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세속주의 정치는 1984년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가 사망하면서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인도국민당의 힌두 민족주의가 주도한 종교 공동체주의가 차지하였다. 인도국민당이 40년 동안 진행되어 온 회의당의 권력 독점 구조를 무너뜨리고 집권 여당으로 자리 잡게 한 데에는 힌두교의 정치 이데올로기화의 역할이 매우 컸다.
힌두교가 정치 이데올로기화 된 것은 4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회의당의 일당 지배에 대한 무기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 작업을 주도한 인도국민당은 반무슬림 감정으로서의 힌두주의를 자극하였다. 총선에 처음 참여한 1984년만 해도 인도국민당은 전체 545석 가운데 단 2석밖에 얻지 못한 군소 정당이었다. 하지만 인디라 간디가 암살을 당한 이후 회의당이 네루 가문의 혈통주의를 부추겨 다시 압도적인 지지를 받자 그들은 반 무슬림 힌두주의를 본격적으로 불 지피기 시작했다.
40년 동안 그 막강한 혈통주의로 인해 권력의 언저리에조차 가보지 못한 인도국민당은 기존의 간디식 사회주의와 세속주의의 당 이념을 과감히 버리고 힌두 근본주의 노선을 채택하였다. 이 작업에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1986년 당 총재로 당선된 아드와니(L.K.Advani)였다. 아드와니가 암소 도살, 카시미르에서 무슬림에 의한 힌두 사원 파괴와 같은 매우 민감한 문제를 거론하면서 힌두 근본주의 노선을 천명하자 극우 힌두 근본주의 단체인 국가자원봉사단, 세계힌두회의, 행동전위대(Bajrang Dal) 등과 같은 연대 단체들이 즉각 적극 지지를 보였다.
그 때 그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곳이 아요디야(Ayodhya)였다. 힌두교에서 대중으로부터 가장 대중적인 숭배 대상 가운데 하나는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다. 라마는 힌두 신화에서 이상 군주의 역할을 하고 있고 따라서 그가 탄생한 곳인 아요디야는 그 이상 정치가 펼쳐지는 이상향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그곳에 이슬람 사원인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asjid)가 있다는 사실을 화근으로 삼았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16세기에 무갈 제국을 세운 황제 바바르(Babar)가 이곳에 원래 있던 라마 사원을 파괴하고 그 위에 이슬람 사원을 세웠다고 주장하면서, 당연히 그 사원을 파괴하여 원상을 복구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제기하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지만 식민주의자들이 뿌려 놓은 '이슬람 세력의 힌두 사원 파괴'라는 도식이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상당한 파급력을 가졌다 (자세한 내용은 14장을 참조하시오).
그런 상황에서 1984년 세계힌두회의는 라마탄생지해방전선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바브리 사원을 힌두에게 개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결국 법원이 주 정부에게 개방을 명령하고, 그 판결이 국영 티브이를 통해 방송되었다. 이에 무슬림들은 바브리마스지드행동위원회를 조직하여 법원의 판결에 저항하였다. 그러면서 전국은 아요디야를 둘러싼 힌두-무슬림의 무력 충돌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라지브 간디 총리와 중앙 정부는 국가 이념이 세속주의임에도 힌두 세력의 이탈을 두려워하여 힌두 근본주의 확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 흐름에 편승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힌두주의자들이 아요디야에서 계획하고 있던 주춧돌안치의례를 연방 의회와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의 판결을 묵살하면서까지 허가해주었다.
아요디야 사태를 일으킨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힌두 국가 건설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정당인 인도국민당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종교 감정을 자극해 바람을 일으켜 인도국민당을 지지하였고 인도국민당은 적극적으로 화답하였다. 그 때 회의당 정부는 정부 내에서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면서 분당 되었고, 그러면서 40년 넘게 유지되어 온 회의당 1당 체제가 깨지고, 정권이 사회주의 연합 정당에 넘어가는 일이 생겼다. 그런 초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도국민당은 힌두 근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제기한 덕에 1989년 총선에서는 전체 의석 545석 중 91석을, 1991년에는 119석을 차지하는 비약적 성장을 거두었다.
'아요디야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인도국민당은 웃따르 쁘라데시 주 선거에서도 승리하여 주 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힌두 근본주의 단체들은 라마 사원 건설을 추진하였고 인도국민당 주 정부는 그것을 적극 지원하였다. 그러자 1991년 다시 집권을 한 회의당 정부는 그 공사를 중지시켰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힌두 근본주의 세력과 무슬림 단체 사이에서 아무런 해결도 보지 못한 채 협상은 결렬되고 결국 힌두 근본주의자들의 사원 공사가 강행되었다. 사원 공사란 다름 아닌 무슬림 사원을 파괴하고 그 위에 힌두 사원을 세우는 것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만 기다리고 있었다.
