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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이데올로기化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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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이데올로기化가 갖는 의미

[이광수의 '인도사로 한국 사회를 논하다'] <25>

인도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 가운데 힌두교만큼 잘못 알려진 것도 드물 것이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흔히 종교라고 하는 것을 대부분 기독교 중심의 종교 개념을 통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그 기독교를 통해 이해하는 것을 보면 종교란 '창조', '죄', '구원', '심판', '개종', '성과 속', '조직'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그 세계관은 비교적 체계적이고, 균질적이며, 논리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힌두교는 그렇듯 일반적으로 기독교를 통해 이해되는 종교와는 크게 다르다. 힌두교는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신앙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신앙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그래서 힌두교에는 그 창시자도 없다. 또 가톨릭과 같은 통일된 조직도 없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이 매우 발달해 있기도 하지만 대단히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주술적인 신앙도 뚜렷하다. 그러다 보니 그 교의 체계가 단일적이지도 않고 매우 복합적이면서 그래서 상호 모순되는 면들이 공존하고 있다.

교의가 단일적이지 않기 때문에 힌두교에는 개종이나 박해라고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원칙', '전범', '근본'과 같은 개념이 성립될 수 없다. 다만 끊임없는 변화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근본주의 기독교라는 말은 성립이 가능하겠지만, '근본주의 힌두교' (혹은 '근본주의 불교')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종교를 선택한다는 즉 개종을 한다는 행위도 있을 수 없다. 아니, 그런 뜻을 담고 있는 어휘 자체가 없다. 그 어떤 생각이나 세계관도 힌두교 안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힌두교는 일상의 모든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일상과 신앙 그 둘로 나뉜 구조 속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누가 기독교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힌두는 그 종교가 일상의 모든 면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소리, 냄새, 색깔 할 것 없이 생활사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 모든 일상의 모습을 통해 그 정체가 쉽게 들어난다. 인도 사람들이 입는 옷 사리에도 종교적 의미가 있고, 음식 커리에도 그렇다. 이마에 찍는 점도 그렇고 상대방에게 인사할 때 하는 손짓과 말도 그렇다.

힌두교는 그들에게 종교라기보다는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결국 힌두 세계에서 개인이 그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간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가족 내에서 24 시간 365일 생활하는 것이 모든 신을 인정하는 힌두적 세계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한 개인이 이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택한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생활해 나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힌두교가 다양하다는 것은 특히 그 종교가 추구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인정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고 버리고 나가는 쪽의 두 가지 세계관이 공존하고 있는 점에서 그렇다. 세상을 인정하는 쪽은 카스트의 전통을 지키면서, 부모 아래 가정을 이루고, 돈을 벌면서 아옹다옹 산다. 반면, 세상을 버리고 나가는 쪽은 카스트 전통도 버리고, 부모 자식도 버리고, 그냥 세상을 떠돌며 산다. 버리고 나간 자들은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고행하고, 수행하면서 깨달음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러한 수행자는 사회에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소수라 해서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거나 무시당하는 것은 결단코 없고, 영적 스승으로 추앙을 받는다. 그 두 세계관끼리 충돌하는 법은 없다. 힌두교는 그 공존의 원칙 안에서 고정된 종교로서가 아니라 대립하는 여러 성격들을 흡수해 나가며 변모하는 역동성의 종교가 되었다.

그런 힌두교가 한국 사회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힌두교는 식민주의자와 힌두 민족주의자에 의해 영적이고 신비적인 종교로 해석되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시리즈의 세 번째 글, '누가 고대 인도사를 기술하였는가?'를 참조하시오). 일부 세상을 버리고 떠난 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믿고 따르는 생활 속의 신앙 즉 물질적이고, 기복적이고, 현실적인 종교의 면은 거의 삭제된 채 명상과 사색 그리고 요가를 추구하는 신비한 종교로 채색되었다.

오리엔탈리즘으로 채색된 그 신비한 힌두교는 비웨까난다(Swami Vivekananda)가 1893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개최한 제1차 세계종교인대회의 연설을 계기로 미국 지성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는 힌두교의 포용적이면서 정신 세계를 추구하는 종교관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종교의 화합을 부르짖음으로서 서구 사회에 신선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상당수의 서양인들이 조직화된 기독교에 대해 반발하면서 진리를 찾아 인도를 찾았다. 그들은 인도에서 구루(guru)라고 하는 영적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들의 종교적 이상을 추구하였고, 이후로 많은 구루들이 서양으로 건너와 황ㄹ동하면서 근대 힌두교 운동은 세계화의 길을 걷는다.

