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재미동포 첫 여성 시장 신디 류 시장입니다. 신디 류 시장은 1957년 서울 출생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댑니다. 1980년 미국 워싱턴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했고 1983년에 같은 학교에서 MBA를 받았습니다. 졸업 이후 보험업에 종사해 오다 2003년 첫 시의원 도전에서 797표차로 아깝게 낙선했고 2005년 시의원 선거에서 당선됐으며 올해 초 미국 워싱턴주 쇼어라인 시의 첫 한인 여성 시장으로 당선됐습니다.
박인규 :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지난 1월에 시장 당선되신 거죠? 좀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신디 류 : 감사합니다.
박인규 : 8개월 이상 일하셨는데 일할 만하십니까
신디 류 : 너무 재밌네요.
박인규 : 미국에서 한국계로 시장 당선되신 게 80년대인가 90년도인가 김창준씨, 이 분이 연방하원의원까지 하셨고, 여성으론 처음으로 되셨어요. 지금 미국 내에서 시장직에 진출하신 한국계 분이 또 계신가요?
신디 류 : 네. 뉴저지 에디슨시장.. 젊은 남자분이 계시고 워싱턴주 훼드럴웨이의 바로 전 시장 박영민 의원이 계시죠.
박인규 : 이제는 미국 내 공직사회에 많이 진출하시는군요. 바쁘실 텐데 한국에 어떻게 들어오시게 됐습니까?
신디 류 : 이번에는 제 2회 한인정치인포럼이 있어서 초청받아서 왔습니다. 그리고 시애틀 쪽에 시애틀 전 총영사님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셨거든요. 그래서 겸사겸사 권찬호 총영사님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려고 왔습니다.
박인규 : 외국에 나가 계신 많은 한국계 정치인이랄까 공직에 계신 분들이 모이신 건데 주로 어떤 말씀을 나누셨나요 이번에 모이셔서
신디 류 : 회의를 저녁부터 시작하는데, 지난 3주 전에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도 만났는데 아무래도 미국 가서 이민생활이 힘들긴 하잖아요. 그렇지만 정신 바짝 차려서 잘해보자.
박인규 : 궁금한 것이, 제가 알기론 미국의 모든 선거는 11월에 중간선거.. 이렇게 하는데 신디 류 시장은 올해 1월에 당선되셨고, 그것도 직선이 아니라 시의원들이 호선을 해서 됐다고요.
신디 류 : 그렇죠. 미국식이, 다릅니다. 일부는 한국식과 유럽식으로 직선으로 하는 게 있고 반반으로 나눠지는 것 같아요. 저희 시를 포함해서 반은 시의원 중에서 회장을 뽑으면 그 회장이 시장 역할을 하죠.
박인규 : 쇼어라인 시. 우리말로는 해안선이란 뜻 같은데, 거기에 보면 백인들이 많다는데, 시장은 한국계고 부시장은 흑인이라고요. 희한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신디 류 : 저희가 한 8년 동안 열심히 운동을 했는데, 시는 신도시라고도 할 수 있죠. 13년 밖에 안 됐지만 그 동네 자체는 벌써 70년이 넘은 학군이 좋아서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13년 전에 시가 됐는데 8년 만에 저희가 정권을 바꿨습니다.
박인규 : 그렇게 소수민족들이 힘을 쓰게 된 특별한 배경이 있나요? 부지런해서 그런가요?
신디 류 : 부지런하기도 하고 열심히도 하고, 특히 한인으로서는 저희가 13년 전부터 계속 시의원 한 명은 꼭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시장이나 시장은 처음으로 소수민족인이 됐죠.
박인규 : 쇼어라인시. 시애틀 근방인 건 알고 있는데, 새로 개발된 신시가지, 잘 사는 데란 느낌이 드는데 어떤 뎁니까?
신디 류 : 일부는 그렇죠. 서북미에 있는 워싱턴주.. 거기의 시애틀 대도시라고 해도 60만 명밖에 안 되지만, 바로 옆 동네죠. 윗동네. 그래서 중소도시며 인구는 한 5만3천 명. 조그맣죠 한국에 비교해서는. 그렇지만 워싱턴주에서 15번째로 큰 시입니다. 그래서 학군이 좋고 주로 주택가, 상권이 좀 있고요
박인규 : 미국인들은 돈 많이 벌면 대도시보다는 교외 작은 도시로 나간다고 하는데 그런 도시 중 하난가요?
신디 류 : 그렇죠. 살기 좋죠.
