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산은 걸은 만큼 다가오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산은 걸은 만큼 다가오고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12> 육십령~소사고개/6.3~5

산행 아홉째 날. 수요일

흐림 그러나 산중은 구름비

지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밤이 깊어갈수록 세차게 내렸다. 빗줄기 사이로 소리들이 들려왔다. 주르륵 주르륵 비 내리는 소리도 들려왔고 '탁탁 타다닥' 창에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도 들려왔다. '툭툭 투두둑~' 나뭇잎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도 멀리서 들려왔다. 나는 잠들지 못했다. 2주일 째 계속되고 있는 심한 감기로 인해 숨 쉬기가 거북했다. 한 시간 아니 삼 십분 아니 십 분 이십 분 간격으로 코를 풀어야만 했고 다리는 들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팠다. 몸을 뒤척일 때 마다 양 손으로 다리를 들어 움직여야만 했다. 소염진통제를 먹고 멘소래담 로션으로 맛사지를 하였지만 그저 견딜 수 있을 뿐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삿갓재 대피소 식당에서 ©이호상

삿갓골재대피소는 2층으로 된 현대식건물이었다. 1층에는 보일러실과 취사장이 있고 2층은 숙소였다. 숙소는 2층 침상으로 되어 있었는데 아래층은 난방이 되었고 위층은 난방이 되지 않았다. 나는 감기 때문에 아래층에 누웠으나 곧 위층으로 올라갔다. 발에서 너무 열이나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발에 열이 많은 체질인 나는 겨울에도 이불 밖으로 발을 내 놓고 자곤 했는데 그 날은 열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뜨거웠다. 발은 너무나 후끈거려 저릴 정도였다. 그러나 새벽이 되자 위층은 몹시 추웠다. 벽과 창에서 한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온 몸은 쑤시고 숨 쉬기는 불편하고 몸에는 한기가 스며들고 있었으니 제대로 잠들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어쩌면 이상한 일이었다.

일어나 앉았다. 새벽 3시 10분이었다. 헤드랜턴을 모자 위에 끼우고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많은 비였다. 불빛 사이로 빗줄기가 보였고 빗줄기 사이로 어둠 속에 잠긴 산이 보였다. 대피소 옆 난간에 서서 비 내리는 골짜기를 바라보았다. 골은 그대로 숲이었다. 나무들로 가득했다. 나뭇잎과 가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골짜기 안에서 울리며 증폭되고 있었다. 빗소리가 깊었다. 길게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골의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들여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낯선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낯설었다.

비 내리는 산 중의 깊은 밤 잠 못 이루고 서성이는 내 모습처럼 낯설었다.

난 왜 여기 이렇게 있는 것일까.
왜 이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바람이 세차졌다. 옷이 젖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왔다. 빗소리 때문인지 코고는 소리도 멀리서 들려오는 듯 했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들지 못한 새벽이었다.

아침이 왔다. 비는 그쳐있었다. 아침 식사를 누룽지탕으로 가볍게 한 후 산행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하늘은 흐리고 흙은 젖어 있었다. 천지에 운무 가득했지만 대기는 차고 시원했다. 산뜻하고 깨끗했다.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산행을 시작했다. 긴 산행이었다. 삿갓골대피소에서 무룡산, 동엽령, 백암봉, 횡경재를 지나고 지봉, 못봉, 대봉, 갈미봉을 넘어 지금은 신풍령이라고 부르는 빼재에 이르는 18.3km에 이르는 산행이었다.

새의 청명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맑고 밝았다. 비가 그친 것이 좋은 모양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숲으로 들어갔다. 남덕유산과 북덕유산을 백두대간으로 이어주는 1,492m의 무룡산(舞龍山)으로 나아갔다. 용이 춤을 추는 형상을 가진 산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였을까. 용을 숭상하는 동양의 가치관 때문이었을까. 무룡산은 '봉'이 아니라 '산'이라는 이름을 드물게 가졌다. 대체적으로 큰 산의 줄기에 속한 산들은 '봉'이란 이름을 갖는데 말이다.
▲무룡산으로 가다 ©이호상

숲은 운무로 가득 차 있었다. 젖어 있었다. 손을 뻗어 쥐면 손에서 물이 그대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명옥씨, 동물들이 왜 숲을 떠나지 않는지 알아?"

나는 뒤에 따라오고 있는 김명옥 작가에게 물었다. 그녀는 다큐멘타리 '백두대간, 공존의 숲' 제작팀의 구성작가였지만 산행은 처음이었다. 몸무게가 겨우 40kg 대 중반인 야리야리한 체구의 소유자였다. 모두들 산행을 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적어도 나 보다는 잘 걷고 있는 듯 했다.
" ..... "
대답이 없었다. 나는 숨을 몰아 쉰 후 말을 이어갔다.

