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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반환운동, 패배주의 극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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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화재 반환운동, 패배주의 극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9/17]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혜문스님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조선시대에는 기록과 그림이 어우러진 국가 행사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바로 의궨데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정도로 아주 귀한 자룝니다. 그런데 이 의궤가 일제시대 총독부에 의해 일본 왕실로 넘겨졌는데요. 민간인들로 구성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가 이 의궤를 되찾기 위해 최근 일본을 방문해 반환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조계종 봉선사 혜문스님을 초대해'조선왕실의궤' 환수의 의미와 의궤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과 지원책이 필요한지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혜문스님입니다. 혜문스님은 1998년 봉선사 철안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2004년 일본 교토 유학중 도쿄대가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며 2006년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을 도쿄대로부터 반환받았습니다. 또, 삼성 리움이 소장한 현등사 사리구 반환운동도 주도했습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의 스님으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과
문화재 제자리 찾기 사무총장을 맡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안녕하십니까?

혜문스님 : 예,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박인규 : 예, 이번 달 초에 '조선왕실의궤'를 찾기 위해 일본을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우선 '조선왕실의궤'가 뭔지,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자료라는데 이게 어떻게 해서 일본까지 가게 됐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 ⓒ프레시안

혜문스님 :
네. 의궤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시대 국가의 주요행사, 왕실의 중요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만든 아주 대단히 뛰어난 기록문화 유산입니다. 실록과 더불어서 조선시대의 기록문화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요. 현재 조선왕조실록 그리고 의궤, 그리고 승정원일기 이런 것들이 유네스코에 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돼서 우리 민족의 자세하고 뛰어난 기록문화 유산을 잘 설명하고 있죠. 이것이 20세기 초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잘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규장각을 비롯해서 각각 오대산, 또 태백산 이런 각각 지방 사고에 잘 보관되어 있었는데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1910년 이후에 우리나라의 기록유산들을 조선총독부 취조국에서 분류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 의궤라는 것을 발견해 놓고는 대단히 뛰어난 것이라는 것을 직감해서 일본 천왕궁, 이른바 천왕궁이죠. 국내청에 이 의궤 대부분을 기증하게 되는 이런 일이 있었죠.

박인규 : 조선 총독부가 조선왕실의 중요한 기록을 일본 왕실에다 그냥 갖다 드린 거군요?

혜문스님 : 네, 그렇죠. 아마 일본 천왕궁의 의전절차 이런 것들을 자기들은 갖고 있지 못하지만 이제 조선왕조에서 끊임없이 이런 것들을 기록해 왔다는 것이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하고 대정 11년, 그러니까 1922년 5월에 총독부에 기증으로 일본 국내청으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박인규 : 병인양요 땐가요? 프랑스 군도 인이 강화도에 와 가지고 의궤를 가져갔다고 그러던데?

혜문스님 : 네 그렇습니다. 병인양요 때 가져간 것도 주로 의궤류가 되고요, 일본 국내청에 있는 것도 역시 의궤륩니다.

박인규 : 그런데 환수운동이 지금 이제야 일어난 것도 궁금하고 또 의궤가 일본 국내청에 있다는 것을 안 것도 2001년이라고 그래요?

혜문스님 : 예, 그렇습니다. 우리나가 의궤라는 것에 대해서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90년대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에 의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때부터 이제 의궤에 대한 관심도가 좀 높아졌고요. 국내학계에서도 의궤에 대한 관심이 90년대부터 일었고. 그런 과정에서 2001년도에 아마 천혜봉 선생으로 기억합니다만, 해외 전적 조사 연구회에서 일본 국내청의 소장도서 목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궤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었지요. 당시 그러나 일본 천왕궁이 가지고 있다는 것, 또 일본 왕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반환받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런 쪽에서 반환운동이 진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2001년까지는 조선왕실의궤가 일본 왕가에 소장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군요?

혜문스님 : 네, 우리가 공식적으로는 몰랐습니다.

박인규 : 제가 듣기로는 그 왕실 의궤 중에는 일본군에 의해서 비참하게 살해 된 명성황후 그 장례 도감도 있다고 하던데요?