그 가운데서 순수 의식에 대한 깨달음을 주창한 끄리슈나무르띠(Jiddu Krishnamurti), 기존 질서와 사회 윤리로부터의 해방으로서의 세상 포기 및 공동체 생활을 주창하는 바그완 슈리 라즈니시(Bhagwan Shri Rajneesh), 금욕과 명상을 통한 초월 명상의 신비주의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Maharishi Maheshi Yogi), 개인적 명상과 사회적 봉사의 화합을 내세운 사띠야 사이바바(Satya Saibaba)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은 모두 힌두교를 구성하는 각각의 여러 전통 즉 일원론, 기세(棄世), 박띠, 구루, 신비, 명상, 요가 등을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의 해석에 따라 조합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근저에는 힌두교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이 깔려 있다.
▲ 라즈니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의 차원에서 자유로운 성관계나 테러와 같은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일부는 서구 동양학자의 오리엔탈리즘의 영향 아래 인도 국내에서 성장하였고 일부는 미국을 중심으로 외국에서 성장한 것이 다르기는 하나 둘 다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많은 서구인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렇게 되기에는 서구 산업 사회가 가져다 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현대 문명에 대한 반발하는데서 그리고 세계의 여러 종교와 사상 간에 존재하는 영적 갈등을 기독교가 해결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설파한 힌두교는 원래 힌두교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물질적이고 실질적이고 이질적인 종교의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오로지 힌두교의 일부인 영적 전통과 세상 포기의 전통일 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힌두교는 브라만의 일부가 추구하는 이상적 삶은 힌두의 보편적인 종교 생활로, 영적이고 신비적인 세계관은 힌두교의 보편적 세계관으로 알려진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힌두교의 본질로 널리 알려진 비폭력-불살생, 채식주의, 관용, 요가, 명상, 깨달음 추구 등은 이후 미국 사회에서 확립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1965년 발효된 미국의 이민법은 미국인들이 힌두교와 본격적인 조우를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반문화 운동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미국인들은 이때부터 대거 이주한 인도인들을 접한 후 자신들과 다른 그들의 종교를 비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당시 미국 사회에 소개된 힌두교는 이미 명상, 요가, 체험, 자아 실현, 인간의 잠재적 능력 계발, 완전한 인간의 추구, 육체-정신-심령의 조화 등을 추구하는 신비주의 종교였다. 힌두교는 미국 사회에서 기독교와 서양의 물질 문명으로 인해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기독교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새로운 힌두교는 미국 사회에 조직을 갖춘 종교로서 정착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힌두교가 크게 영향력을 확산하는 데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 패배가 큰 역할을 하였다. 미국은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패하였다. 그것도 그들이 무시하는 아주 작고 미개한 동양의 한 나라에 패배하였다. 그로 인해 생긴 미국 사회의 정신적 공황은 미국사에서 그 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충격이었던지라 기존의 물질이나 기독교를 통해서는 그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 해결책을 유토피아의 창조를 통해 모색하였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의 대상으로 신비주의 힌두교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힌두교라는 유토피아 안에서 소외된 중산층 출신의 대학 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여러 가지 실재하는 현실 정치의 문제로부터 도피하고, 객관성으로부터 탈피하고 반도덕적 상대주의와 관념의 전지전능성 등에 너무 함몰되는 현상이 크게 나타났다. 사실 1960년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반문화 운동은 반기득권적이고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런데 그것이 반물질주의와 접목되면서 반과학주의에 바탕을 둔 채 신비주의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 대상을 인도를 비롯한 '동양'에서 찾았고, 이로 인해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와 종교를 잘못 이해하고 왜곡하는데 머물게 되었다. 당시의 신비주의적 반문화 운동은 기존 문화에 대한 대립적 구도에 머물러 이데올로기적으로 제도화함으로서 결국에는 지배적인 정치 경제의 관계에 종속되어 버린다.
▲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우상 비틀즈가 힌두교에 심취하면서 서양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갈수록 신비화 되어 갔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힌두교는 미국 문화의 강력한 파급력을 등에 업고 고국 인도로 역수입되었다. 그리고 역수입된 그 만들어진 힌두교의 영향력은 종교학자 바라띠(Agehananda Bharati)가 말하는 '핏자 효과'를 훨씬 뛰어 넘는다. '핏자 효과'란 이탈리아에서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구운 빵일 뿐이었는데, 1차 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후 맛과 모양이 매우 다양하고 화려한 것으로 변하여 다시 원산지 이탈리아로 건너와 음식으로서 새로운 의미와 지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힌두교의 '핏자 효과'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는 물론이고 지식의 독점적 생산 및 정보의 확산 그리고 그에 대한 통제 기제의 발전과 같은 문화적 권력 영역에서 미증유의 발전을 이룬 사실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결국 힌두교가 이렇게 식민 상황에서 왜곡되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초강대국 미국에서 다시 왜곡된 것은 식민주의의 전통이 포스트 식민주의 시기에도 계속 유효하게 전개되는 역사적 상황 때문이다.

