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대선에서 승리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은 이 이론을 주장하는 공급경제학파를 내세워 대대적인 감세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경제교과서(그레고리 맨큐의 <경제원론>)에서 '사기꾼의 감언이설'로 낙인찍힌 '정치적 구호'다.
흥미로운 것은 하버드 경제학 교수로 부시의 집권 당시 워낙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맨큐가 2003년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리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영입됐으나, 감세 정책을 비판하다가 2년만에 백악관에 있던 위원회 사무실마저 바깥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당하며 사임했다는 사실이다.
"래퍼 이론은 폐기된 가설"
경제학자로서 맨큐의 권위를 인정한다면, 이 일화는 '래퍼 곡선'이 경제정책이 아니라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래퍼 이론'의 취약성은 여러가지로 지적된다. "현재의 세율이 최적 세율보다 높은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하느냐", 그리고 "감세로 인해 투자와 소비, 생산성 향상 등 기대한 효과가 과연 일어나느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특히 감세 정책은 경제운영을 시장의 원리에 더욱 맡기는 노선인데, 세계화 시대에는 그 효과의 예측 가능성이 더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우리 나라처럼 세수에서 직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에 불과한 경제에서는 감세는 시장 활성화보다는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직접세 비율은 2005년 기준 52%에 불과해. 미국의 79%, 일본의 68%에 비해 훨씬 적다.
일각에서는 감세의 또다른 효과로 '정부의 다이어트'를 들기도 한다. 감세로 인해 세수가 줄어들면 빠듯힌 재정을 운영하게 돼 작고 효율적인 정부로 거듭나는 요인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래퍼 이론'은 시행 주체에 의해 더욱 '포퓰리즘 정책'으로 전락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레이건 행정부 시절 감세로 인해 재정지출이 줄기는커녕 막대한 국채 발행으로 재정을 파탄으로 몰고 갔다. 이는 부시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런 재정지출이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맨큐와 함께 하버드대 교수인 제프 프랭켈스도 최근 워싱턴의 진보성향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를 통해 발표한 <감세는 가짜 만병통치약(Snake Oil Tax Cuts)>이라는 논문에서 공급경제학파의 주장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며 '래퍼 이론'은 '래퍼 가설'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레이건 행정부 초기인 1981~83년, 그리고 부시 행정부 초기인 2001~03년 실시된 감세정책의 효과를 조사해보니 '래퍼 가설'은 특정한 조건에서는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미국의 소득세율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재정지출 증가 동반하는 감세안은 포퓰리즘
지금까지 나온 어떤 연구결과보다도 역사적이며 실증적인 광범위한 자료에 기초해 체계적인 연구방법으로 수행된 이 논문에 대해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의 경제고문을 지냈던 저명한 학자들까지 포함해 거의 대부분의 학자급 이코노미스트들이 견해를 같이 했다.
특히 프랭켈스 교수는 "감세에 따라 재정지출도 줄이려면, 1990년대처럼 예산이 필요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반드시 재원 조달 방법을 요구하는 제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보다 체계적인 경제학적 분석을 해보면 래퍼 가설은 폐기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재확인하게 된다"면서 "이런 결론이 역사학자나 경제학자들만의 관심사는 아니다"고 경고했다.
프랭켈스 교수는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레이건과 부시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매케인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가짜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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