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미국인들은 쉽게 말해 다른 나라 사람들, 특히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나라 사람들의 저금통장에서 돈을 빼내 흥청망청 마음껏 과소비를 즐기는 중무장한 베짱이 강도들에 다름 아니었다. 이들 나라들은 미국에 상품을 수출해서 번 돈으로 또 열심히 미국의 재정적자를 메꾸는 데 사용되는 채권을 사들였다. 미국은 그저 달러를 찍기만 하면 됐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알트파터가 가르쳐 준 얘기이다.
금융경제 용어는 사기 언어술의 경연장이다. 모르는 용어 투성이에 말 자체도 전혀 정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통화를 중심으로 한 안정정책이란 사실 노동자들 모가지를 자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실업률은 높아지고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비정규직은 늘어나고 임금은 삭감되고 등등의 일이 벌어진다. 이게 안정이다.
IMF 이후 안정 정책을 편 나라 가운데 고용과 소득이 늘어난 단 하나의 사례도 없다. 그런데도 IMF의 구조조정 정책이야말로 해답이며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게 어쩔 수 없는 세계화와 금융의 모범답안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금융과 관련해서는 무슨 고상한 영역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펀드매니저니 애널리스트니 하는 금융업자들을 마치 신비한 돈벌이 천재라도 되는 듯, 심지어는 예컨대 조지 소로스같은 사람들을 숭배하는 분위기까지 있다.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은 에일리언들에 지나지 않는다.
월가의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 투기자본이란 먹고튀는 투기자본이다. 투기자본은 보통 20% 이상의 고수익을 추구한다. 20% 이상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제조업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 사기를 동원한 국민경제와 노동자들 등치는 강도질 착취일 뿐이다. 한국의 IMF 사태가 바로 소로스같은 에일리언들이 20%를 훨씬 넘는 고수익을 올렸던 좋은 먹이감이다.
현재의 금융 위기가 앞으로 어디로 퍼져나가고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단기간에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다고 해도 조만간 언젠가는 현재와 같은 금융자본주의는, 난파 직전의 낡은 유람선 안에서 지독한 초근시들이 벌이는 대박풍선 터트리기 게임과도 같은 머니게임 체제는 붕괴가 필연이라는 사실이다.
알트파터는 산의 꼭대기에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의 금융 위기 실상을 명확히 이해하게 해준다. 그는 오늘날 금융은 실물경제와 철저히 분리되어 별세계에서 따로 움직이고 있으며 사회와도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전세계 외환 거래 가운데 실제 상품결제 액수는 2%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른바 OECD 국가들의 수출이란 초국적 대기업들의 기업 내부거래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머지 98%는 실물경제와 관련없는 금융거래이다. 정확히 말하면 투기자본들의 이동이다.
전세계 금융자산 규모는 2007년 기준 대략 170조 달러 가량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60%가 달러화로 20%가 유로화로 보유되어 있다. 전세계 GDP의 3,5배 가량이다. 자본수지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를 과도하게 압도하는 이상비대증의 체제는 수시로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게 되고 마침내는 경제 자체를 붕괴시키고 만다.
실물경제가 어려운데 금융이 잘 나간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암세포가 점점 커지다 숙주를 압도할 정도로 성장하면 당연히 암세포 자신과 숙주는 생명을 잃는다. 알트파터는 현재의 금융자본주의는 암세포라고 단언한다. 세계화, 글로벌 스탠다드란 결국 투기꾼들의 돈벌이를 위해 만든 고상한 용어라는 게 알트파터의 지적이다.
그런데 금융자본주의 하에서는 하위계층 사람들도 금융시장의 높은 수익률에 자극을 받아 남들의 이익을 탈취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뒤따라 참여하게 된다. 이른바 개미군단이 그것이다. 따지고 보면 주식 시장이란 이제 기업의 자본조달 창구라기보다는 전국민을 도박에 끌어들이는 로또와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이런 차익취득 자본주의, 투기자본주의가 언제까지 지속되리라고 본다면 그건 눈먼 장님일 뿐이다.
알트파터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이용하면 자동으로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 차로 변하듯 자본주의도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보기에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붕괴의 서막이다. 머지않아 닥칠 에너지 식량위기의 쓰나미와 함께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붕괴된다. 그 소리가 북극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처럼 굉음일지 아니면 암환자의 고통스런 신음소리처럼 처연할지는 또 아무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종말이라는 사태를 앞에 두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여기서 알트파터가 제시하는 대안은 태양에너지 사회, 연대경제 협동조합을 비롯한 수많은 네트워크가 결합된 연대사회이다. 태양에너지 체제란 농업사회를 말한다. 그는 공업과 산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심은 농업인 사회를 태양에너지 사회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서구화, 근대화, 산업화를 죽을 힘을 다해 추구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간신히 국민소득 2만불 시대의 이른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풍요가 지속불가능하고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된다니, 조금은 황당한 예측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사치스런 풍요에 안주해 우리가 얼마나 취약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잊고 있다. 무엇보다도 석유의 고갈과 함께 식량 고갈, 다른 천연자원의 고갈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본주의 산업문명과 풍요의 원천이었던 석유가 사라진다면 당연히 산업문명과 풍요 또한 사라진다.
때문에 우리는 사회 체제 자체의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모색과 사색의 단초를 알트파터는 다소 무겁게 던져주고 있다.
아직도 대출이자 갚는 데 허덕이고 있는 글쓴이도 심란하긴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알트파트를 읽으면 더 심란해진다. 솔직히 차라리 알트파터를 읽지 말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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