박인규 : 일부 언론보도에는 빌게이츠 집도 그쪽에 있다던데
신디 류 : 시 자체는 아니지만 저희 시에서 30분 안에 있는 거립니다. 가까이 사십니다.
박인규 : 인구 5만3천인데 한국계가 한 번도 시의원을 빠진 적이 없다. 한국계가 많이 사시나요?
신디 류 : 많지는 않아요. 1500명 정도 사시고, 많지 않아요. 그 중에 규정적으로 투표하시는 분들은 한 60명. 얼마 안 됩니다.
박인규 : 그런데도 한국계가 힘을 쓰고 있다. 비결은 어디 있을까요?
신디 류 : 그러니까 3마일... 한 5KM 되는 도로가 있는데 거기에 한인 상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처음부터 집중하신 것 같아요.
박인규 : 보도를 보니까 쇼어라인에 있는 가게 중에 한 3분의 1 정도가 한국계 소유라고 하는데 맞습니까?
신디 류 : 요새는 좀 줄어든 것 같아요. 다른 이민 오신 분들도 열심히 하시고 또 재개발하기 좋은 데다 해서 아무래도 백인들이 다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박인규 : 한국계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적어도 상권이랄까 경제계에서는 상당히 영향력을 갖고 있군요.
신디 류 : 그렇죠.
박인규 : 백인이 한 70% 되고 아시아계가 10여 %된다고 하는데 시장님이시니까 아시아계만 위해서 할 순 없고, 쇼어라인시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현안이랄까? 어떤 겁니까?
신디 류 : 이 지대가 건물들이 한 50년이 됐어요 다들. 그래서 도시 재개발, 그리고 건축계획이 제일 중요하죠. 그리고 또 공유지 사용방법에 대해서 저희가 신경을 많이 써야 되고
박인규 : 말하자면 도시를 리노베이션하는 것
신디 류 : 그렇죠. 굉장히 중요하죠. 미국은 한 번 해 놓으면 50년 정도 보니까 그 상태로 유지해야 되니까요.
박인규 : 그걸 위해서 공청회 같은 것도 많이 하시나요?
신디 류 : 그렇죠. 저는 개인적으로 소상공인 영업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공정하고 개방된 자세로 주민들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을 계속 해야지요.
박인규 : 저는 궁금한 것이, 미국에 진출하신 한국 분들이 일단은 막말로 먹고 살기 바빠서 장사를 많이 하시고 공직사회에 그동안 진출을 잘 안 하시는 편이었는데. 특히 이런 말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줌마신데 시의원도 하시고 시장에 진출하셨어요.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겁니까?
신디 류 : 사실 제가 말씀하신 것처럼 먹고 살기 바빠서 공부하는 데 바빠서 전혀 생각을 안 했었어요. 그런데 저희 상가 건물 바로 앞에 있는 도로 중앙분리대 상권에 밀집되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아무래도 참여를 해야겠다 해서 많은 성과를 봤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제가 생각하기엔 부당한 시 정책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출마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박인규 : 한인이 밀집해 있는 상권에 도시계획이 되고 있는데 한인들에게는 맞지 않게 불합리하게 되고 있다. 그래서 시의원에 나가 보자. 2003년도 시의원 도전에서는 실패하셨습니다. 왜 떨어지셨어요?
신디 류 : 790표차로.. 왜냐면. 오히려 거꾸로 말씀드릴게요. 2005년도에는 제가 2000표로 이겼거든요. 그래서 그때 다행히도 이겼는데 배운 점이 있습니다. 그때 2003년도도 그렇고 2005년도도 그렇고 굉장히 한인 동창, 선배님들이 지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래서 한인 지원은 확실히 필요하다. 기초라고 생각하거든요. 바탕이죠. 그런데 아무래도 한인이 2.3%밖에 안 되니까 5만3천 명 중에. 그래서 특권 있는 라지 커뮤니티를 상대로 해서 격려를 받고 자금 모금도 하고 선거운동을 해야만 되지 않나 이렇게 다행히도 제가 배웠습니다.
박인규 : 한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백인 주류 사회를 공략하자는 전략
신디 류 : 맞습니다. 그래서 다행히도 제가 공부는 잘하기 때문에 그건 배웠어요. 그래서 캠페인, 선거운동을 할 때는 버즈라는 게 있거든요. 그걸 빨리 일으키고 일찌감치 만들어내야 효력이 있구나.
박인규 : 우리말로 하면 바람, 그런 건가요?
신디 류 : 바람, 소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캠페인에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인정을 빨리 받아야 된다는 걸 제가 다행히도 해가지고 두 번째는 붙었습니다.
