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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통미봉남 부담 줄었으니 뒷짐지고 있자?"

[정세현의 정세토크] <5> 대북 식량지원 관련 오해와 억측들

그동안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책임이, 특히 금강산 피격 사건 이후에는, 북쪽에 있는 걸로 얘기가 많이 돼왔고 국민들 중 상당수가 그런 해석을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 정부도 '우리가 잘해주려고 해도 총 쏘고, 만나자고 해도 안 나오고, 식량지원 한다고 해도 대꾸도 안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북핵 문제가 빨리 풀리면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빼기로 한 8월 11일 이전 상황이지만) 통미봉남 때문에 우리 정부의 모양새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 대안을 모색했다고 봅니다. 7월 11일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그런 고민의 발로였다고 봅니다. 그런데 8월 11일이 지나면서는 우리 정부가 심리적 부담을 덜게 되는 형국으로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북핵 문제가 검증 문제 때문에 교착상태로 빠져들고 있고, 미국 대선 때문에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추진력도 떨어지는 상황에서 북미관계도 더 특별히 좋아질 것이 없는 그런 상황으로 가니까, 이명박 정부로서는 통미봉남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렇게 북핵 문제도 교착되고 북미관계도 정체되면 상대적으로 통미봉남 부담을 덜 수 있으니까 우리 정부도 남북관계를 정체상태로 방치할 것이냐? 거기에 관해서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북미관계가 앞으로 미국의 대선 결과에 따라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단하긴 어렵지만, 어쨌건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북미관계는 지금 부시 정부 말기보다는 훨씬 더 강한 추동력을 가지고 풀려나갈 수밖에 없으리라고 봅니다.

물론 매케인 캠프에서 부시 정부 초기와 같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에, 매케인이 당선되면 북한이 힘들어지고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케인이 된다고 해도, 전지구차원에서 국제정세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북핵문제와 관련된 매케인의 실제 정책이 지금의 대선공약보다 유연해질 수도 있어요.

반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한 오바마가 당선되면 북미관계가 양자협상 방식으로 풀려 나가면서 북핵문제도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해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어떻게 되느냐를 지켜본 뒤에 우리 입장을 정하려고 할 게 아니라, 미국의 입장을 무시하지는 않되,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개선해 나감으로써 남북관계가 북핵문제를 푸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 축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할까? 자기 역할 정립을 위한 모색을 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관계에 너무 많은 비중을 실어주고 있는 지금의 외교안보정책 기조가 수정되어야 합니다.

남북관계, 북미관계, 한미관계 이 3자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한미관계를 중심축으로 삼기보다 남북관계를 중심축으로 삼아야 합니다. 남북관계 중심의 3각 순환 구도를 짜야만 이명박 정부가 외교안보와 남북관계에 있어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업적을 쌓아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미국 중심으로, 미국 하는 걸 봐서 따라가면 된다고 해서는 우리 외교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미국 중심으로 가니까 반응이 바로 중국 쪽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너무 미국 중심으로 기울면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관계가 살아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탄력을 못 받으면 결국에는 미국에도 발언권이 없어지고 한중관계, 한일관계, 한러관계에서도 우리 위상이 높아질 수 없어요.

더구나 아소 다로가 일본의 차기 총리가 되면 일본의 대북정책이 아베 신조 총리 류로 전개될 텐데, 우리가 그냥 거기에 편승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돼요. 그럴 경우 득실이 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세 주도권을 쥐는 '손쉬운' 방법

하르트무트 코쉬크 독일 연방의원이 얼마 전에 북쪽에 갔다 와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했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남쪽에서 강한 신호를 보내줘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건 아마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 입장을 분명히 해달라는 얘길 겁니다만, 남쪽이 상황을 주도해 달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체면이 걸려있는(정부가 강수를 둠으로써 그렇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금강산 공동조사에 호응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도 6.15와 10.4에 대한 입장은 이쪽에서 정리를 해서 얘기를 해줘야 됩니다.

북쪽에서는 원칙적인 입장을 분명히 해 달라는 건데 우리 쪽에서는 거꾸로, 금강산 사건에 대해서 북쪽이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북에 넘기고 있습니다. 저쪽은 원칙 문제를 분명히 하자는 거고, 우리는 현실 문제인 식량지원, 금강산 사건에 대한 대화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서로 버티다 보니 접점을 못 찾고 있는데...북쪽이 요구하고 우리가 들어주는 걸 '끌려 다닌다'고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우리가 뭐 아쉬운 게 있어 그러느냐'는 식으로 생각한다면 남북관계는 계속 이런 상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빠질 수도 있지요. 그럴 경우 누가 손해를 보겠습니까?