혜문스님 : 네,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라고 하는데요. 명성황후는 그 당시 일본 미우라 공사의 주도하에 일본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됐기 때문에 시신이 없었어요. 그리고 또 당시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이런 혼란한 정국 속에 2년 2개월 동안 장례가 치러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장례죠. 2년 2개월에 걸친…….

박인규 : 보통 3일장, 5일장 하는데, 2년 2개월 장을 하신 거군요.

혜문스님 : 명성황후 국장도감은 2년 2개월 동안 명성황후의 위패가 어떻게 되고 그 시신이 없어가지고 어떻게 하고 상여가 나가고 하는 이런 슬픈 국장의 정체를 아주 상세하게, 굉장히 두껍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것인데요. 그것이 아직도 일본 국내청에 소장돼 있어서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박인규 : 반드시 찾아와야 될 것 같습니다.

혜문스님 : 예,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혜문스님은 2006년도에 조선왕조실록을 우리나라에 가져오는데 굉장히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은 그럼 그 다음에 시작하신 겁니까?

혜문스님 : 예, 그렇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도쿄대에 있다는 것을 제가 알게 된 것은 2004년도 제가 교토에 유학중에 알게 됐는데요. 스에마쓰라는 도쿄대 교수가 쓴 청구사초라는 책에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이 도쿄대에 소장돼 있다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뒤에 지인들과 함께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을 진행했고요. 그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이 종결되는 시점, 반환에 성공한 뒤에 이 실록 반환을 준비하는 자료조사 과정에서 이 의궤의 존재를 그래서 알게 됐죠. 그래서 실록반환운동과 이 의궤반환운동은 사실상 동시에 진행됐던 거고요. 반환운동에 성공했던 2006년 8월 이후에 저희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로 개칭해서 다시 지속적인 활동을 지금까지 벌이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럼 이번에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요구하기 위해서 이달 초에 갔다 오셨죠? 누구누구 만나고 오신 겁니까?

혜문스님 : 네, 이번 방문은 사실 저희가 지난 8월에 평양에 가서 북과 공동으로 작성한 남북공동의 조선왕실의궤 반환요청서를 접수하러 갔던 겁니다.

박인규 : 남한만 요구하는 게 아니다, 남북한이 동시에 요구하는 거다?

혜문스님 : 네, 그렇습니다. 공동으로 작성한 반환 요청서를 전달하기 위해서였고요. 사실은 관방장관실의 일본 수상 관저를 방문해서 관방장관을 통해서 직접 총리에게 이 문서를 전달하겠다는 것이 저희의 계획이었고, 방문 승인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저희 방문 하루 전날 후쿠다 총리가 사임을 하는 바람에. 관방장관도 일본의 정치 관습상 총리가 사임하면 관방장관도 총리의 대변인과 마찬가지니까 동시에 업무가 사표 쪽으로 갔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있었는데.

박인규 : 하루만 일찍 갔으면 공식적으로 총리한테 딱 요구서를…….

혜문스님 : 예, 그럴 수가 있었습니다만, 그래서 저희가 농담으로 저희가 올 줄 알고 총리가 사표 낸 거 아니냐? 그런 농담도 했습니다만.

박인규 : 무서워서. 하하하.

혜문스님 : 그래서 이번에는 관방장관실의 조사역인 아다치라는 분이 나와서 지금 총리가 사표를 냈기 때문에 총리에게 전달할 순 없고 차기 총리에게 이 문안을 전달하겠다는 얘길 했고요. 아주 재밌는 애길 한 것은 일본인의 법적지위를 부여해서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 저희가 외국인들이지만. 그래서 중대하게 처리해 주겠다는 얘길 했고요. 그 사무관이 또 일본의 문부성과 국내청에도 직접 이 문제를 자기가 전달하겠다고 했으니까요.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쟁점화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공식적으로 요청해 놓은 상태고 이번에 가셔서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다는 조선왕조의궤를 직접 보셨다면서요?