박인규 : 2005년도에 시의원 당선되시고 다음에 바로 시장에 도전하셨어요. 언론 보도를 보니까 처음엔 부시장부터 할까 하다가 내친 김에 시장이 되셨다는데 어떻게 자신감이 생기신 겁니까?
신디 류 : 작년 11월 선거 결과로, 제가 좋아하던 전 부시장이 떨어졌어요. 저는 그 분이 시장이 됐으면 했는데, 그러니까 가능성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다행히도 대신 제 친구들 두 명이 붙어서 정권이 8년 만에 바뀌었어요. 그래서 다행히도 7표가 있잖아요? 시의원이 7명이니까. 7 중에 4표만 나와도 시장이 되는데 다행히 저는 5표를 받았습니다.
박인규 : 본인 포함입니까?
신디 류 : 그렇죠.
박인규 : 8년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고 하셨는데 그 전에 시장 하시던 분은 공화당 소속이었나요?
신디 류 : 공화당도 민주당도, 시는 조금 다른 게 당 없이 일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민주당으로 열심히 일했는데 2005년도 선거운동 할 때는 사실은 공화당에서도 저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박인규 : 전체 인구의 2.3% 밖에 안 되는 한인을 대표해서 시장이 되셨어요. 인터뷰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 아줌마들의 힘을 인정한다고 했는데, 한국계, 한국 여성들에 대한 현지 사회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신디 류 : 평가는 좋죠. 아직은 이민 1세가 주로고 영어를 좀 하시는 2세들도 아줌마가 되기 시작하죠. 애 낳고 공부를 미국에서 하신. 그런데 한인들만이 아니라 동양 여자에 대해서는 역사가 있죠. 왜냐면 중국 분들은 1세들도 많지만 2,3,4세, 그리고 일본 분들은 2,3세가 주로잖아요. 그 중에도 동양 여자라고 하면 유리한 점이 있죠. 똑똑하고 일 잘한다고 인정받았죠. 그리고 또 저희는 아직 시집, 친정, 그런 식구에 관계돼서 복잡하지만 그래도 장단점을 저희가 배우면서 이겨나가면서 잘 정치적인 생활을 가족 안에서도 잘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걸 잘 이겨내면서 일은 잘 한다. 이런, 주로 그런 게 있어서 어떻게 보면 도움이 됩니다.
박인규 : 이런 식으로 물으면 우문일 수 있는데 한국계 남성보다 여성들이 평가가 좋은가요?
신디 류 : 저도 아들이 있어서, 제 남편도 한인 남성이기도 하고. 우리 오빠 동생들도 다 남성들이신데 아직은 그렇게 돼 있어요. 남자에 대해서는 조금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여성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어요.
박인규 : 한국계 남성들이 백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그런데 여성들에게는 상대적으로 경계감 같은 게 적다.
신디 류 : 그래서 여성으로서는 일이 쉬워졌던 것 같아요
박인규 : 상대적으로 더 유리할 수도 있겠네요. 미국 이민의 역사로 따진다면 한국보다는 일본이나 중국이 앞선 걸로 알고 있는데 공직사회 진출현황은 어떻습니까 보시기에
신디 류 : 꽤 있었어요. 사실 워싱턴주에도 주지사가 중국 분이 한 번 있었어요. 열심히 잘 하셨는데 그 다음에는 저희는 주하고 연방에는 여자 분들이 많아요. 당장은 여자가 주지사입니다. 그런데 당장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밸뷰라고 또 큰 시가 있는데 거기에 의원으로 13년이나 하신 중국 분이 계시는데 아직 시장을 한 번도 안 해줬어요. 그 분이 제가 볼 때는 일본이나 중국 분들이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안 되시고 뜻밖에 제가 1월에 되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박인규 : 한국계의 공직, 정계진출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볼 수 있겠네요
신디 류 : 그렇죠. 아무래도 숫자가 적으니까요
박인규 : 신디 류 시장께서는 미국 이민 간 게 초등학교 4학년이라고 하는데 그 당시하고 지금 40년 이상 지났잖아요. 미국에서 한인들의 위상이 처음과 지금이 많이 달라졌나요? 물론 신디 류 시장 같은 분이 나왔다는 것도 위상변화를 보여주는 예이긴 한데 본인이 느끼시기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신디 류 : 옛날에 미국에 69년도에 이민 들어갔을 때만 해도 저희가 콩나물 한 번 사먹으려면 한 30분 운전해 가서 사 먹고 두부도 사 먹기 힘들었어요.
