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에 감이 보기 좋은 빛깔로 익고 있습니다. 올해는 감이 잘 열렸습니다. 그런데 호두나무는 지난해보다 많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호두나무가 있는 밭에 흙을 두텁게 까는 공사를 하다가 나무 밑둥이 흙에 덮히는 바람에 나무가 심하게 앓은 탓입니다. 보통 때에도 나무들은 몇 해 열매가 잘 열리면 한 해는 해거리를 합니다. 그런 해는 열매가 부실합니다. 그래도 나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무 자체를 늘 소중하게 대합니다. 수확이 부실하다고 금방 베어버리지 않습니다. 열매가 많이 열리면 많이 열리는 대로 고맙게 생각하고 좀 적게 열리는 해는 적게 열렸구나 하고 받아들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생명을 가진 것으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은 소를 기르거나 닭을 키울 때도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키우던 소를 내다 팔 때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짐승뿐 아니라 사람도 어질게 대합니다. 그런데 닭과 소를 키우는 것이 기업화 하면서 가축을 생명을 가진 짐승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보게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광우병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되돌려 받았습니다. 사료의 양과 먹이를 주는 시간과 몸무게를 기계적으로 계산하면서 과학축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타산만이 있을 뿐인 짐승사육은 그것을 먹는 사람 역시 공포스러운 질병에 걸리게 하고 마는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만 골라서 대출을 하는데 대출 회수율은 98%에 이른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신용등급이 취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서브 프라임 대출을 해주었다가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서 지금의 금융위기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라민은행의 고객들은 서브 서브 서브 프라임인데도 서브프라임의 위기가 없는데, 왜 세계경제를 앞장서서 이끌어 가고 있는 부자나라 미국에서는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는 것일까요?
KDI국제정책대학원의 유종일 교수는 "그라민 은행은 사람을 살리려고 사람에게 다가가는 은행이고, 미국의 은행은 이윤극대화를 위한 은행"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기계적인 공식에 입각해서 신용등급의 숫자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어려운 사람을 살리려고 다가가는 은행이라는 것을 아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돈을 갚으려고 합니다. 은행이 고마운 존재인 걸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행이 자기들을 대상으로 오직 돈벌이만을 하려고 하는 걸 아는 사람들은 사정이 어려워지면 돈을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운영하는 돈 많은 사람들을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존재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 살아야 할 동반자로 대하는 태도로 돌아오지 않는 한 지금의 자본주의적인 삶의 방식은 언제든지 위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 위기는 동반 몰락과 동반 추락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를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주류가 되어 이끌어 가는 사회는 돈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사회입니다. 자본을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사람도 상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동안 자신도 상품이 되어가는 세상, 물신화 되어가는 세상이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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