역수입된 힌두교는 독립 이후 국가 정체성 확립에서 중요한 해결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반식민 투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가 건설의 주체로 선 민족주의 엘리트들이 국가 건설과 분단의 과정을 거치면서 힌두교라는 하나의 종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는 오류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민족 운동 엘리트들이 오랜 동안 반식민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식민 담론의 틀에서 사육당하면서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도-파키스탄의 분단 대치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힌두교는 집단 성원들의 정신 또는 사회적 결합력을 확립시키거나 상징화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와의 일치감을 통해 '민족'으로서의 공동체를 표현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결국 실재가 아닌 상상으로 만들어진 그 힌두 공동체는 곧 왜곡된 '민족'이 되고, 그 '민족'은 내부에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을 무시한 채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 의식으로 단합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이한 상상의 발명품을 위해 지금도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코미디 같은 비극을 이곳 인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종교가 역사적 의미를 상실한 채 프랑켄슈타인같이 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의 일부 기독교가 보여주는 공격적 선교 문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1970~80년대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성장한 한국의 개신교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그 성장세가 크게 꺾였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민주화를 이루고 다원화되면서 그 동안 공격적 신앙을 지켜온 개신교의 이원론적 세계관과 그에 입각한 교회 내 유일 구원론이 대중들에게 외면 받았기 때문이었다.

시민들의 기독교에 대한 열기가 식어가자 개신교 교회는 공격적 해외 선교에서 그 돌파구를 찾았다. 제국주의의 일환으로 미국의 장로교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진 아시아 사회에 대한 보수적 선교의 개념이 아류 제국주의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 선 것이다. 하지만, 공격적 해외 선교를 주창하는 한국의 일부 기독교인들이 하는 선교 행위는 교회 선전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신자를 늘리려는 마케팅일 뿐이라고 해도 크게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는 선교사들만 몇 백 명이 파송되어 그들끼리 모여 예배하고 있는데 한국의 해당 교회에서는 그 선교사로 인해 교회의 성장이 날로 두드러지는 현상이 일어난 경우가 상당히 있다.

지난 2007년 여름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탈리반의 선교사 22명 납치 및 억류 그리고 2명 참수 사건은 한국의 보수 기독교가 그 동안 얼마나 양적 물적 성장에 함몰되어 있었고 그런 가운데 다른 문화와 종교를 얼마나 무시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악마로 취급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고통 받는 현지인들의 그 고통을 함께 지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신앙과 교회를 우월하게 과시하고, 그들을 정복하는 '선한 싸움'을 즐김으로써 초기 식민주의자나 현재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의 입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선교하러 간 선교사 일행 23명이 탈리반에 납치되어 그 가운데 두 사람이 희생된 것은 한국 교회의 선교의 성격에 대한 반성과 논의에 불을 붙였다

그러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이미 다원 사회가 된 한국 사회는 심각한 분쟁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에게 그러한 기대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이미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한국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그 협량한 이데올로기를 국가 질서의 근본으로 삼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적 영향력에 목말라 있으면서 정치권 주위를 배회하는 일부 정치 목회자들이 '장로 대통령'의 깃발을 치켜들고 종교 공동체 이데올로기에 오랫동안 함몰되어 있던 신도들이 따라 나서면서 사회 갈등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점이 더욱 그러하다.

한국 기독교 보수 교회의 일부에서 신앙을 위장한 정치적 경거망동이 들끓자 불교에서 문제가 터져 버렸다. 산사의 승려부터 재가의 신자까지 전국의 모든 불교 신도들이 대통령의 기독교 편향 태도에 맞서 나선 것이다. 국민 갈등을 막고 조화로운 종교 관계를 누구보다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꾸짖고 부처의 자비와 관용, 원융과 화합을 부르짖는 불교 지도자들의 언사는 충분히 적절하다.

하지만 대통령이 정권 인수 위원장, 국회의원 비례대표 1번, 청와대 만찬 등을 기독교인 하고만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그에 대한 불만의 차원에서 승려가 할복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행위는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이 종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밥그릇 싸움인지 아닌지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 요즘 벌어지고 있는 불교도들의 행동에서 진정성을 찾기가 어려운 것은 그들이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있는 서민들의 아픔을 위해 소신(燒身)의 각오로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이 자신이 속한 종교 공동체를 위한 밥그릇 싸움으로 해석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의 곤궁한 처지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왜곡된 힌두교와 이슬람의 분쟁으로 나라가 분단되고 그 여파로 한 달이 멀다 하고 종교 공동체 사이의 테러와 학살이 일어나고 있는 인도의 상황이 꼭 남의 일만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국 사회를 특징짓는 어휘로 인도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종교 공동체주의(Communalism)'가 -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 혹시 앞으로 통용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심히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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