1992년 10월 30일 델리에서 열린 집회에서 세계힌두회의는 1992년 12월 6일을 바브리 사원을 부수고 라마 세원을 세우는 행동의 날로 삼노라고 발표했다. 그들은 현재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무슬림들은 이 나라를 침략해 들어온 자들의 후손이고, 그들 침략자들이 자신들의 라마 사원을 파괴하고 그 위에 모스크를 세웠기 때문에 현재의 이슬람 사원인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하고 그 위에 라마 사원을 복원해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이에 중앙 정부는 군대를 이 지역에 파견하여 사원 파괴 행위를 막고자 하였으나 주 정부를 등에 업은 힌두 근본주의 세력은 그런 움직임에 아랑곳 하지 않았다. 아드와니를 비롯한 인도국민당 정치인의 행동 참가 선언이 잇달아 일어났고, 이어 전국에서 행동 대원이 속속 모여들어 이 지역에 수십만의 행동 대원이 집결하였다. 그리고 군과 경찰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슬림의 성소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이슬람 사원을 완전 파괴하고 그 자리 라마 신상을 모신 천막 주변에 담 축조 공사를 하였다. 파괴 과정에서 232명이 살해되었고 그 후로도 유혈 사태가 전국적으로 계속되어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 동안 집을 잃은 사람이 수십만 명이고 재산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이것이 비극의 끝이 아니다. 더 큰 비극은 그 일로 인해 그 이후 인도에 복수의 연쇄 테러와 또 다른 복수의 학살이 줄줄이 예약되었다는 사실이다. 힌두 근본주의자 행동 대원이 모스크를 파괴하는 장면이 티브이와 라디오를 통해 전국에 중계되고 자세한 내용이 연이어 신문에 보도되면서 인도 전역에 힌두와 무슬림 사이의 종교 공동체 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뭄바이가 속해 있는 서부 지역의 마하라쉬뜨라, 구자라뜨 그리고 북부의 웃따르 쁘라데시 주였다.
아요디야 사태 이후 힌두 근본주의자들의 정치 권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1996년의 총선에서는 161석을 차지하여 제1당의 위치에 오르고 비록 13일간이었지만 집권당의 자리에 올랐다. 13일 후 과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데 실패해 집권당의 위치를 내주지만 그래도 13일 간이라도 집권당이 되어 보는 초유의 경험을 한 것이다. 그러다가 1998년에는 182석을 차지하여 제1당으로 연립 정부를 구성한 명실상부 집권당이 되었다. 비록 1999년 선거에서는 성장세가 한풀 꺾여 180석을 얻으면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여전히 제1당으로서 연립을 통해 집권을 하였다.
그들의 권력이 커져갈수록 힌두 광신도들의 난동은 격화되었다. 그러자 소수인 무슬림은 테러로 저항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큰 테러는 아요디야 사태가 일어난 직후 1993년 3월 12일 인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인 뭄바이에서 터진 폭탄 테러다. 이 날 뭄바이에서는 증권거래소, 쇼핑센터, 공항, 시장, 호텔 등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만 집중적으로 13 군데에서 동시에 폭탄이 터졌는데 단 번에 257명이 목숨을 잃고, 1400명이 부상당했다.