남북관계도 일종의 정치인데, 정치적인 성격을 띠는 문제와 관련해서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면서 오히려 이쪽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사실은 정치력을 발휘하는 거 아닙니까?

뭐 내일(9월 9일) 저녁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불교 문제와 관련해서도, 불교 쪽에서 요구하는 걸 두고 '어떻게 다 들어주느냐'는 식으로 한다면 아마 불교와의 불편한 관계가 상당히 오래 가리라고 봅니다. 역대 정부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걸 그대로 수용해가지고 대통령이 사과하고 거기에 수반되는 조치를 취하고 하는 식으로 해서 위기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상황 주도권을 (정부가) 장악하고 나가는 적도 있었고, 위기를 돌파하고 그랬잖아요. 그건 뭐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그랬습니다. 노태우 후보도 6.29선언 방식으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결국 상황 주도권을 장악해서 대통령 당선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남북관계에서도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겁니다. 허심탄회하게 기존 입장을 바꾸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역으로 포착하는 것이 정치력이듯이 남북관계에서도 그런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북미관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모멘텀의 조성, 이런 걸 우리가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봐야 되는 거 아니겠어요?
▲ 토니 밴버리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아시아담당 국장이 지난 2일 베이징 유엔빌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기아에 허덕이는 620만명의 북한 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5억달러 규모의 대북 긴급식량지원에 나선다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WFP가 헛말하는 조직인가?

그런 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대북 조치랄까 하는 것이 바로 식량지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북 식량지원과 관련해서 WFP(세계식량계획)은 '이대로 놔뒀다간 큰일 난다, 아사자 나올 것 같다'는 경고를 두 달 이상 하고 있고, 최근에는 5억 불 조성 목표로 우리한테 참여해 달라고 요청하는데 정부는 아직 입장을 안 정하고 있습니다. WFP가 필요로 하는 5억 불을 옥수수로 환산하면 125만 톤 정도 됩니다. 옥수수 값이 많이 올랐어요. 김영삼 대통령 시절 톤당 100불 내지 120불이었는데, 요즘은 중국산 옥수수가 300불이 넘어요. 미국산 시카고 현지 가격이 209불, 중국산이 320불, WFP로 가는 경우에는 송료 포함해서 톤당 400불 정도 될 텐데, 옥수수로 계산하면 5억 불로 125만 톤을 살 수 있습니다. 톤당 800불하는 밀가루로 보낸다면 63만 톤을 보내게 되고요.

거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미국이 북한의 금년 식량난을 작년부터 예견해왔고 금년 초여름부터 내년까지 1년 동안 50만 톤 지원하기로 했고, 그 식량은 지금 약속대로 잘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이 불능화 중단 등 대미 압박전술울 쓰는 상황에서도 식량지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협조 안 한다고 식량지원을 안 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북한이 불능화를 중단했는데도 식량지원을 끊겠다는 얘기가 안 나옵니다. 그건 뭘 의미하는 지, 미국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는 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돼요.

그건 그렇고...미국이 50만 톤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WFP가 옥수수로는 120만 톤, 밀가루로는 60만 톤이 넘는 분량을 별도로 보내야 한다면, 그건 기본적으로 식량 부족 상황이 최소한 150만 톤 전후라는 계산이 나왔으니까 그러지 않겠어요? 응? WFP가 헛말 하는 국제조직입니까? 유엔 산하기구입니다 그게. WFP는 국제 공신력이 있는 조직이에요. 미국이 50만 톤 보내는 걸 뻔히 알면서도 WFP가 따로 보낸다는 건 식량 사정이 굉장히 급박하다는 얘기예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금년 농사 상황 봐서 다음 달에 입장 정하겠다고 미루는 게 난 참 답답해요. 어떻게 보면 참으로 옹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정부입장도 이해는 합니다. 왜냐면 옥수수 5만 톤 주겠다고 했다가 거절당했단 말예요. 전통문(쌀 지원 관련 남북 접촉을 위한 전화통지문) 접수 안 한다고 했고. 그러다가 다시 최근에 5만 톤 얘기를 또 꺼냈다가 사실상 거절당했어요. 그러니 기분도 나쁘고, 뭐 그러겠지요.