혜문스님 : 예, 그렇습니다. 궁내청에서 열람신청을 받아주셔서 저 뿐만 아니라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인 김의정 회장님, 또 국회의원실 이종걸 의원님, 김원웅 의원님 다 가셔서 의궤를 봤는데요. 의궤를 천황궁에 가서 궁내청에 가서 의궤를 본다는 게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대단히 가슴 아픈 일이죠. 시간의 제약과 이런 것도. 한 시간 밖에 주지 않고. 힘들게 가서 힘들게 보니까 마음에 많이 남았습니다.

박인규 : 보관은 잘 되어 있던가요?

혜문스님 : 보관은 그 쪽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서로 귀중문서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철저한 보관과 관리를 통해서 보존 상태는 아주 양호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박인규 : 명성황후 국장도감도 보셨습니까?

혜문스님 : 예, 봤습니다. 맨 뒤쪽에 명성황후 국장도감의궤는 붉은 색 삼베로 물들인 천에 약 4절지 크기로 이렇게 되어 있고. 원 소장처가 표지에 명기 돼 있습니다. 오대산 사고라고.

박인규 : 아, 오대산에서 갔구나.

혜문스님 : 네, 맨 뒷장을 넘겨보면 뒷장에 조선 총독부가 스탬프를 찍었어요. 대정 11년, 그러니까 1922년 5월에 조선 총독부가 일본 국내청에 기증한다는 스탬프가 찍혀있는 그런 책이고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2년 2개월에 걸친 국장의 기록이기 때문에 한 두꺼운 4절지 크기만 한 책의 두께로 한 5권 정도를 걸쳐서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박인규 : 일본 궁내청이 갖고 있는 조선왕실 의궤는 전체가 몇 권이나 됩니까?

혜문스님 : 정확하게 사실은 확인되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에 보고 된 것은 저희가 반환운동을 하기 전에 처음에 69종이라고 해서 좀 더 세밀한 조사를 해봤더니 71종이다. 라고 결론이 내려졌었는데요. 저희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72종으로 확인이 됐고. 저희를 도와주고 계신 일본 의원들을 통해서 일본 국회에서 문부성 관리자에게 질의를 해 본 결과 80종이라고 국회에서 답변을 했어요.

박인규 : 갈수록 많아지네요.

혜문스님 : 네, 구체적인 목록은 제시 안 하고 있는데. 아마 좀 더 우리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국가가 전문 인력을 파견하고 또 민간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상세한 목록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이번에 직접 가서 일본 정부 관계자라든가 의원들 만나시고 오셨는데 직접 만나고 온 느낌으로는 어떻게 반환이 될 것 같습니까?

혜문스님 : 예, 그렇습니다. 이번에 또 정부에서 주일대사인 권철현 대사께서 저희와 저희운동을 지원하고 계신 일본 공명당, 사민당, 공산당, 민주당 이런 의원들을 초청해서 대사께서 직접 오찬을 베풀어 주셨어요.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민당이나 공명당 같은 집권여당도 우리가 이 문제만큼은 우리가 해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여론이 확산되고 있고. 저희가 아무래도 민간단체의 성격이 있다 보니까. 이 문제는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는 정부 대 정부의 문제, 조약이나 협정을 통해서 의궤를 처리하겠다는 그런 지침을 밝히고 있는데요. 대사관에서도 자기들이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처리하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그러니까 일본 입장은 반환을 하기는 할 텐데 조약이라는 절차를 통해야 되겠다. 왜 이유는 뭡니까?

▲ ⓒ프레시안

혜문스님 :
글쎄,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정부는 한국의 문화재를 비롯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보고 있는 것이 일본 정부 의 공식적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에 정부가 혹은 민간이 문화재 반환이나 전쟁 피해보상에 대한 청구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면 한일 협정 자체가 흔들린다. 그렇다면 그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 하고 있기 때문에 1965년도의 한일협정이 가지고 있는 법적인 그런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다면 이 문제는 자기들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외무성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박인규 : 65년 한일협정으로 문화재 반환 건은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또 달라고 하니 또 주면 선례가 돼서 자꾸만 달라고 할 것이 아니냐? 뭐 그런 얘기로군요? 이거 한 번으로 끝내자?

