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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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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으로 가는 길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10> 정령치~육십령( 5.27~30)

산행 일곱째 날

아침 공기는 상쾌했고 하늘은 맑았다. 산행 둘 째 주 마지막 날이었다. 무령재에서 육십령까지 12km에 이르는 깃대봉 구간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짧은 산행이었다. 촬영을 하며 여유 있게 산행을 하더라도 8시간 정도면 마칠 수 있는 거리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그 때문인지 연일 계속된 산행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누적된 피로와 여유 있는 시간 탓에 다른 날에 비해 늦게 산행이 시작됐다.

아침 7시 50분이 되어서야 영취산(靈鷲山)을 오르기 시작했다. 숲은 젖어 있었다. 새벽이슬과 나뭇잎의 증산작용 때문이었다. 숲은 고요했다. '신령 령(靈)'에 '독수리 취(鷲)'자를 쓰는 산 이름 때문이었을까. 숲은 신비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직역하면 '신령한 독수리 산'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산의 영험함, 빼어남, 신묘함을 강조하고 드러내기 위해 하늘에서 가장 뛰어난 영물인 독수리를 빌려 온 듯하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매우 중요한 산이다. 영취산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봉화산 백운산을 거쳐 육십령으로 북상하는 길에 남겨두고 떠나는 이들이 아쉬웠는지 그들을 위해 산줄기 하나를 풀어 놓고 간 곳이다. 금남호남정맥이다. 금남호남정맥은 영취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 있다. 바로 무령고개를 지나 장안산(長安山/ 1,237m)에서부터 무주의 주화산(珠華山/600m)까지 이르는 65km에 달하는 산줄기이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갈라져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주는 산줄기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영취산의 물줄기는 동으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섬진강, 북으로는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처럼 영취산은 이 땅의 산줄기와 물줄기를 나누는 중요한 산이다. 그러니 옛사람들이 '빼어나고 신묘하고 신령한 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당연하다.
▲ 영취산에서 바라본 산줄기ⓒ이호상

하나의 사회나 민족 그리고 그들이 형성한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산줄기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산은 강을 품고 강은 사람을 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강줄기를 따라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 마을에 살며 하나의 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운 마을이라고 할지라도 높은 산으로 길이 막힌 마을들은 서로 다른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왔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문화가 다르듯이 말이다. 산과 강만이 인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숲 또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인류는 숲으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목재 등의 재화를 얻은 것 뿐 아니라 정신의 가치를 높이는 많은 문화적 선물을 받았다. 숲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과 설화 등이 그것이다. 굳이 전설과 설화를 꺼내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숲에서 뛰어놀던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있고, 지금도 숲을 동경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숲이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인간들에게 있어 숲은 곧 문화이고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산과 숲을 잃는 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을 잃는 것이다. 그러니 산과 숲,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파괴되는 것이다. 너무나 서서히 진행되어 잘 느끼지는 못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1,075.6m의 영취산 정상에 오르자 영취산을 설명하는 표지석과 백두대간 안내 간판이 우리를 반겼다. 산행을 하는 곳곳에서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 간판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었다. 안내 간판에는 백두대간을 표시한 우리나라 전도가 그려져 있었다. 그 밑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나라의 산줄기]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들을 구획하는 울타리이다.

또한 백두대간에 대한 간략한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백두대간은 이 나라 골격의 틀 중에 가장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되어진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백두대간을 되살리고 지키려는 산림청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마운 일이다. 고마운 마음 품고 영취산을 내려오는 길에 무너진 영취산성을 만났다. 그 옛날 삼국시대 신라 지마왕(祗摩王) 때 신라의 침범을 막기 위해 가야에서 축성했다고 알려진 성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는 왜적과 접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성이다. 1983년 12월 20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 85호로 지정된 성이다.
▲ 가야할 길을 말없이 알려주다ⓒ이호상

무너진 영취산성을 뒤로 하고 덕운봉(956m)으로 향했다. '덕운봉 0.6km'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였다. 논개 생가가 4.6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도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진주성이 함락되고 남편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가 전사하자 왜군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촉석루로 나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南江)으로 뛰어내려 충절의 상징이 된 논개였다. 옛사람의 발자취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미루고 길을 재촉했다.