근데 북한 입장에서 볼 때 그 옥수수 5만 톤은 이명박 정부의 선물이 아니에요. 노무현 정부 말기에 수해물자 지원 차원에서 약속했다가 못준 걸 다시 주겠다고 했던 거 아닙니까. 어떻게 보면 떡 중에서 쉰 떡이란 말이에요. 그걸 자꾸 들었다 놨다 하니까 북쪽으로서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기분 나쁘지요. 물론 우리 정부 생각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계기로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면 6.15나 10.4선언을 존중한다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얘기해주고, 그렇게 해서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요. 그러려면 그런 메시지가 적절한 방식으로 암시라도 되어야 돼요.

작년 정상회담 이후 노무현 정부가 주겠다고 했던 5만 톤을 이명박 정부 인수위가 못주게 했다가, 그것을 꺼내서 또 다시 5만 톤 애기를 하니까 북으로서는 고맙지가 않은 겁니다. 옥수수 5만 톤이 무슨 전가의 보도도 아니고, 북한이 볼 때는 쉰 떡인데 기분 나빠서도 안 나온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WFP도 이렇게 나서는 걸로 봐서 북한의 식량 사정이 급박해진 것이 분명해졌다는 걸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인도적인 문제를 외면하면 국제적으로 우리 정부의 도덕성 문제까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옥수수 5만 톤 보다 많은 분량을 전제로 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일단 금강산 사건이나 6.15선언과는 무관하게 시작해야 돼요. 인도적인 문제니까. 6.15는 정책과 원칙의 문제이고, 금강산 사건은 그야말로 사건입니다. 이걸 섞어버리면 안 됩니다. 북한에 아사자가 나오는 걸 방지하려고 국제기구까지 발 벗고 나서서 여기저기 지원을 요청하는 마당에, 거리상으로도 가깝고 또 혈연상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이 북한 식량사정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하면서 결정을 미루더니, 최근에는 다시 금년 작황까지 보고 내달 중에 결정 하겠다? 내달은 벌써 10월입니다. 사후약방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지 말고 양을 좀 늘려가지고, 그 양까지 내가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부가 민간단체들의 대북 지원에 매칭펀드 하는 식으로 보태 줄 수도 있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겁니다.

YS 때만큼도 안 하려나?

정부는 북핵 문제도 안 풀리는 마당에, 그리고 금강산 사건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인도적 문제라 하더라도 까딱하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자꾸 여론 핑계를 댄다고 그래요. 그런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더군요. 그런데 보수적인 여론만 인식하면 5년 동안 아무 것도 못 할 겁니다.

나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만 일한 사람 아닙니다. 보수적이라는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었고 그 전 정부에서도 미관말직으로나마 일해 봤는데, 남북관계 관련 여론은 기본적으로 성향이 이렇습니다. 대체로 보수와 진보라는 게 각각 15~20%씩 양쪽에 포진돼 있고, 나머지 60~70%가 중도예요. 그 중도는 정부가 가는 쪽으로 대개 따라 갑니다. 그런데 15~20%를 차지하는 진보와 보수 중에서 대체로 5~10% 정도는 다시 극진보/극보수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진보중에서도 10%는 정부가 잘 설득하면서 끌고 가면 동조하고, 보수쪽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정부가 어떻게 방향을 설정하고 어떤 논리로 국민들을 납득시키느냐에 따라 적극 반대층은 10% 정도 밖에 안 되는 셈이죠. 물론 보통 70~80%는 기본으로 안고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꾸 여론 핑계를 대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즉, 정부하기 나름이에요. 정부가 여론 핑계를 댄다는 게 현실적으로는 책임회피하는 겁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지고 '이렇게 가는 게 경제적인 영향이나 외교적인 위상 면에서도 좋겠다.'는 식으로 설득하면서 끌고 나가야죠. 국민이 정권을 맡길 때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뜻을 존중해야 하지만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리더십도 발휘해달라는 전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자꾸 여론 핑계만 대면 리더십은 없어집니다. 보통사람은 못 보는 미래의 모습을 보면서, 미래가 이러이러하게 되어야 하니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한다고 끌고 가는 게 리더 아닙니까? 여론만 따르면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여론에 편승하면 그건 사실 지도자가 아니지요.

