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입니다. 김명곤 전 장관은 1976년 서울대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했고, 85년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집지 '뿌리 깊은 나무' 기자와 배화여고 교사를 거쳐 1986년 극단 아리랑을 창립해 극단 대표를 맡았습니다. '어머니', '아리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완판 창극 춘향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배우, 연출가, 극작가로 활동해왔고 어린이 연극제 최우수작품상·연출상과 그가 연출한 연극 '어머니'는 연극평론가협회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 선정됐습니다. 또, 영화 '서편제'와 '태백산맥', '그 곳에 가고 싶다', '바보선언' 등에 출연했으며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과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의장과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제8대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최근 어린이 퓨전 국악극 '마법의 동물원' 예술감독과 연극 '밀키웨이' 연출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작년 5월에 장관직을 그만 두시고 한 1년 남짓 지났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김명곤 : 그만 두고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대왕세종이라는 드라마에서 연기를 했고 요즘에는 밀키웨이 연출로 분주하게 보냅니다.
박인규 :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하시다가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오면 약간 허전하다고 하던데.
김명곤 : 네. 아무래도 7년간 공직생활도 하고 다른 세계에서 살다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오려니 약간 낯설긴 했습니다. 적응하기 힘든 면도 있었고. 그런데 재빨리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박인규 : 김명곤 장남님의 본업은 배우인데, 작년에 KBS드라마 대왕세종에 고려 복원을 꿈꾸는 혁명가 역할을 맡으셨어요. 한 7년여 만에 연기하시려니 어떠셨어요?
김명곤 : 처음엔 첫 촬영하는데 굉장히 긴장도 하고 실수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PD나 스태프나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도 저를 어떻게 불러야 될지 어색해 해서 처음엔 참 서로 낯설었어요. 그런데 제가 철저하게 저를 배우로 대해 달라고 주문하고 저 자신도 마음을 모든 걸 훌훌 벗어던지고 배우로서만 대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박인규 : 예전 5공때 같은 권위주의 정권 시대면 문화부장관이면 KBS의 바로 직속상관이 되는 직책인데 연출가 이런 분들이 어려워하지 않던가요?
김명곤 : 처음엔 굉장히 어려워했죠. 그리고 나이도 저보다 다들 어리고. 그런데 저는 그런 장관이라는 직위 또는 권위 이런 것들이 제 인생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장관을 하시다가 연기를 해보니 둘을 비교하실 수 없겠지만 어떤 게 더 좋던가요?
김명곤 : 좋다는 것보다는 장관은 장관대로 큰 역할을 하는 거죠. 배우는 정말 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역할이고 장관은 남을 즐겁게 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박인규 : 9월 초부턴가요? 아동극 마법의 동물원이
김명곤 : 지금 공연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제가 알기론 이게 김명곤 장관께서 만드신 걸로 아는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 주시죠
김명곤 : 92년도니까 한 16년 전 극단 아리랑에서 처음으로 어린이극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하기로, 그 당시 어린이극은 서양 동화나,.... 해서 부실하게 만들고. 그래서 우리 창작극을 가지고 정말 공들여 제대로 만들어 보자, 해서 이 동물원의 학이 병이 드는 걸 치유해 주기 위해서 어린 아이 둘, 남녀 주인공이 생명의 깃털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걸 구해서 건강하게 고쳐주는 이야긴데 거기에 아이들이 여행하는 곳에 얼음나라, 꽃의 나라라든가 환경문제를 상당히 다루고 있어요. 그 당시 제 1회 어린이연극상도 받고 최우수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다 받았던 화제작이었습니다.
박인규 : 이 작품을 장관님께서 직접 만드신 거죠?
김명곤 : 제가 쓰고 연출했죠.
박인규 : 퓨전국악극이라는 거 보니까 노래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김명곤 : 거의 뮤지컬처럼 약간 어린이들의 동요와 국악기를 많이 활용해서 어린이 감각에 맞게 재밌게 만든 음악극입니다.
박인규 : 처음에는 작품을 직접 쓰시고 연출하셨는데 지금은 예술감독이란 타이틀로, 뭐가 다른겁니까?
김명곤 : 아리랑극단에 새로 젊은 여성 연출가가 이 작품을 총 연출해서 작품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저는 전체적 방향이나 수정할 때 보완해 주고 측면 지원하는 역할입니다.
박인규 : 92년에 초연했고 16년 뒤에 다시 공연하는데 그 당시와 비교해서 작품도 좀 달라졌을 것 같고 특히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궁금해요.