박인규 : 이른바 오리엔탈 그로서리가 없었군요.
신디 류 : 없었죠. 요새는 많이 생겼고 옛날 60몇년도와 2천몇년도에 이민 오는 것,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고, 어느 정도 교육은 잘 시켜주셨어요. 그래서 저희 자녀분들이 1.5세 2세들이 잘 삽니다. 그러니까 프로페셔널 잡... 의사, 전문직으로. 변호사, 선생님들도 많이 생겼고. 그래서 가능성은 많아요.
박인규 : 제가 알기로 미국에서 공직사회 진출한 한국계 분들이 대체로 공화당을 통해서 진출하시는데 신디 류 시장은 민주당이세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신디 류 : 특별한 이유보다도, 왜 그런지 민주당이 되더라고요. 저희 오빠, 남동생들은 다 공화당이거든요. 그리고 또 정치인 포럼, 이런 데서 만나도 보면 주로 공화당인데 제가 워싱턴주로 이민을 처음으로 거기 떨어져서 아직도 거기 사는데 제 적성, 성격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어떤 측면, 소수 민족을 위한다는 건가요?
신디 류 : 그것도 그렇고 동양인들 역사가 깊고 굉장히 발전적이에요. 여성에 대해서도 다른 데선 힘들 것 같은데 저희 주지사도 그렇고 연방 상원의원 두 분이 다 여성들이시고, 그래서 그런지 또 워싱턴주 서쪽에는 주로 민주당이 2대1 정도는 됩니다.
박인규 : 워싱턴주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군요.
신디 류 : 서쪽은 그래요. 동쪽은 좀 다르고요.
박인규 : 지금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냐 매케인이냐, 굉장히 관심들이 많은데 민주당이시니까 물론 오바마 편이실 테고
신디 류 : 물론이죠.
박인규 : 정치성향을 떠나서 객관적으로 누가 유리하다고 보세요?
신디 류 : 저는 오바마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이 분이, 처도 그렇고 두 분 다 굉장히 똑똑하시잖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소수민족... 동남아시아 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저희 한인들한테는 도움이 많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신디 류 시장 같은 한국계 여성시장도 생겼지만 아직도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 국인이 200만이 넘죠. 상당수가 먹고 사는 데 바빠서 말도 잘 모르시고 해서 그런 여러 가지 고생하시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그런 분들을 위해서, 물론 지금 쇼어라인 시장으로서 역할을 해야겠지만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신디 류 : 기본적인 갖춤은 열심히 하시잖아요. 교육, 경험도 많이 있으시고 교회 나가서도 봉사도 많이 하시는데 1세는 영어가 잘 안 된다고 해서 핑계는 있잖아요. 그렇지만 1.5세, 2세, 영어문제 없는 분들에 대해서, 자녀들, 손자 손녀들에 대해서 아무래도 정계 진출에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다, 관심있다 생각할 때는 제가 볼 때는 저 본인도 그렇고, 저도 45살 때까지 정치에 관심 없었거든요. 투표는 했지만. 조금이라도 기회가 언제 생길지 모르니까 아무래도 많이 사회조직과 평민을 대해서 동양 투표는 숫자가 안 되니까 백인들, 히스패닉들, 흑인들한테 자주 대화도 하고 계속 하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혹시 미국으로 처음 이민을 가신 분들의 적응을 위해서 한국 정부에서 도와주실 일이 있습니까?
신디 류 : 있죠. 개인적으로 생각해서는, 제가 바로 이번에 총영사님도 아주 좋은 분이 들어오셨지만 그 전에 권찬호 총영사님도 그렇고 그 전에 김재국 총영사님도 그렇고 저에게 힘내라고, 진짜 완전히 평범한 아줌마인 데다가 아무도 모르는 사람인데 오히려 제 남편이 더 유명했거든요 한인사회에서는. 유창명씨인데 유창명 보험 하면 반 이상 아는데, 저보고 뜻밖에 평통이고 어디 자꾸만 참여하라고 초청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거꾸로 미국 사회에만 신경쓰고 있었는데 한인 사회도 힘내라 해서 나가면서 한국말도 많이 늘었고 참여하고 그러니까 재미도 있고 힘을 더 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직접은 아니죠. 왜냐면 한국 정부에서는 못 도와주니까 구체적으로는 안 되지만 옆으로 도와주시니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힘이 되게 해주신다는 말만 들어도 너무 좋았었고
박인규 : 관심을 보여주는 것만 해도 도움이 된다.