김영삼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김일성 조문 문제로 남북관계가 통미봉남 상황에 빠져있던 95년에도 북한이 어렵다고 하는 소문만 듣고도 쌀 15만 톤을 북에 지원했습니다. 쌀 보내주는 과정에서 '퍼주고 뺨맞기'니 뭐니 갖은 반대가 있었지만, 96년 이후에도 옥수수를 매년 10만 톤 씩 보낼 수 있는 돈을 WFP에 보냈어요. 북쪽에서 통미봉남을 아주 철저히 견지하는 와중에도 WFP에 옥수수 10만 톤을 살 수 있는 돈을 보냈고, WHO(세계보건기구)나 유니세프 사업에 계속 협찬을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국제사회가 북을 돕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이웃나라 보기도 부끄러워진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당장은 막혀있지만 뒷날을 생각해서 일종의 마일리지는 적립해놓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김영삼 정부도 그렇게 했습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 가까이서 일하는 분들은 북쪽이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비난하는 걸 상당히 기분나빠하는 것 같더군요. 그런 얘기가 들립디다. (천정을 바라면서, "허.... 그것 참..." 하다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더 심했어요. 그걸 좀 비교해 보라고 그래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내가 볼 때,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경험이 없고 처음 당하다 보면 화가 나고 그럴 거예요. 기분 나쁘고. 그리고 자꾸 보수 쪽에서 '그 욕하는 놈들한테 뭘, 왜 주냐'고 하지만, 그렇게 치자면 김영삼 정부에서는 완전히 끊었어야죠.

그러나 그런 주장이나 여론을 뛰어 넘어 대북지원을 했습니다. WFP가 요청하는데 그것마저 거절하면 민족적 체모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이 정부가 그 때 만큼도 안 하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북핵 핑계를 댈 수 있어요. 김영삼 정부 당시에는 북핵 문제가 일단 제네바 합의(1994년 10월)를 통해서 풀려 가는 걸로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통미봉남에도 불구하고 경수로 건설비용의 70%를 떠맡기로 한 겁니다. 그건 왜 그랬느냐? 그렇게 해 놓는 게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우리의 발언권을 높일 수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70%를 내놓으면 미국하고 일본에 대해서 발언권이 생긴다 이거였죠.

물론 국제정치라는 게 돈 놓고 돈 먹기는 아녜요. 그러나 그런 식의 기여를 하고 상황을 주도하는 노력을 해 놓으면 앞으로 동북아 평화문제 풀어 나가는 데 있어서 미국에 대해서, 일본에 대해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도 발언권이 생깁니다. 이명박 정부에 있는 양반들이 그런 걸 계산도 좀 했으면 좋겠어요. 북한 밉다고 해서 뒤로 빠져버리고 미국이 하는 만큼만 한다, 미국이 한 뒤에 따라가도 늦지 않다는 식으로 한다면 앞으로 동북아 문제에 있어 우리 발언권은 별로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북한 식량난의 원인과 현황

북한의 식량 문제는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방개혁에 나서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구조적으로 헤어날 수 없는 문제라고 봐요. 북한 2300만 인구가 배고프지 않게 먹고 살려고 하면 600만 톤이 필요합니다. 우순풍조(雨順風調) 해주면 한 400만 톤까지 자체적으로 생산해요. 하지만 가뭄이나 홍수가 오면 350만 톤 정도로 내려갑니다. 기본적으로 200만 톤이 부족하고, 상황이 나빠지면 250만 톤이 부족한 거죠.

우리는 돈이 있어서 사다 먹지만 북한은 외화가 부족하다 보니까 그 부족분을 메울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비료, 농약이 부족한데다 사회주의 생산방식을 고집하기 때문에 부족한 35%를 메울 여지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봅니다.

2005년도에 경기도가 북쪽하고 농업협력을 하면서 평양 순안 쪽에서 쌀농사를 공동으로 한 적이 있어요. 300평 논 한 마지기 기준으로 할 때 남쪽에서는 대개 벼 500kg이 나옵니다. 평양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완전히 남한 식으로 비료, 농약 충분히 주고 제 때 김매고 하니까 300평 기준으로 그 해 벼 494kg이 생산되었어요. 그 전에는 같은 땅 같은 면적에서 벼 270kg 생산했었답니다. 같은 면적에서 남쪽 생산량의 54%를 생산한다는 겁니다. 나머지 46%를 메우지 못하는 이유는 비료와 농약, 협동생산 방식 때문에 그렇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북한이 개방개혁을 하고 외화를 벌어서 부족한 식량을 사다 먹든지,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농업생산방식을 바꿔서 북한 인민들이 식량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하기 전에는 부족분을 메꾸기 쉽지 않을 겁니다. 요컨대, 북한 식량 문제는 한두 해에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북한의 금년 농사를 지켜보겠다? 어차피 재작년, 작년 수해 때문에 금년에 어렵게 살았고, 농토 복구도 제대로 안 됐을 텐데 금년 농사가 난데없이 잘 될 이유는 없죠.