덕운봉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바위 한 가운데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 서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산악회에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체력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이제 별로 쳐지지 않으시는데요?"
전영갑 감독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체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고... 산행 요령을 조금씩 몸으로 익혀가고 있지요."
"요령이요?"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첫째, 목적지에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산행을 즐기면서 해라. 둘째, 숨이 차도록 빠른 걸음으로 걷지 마라.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약간 숨이 버거울 정도의 속도로 꾸준히 걸어라. 절대로 숨이 차서 걸음을 멈추고 쉬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마라. 셋째, 오르막길을 오를 때에는 최대한 보폭을 작게 해서 규칙적으로 천천히 걸어라. 넷째,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는 것이니 늘 겸허한 마음으로 산을 느끼며 걸어라. 이 정도입니다. 내 목표는 뒤처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낙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낙오하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천천히 따라 갈 뿐..."

모두들 웃었다. 격려의 박수를 쳐 주었다.

"이제 그만 준비합시다. 오늘 산행이 여유가 있다고 너무 오래 쉬었어요. 민령에 가서 식사하며 쉽시다."
한 대장의 말이었다.
▲ 북바위에서 ⓒ이호상

북바위에서 산염소들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고 나니 어제 보았던 보리수나무 꽃들이 숲길에 가득했다. 키 낮은 조릿대들이 숲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늘어선 억새들이 춤을 추듯 펄럭이는 숲길을 지나자 초원처럼 완만하게 펼쳐진 둔덕이 나왔다. 둔덕 아래가 민령이었다. 민령은 백두대간의 어느 산길이 아니라 어린 시절 방앗간 집 뒤에 있던 야산 기슭처럼 안온했다. 포근했다. 식사를 마친 후 1,014.8m의 깃대봉에 오르니 바람이 선선했다. 내려가는 길에 깃대봉 샘터에서 목을 축였다. 샘터는 우거진 숲 한 쪽에 있었다. 길가에 있는 데도 눈에 언뜻 띄지 않았다. 샘터가 있음을 모르고 지나는 이들은 그저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맛은 차고 정갈했다. 지난 며칠 동안 산행으로 지친 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영혼의 묵은 때까지 씻겨 지는 듯했다. 샘터 곁에는 작은 팻말이 서 있었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바람과 마음을 풀어 놓은 팻말이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는 길손이시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 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 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 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멋을 한껏 부려 감흥을 담은 글 귀였다. 만나는 이 없는 깊은 산길에서 위로가 되었다. 지면을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소나무 줄기로 짜 놓은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숲 사이로 도로가 보였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하며 도적떼가 많아 옛날에는 이 고개를 넘으려면 60명이 모인 후에 넘었다고 한다. 그래서 육십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도로로 내려서자 '육십령'이라고 써 있는 큰 비(碑)가 보였다. 장수군(長水郡)이라는 커다란 입간판도 세워져 있었다.
▲ ⓒ이호상

장수는 본래 산고수장(山高水長) 즉 산이 높고 물이 긴 고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름이 장수(長水)이다. 장수에는 수분치(水分峙)가 있다. 수분치는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分水嶺)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지명도 '물을 나눈다'는 의미를 지닌 '수분리(水分里)'가 된 것이다. 또한 수분리에 있는 신무산(896.8m) 북동계곡에 있는 '뜬봉샘'은 금강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다.

마을의 이름 하나 하나에도 이처럼 산과 강과 더불어 살아온 조상들의 마음가짐이 담겨있었다. 문화가 담겨 있었다. '장수군'이라는 이름에도 산은 강을 품고 강은 사람을 품어 키운다는 자연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그런 가르침을 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을까. 주차장 한 편에 '백두대간 해설판'이라고 써 있는 입간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다. 입간판에는 백두대간의 주요한 산들과 1대간 1정간 13정맥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다.
▲ 백두대간 해설판ⓒ최창남

나는 따가운 햇살 아래서 오랫동안 이 땅의 산줄기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산줄기들이 꿈틀거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오랫 동안 바라보았다.
땀이 온 몸을 적셨다. 깃대봉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따가운 햇살 사이로 불어왔다.
바람 속에서 나무 냄새가 났다.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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