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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마을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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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마을을 떠나다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13> 육십령~소사고개/6.3~5

산행 열째 날. 목요일.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번 주 내내 우중 산행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내렸다. 그제도 어제도 내렸고 오늘도 내리고 있었다. 모두들 산행 준비에 분주하였다. 안까지 젖어 버린 등산화에 말아 넣었던 신문지를 꺼낸 후 신어보기도 하고 지난 밤 말려 두었던 우의를 챙기기도 하였다. 그래도 오늘은 모두들 조금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젖은 등산화를 들어 보이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도 폼이 나지 않는 싸구려 우의를 펼쳐 보이기도 한다. 오늘 산행이 짧은 탓이었다. 빼재에서 소사고개까지 도상거리가 6.7km 밖에 안 되는 거리였다.

표고버섯된장찌개와 김치찌개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내려서자 산행에 대해 한 대장이 말했다.

"오늘은 소사고개까지 입니다. 산행 거리도 짧고 비도 오고 있으니 안전을 위하여 산행 시간을 5시간으로 늘리겠습니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게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호절골재에서 올려칠 때에는 전체가 암봉입니다. 삼봉산은 전부 암능이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됩니다. 또한 소사고개로 떨어질 때도 약 70도의 급경사이니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한줄기로 흐르는 백두대간 ©이호상

우리는 지난 저녁 내려온 빼재('신풍령'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를 통해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삼봉산(三峰山)으로 향했다. 숲은 여전히 비에 젖어 있었고 안개 가득하여 신비로웠다. 비오는 날의 산행은 맑은 날의 산행에 비해 힘들다. 시야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안개나 운무 등은 멀리 볼 수 없도록 시야를 가렸고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우의는 좌우를 볼 수 없게 했다. 길 또한 매우 미끄럽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조심해야 한다. 시야도 불편하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신경도 더 많이 쓰이고 힘도 훨씬 많이 드는 것이 우중 산행이다.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 내리는 날의 숲은 매우 아름답다. 비 오는 날 바람까지 불면 숲은 아름다움에 신비를 더한다. 나무 사이로 피어오르는 안개를 지날 때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오랜 옛날로 돌아가는 듯도 했고 아직은 가 닿을 수 없는 먼 미래의 아름다운 시간들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뿐인가. 비 사이로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나부낌은 가슴을 설레게 하고 그 부딪침은 몸을 달뜨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큰 바람이라도 불어 숲 전체가 흔들리며 춤을 출 때면 그저 그 곁에 머물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지나 온 삶의 모든 어리석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렇게 비 오는 날 산을 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비 맞으며 백두대간을 타고 있는 걸까.'

산길을 걸으며 이번 주 내내 마음속에 찾아드는 생각들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다. 답이 없는 질문들이었다.

'그저 백두대간이 이 땅의 등줄기라서 걷는 것일까.
그저 이 땅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한 번 걸어보고 싶어서 걷는 것일까.
그저 백두대간을 걸어보지 않고는 이 땅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걷는 것일까. 정말 그런 것일까.

그저 허리 잘린 백두대간을 걸으며 민족의 문제를 생각했다고 떠벌리고 싶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백두대간을 종주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걷고 있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천년 간 몸 기대어 살아오던 우리 조상들이 이 땅을 토막 난 하나하나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큰 줄기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백두산에서 뻗어 나와 낭림산, 두류산, 금강산을 만들고 오대산으로 이어지던 산줄기가 태백산에 이르러 방향을 남서 쪽으로 돌려 속리산으로 흐르고 지리산으로 흘러들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모든 산들을 하나의 산줄기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수 백 아니 수 천 개도 넘는 산을 하나의 산줄기로 본 것이다. 크고 높은 산이든, 작고 낮은 산이든 모두 하나로 보았다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가파른 오르막길도 무릎이 뜨거워질 정도로 급경사인 내리막길도 모두 하나의 길로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보았다. 백두대간의 양 끝에 있는 백두산과 지리산도 한 줄기 속에 있는 하나의 산으로 보았다. 백두산과 지리산이 하나이듯 이 산줄기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도 모두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무이든 풀줄기이든 말이다. 아무리 하잘 것 없이 보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후일 백두대간을 걷는 이들이 그들의 이런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의 마음을 느끼고 그들의 생각처럼 모두 하나가 되는 삶을 겸손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모든 생명은 하나라는 것을 후손들이 깨닫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비 내리는 숲길을 지나며 나는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후손들이 높고 큰 산을 오르는 것에만 열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하고 있었을까. 그저 백두대간을 걸었고 또한 여러 번 걸었다는 것이 자랑이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알기나 하였을까.'