혜문스님 : 그래서 외무성이 저희에게 답변하고 있는 것은 뭐냐면 안 주겠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 정부는 현재 반환해야할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특별한 케이스로 인식하고 개별적으로 대응하겠다, 이런 취지로 얘기하고 있고요. 한일 간의 우호관계를 위해서 선결해야할 미래적인 과제로 선정하고 있다고 외무성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박인규 : 법적인 의무는 없지만 한일 우호를 위해서 우리가 특별히 선물로 준다. 그런데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이 민간에서 시작이 됐는데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보면 우리 정부가 나서서 일본 정부와 모종의 조약을 체결해야 될 것 같은데, 우리 정부 입장은 어때요?

혜문스님 : 정부입장에서는 상당히 외교적인 그런 문제가 있고, 또 상대편이 이른 바 천황궁과 관련이 돼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에서 기본적인 중요한 쟁점 사안을 지금 해결하는 것이 저는 맞다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 정부에서도 이미 움직임이 시작 됐습니다. 지금 2008년 4월에 유명환 외교부 장관이 고무라 일본 외상과의 만남의 자리에서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셨던 걸로 확인이 되고 있고요, 또 일본 후쿠다 총리도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도 알고 있고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우리나라 특파원들에게 자기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를 민족적 자존심과 민족의 혼이 담긴 문제고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돌려줘야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이전에 1992년에 이방자 여사의 복식, 이른 바 영친왕비 복식을 일본 정부가 우리나라에 준 적이 있습니다. 한일 우호를 위해서. 그 선례에 따라서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의지를 밝힌다면 저는 이 문제도 조속한 시일 안에 원만히 해결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가장 촉구하는 부분이 그런 부분입니다.

박인규 : 정부가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조선왕실의궤를 찾을 수가 있다. 제가 듣기로는 말이죠, 일본 천왕가, 왕실이 소유하고 있는 건데, 일본 왕실을 상대로 문화재를 내놔라, 이런 소송은 처음이라고 해요?

혜문스님 : 네, 맞습니다. 지금 이 문제는 제가 2007년 5월에 서울중앙지법에 민사소송을 내서 서울중앙지법이 이미 세 차례에 걸쳐서 일본 왕실을 상대로, 일본 왕실과 정부를 상대로, 법정 출석 요구를 보낸 상태입니다.

박인규 : 대한민국의 스님이 일본 왕실에게 법정에 나와라.

혜문스님 : 그렇죠. 중앙법원에서 송달을 해줬죠. 세 번에 걸쳐서 송달을 했는데 얼마 전에 일본 정부 측으로부터 답신이 왔습니다. 국제간의 소장 송달에 관한 헤이그 조약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어떤 나라의 국가 주권의 심한 간섭을 초래하는 소장의 송달은 거부할 수 있다, 라는 걸 근거로 일본 정부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겠다, 는 입장을 통보해 놨고, 그래서 민사조정 자체는 중앙법원에 계류된 상태입니다.

박인규 : 혜문스님의 소장 송달이 일본 왕실의 주권을 좀 침해했군요.

혜문스님 : 네. 살다보니까 일본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그런 사람이 됐습니다.

박인규 : 일본 왕실은 그 외의 우리나라 문화재가 없습니까?

혜문스님 : 아주 재미있는 사건인데요, 일본 국내청에 한국의 중요한 것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는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것 중에 고려 숙종의 어보가 찍혀있는, 옥새가 찍혀있는 책도 하나 갖고 있고, 그리고 1907년도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통감을 마치고 일본으로 가면서 당시 규장각으로부터 약 1080권 정도의 책을 대출해 갔습니다. 그걸 아직까지 반납을 안 하고 있는데.

박인규 : 어디에 있습니까?

혜문스님 : 그것도 일본 국내청에 있습니다. 이 문제도 저희가, 이건 이토 히로부미가 대출한 거기 때문에 도서 대출과 반납의 문제로 접근을 해서 해결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박인규 : 101년 전에 빌려간 책을 반납해라.

혜문스님 : 그래서 제가 연체료를 계산해봤더니 약 36억 정도.

박인규 : 이번 조선왕실의궤 반환 건에 대해서 중동의 알 자지라 방송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요?

