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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맛과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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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한 맛과 평범한 사람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71>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는 담백한 것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다듬잇돌에 얹어 놓고 다듬이 방방이로 깨서 먹던 호두의 고소한 맛, 식혜 위에 뜬 몇 개의 잣, 겨울날의 군밤이나 시골 간이역을 지나다 아주머니에게서 산 찐 옥수수의 맛, 그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좋아합니다.

아주 단것이나 특별한 맛을 지닌 음식들은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닙니다. 초콜릿처럼 영양가가 높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것도 손이 잘 가지 않습니다. 군것질 자체를 별로 하지 않는 편입니다.
진미(眞味)는 지시담(只是淡))이요 지인(至人)은 지시상(只是常)이란 말이 있습니다. 참맛은 다만 담백할 뿐이요,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 즉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다만 평범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는 순간은 특이한 사람이 먼저 눈에 띕니다. 특별한 재주를 가졌거나 뛰어난 외모를 지닌 사람에게 먼저 눈이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쉬 더운 방이 쉬 식는 것처럼 그런 사람과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특별해 보이는 사람이 늘 나타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친구 사이에 이른바 우리가 '진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선 사람이 미덥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으면서도 깊은 인간미를 지닌 것을 알게 됩니다. 서로 편안하면서도 깊은 마음으로 교류하게 되는 사람들은 대개 평범합니다. 인격적으로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거의 범상한 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사실은 가장 평범한 경지에 이른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인격의 수련을 거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맛을 지닌 음식이란 오래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 담백한 맛인 것처럼 좋은 사람도 담백하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범상한 사람이게 마련입니다.

나는 문학청년 시절 선배들로부터 객기를 먼저 배웠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은 주체할 수 없는 절망이 늘 밖으로 흘러 넘쳐 기이한 행동을 하게 마련이라고 배웠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객기(客氣)는 배웠어도 정기(正氣)는 배우지 못했습니다. 참된 용기 ―― 정기(正氣)를 배운 것은 문학을 시작한 지 십 년도 더 지나서였습니다. 진정한 용기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기이한 모습과 돌출적인 행동이 전부가 아니란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학인의 객기는 문인의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일종의 방어 본능이 보여 주는 몸부림인지도 모릅니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꼭 해야 할 말을 하며, 반드시 써야 할 글을 쓸 줄 아는 용기는 자기 자신을 과장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데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세, 안으로 다져 넣은 바른 기운에서 나온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들의 모습은 담백하고 평범합니다. 다만 있어야 할 자리에 꼭 있으면서 변치 않는 맛과 멋을 지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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