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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도 살 테니 여러분도 제발 죽지 말아요!"

[현장] 2013, 밀양 송전탑과 대한민국 잔혹사

"이름이 있긴 있는데 나도 모르겠고 다들 모른다고 하네. 그냥 집 뒤에 있는 산이라 이름도 모르지."

집 뒷산으로 송전로가 지난다는 말에 산 이름을 묻자 양윤기(남·65) 씨가 머쓱하게 답했다. 송전탑 건설 계획이 세워지면서 평생 그저 '뒷산'으로 불러온 산이 생존권 투쟁의 공간으로 변했다. 양 씨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동화전 마을 이장이다. 그가 14일 오후 4시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공사 앞에 섰다.

양윤기 씨는 한국전력 건물을 바라보며 "박 당선인은 국민을 100퍼센트 행복하게 해준다고 했는데 그건 바라지도 않으니 송전탑만 없애 달라"고 호소했다. 양 씨의 부인은 행여나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한국전력이 송전탑 공사를 강행할까 봐 남편이 서울에 있는 동안 그 뒷산에서 자리를 지키는 중이라고 했다.

양 씨를 포함한 밀양 주민들은 이날 '희망 순례 버스'를 타고 한국전력 앞에 모였다.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 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계획한 1박2일 희망 순례에 참여한 이들은 14~15일 양일간 전국 장기 투쟁 사업장을 찾아 노동자를 위로했다. 일정을 별 탈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의 주민과 이계삼 대책위 사무국장, 김준한 신부 등 30여 명이 모였다.

쉴 틈이 없는 일정이었다. 이들은 14일 오전 밀양에서 출발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을 찾았다.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한국전력 본사에 항의 방문한 후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농성장으로 향했다. 다음날에는 경기도 평택시 쌍용차 고공 농성장과 충청남도 아산시 유성기업 고공 농성장을 연이어 방문했다.

고된 일정이었지만 아무도 힘들다는 푸념 한 번 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우리도 죽지 않을 테니 당신들도 꼭 살아 달라"고 투쟁 중인 노동자에게 몇 번이나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앞에서 밀양송전탑대책위 주민들이 송전탑 건설 반대 촉구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국가가 이럴 수 있나?"…전기는 서울로, 송전탑은 시골로!

765킬로볼트는 76만5000볼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15만4000볼트 송전탑보다 무려 18배 많은 전류를 송전한다. 35층 건물에 맞먹는 높이를 자랑하며 24시간 내내 기계음(코로나 소음)까지 일으킨다. 송전탑이 내뿜는 전자파는 주민을 불안하게 한다. 정부는 이런 거대한 혐오 시설을 밀양시에 짓지 못해 안달이다.

양윤기 씨를 비롯한 밀양 주민들은 765킬로볼트 송전탑을 둘러싼 싸움을 거의 10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밖에서 보기에는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혐오 시설 입주 반대 운동이다. 하지만 60평생을 땅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은 송전탑 반대 운동을 "생존권 투쟁"이라고 규정한다.

실제로 소중한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월 16일, 평생 가꿔온 땅의 가치가 한순간에 휴짓조각이 되었음을 알게 된 고(故) 이치우 씨가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분신자살했다. 한여름 연이어 전국 최고 기온을 기록했던 밀양에서 노인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산에 올랐다. 이들은 용역들이 톱으로 나무를 베려 하면 톱에다 다리를 갖다 대며 막았다.

이 목숨을 건 싸움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의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따라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경상남도 창녕군 북경남 변전소까지 송전탑 162개의 건설이 결정됐다. 이 중 69개가 밀양시 5개 면(청도면, 부북면, 상동면, 산외면, 단장면)에 들어서기로 계획됐다.

청도면은 송전탑 건설에 합의했으나 나머지 네 곳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싸움에도 물러서지 않고 송전탑 반대를 외쳐 왔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순전히 서울로 전기를 공급하고자 송전탑이 밀양에 들어서는데, 정작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밀양 주민은 고스란히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시도별 전력 자급률을 보면 서울은 2.9퍼센트지만 경상남도는 200퍼센트가 넘는다. 서울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애먼 지방 사람이 온갖 위험을 감수하며 송전탑을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치우 씨를 비롯한 밀양 주민들의 이런 의문에 정부, 한국전력을 비롯한 누구도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상동면 옥산리 여수 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하는 김영자(여·57) 씨의 세상 보는 눈을 바꿔 놨다. 김 씨는 평생을 "내 마음대로 살면 애국하는 것" 이런 생각으로 살았다. 그는 "농부가 농사를 열심히 지으면 애국하는 거지 달리 어떻게 애국을 하느냐"고 덧붙였다. 송전탑은 이런 그의 평생 신조를 산산조각냈다.

송전탑이 예정대로 건설되면 김 씨는 방 안 창문을 통해서 송전탑을 보면서 살아야 한다. 김 씨를 비롯한 주민들은 "송전탑 백지화가 불가능 하다면 백 번 양보해서 송전탑 대신 지중화(송전선로를 땅에 묻어 콘크리트로 막는 것)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5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한국전력은 이마저도 "비효율적"이라며 사실상 거부했다.

