, 10.4 합의가 절실하게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새기면 새로운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우리의 역량을 권력의 의지와 탐욕으로 쪼개고 갈라 분쇄하려 들지 말고, 또 남이 해놓은 것이라 관심 갖고 싶지 않다고 속 좁게 굴지 말고, "합해서 선을 이루는" 성경에도 나오는 말씀을 새삼 경청해서 좋을 순간이다. 분단된 민족의 염원과 의지가 담긴 10.4 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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