이슬람 세력의 테러는 힌두의 더 잔인한 학살을 잉태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테러가 끊이지 않다가 2002년 또 다시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002년 2월 27일 인도 서부의 한 작은 도시 고드라(Godhra) 역을 막 떠난 기차 안에서 난데없는 화재가 발생하여 5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불타 죽는 참극이 일어났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 죽은 사람들이 당시 인도 최고의 권력 집단인 힌두 극우 파시스트인 세계힌두회의 대원들이라는 사실이고 그들이 다름 아닌 아요디야에서 반무슬림 군중 집회를 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극우 정당 소속인 마하라슈뜨라 주 수상과 뭇 언론들은 이 사건이 파키스탄의 사주를 받은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소행일 것이라며, 단 한 사람도 남김없이 관련자들은 모조리 처단하여야 한다고 떠들어댔다. 하루 후 고드라와 아흐메다바드(Ahmedabad)에 사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힌두 난동에 쓰러졌으니 사망자가 5000명이 넘었고, 집과 재산 피해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예정대로 선거가 치러졌고, 힌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둔 극우 정당의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슬림이 피의 복수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나섰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2005년 10월 수도 뉴델리의 시장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55명을 살해했고, 2006년 3월에는 힌두교 최대 성지인 바라나시의 힌두 사원과 기차역에서 세 건의 연쇄 폭탄 테러를 일으켜 23명을 살해하였다. 또 2006년 7월 뭄바이에서 대규모 연쇄 테러가 다시 발생하였다. 퇴근 시간에 기차역과 통근 열차에서 연쇄적으로 터진 이 테러로 인해 190명이나 되는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1992년 아요디야 사태 이후 테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이는 다시 집단 학살이라는 더 큰 규모의 테러로 연결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특히 뭄바이와 아흐메다바드가 있는 마하라슈뜨라, 구자라뜨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지역이 중심이 되고 있다. 현재 2008년은 2002년 이후 테러가 가장 많이 발생한 해로 9월 14일까지 벌써 네 건이나 전국적으로 터졌다. 지난 9월 13일에는 수도 델리의 번화가 다섯 군데에서 연쇄 폭탄이 터져 다음날까지 사망자가 30명이었다. 무슬림의 이러한 테러는 힌두의 무슬림에 대한 집단 학살에 대한 예고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테러는 그 어떠한 경우라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모든 보통의 도덕률에 의하면 테러는 잘못된 것이다. 테러에 대해 인류의 모든 사회는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고, 도덕적으로 비난을 쏟아 부으며 절대로 사회 내에 발붙이도록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테러 가운데 유독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용납을 하는 것이 있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테러이다. 종교는 따로 정당화 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정의롭다. 그리고 그 신의 폭력을 재단할 정의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종교가 테러를 용인할 수 있는 유일한 체계가 되는 것이다. 같은 종교 공동체의 전사들이 자행한 테러는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악행에 대한 응징으로 볼 뿐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사상 초유의 기독교와 불교 집단 사이의 갈등을 빚고 있다. 현재 그 형국이 시한폭탄과 다를 바 없다. 불교계에서는 주로 대통령의 언사와 편중 인사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고 정부 입장에서는 오해라는 말로 그 불만을 일축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건대, 불교계의 볼멘소리는 억측에 가깝다. 문제가 되는 인사를 볼 때도 현 정부의 특정 종교 편중 정도는 역대 정권과 비교할 때 그리 큰 차이도 없고, 기독교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거나 불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한 정책을 사용한 적은 없다.
다만, 정부에 가까이 있는 자나 가까이 가려 하는 자들이 그 세치 혀로 다른 종교를 능멸하고, 대통령과 그 주변에 있는 권력자들의 입이 가벼워 공과 사를 구별 못하면서 갈등에 부채질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리더십도 없고, 철학도 없으며 그래서 그렇겠지만 주변 상황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목사들을 모아 예배하는 것이 무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사역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대통령 주변에 있는 자들은 개종을 강요하는 것이 대통령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그 수준이 정말 너무나도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런 짓이, 성서(Bible)를 기초로 하여 보더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할 리 만무하다는 것은 웬만한 믿음만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안다.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권력 지지 세력이 확충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웬만한 사람이면 다 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세계 각지의 이슬람과는 달리 훨씬 이질적이고 복합적인데다 이 사회에서는 종교를 기준으로 하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짓을 통해서 지지 세력 집중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다. 국민 갈등을 부추기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물론 스스로 카타르시스에 빠지거나 자위를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은 있을 수 있겠다.
사실, 세상 어디를 봐도 이성으로만, 정책으로만 정치를 하는 나라는 없다. 엄밀히 볼 때 지난 노무현 정부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한나라당에게 넘긴 국민들의 입장이 그렇다. 그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썼다거나, 이라크 파병을 했다거나, 비정규직 문제를 무시했다거나 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이성과 정책에만 함몰이 된 나머지 국민들의 감성을 존중하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다. 그것을 조중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현 정부는 그것을 방송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이치다. 두 정권 모두 계몽 군주와 같은 입장에 서서 국민들을 훈도할 대상으로만 생각함으로써 소통에 실패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같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다. 오해도 좋고, 부채질도 좋다. 다만 그런 짓들이 종교와 관련이 될 때는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마치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는 것 같다는 사실을 무겁게, 정말 무겁고 무섭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그 주변 인사들이 그렇지 않아 너무나 불안하다.
만약 누구든 권력의 주변에 있는 자가 무슨 이유에서든 세치 혀를 나불거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능멸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그들이 감정에 쌓여 극단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종교 갈등이 싹트고, 폭력이 발생하고 종국에 가서 나라가 절단 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 그들은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 부관참시로 처단해야 할 것이다. 종교 갈등은 지역 갈등과는 차원이 다름을 명심해야 한다. 이 세상에 종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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