"폭행범에게 알립니다"…고소·고발당한 밀양 주민

한국전력 항의 방문 후 대한문 쌍용차 농성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갑자기 양윤기 씨가 일어나 "폭행범들 들으세요"라며 열 명이 넘는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사연은 이렇다. 양 씨가 부른 명단에 오른 이들은 국내 최대 공기업이라는 한국전력과 그 시공업체로부터 업무 방해와 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당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오는 30일 있을 재판에 대비해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해야 했다. 양 씨는 "글을 모르는 사람은 구두로 답하면 됩니다"고 덧붙였다.

강자와 약자 간의 싸움이 으레 그렇듯이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에서도 어김없이 고소·고발이 등장했다. 고소·고발을 당한 주민은 한 두 명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이 발표한 바로는 한국전력과 시공사가 주민을 상대로 39건의 고소를 했으며, 고소 대상이 210명 이상이다. 조 의원은 "단일 국책 사업으로는 최악의 고소·고발 사태"라고 꼬집었었다.

밀양시 단장면 태룡리 용회동에 사는 송영숙(여·57) 씨도 지난해 여름 한국전력으로부터 '공사 방해' 혐의로 고소당했다. 송전탑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는 헬리콥터가 밀양댐 부근의 헬기 이착륙장에서 이륙하려는 것을 온몸으로 저지했다는 이유였다. 고소·고발을 당한 여느 밀양 주민들처럼 송 씨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 밀양 주민 이금자 할머니가 송전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노동자들에게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쌍용차 농성 57일째…"살던 대로 살게 해달라는 것뿐인데"

평생 농사 열심히 지은 것밖에 죄가 없는 노인들이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모습. 밀양에서 나고 자란 곽빛나 마산진해환경운동연합 간사는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곽 간사는 "어르신은 온갖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면서 '국가가 이렇게까지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몸소 체험하신 분들이라 타인의 상처를 더 잘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15일 아침 평택시의 쌍용자동차 고공 농성장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신난숙(여·50) 씨는 "송전탑 투쟁을 하면서 우물 안 개구리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아요"라고 중얼거렸다. 같은 마을 성은희(여·52) 씨도 "우린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지" 하고 맞장구쳤다.

고공 농성장에 내리자 이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나 혐오하는 송전탑에 오른 세 명의 노동자를 보며 "아이고 세상에" 하고 탄식했다.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회장 등 3명은 국정 조사 실시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송전탑에 올랐다. "송전탑 농성 57일차"라고 쓰인 종이가 전봇대 사이의 줄에 걸려 나부꼈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밀양 주민들의 방문에 감사를 표한 뒤 "일하고 퇴근 후 가족과 소박하게 살고 싶은데 대한민국에서는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고 고공 농성의 소회를 밝혔다. 이어 복기성 수석부회장이 "어르신을 보니 고향의 부모님이 생각난다"고 말하자 주민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82세로 희망 순례 참가자 중 최고령인 이금자 씨는 너무 멀고 높은 곳에 있어 점처럼 보이는 세 사람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말을 건넸다. 그녀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을 찍었습니다. 하도 경제, 경제 하기에 얼마나 잘 살게 해줄까 싶어서 그랬는데…용산부터 시작해서 5년간 사람이 너무 많이 죽어서 이 할매 마음이 너무너무 아픕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쌍용차 고공 농성장에 대추와 사과 등을 전하고 유성기업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김영자 씨는 "누가 큰 거 바랐나. 살던 대로 그대로 살게 해달라 그뿐 아닙니까" 하며 탄식했다.

▲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이 굴다리에서 위태롭게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김순석 유성기업아산지회 부지회장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남빛나라)

'창조 컨설팅'으로 파괴된 유성기업 노동조합…"죽더라도 이기고 죽자"

이어 이들은 유성기업 고공 농성장으로 향했다.

지난 2011년 노동조합이 밤샘 노동 폐지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요구하며 잔업 및 특근 거부에 들어가자 사측은 '창조 컨설팅'이라는 노동조합 파괴 전문 업체를 이용해 복수 노조를 설립했다. 사측의 회유에 95퍼센트의 노조원들이 어용 노조 격인 제2노조로 빠져나갔다. 이에 홍종인 금속노조 유성기업 지회장은 노조 파괴 중단과 어용 노조 해체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부터 회사 앞의 굴다리에서 고공 농성에 돌입했다.

밀양 주민들은 이러한 공동체 분열이 얼마나 큰 심적 고통과 불안을 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밀양 역시 주민들 사이에서 보상금 문제를 놓고 마을이 분열되는 등 구성원 간 갈등 문제로 몇 차례 큰 홍역을 치렀다. 9일에는 한국전력이 주민을 매수하려고 제시한 10억 원을 몇몇 주민이 일부 유용했다는 의혹도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홍종인 지회장은 "어르신들이 그렇게 투쟁하시는데 우리 젊은 것들이 투쟁 못 하겠습니까. 힘내겠습니다"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부북면 위양리에 거주하는 한옥순(여·66) 씨는 "농민하고 기술자 없으면 저희가 어찌 할라고 나라가 이러는지 참 더럽다. 우리 죽더라고 이기고 죽자"고 강조했다.

유성기업 방문을 마지막으로 정해진 일정을 모두 마친 밀양 주민들은 "희망을 가지고 함께해야 산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들은 오랜 싸움터 밀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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