그런 마당에 작황을 봐서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게, 참...이쪽에선 쌓아 놓고 있으면서 너무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안 듭니까? 영국이나 캐나다나 미국에서 그러면 북한 사람들이 서러울 것도 없고 괘씸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데 사는 사람들이 먹는 문제 가지고 그러면, 그리고 그 전에 주던 사람들이 그러면, 정말 나중에 북쪽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잔인한 행동도 될 수 있습니다.
▲ 정토회(지도법사 법륜)가 진행 중인 '굶주리는 북한주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 발대식 장면. 정토회는 대북 긴급식량 20만 톤 지원과 북한 경제개발을 위한 정부예산 1%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정토회는 8일 현재 서명자 수가 70만 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지원 식량 전용과 투명성 논란

지원된 식량을 군인들이 뺏어 먹는다는 얘기가 많은데...조선 인민군이 117만 명입니다. 장교 포함해서. 북한 전체 인구의 20분의 1이예요. 117만 명이 365일 1일 평균 700g을 먹는다면, 총 소요량이 30만 톤이 조금 안돼요. 700g이면 거의 1되가 되는 양이라서 꽤 많이 잡은 겁니다. 기본적으로 쌀과 옥수수를 섞어 먹지만, 조선인민군을 쌀로만 먹이는데 필요한 쌀의 양은 30만 톤 정도 됩니다.

그리고 노동당 당원을 300만으로 잡고, 당원이면서 군 장교인 사람들을 감안해도, 4인 가족 기준으로 계산하면 1200만 정도 됩니다. 거기에 독신 병사 100만 보태서 인구의 반 조금 넘는 정도 되는 핵심계층이나 군인은 자기네가 생산한 양으로 먹일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계산이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모자라서 그렇지 해마다 쌀은 130~150만톤, 옥수수 150~180만톤, 감자 70~80만톤, 총 350~400만톤 식량은 있기 때문에....

결국 조선인민군 병사도 아니고, 노동당원과 그 가족도 아닌 불쌍한 민초. 국가가 책임질 수 없는 경계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남쪽이나 외국에서 들어오는 식량을 받아야 연명하게 돼 있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이쪽에서 간 쌀을 군인들이 뺏어 먹는다, 높은 사람들이 빼돌린다 하는데, 국가적으로 식량난을 겪고 있는데 높은 사람들이 라고 하루에 네 끼 다섯 끼를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또 군인들이 어떻게 관련되는지 여러 가지 현장 사정을 더 알아봐야겠지만.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해요. 기름 소비량 하고도 관련 되는데, 북한의 경우는 원유 도입량이 100만 톤이 안 되는데 거기서 딱 절반을 떼서 군용으로 돌려놔요. 나머지를 민수용으로 씁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도 인민위원회나 군 인민위원회 같은 데서 가지고 있는 자동차에 기름이 없고, 군용은 기본적으로 보장된다고 봐야죠.

그럼 원산항에 식량이 들어와도 함경남도 인민위원회가 수송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어요. 그럴 경우에 근처 부대에다가 실어 날라 달라고 부탁을 하고, 군대는 어차피 군민일체니까 봉사를 해야죠. 그러나 그러는 장면을 인공위성이 찍어서 들이 대면 다른 알리바이를 댈 수가 없어요. 그걸 가지고 투명성 문제 제기하고, 군이 다 뺏어 먹는다고 하는 주장도 있더군요. 식량이 모자라는 건 분명하지만, 조선인민군이나 노동당원이 먹을 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아닌 사람들 때문에 지금 식량지원을 하자는 거죠.

그리고 '굶겨서 폭동이 일어나게 해야지 왜 먹을 걸 보내서 김정일 정권을 연장해 주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참 정말 국제정치에 대해 눈을 감는 일종의 억지죠. 북한이 95년도에 식량난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도 식량난은 있었지만 감추고 있었겠죠. 김일성 생전에만 해도 조중관계가 지금보다 나았으니까 어떤 방식으로건 중국이 메워주고 해서 근근이 버텼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망하고, 또 중국의 개방개혁 심화로 조중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손 벌릴 데가 없다 보니까, 국제사회에 손을 벌렸는데 그 때 맨 처음 북한에 50만 톤 쌀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데가 일본입니다.