김명곤 : 그 당시에는, 이런 작품을 어린이나 어머님들도 처음 보고 굉장히 좋아하고 어머니들이 선생님이나 대개 연극은 안 보거든요. 그런데 어른들이 더 좋아했어요. 그 뒤로 좋은 어린이연극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질도 높아지고. 그래서 지금은 그런 것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고 이러한 작품을 어린이들이 낯설어 하지 않고 편안하게 즐기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언제까지 합니까?
김명곤 : 11월까지 합니다.
박인규 : 지금 거기아동극 마법의 동물원은 예술감독을 맡으셨고, 직접 연출도 하신다던데
김명곤 : 그것은 밀키웨이라고 은하수라는 뜻인데, 원 제목이 은하수를 아시나요? 라는 독일 작가 칼 비트링거라는 사람의 희곡이에요. 이게 잘 알려지지 않은 건데 제가 대학교 2,3학년 연극반에서 연극할 때 우연히 세계문학전집에서 전후희곡시나리오집에서 읽고 굉장히 감동을 받고 오래 가슴에 묻어뒀던 작품입니다. 이번에 그것을 한국을 배경으로 해서 완전히 새롭게 제가 번안해서 연출하고
박인규 : 30년 이상 계속 숙성시켜온 건데 어떤 작품입니까
김명곤 : 2차대전 후 독일의 한 병사가 전쟁에 참여했다가 실종돼서 돌아왔는데 자기가 전사자로 처리돼서 고향에 살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죽은 전우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까, 이 전우가 범죄사건에 연루되고 그러면서 굉장히 현실에 적응을 못하고 정신병으로 나중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 정신병동에서 자기를 치료하면 의사하고 둘이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남자 둘이 나오는 2인극인데. 굉장히 재밌고, 변신하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가고. 순수한 젊은 영혼을 가진 청년이 현실에 적응 못하고 좌절하고 상실하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젊은이들의 방황, 상실, 그런 느낌을 저도 굉장히 공감해서 오랫동안, 참 좋은 작품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묻어놨다가 이번에 이걸 월남전에 참전한 병사의 이야기로. 70년대 후반, 새마을운동이 막 번져나가고, 이 친구가 와서 적응 못하고 정신병동에 가는 이야깁니다.
박인규 : 얼핏 이런 느낌이 드는 게, 70년대 젊은이가 안고 있던 고민과 2000년대 젊은이가 안고 있는 고민은 과연 다른가 같은가
김명곤 : 시대상황과 고민이 다른데 이 작품의 테마는 한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젊은이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야깁니다. 현실세계는 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빼앗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곳곳에 나오는데, 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그렇지만 아직도 여전히 순수한 꿈을 잃지 않는 한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의 이야기라서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이건 충분히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 연습을 시작하신 건가요?
김명곤 : 연습하고 있어요. 11월 7일에 공연하는데 벌써 한 달쯤 연습하면서 배우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고.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몸 풀고 있습니다.
박인규 : 오랜만에 연출해 보시니 어떻던가요?
김명곤 : 처음엔 대학로를 가보니 제가 낯선 별에서 온 사람 같더라고요. 이 밀키웨이의 주인공이 자기가 낯선 은하수의 한 별에서 왔다고 망상을 가진 친구거든요. 저도 마치 어느 별에서 갑자기 대학로에 온 것처럼 너무나 변했어요
박인규 : 요즘 젊은이들과의 호흡 어떻습니까?
김명곤 : 젊은 배우들, 연출가들, 많이 다르고. 그런데 이번에 같이 연습하는 배우들은 제가 전부터 잘 알던 후배 배우들이고, 연극에 대한 애정이 굉장히 있는 후배들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이 친구들과 해보니까 저도 굉장히 젊어지고 열심히 해서 정말 좋은 연극을 대학로에 하나 올려보자는 열정으로 뭉쳤습니다.
박인규 : 이창동 감독이 장관 그만 두시고 나서 밀양을 만들어서 칸에서 상 받아 오셨는데 김명곤 장관께서도 밀키웨이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김명곤 : 네. 열심히 만들어서 좋은 작품 관객들에게 사랑받으면 좋겠고요.
박인규 : 장관님께서는 장관 하기 전에 국립극장장으로 6년간 계시면서 우리나라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계신데, 배우, 연출가, 극작가를 하시다가 이른바 문화행정을 한 7년 하신 다음에 연극무대로 돌아오셨어요. 아무래도 연극을 보는 시야가 달라졌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김명곤 :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주로 창작자 입장에서 봤다면 이젠 창작을 뒷받침하는 경영적 정책적인 측면. 그리고 공연예술 쪽에서 보다 넓은 문화와 관련된, 관광, 체육 관련된. 또 문화 분야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여러 사회 전반적인 구조 속에서의 문화, 또 그 구조 속에서의 공연예술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고 볼 수 있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연극이 위기다, 침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언제 위기 침체 아닌 적 있었냐고 하는데
김명곤 : 그렇죠. 특히 공연예술, 연극, 무용, 문학 이런 기초예술들은 전 세계적으로 언제나 힘들었고 언제나 위기 속에서 활동해왔습니다. 물론 예전에 영화나 방송이 없었던 시절에는 전성기가 있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새로운 매체들, 영화, 방송, 게임, 인터넷 등등 하고 사우나 가야 되니까. 일종의 아날로그 예술이죠. 이 아날로그가 디지털 시대에 생존하고 살아남고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예전과 다른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죠.
