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정보 당국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정확한 건강 상태는 불분명하지만 9일 평양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건 분명하며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그가 현재 평양에서 의사들의 진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한 정보 당국자는 김 위원장의 죽음이 임박한 것 같지는 않다며 북한이 권력 이동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강화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미국 정보기관들이 김 위원장이 완쾌될 수도 있다고 예상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건강 문제 있었지만 회복중"
미국의 <폭스뉴스>는 서방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뇌졸중 증세를 보여 집무를 볼 수 없게 됐거나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정보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들은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 주 중국을 긴급히 방문한 것은 북한 핵문제 보다 김 위원장의 유고(有故)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를 논의하기 위한 성격이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뉴욕타임스>도 부시 행정부의 한 관리의 말을 인용, 힐 차관보가 최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가 논의됐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그러나 중국과 북한간의 긴밀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힐 차관보는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 또는 그의 사후 발생할 문제에 대해 어떤 확실한 인식을 갖고 귀국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또 북한의 최근 핵시설 불능화 중단 선언이 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유고 중에 다른 관리들이 내린 결정인지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날 미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가 "최근 김 위원장의 건강에 문제가 있었으나 회복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하기도 했다.
"'와병' 조명록이 대신 나올 정도라면…"
김 위원장이 지난달 14일 이후 대외활동을 일절 하지 않고 있고 중국과 프랑스 등에서 의사들이 긴급 투입됐다는 첩보 등이 나돌면서 시작된 김정일 건강이상설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엇갈린 해석을 하고 있다.
신빙성이 있다고 보는 쪽에서는 김 위원장이 1991년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후 작년까지 10차례 벌어진 북한군 열병식에 빠짐없이 참석해 왔다는 점을 핵심 근거로 들고 있다.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식에 불참했다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9일 행사에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참석한 걸 주목해야 한다"라며 "조명록은 김정일 대신 참석한 건데 건강 때문에 1년 가까이 모습을 보이지 않던 조명록이 대신 나올 정도라면 김정일의 건강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건강이상설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다른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1986년 김일성이 사망했다고 판문점에 조기를 내걸고 장송곡을 틀며 쇼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뭔가 다른 깜짝쇼를 준비하는 게 아닌가 싶다"가로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김 위원장이 서방 세계의 이목을 끌기 위해 건강이상설로 '위장'하고 있다고 보는 쪽에서는 교착상태에 빠진 핵 문제에서 모종의 행동을 하지 않겠냐고 내다보고 있다. 영변 핵시설 가동중단을 선언한 북한이 조지 부시 미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추석을 전후로 보다 강한 조치를 꾀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주를 이룬다.
한편 정보가 조작됐거나 과장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일부 있다. 북한이 뭔가 다른 행동을 하기 위해 거짓 신호를 보낼 가능성,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정보 왜곡 가능성, 국내 언론의 과잉 해석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청와대는 '확실' 통일부는 '신중'
정부에서 나오는 신호도 뉘앙스가 각기 다르다. <연합뉴스>는 10일 오전 정부의 핵심 관계자가 "김 위원장이 신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라며 "여러 정황을 다각도로 분석할 때 김 위원장이 (병으로) 쓰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가지 첩보가 들어오고 있으나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신체 상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이긴 했지만 청와대의 움직임은 건강이상설 쪽에 무게중심이 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를 긴급 주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 역시 "김정일 위원장의 중병설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래 전에 관련된 정보를 입수해서 면밀하게 점검을 해 왔다"며 "앞으로도 추가적으로 진행상황을 면밀히 챙기고 상황의 진전에 맞춰서 빈틈없는 준비와 대응태세를 갖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병명이 '뇌졸증'이 맞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관측이 일치하는 게 아니냐"고 부인하지 않았다.
그러나 통일부는 보다 신중한 분위기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아직까지 어제 9.9절 행사에 (김정일 위원장이) 불참했다는 것을 빼놓고는 정확하게 확인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어 "현재는 정보 당국에서 이러한 첩보를 수집해서 진위여부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궁금증이 많아도 이 단계에서 말씀드릴 것이 없다"며 "워낙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섣불리 이야기 할 수 없고, 이 이상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되풀이했다.
통일부 당국자들도 건강이상설이 사실로 드러났을 경우의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하되, 사실관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음을 들어 신중한 대응 기조를 보이고 있다.
<AP> "전직 CIA 관리, 확신하고 있었다"
물론 북한은 이같은 '설(說)'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평양발 기사에서 북한의 권력 서열 2인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김 위원장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10일 밝혔다고 보도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이날 <교도통신>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지만 김 위원장의 와병설 등에 대해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앞서 <교도통신>은 북한의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 교섭담당 대사가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었다. 송 대사는 이어 "하나의 모략 책동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서방 언론들을 비난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도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설을 부인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9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신원을 밝히지 않은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의 한 직원이 전화통화에서 김 위원장이 뇌졸중을 앓고 있을 수 있다는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뇌졸중 발병설을 최초 보도한 <AP> 통신은 이날 최근 북한 정보에 접근한 전직 미 중앙정보국(CIA) 관리의 말을 빌려 CIA는 9일 이전에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에 관한 보도가 정확하다는 것을 자신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앞서 <AP> 통신은 9일 서방 정보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김 위원장의 건강이 위중한 상태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다"며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뇌졸중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AFP> 통신도 한 미국 정보당국자가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마도 뇌졸중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최근 2~3주 사이에 발병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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