혜문스님 :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일본에 다녀온 뒤에 박인규 선생님이 인터뷰 초청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 초청이 있고 나서 며칠 뒤에 알 자지라 방송으로부터 왕실의궤 반환 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이 문제를 취재 하겠다, 라는 연락이 왔어요.

박인규 : 그 사람들은 어떤 측면에서 관심이 있는 건가요?

혜문스님 : 알 자지라 방송은 이것이 아마 저희가 평양에 가서 남북이 공동으로 일본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 또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쪽이 약탈 경위가 분명히 밝혀졌다는 점, 또 소장자가 일본의 이른 바 천왕궁, 왕실이 운영하고 있는 왕실 도서관에 문화재가 있다는 점, 사건을 진행하고 추진해가는 사람이 저처럼 승려, 불교라는 단체가 주축으로 이 문제를 추진하다는 점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고, 저희들이 취재를 해서 이 문제를 토론 형식으로 해보겠다, 라고 해서 지금 저와 계속 이메일과 전화로 교감하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박인규 : 그런 것들이 세계 언론에 알려져서 우리나라에서 나간, 약탈된 문화재들을 반환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조계종 봉선사 혜문스님을 초대해 '조선왕실의궤'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과 지원책이 필요한지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알 자지라가 관심을 갖는 것 중의 하나가 남북한이 공동으로 빼앗긴 문화재를 찾기 위해서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왕실의궤도 남북한이 공동으로 요청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서 북한 불교계와 공조하게 된 겁니까?

혜문스님 : 최초의 사건은 지금 공동 대표를 맡고 계시는 김원웅 의원님과 초산 스님께서 이룩하신 업적과 관련돼 있는데요, 야스쿠니 신사에 있던 북한대첩지 반환 운동을 불교계가 주도적으로 북한과 같이 했기 때문에 북한에 반환이 돼서 함북 길주에 갔고요. 그 북한대첩비가 북한에 반환되는 날을 계기로 조선불교도연맹과 저희 측이 서신 교환을 성사돼서, 그때가 2006년 3월 1일인데, 조선왕조실록도 그러면 북한대첩비에 이어서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는 실록도 반환운동을 같이 하자. 2006년도부터 우리와 공동으로 보조를 맞춰서 계속 문화재 반환사업을 같이 하게 됐죠. 그러고 나서 도쿄에 있던 실록이 성공하고, 이제는 의궤를 같이 하자. 그래서 의궤까지 같이 오는 과정에서 지난 8월, 저희가 평양에 가서 앞으로 민족 문화재 반환 문제를 단순히 불교계 차원이 아니라 국가적인, 민족적인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해서 같이 하기로 최종적으로 합의를 하고 합의서를 교환하고 문화재 반환운동을 추진하기로 해서 지금 일본에 공동 요청서를 같이 내게 된 그런 경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문화재 반환에 관한한 남과 북은 차이가 없다.

혜문스님 : 네. 이것이 또 불교계가 주도되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우리나라 문화재의 80% 정도가 불교 문화재이기 때문에 사건의 당사자로서의 능력, 이런 것이 저희 남쪽의 불교계에서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고, 북쪽에서도 저희와 파트너십으로 북쪽에 반환받아야 할 문화재 대부분이 불교 문화재이기 때문에 북쪽의 조선불교도연맹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저희가 평양에 방문을 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5월, 북의 김정일 위원장이 함북 길주에 가셔서 북한대첩비를 직접 현장 시찰하시고 이런 민족 사업을 남과 북이 공동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 북한대첩비 반환 운동에 주도적으로 앞장섰던 조선불교도연맹이 더 열심히 하고. 그래서 이번에 저희 평양 방문이 성사되고 의궤 문제도 공동요청서를 내게 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인규 : 아까 한일협정도 말씀하셨습니다만, 일본에 가 있는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서는 우리보다는 북한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해요?

혜문스님 : 사실상 문화재 반환을 위해서 남북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태입니다. 그런 것들이 증명해주는 것이 북한대첩비의 반환.

박인규 : 우리는 이미 한일 조약을 통해서 권리를 포기한 거군요. 북한은 다른가 보죠?