박인규 : 어떻습니까. 그것이 과연 정부의 지원만으로 되는 건지, 아니면 연극인들이 새로운 뭔가를 해야 되는 건지 여러 가지 논란이 많은데
김명곤 : 양면이 다 있죠. 창작자나 그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도 시대변화에 적응해야 될 수 있고 새로운 능력도 갖추어야 되고. 거기 맞는 작품을 또 만들어야 되고. 한편으로 정부는 그걸 정책적으로 시스템화하고, 특히 인재양성이라든가 이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 극장에 대한 지원이나 창작에 대한 지원시스템을 좀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을 함께 해야되겠죠.
박인규 : 이런 질문에 답하시기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국립극장장도 한 6년 가까이 하셨고 문화관광부 장관도 1년 남짓 하셨는데, 본인이 이건 좀 잘한 것 같다. 업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요?
김명곤 : 글쎄요. 국립극장장을 할 때는 극장에 새 바람을 넣고. 특히 일종의 공연기관의 경영과 이런 성과, 이런 데서 굉장히 많이 노력했고 화제도 됐었고요. 문화부 쪽에서는 처음엔 바다이야기라든가 이런 여러 가지 사건으로 좀 힘들었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하고 제가 전통예술진흥정책이라든가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산업화시키는 6한 해서 한스타일정책. 한글, 한옥, 한식, 한지, 한복, 한국음악. 해서 6한. 특히 제가 많이 중점을 기울인 게 문화콘텐츠에 대한 문화부의 입장을 강화시키는 부분이었습니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정말 문화콘텐츠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방송, 공연예술에서부터 영화, 영상 이런 것들의 콘텐츠가 중요한데 이것들을 어떻게 앞으로 유통시키고 창작해낼 것인가. 이런 좀 큰 틀에서의 정책. 이런 쪽을 관심을 가지고 많이 신경썼습니다.
박인규 : 이창동 장관이나 김명곤 장관은 두 분 다 예술 현장에서 가셔서 기대가 많았는데 조금 논란이 있었다면 스크린쿼터로 곤욕을 치르셨는데, 어땠습니까 그 당시 장관으로서.
김명곤 : 그건 제가 부임하기 전에 법이 개정돼서, 축소를 하기로. 그게 아마 그 전 장관님께서 결정해서 발표됐습니다. 그걸 뒤집을 수는 없고, 최대한... 없어진 게 아니니까 우선 축소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축소로 인한 영화계의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 그래서 영화발전기금 확보나 영화법 개정이라든가 이런 쪽을 영화인들과 끊임없이 대화해서 나중에 마무리를 잘 했습니다.
박인규 : 약간 컬러는 다를지 모르지만, 현재 문화관광부 장관인 유인촌 장관께서도 배우로서 일세를 풍미하신 분인데. 그 분에 대해서 평하라는 건 그렇고. 어쨌든 전임 장관으로서 당부를 한달까, 부탁한달까 하면 어떤 말씀을 하실 수 있을까요?
김명곤 : 공적으로 당부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은데요. 문화라는 게 정치의 하부개념보다는 좀 더 독립적인 위상을 가지고, 문화의 3대 핵심가치가 창조와 소통, 공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자꾸 공존보다는 분열, 대립이라든가. 소통보다는 불통. 그리고 창조에 대한 적극적인 비전 제시. 이런 것들이 앞으로 좀 필요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박인규 : 지금이 보수정권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지금 정권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이전 노무현 정부 때 문화계가 진보계 인사가 독식했다 이런 식의 말을 합니다.
김명곤 : 코드인사니 이런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문화계에서 앞으로 핵심과제는 진보다 보수다 하는 논쟁과 대립은 7,80년대 상황이거든요. 이제 21세기, 그야 말로 미래를 내다보고 어떻게 하면 그런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그야 말로 문화의 본질, 예술의 본질, 아니면 관광과 체육까지 넓게 포함해서 한국의 21세기 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앞으로 발전시킬 것이냐 하는 쪽에 집중해 줬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사람에 대한 평가, 또는 그 사람이 예전에 좌익이었냐 우익이었냐 진보냐 보수냐 하는 식의 논란은 불필요하지 않나
박인규 : 정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창조와 소통을
김명곤 :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지 않느냐.
