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핵협상 살리기' 라이스-힐 마지막 '무한도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핵협상 살리기' 라이스-힐 마지막 '무한도전'

힐 방북 받아들인 北도 기대감 남아 있는 듯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핵 2단계를 마무리해 보려는 미국 내 협상파들의 막판 스퍼트가 시작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대표로 하는 협상파들은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핵 신고 검증 계획이 무리한 것이었음을 보여주는 문건을 언론에 흘리는 한편 힐 차관보의 방북을 성사시켰다.

불능화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북핵 협상 이행을 되돌리고 있는 북한도 힐의 방문을 수용하며 협상 진전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 ⓒ연합뉴스

검증 문건까지 유출한 협상파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해 지난 26일 공개한 국무부 문건은 협상파들이 유출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국무부 군축 전문가들이 주도해 작성한 이 서류는 미국이 북한에 요구한 검증 내용이 들어 있다.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핵개발을 목적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는 북한 내 모든 지점과 시설, 위치에 대한 전면적인 접근"을 요구했다. 그 대상에는 군사시설도 포함됐다. 또한 미국은 조사관들의 사진 및 동영상 촬영뿐 아니라 필요하면 얼마든지 머무르면서 지속적으로 의심 지역을 방문해 표본을 수집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 등은 미국이 북한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반대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유엔 핵사찰단으로 활동했으며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그같은 검증 내용에 대해 "북한의 군사시설을 정탐할 권리"를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어느 주권국가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라고 평했다.

신문은 특히 6자회담 수석대표인 힐 차관보도 이를 반대했지만 고위층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힐은 지난 수개월간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장관을 상대로 대북 요구사항을 축소하고 양보할 것을 설득했으나 강경파 고위급 인사들 때문에 그의 절충안이 거부됐다는 것이다.

6자회담 참가국간, 그리고 부시 행정부 내에서 이같은 공방이 벌어지며 8월 11일로 약속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삭제가 이뤄지지 않자 북한은 행동에 나섰다. 핵시설 불능화를 중단하고 원상복구를 선언했다. 지난 24일에는 '1주일 내 재처리시설 재가동'이라는 카드까지 꺼냈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명단 삭제 전 검증의정서 합의라는 새로운 조건을 넣었으며, 의정서의 내용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한국과 미국 등에서 대북 에너지 지원 중단 얘기가 나왔고, 북핵 상황은 '2006년 핵실험 이후 2007년 2.13합의 이전'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게 됐다. 그러자 미국 내 협상파들은 문건을 유출하며 '미국의 요구가 무리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언급된 '강경파 고위급'은 딕 체니 부통령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힐의 방북 보따리는?

이같은 상황에서 힐 차관보는 북한의 '재처리시설 재가동' 예고 직후 방북 의사를 타진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28일 보도했다. 북한이 재가동 '디데이'(D-day)로 잡은 내달 1일 쯤이 되기 전에 평양으로 가 타협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제안에 북한이 동의함으로써 힐 차관보는 30일 서울에 온 후 1~2일 두 북한으로 갈 예정이다.

힐 차관보는 "검증 내용은 실질적이어야 하지만 형식은 신축적일 수 있다"는 최근 발언대로 자신이 가져온 타협안을 북한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힐 차관보와 그의 참모들이 북한을 설득할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며 그 내용을 전했다.

그 구상에 따르면, 북한은 우선 미국이 원하는 검증 내용인 시료채취, 핵심 시설 방문, 기타 항목 들을 담을 검증 계획을 중국에 제출한다. 북한이 스스로 검증 계획을 내게 한 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조건부로'(provisionally) 삭제한다. 그 후 중국은 북한이 검증 계획을 수용했다고 발표하는 순서로 되어 있다.

신문은 이같은 구상이 북한의 체면을 살리고 검증 계획이 나오기 전에 테러지원국 삭제를 얻어 냈다는 명분을 북한에 주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고위급에 의해 승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힐 차관보는 이번 방북에서 이같은 구상을 바탕으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등을 만나 검증 체제 구축을 시도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7월 6자회담 수석회의 이후 잘 보이지 않던 힐 차관보가 이처럼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라이스 장관도 거들고 나섰다. 그는 26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중유 공급 중단 같은 조치들을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북한 달래기' 성격의 발언을 했다.

미국 내 협상파들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것은 지금이라도 북한의 추가 행동을 막지 못한다면 2006년 말 대북 정책 전환 후 진전된 북핵 협상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거의 유일한 외교 성과인 북핵 불능화마저 무산된다면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비해 북한이 플루토늄만 더 확보하고 핵실험까지 하게 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속내는?

북한이 힐 차관보의 방문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때 북한도 여전히 협상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달 26일 불능화 중단 선언에 이어 원상복구 개시 확인, 재처리시설 재가동 천명 등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을 선보이며 부시 행정부에서는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는 듯한 행동을 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당국간 회담이 끊어져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지원을 위한 남북 실무회담을 먼저 제안해 지난 19일 판문점 회담에 응하는 등 협상 의사를 간간히 보여 왔다. 특히 북한은 판문점 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의 부당성에 대한 자신들의 논리를 상세히 밝힘으로서 국제사회를 설득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어 북한은 지난 25일 남북 군사 실무회담을 전격 제안하기도 했다. 이 회담은 핵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현 상황을 타계하고 싶다는 의지를 미국에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힐 타협안'에 대한 북한과 미국 내 강경파들의 태도다. 북한이 '시료채취'에 관한 강한 거부감을 거둘 수 있을지, 또한 미국 내 강경파들이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 듯한 검증 체제 구축 방식을 승인할 수 있을지가 관건인 것이다.

북한은 힐 차관보의 방북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부시 행정부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꺾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팀과 미국 불능화팀의 추방과 같은 추가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내달 초로 예상되는 남북 군사 실무회담은 앞으로 있을 강경 조치에 대한 복선을 까는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2개월 앞둔 2006년 5월 북한이 남측의 태도를 떠보는 자리가 됐던 제4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과 같은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