"숲이 따뜻하기 때문이야. 온도의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지. 숲은 밤과 낮의 온도 차이가 5도 밖에 되지 않거든.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이 적응하기 쉽지.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지. 추위나 더위에서 자신을 지키기도 쉽고 말이야."

"그런 것 같네요. 바람 부는 날에도 숲에 들어가면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하잖아요."

정말 그랬다. 숲은 변하지 않는 따스함으로 자신에 속한 모든 생명들을 품어 안는다. 누구 하나 절대로 편애하지 않는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미물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그들을 돌보며 그들의 성장을 통해서 비로소 함께 성장한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의 역할을 함으로 서로를 살리며 나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세계가 바로 숲이다.

싸리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연분홍 철쭉에 잠시 흥을 내고 나니 무룡산이 지척이었다. 무룡산에 올랐다. 바람이 거셌다. 세찬 바람으로 구름은 미친 듯이 산을 넘고 있었고 나무와 풀들도 모두 구름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아니 나무와 풀만이 아니라 산 전체가 흐르고 있었다. 산의 한 모퉁이에 앉은 나도 산을 따라 흘렀다.

그렇게 흐르는 구름을 따라 함께 흐르다가 무룡산을 내려와 숲길로 들어서니 구상나무 한 그루 운무 속에 외롭게 서 있었다. 괜스레 나 자신을 보는 듯 마음이 서글퍼졌다.

다시 또 저 나무를 볼 수 있을까.

조금 더 길을 걷자 오래된 신갈나무숲이 보였다. 촬영 팀이 숲을 찍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 밤 내린 비로 숲이 깨끗해지자 촬영할 것이 더욱 많아진 듯 했다. 촬영 팀을 남겨두고 나는 1,320m 동엽령(冬葉嶺)으로 향했다. 참나무 외에도 싸리나무와 산죽들이 반겨주었다. 가끔 백당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워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동엽령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바람에 실려 구름이 몰려왔다. 우리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얼굴에 작은 빗방울들이 부딪쳤다. 구름비였다. 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름비를 맞았다. 정신이 맑아지는 듯했다.

동엽령을 지나고 백암봉(白岩峰, 1,490m)에 이르렀다. 백암봉은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벗어나는 곳이다. 백암봉에서부터 백두대간은 동으로 방향을 돌려 삼봉산을 향해 뻗어나간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었다. 덕유산의 최고봉인 1,614m의 향적봉(香積峰)에 그리움만 남겨둔 채 횡경재로 향했다.

산길을 따라 걸었다. 큰 신갈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혼인목처럼 보였다. 오랜 세월 그림자처럼 나란히 살아왔기에 하나가 죽으면 따라 죽는 나무다. 오랜 나날 익숙해있던 환경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나무들이란 참으로 삶에 대해 순결하다. 정직하다. 굳이 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죽음에 초월한 모습이다. 하기야 숲에서는 삶과 죽음의 구별이 없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삶과 죽음을 초월해 있는 것이 생명의 참 모습인지도 모른다.

나도 저 나무들처럼 삶과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을까.

길은 걸은 만큼 다가오고 산은 걸은 만큼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느 새 횡경재를 지나고 지봉(池峰, 1,342.7m)을 넘어 대봉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연리지(連理枝)와 연리목(連理木)을 만났다. 서로 다른 몸으로 태어나 살아가다 하나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무들이었다. 가지들이 맞닿은 채 살아가면 연리지이고 뿌리도 몸도 하나가 되면 연리목이다. 그 모습 때문에 사랑과 그리움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나무들이다. 사람들은 이 나무들을 보면서 사랑을 연상하고 그리움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못 다한 사랑이 많은 탓이리라.
미처 거두지 못한 그리움이 가슴에 가득한 탓이리라.
젊은 날, 사랑을 택하지 못한 탓이리라.
▲신갈나무 ©이호상

나비 한 마리 퍼덕였다. 아주 작은 어린 나비였다. 산에 들고 처음으로 나비를 보는 것 같았다.

구름비가 내리는데 어디로 가는 걸까.
아직 머물 곳을 찾지 못한 것일까.
어미를 찾지 못한 것일까.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은 나비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비를 따라가는 사이 갈미봉(1,210m)을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빼재(920m)로 내려섰다. 사람들이나 동물들의 뼈가 많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을 지녔던 곳이다. 긴 산행이었다. 도상거리 18.3km, 실제거리 20km가 넘는 산행이었다. 13시간 20분 동안 걸었다.

산은 참으로 정직했다. 오른 만큼 내려가야 했고 내려간 만큼 올라가야 했다. 산은 언제나 걸은 만큼 다가왔다. 정말 산은 걸은 만큼 다가왔다. 나는 그 사실로 인해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때때로 깊은 숲길을 걸을 때 느끼던 가슴 절절한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길을 다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오후부터 그쳤던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빼재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을 마치다.©이호상

최창남/글
이호상/사진
chamsup@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