박인규 : 그런 부분에서 어떤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명곤 : 저도 절실히 바랍니다.
박인규 : 개인적인 질문도 드려볼까 합니다. 경력을 보면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나오셨고 잡지기자를 하시고 여고 선생님 하시다가 결국 배우가 되셨어요. 워낙 연극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김명곤 : 그렇죠. 대학교 2학년 때 연극반에 처음 들어가서 3학년, 4학년 졸업할 때까지는 완전히 연극에 미쳐서 지내다 보니까, 물론 졸업하고 가정생활을 해야 되니까 직장을 가졌는데 도저히 연극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결심을 하고 직장을 그만 둔 거죠. 연극한다고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출연료가 있는 연극도 아니고. 그리고 그때 제가 뛰어든 연극이라는 게 소위 진보적인, 그 당시 체제에 비판적인 연극, 마당극, 민족극 이런 걸 하다 보니 경제적인 활동과는 아무 관계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박인규 : 이렇게 뵈니까 15년 전에 나온 서편제의 유봉 얼굴과 별로 안 바뀌신 것 같은데... 판소리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김명곤 : 그것도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판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빨려들어갔죠. 그 전까지 저는 독일어를 전공하고 독문학, 독일예술, 서양음악, 오페라, 아리아 좋아했는데 판소리에 심취하면서 인생도 전공도 바뀌고 생활의 정서도 바뀌고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박인규 : 박초월 선생을 찾아가서 배우겠다고 하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김명곤 : 그때가 대학 4학년 졸업반 무렵인데, 학원에 찾아가서 공부하겠다고. 그래서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한 달 배우고 나서 학원비가 없어서 못 다닌다고 했더니 자네는 그냥 공짜로 다니소. 왜냐 했더니 서울대 학생이잖아. 선생님한테도 서울대 학생이 판소리 배우러 온 게 너무 신기하신 거예요. 그 다음에는 완전히 선생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돼서 어머니와 아들처럼, 돌아가실 때까지
박인규 : 이수자 이렇게 돼서 전승하시는데
김명곤 : 나중에 전수자가 돼서, 등록된 전수자로 죽 배우다가 전수를 한 5년 한 다음엔 이수를 하는, 졸업을 하는 건데 선생님이 돌아가시는 통에 졸업은 못했죠.
박인규 : 민족극협의회 의장도 하시고, 80년대 사실 이른바 민중극이라고 해서 굉장히 치열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연극을 많이 했는데 그 당시 같이 했던 분들이 요즘은 대중들에게서 멀어진 측면도 있고. 어떻게 보십니까? 연극의 사회적인 기능 측면
김명곤 : 그 당시는 연극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굉장히 정권과 대립하기도 하고 가치관, 이념적으로 대립이 있었고. 사회적인 운동 차원에서도 대립이 많았죠.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그런 운동에 참여하고 연극을 하면서도 연극이 갖는 독립적 가치, 예술로서의 전문성을 절대 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과 예술가가 어떤 주제에 사회의식을 갖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예술가로서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요. 그런 것들이 사회와 시대가 변하면서 지나치게 사회성으로 기울어졌던, 작품활동은 점점 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작품활동도 침체하게 되고 그런 거 아닌가. 그래서 특히 작품을 하겠다, 또는 예술 쪽에서 활동하겠다는 사람은 예술, 작품 자체에 좀 더 힘을 기르고 집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장관께서는 배우, 연출가, 극작가, 국립극장장, 장관까지 다 해보셨으니까 예술인으로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셨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술인으로서 만족하십니까?
김명곤 : 전혀 만족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저는 그동안 해왔던 작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다 부끄럽고. 경영도 하고 행정도 해봤지만 그것도 그렇게 제가 아주 만족스럽게 여한이 없게 잘했다는 건 아니고요. 앞으로도 하고 싶은 꿈과 일들, 작품이 많으니까 더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제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박인규 : 예술이라는 게 예술성뿐만 아니라 사회성, 세계를 품어야 한다면 그것을 위한여러 가지 직책을 다 맡아보셨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극이 나올 거라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랄까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무리 부탁드립니다.
김명곤 : 우선 지금 닥친 작품 잘 마무리하는 것. 그 다음에도 계속 작품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 영화, 뮤지컬 등등 해서 하나하나 그동안 묵혀놨던 창작을 끄집어내서 하나하나 해보겠습니다.
박인규 : 문화행정가로서의 경험이 보다 원숙하고 큰 연극이 나오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명곤 : 노력하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연극무대에 복귀한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을 초대해 다시 연극무대로 돌아온 소감과 그가 생각하는 우리 연극, 공연계의 과제는 무엇인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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