혜문스님 : 북한은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2002년도 고이즈미와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선언에서 북과 남은 문화재 반환 문제를 양측이 성실히 협력하기로 이미 합의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대다수의 문화재를 북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아야 되는 실정인데 북의 문제를 뭐냐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너무 고립돼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어떤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지 상세한 목록을 알지는 못한다는 그런 실정입니다. 그래서 남쪽이 북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문화재 반환 문제에 관한 중대한 전기를 맞아야 되는데 그런 시기에 들어와 있다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남한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북한은 권리를 가지고 있고. 어떻습니까. 이번에 가셔서 일본 정계, 국회의원도 만나셨지만 시민단체도 만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시민단체에서는 어떤 반응입니까?

▲ ⓒ프레시안

혜문스님 :
저희가 만나본 시민단체의 특성일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시민단체의 특성은 이 문제 만큼은, 의궤만큼은 원산국으로 반환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 문화라는 것은 세계적인 보편성을 띄고 있는 문화재고, 또 의궤와 같은 것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명성황후 국장도감에서 보여지듯이 한 민족, 한 국가의 정체성과 관련된 국가 기록 공문서거든요. 이것을 식민지시기에 총독부가 일본 천왕궁에 기증했다는 걸 이유로, 합법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다, 일본 사람들 자체도 이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해결해야 되는 게 아니냐, 그런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말씀을 듣고 보니까 일본에서는 그래도 양식이 있는 분들은 반환을 해야 한다, 이런 말씀을 하셨고,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조선왕실의궤는 반환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고 하셨는데, 아까 이토히로부미 얘기도 나왔지만 일본에 가 있는 약탈 문화재가 굉장히 많죠?

혜문스님 : 네,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보고 있는 건 오구라 다케노스케라는 일본인, 당시에 대구에 있었던 남선전기 사장입니다만, 오구라가 일제시대 전반기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있었던 유물을 가장 많이 도굴하고, 가장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인규 : 말하자면, 조선 유물 컬렉터군요.

혜문스님 : 그렇죠. 그래서 오구라 컬렉션이라고 부르는데, 지금 도쿄 국립 박물관에 1100점. 이것을 우리가 우선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도 남북 공조로 찾아오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하에 북측에 상세한 목록을 전달하고 이 문제를 조일국회정상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박인규 : 그런데 그게 개인 소장품인데 오라고 할 수 있나요?

혜문스님 :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는 이것이 우선적으로 얘기 됐었습니다만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반환불가라고 했는데요, 지금은 1980년대에 오구라의 아들이 이것을 일본 국립 박물관에 기증을 했어요. 그래서 다시 국유 문화재가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충분히 거론될 수 있는 물품이라고 생각되고,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우리 민족의 품으로 돌아와야 되는 우선 반환대상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박인규 : 다음 목표는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이다.

혜문스님 : 네.

박인규 : 지금까지 상당히 많은 약탈된 문화재를 환수하기 위해 노력을 하셨는데요, 아직도 많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문화재의 제자리 되찾기 운동을 하시니까,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건지,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혜문스님 : 일단 해외 약탈 문화재에 관한 냉정하면서도 깊은 관심을 부탁드리고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패배주의의 극복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기 외세에 의해서 여러 침탈을 당한 뒤에 문화재를 다시 되찾아온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패배주의가 있었습니다. 돌려주지 않을 거다, 라는 것들이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 있던 북관대첩비, 조선왕조실록의 반환을 통해서 패배주의를 우리가 극복하고 있는 거거든요. 물론 의궤도 그렇고, 패배주의를 극복하면서 우리가 이 문제를,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남북이 같이 하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이런 데까지 발전됐으면 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취지이자 바람입니다.

박인규 :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에 이어서 조선왕실의궤가 들어오게 되면 우리도 해외에 약탈된 문화재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아요. 잘 되길 빌겠습니다.

혜문스님 : 관심 부탁드립니다.

박인규 :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조계종 봉선사 혜문스님을 초대해 '조선왕실의궤' 환수 의미와 의궤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과 지원책이 필요한지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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