"미끄럼 주의 하세요. 나무뿌리를 밟지 마세요. 비에 젖은 나무뿌리는 미끄러워요."
▲삼봉산 ©이호상

김 대장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삼봉산(1,254m)이 눈앞이었다. 호절골재를 지났다. 봉우리가 셋이라서 삼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산은 멀리서 보면 흡사 피어나는 연꽃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산은 금강산 일 만 이천 봉우리 가운데 하나를 옮겨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소금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산이었다.

우리는 삼봉산에 올랐다. 일봉, 이봉, 삼봉에 올랐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경치를 온전히 감상할 수 없었다. 산 정상 암벽 아래 세상은 온통 구름과 안개로 가득했다. 한 대장과 김 대장은 아름다운 조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나 역시 삼봉산의 아름다운 조망을 감상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러나 때로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법이다. 보는 것 보다 보지 않는 것이 참다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나는 삼봉산의 깊고 유장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았다. 산을 내려왔다. 가파른 급경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스틱에 의지하고 나무에 기대며 내려갔다.

뒤돌아보니 삼봉산이 보였다. 현지 사람들이 덕유 삼봉산이라고 부르며 사랑하는 산이다. 삼봉산까지가 덕유산줄기이다. 우리는 덕이 있는 크고 너그러운 산이라는 덕유산을 벗어났다. 힘든 산행이었다. 덕을 지닌 산이라서 덕유산이 된 것이 아니라 산을 지나는 이들이 그 고된 산행을 견디고 인내함으로 덕을 품게 되는 산이라서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을 품은 자들만이 산을 지날 수 있기에 덕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부질없는 생각들이다. 산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 구름이 걷혀 있었다. 삼봉산 정산은 거의 직각으로 떨어지는 암벽이었다. 장엄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 그 장엄한 아름다움 위로 구름이 다시 흐르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자 고랭지 채소밭이 보였다.
▲고랭지 채소밭 ©이호상

"이리로 대간 길이 이어집니다."

한 대장의 말이 들려왔다.

'이 길이 대간 길이라고 누구 알겠는가.'

밭에는 이제 갓 심어 놓은 배추들이 자라고 있었다. 밭 길 곁에 찔레꽃 피어 바람에 한들거리고 연보라색 엉겅퀴가 홀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밭을 지나자 키를 낮추던 산줄기는 끊어져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산줄기에서 내려와 끊어진 산줄기를 가로지르니 사과밭이었다.

하나 되어 흐르던 대간 길은 곳곳에서 끊어져 있었다.

소사고개에 들어서자 소사마을이라는 돌로 만든 직사각형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정겨운 모습이었다. 백두대간 쉬어가는 곳이라는 탑선 슈퍼의 광고판도 보였다. 황서식 촬영 감독, 우주환 대장 등이 마치 마을 사람인양 수더분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백두대간을 타는 사람들을 위해 마을에서 개방해 놓는다는 수돗가에서 스틱과 등산화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진흙을 닦아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수돗가의 하수구로 흘러드는 도랑에서 무엇인가 가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가갔다. 나무 그늘 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쪼그려 앉았다. 올챙이들이었다. 수 백 아니 수 천 마리의 올챙이들이 도랑에 가득하였다. 도랑이지만 맑은 물 흐르는 그 곳에서 생명을 틔워 자라고 있었다. 떨어진 나뭇잎 사이에도 나뭇가지 아래에도 모두 올챙이들뿐이었다. 꼬리를 흔들 때마다 작은 몸은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는 것 같았다. 도랑은 온통 올챙이 세상이었다. 올챙이 하나하나 모두 제 삶을 살아가는 생명 세상이었다.

나는 일행들이 모두 할 일을 마치고 마을을 떠날 때까지 올챙이들 곁에 있었다. 행복했다. 소사 마을을 떠나며 바라본 삼봉산은 구름이 걷혀 있었다.

비 그친 뒤였기 때문인지 삼봉산의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소사마을 올챙이 ©최창남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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