보통 한국의 아줌마들 극성스럽다는 말도 하는데, 미국 아줌마들도 사커맘이니 뭐니 해서 극성스러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한국과 미국 아줌마의 같은 점, 다른 점은 뭡니까?
신디 류 : 같은 점은 자녀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집안이 많아요. 다 그렇지는 않지만 미국은 사실 그냥 놔둬도 놀고 먹고 하면서 공부하게 되잖아요. 공부 방식이 많이 다르니까. 그래서 한국 엄마보다 더 극성인 미국 아줌마들이 많아요. 학교 가서 봉사도 많이 하고 아예 학교에 가서 사는 엄마들이 많아요. 아빠들도 있고
박인규 : 우리는 주로 자기 아이들 가르치는데 전념하는데
신디 류 : 여긴 아니에요. 아무래도 학교 측에서는 쟤네 엄마가 열심히 일하니까 눈치를 조금씩 보죠
박인규 : 그리고 지금 월급이 900달러라고 들었습니다. 100만원 될까 말까인데 너무 손해 보시는 거 아닌가요?
신디 류 : 많이 손해봅니다.
박인규 :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단체에 계신 의원이나 이런 분들이 외유성 연수 가신다고 야단 많이 맞는데 혹시 그런 거 들어보셨어요?
신디 류 : 저는 무관심하죠.
박인규 : 그런데 900달러 받아도 괜찮습니까? 거기는 원래 다 그렇습니까?
신디 류 : 다 그렇지는 않고 큰 도시는 꽤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저희는 거의 봉사직으로 생각하면서, 그리고 또 다행히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그런 거겠죠. 남편과 제가 25년 결혼생활 동안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합니다.
박인규 : 쇼어라인시와 충남 보령시가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신디류 시장 작품 아닌가요?
신디 류 : 아니죠. 전 의원들에게서 물려받은 건데요. 사실은 한 2년 전에 주춤했더라고요. 몇 년 동안 주춤했어요. 그래서 그 전 의원 장태수씨한테 좀 활발하게 해달라 해서 재작년에도 관계가 있었고 이번 해에도 숫자는 많지 않더라도 몇 명이 10월 말에 보령시에 또 다시 들어오게 됩니다.
박인규 : 보령시학 쇼어라인시가 서로 자매결연을 맺어서 이른바 윈윈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서로 배우고 있나요?
신디 류 : 그러니까 한인들에 대해서, 서울에 대해서는 다 잘 많이 알아요. 수도니까. 그러나 소도시... 한국에서 볼 때는 굉장히 소도시 아니에요? 그렇지만 거기 있는 대학하고 왔다갔다 교환도 많이 하고 학생들. 여름이 기후가 좋잖아요 미국이. 그래서 한국의 보령시에서 보내고 저희들도 거꾸로 보내고 합니다.
박인규 : 서로 지방자치의 좋은 점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임기가 2년이신가요?
신디 류 : 시장으로는 2년, 의원으로는 4년입니다.
박인규 : 1년 반이 채 안 남았는데 연임되셨으면 좋겠고 앞으로의 계획, 못다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지막 정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신디 류 : 그러니까 저희가 할 일은 많습니다. 신도시라도 다음 50년, 100년에 대해서 굉장히 시청 건물도 지금 짓고 있고, 먼저 말씀드렸던 것처럼 도시 재개발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써야 되고요. 그러나 저는 아무래도 소수민족, 그리고 상권에 대해서 많이 신경을 쓸 거고, 그리고 새 한인 여시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제가 열심히 응원해 주고 뒤에서 도와줄 수 있는 면을 제가 아무 때나 도움을 청하시면 제가 도와줄 거고 더 중요한 건 이민 와서 생활할 때 힘드니까 기본적인 밸런스를 이루기. 여자만이 아니라 가족들, 남성들도 그렇고 직장, 가정생활, 개인 취미, 믿음생활 그런 데에 밸런스를 잘 이루시면서 좌절하지 마시고 자신감 있게 확신을 가지시고 용기있게 기쁘게 사실 것을 권합니다.
박인규 : 다음번에 꼭 연임하시기를 빌고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주지사까지 나왔다고 하니까 한국계 주지사가 나올 때까지, 또 되셔도 좋고. 많은 활동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신디 류 :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재미동포 첫 한인 여성 시장인 신디 류 시장을 초대해 소수민족 출신으로 미국 공직사회에 진출한 비결과 한인들의 위상, 그리고 한국 아줌마의 힘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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