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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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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강물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76>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간다는 것은 퍽 어려운 일입니다. 옛말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이웃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맑다는 말은 때 묻지 않고 물들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때 묻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면서 살 수밖에 없는 삶은 결국 그 주위에 이웃이 모이지 않는 삶이 되고 만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부처도 중생 속에 있을 때 진정한 부처라 했습니다. 남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여럿 속에 있을 때도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자아야말로 진정으로 튼튼한 자아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에 이르는 강물의 모습을 보십시오. 맨 처음 강물은 산골짝 맑은 이슬방울에서 시작합니다. 깨끗한 물들과 만나면서 맑은 마음으로 먼 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차츰 폭이 넓어지고 물이 불어나면서 깨끗하지 않은 물과도 섞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면서는 더욱 심했을 것입니다.

더럽혀질 대로 더러워진 물이나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물, 썩은 물들이 섞여 들어오는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물은 흐름을 멈추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먼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강의 생명력은 매순간마다 스스로 거듭 새로워지며 먼 곳까지 멈추지 않고 가는 데 있습니다. 가면서 맑아지는 것입니다. 더러운 물보다 훨씬 더 많은 새로운 물을 받아들이며 스스로 생명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정 작용이라 합니다. 그리하여 끝내 먼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비록 티 하나 없는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온 모습으로 바다 앞에 서는 것입니다.

바다를 향해 첫걸음을 뗄 때만큼 맑지는 못하더라도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 모습으로 바다에 이르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섞여 흘러가면서도 제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 우리도 그런 삶의 자세를 바다로 가는 강물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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