일본이 왜 그랬겠어요? 간단히 말해서 식량난을 방치하면 북한에서 보트 피플이 일본으로 올까봐 그런 겁니다. 일본이 그러니까 김영삼 대통령이 우리가 먼저 줄 테니 일본은 순서를 뒤로 좀 빠지라고 했던 거고. 또 그 상황에서 중국이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중국은 소리 없이 지원합니다. 미국도 그동안 간헐적으로 북한에 식량지원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북에 쌀 안 준다고 해서 북한에 폭동이 일어나서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는 건, 그건 참 나이브한 판단이다 이겁니다.

또 WFP로 주면 투명성이 보장되고 우리가 직접 주면 투명성이 보장 안 된다는 말도 북한이란 사회를 너무나 모르는 얘깁니다. 북한이란 사회는 아직까지도 당국의 일언지하에 인민들이 무조건 복종할 수밖에 없는 사회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WFP 보는 데서 줬다 나중에 얼마든지 다른 조치를 할 수 있는 데가 북한 아닙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민심이 나빠지지 않겠느냐? 그렇다고 주민들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WFP를 통해 보내주면 투명성이 보장되고 우리가 보내주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고 하는 건, 북한 사회가 최고로 통제된 사회라는 것을 일부러 외면하면서 하는 얘기가 됩니다.

WFP가 5억 불이나 조성해서 옥수수로 주면 100만 톤이 넘는 분량을 준다고 할 때는 분명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봐야 합니다. 이쯤 되면, 여기서 우리가 'WFP 그동안 수고 많았다. 우리도 큰 몫을 하겠다. 그런데 기왕 할 바에는 직접 지원하겠다'고 치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서울-평양 거리가 200km 밖에 안 돼요, 그렇지만 WFP로 하면 가까이 가도 2000km 이상을 돌아야 합니다. WFP로 가면 행정비도 많이 뗍니다. ('정세토크' 4회 후반부 관련 내용 참조)

이런 상황에서 WFP를 통하기보다 우리가 직접 지원하겠다고 하는 식으로 차제에 강력하면서도 좋은 메시지를 보내면 자연스럽게 북쪽이 유연하게 나올 거고, 그렇게 되면 우리도 6.15와 10.4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하는데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되리라 봅니다.

정부도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그 얘기를 하자니 어색해서 그럴 거예요. 그러나 어색한 상황에서 아이스 브레이킹(ice-breaking) 효과를 내는 힘과 여유를 가지고 있는 쪽은 우리입니다. 책임도 가지고 있어요. 북한 사람들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우리가 북한하고 일대일 상호주의, 기계적 상호주의 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

서독판 '퍼주기'를 아는가

독일 통일 당시 서독 정부의 안보보좌관을 했던 텔칙이라는 사람이 최근 서울에 와서 어떤 자리에선가 말한 내용이 우리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자기네는 80년대에만 동독으로 2000억 마르크 상당의 현금과 물자를 지원했다는 거예요. 당시 환율로 계산해도 1000억 불이 넘는 돈입니다. 10년 동안 1000억 불 이상 갔으면 연간 100억 불 이상입니다.

우리가 2001년부터 대북 쌀 지원을 시작해서 한 5년 지원하다가 북한이 핵실험을 한 2006년부터는 그나마 중단되었지요. 대북지원에 들어간 비료값, 민간지원 매칭펀드 등 이것저것 합쳐서 많을 때가 약 5억 불 됐어요.
▲ ⓒ프레시안

지금 우리 GDP가 1조 불 조금 못 되는데, 독일의 GDP는 3조 불 정도예요. 그렇게 우리와 독일의 경제 규모가 1대 3 정도라고 보면, 서독이 80년대에 동독에 지원해 준 게 명목 액수로 우리의 20배, 1 대 3의 경제규모의 비율을 대입해도 우리보다 6~7배 이상 지원한 셉입니다. 그게 결국 독일 통일 시간을 앞당긴 겁니다.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비난하려면 통일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가 준 쌀을 인민들에게 안 주고 다음 해나 나중을 위해 비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쌀을 줄 때는 방아를 쪄서 주기 때문에 비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1년 이상 저장했던 2년 정도 된 쌀, 안 주고 한 해 더 지나면 어차피 공업용으로 나갈 쌀을 방아 찧어서 보내요. 그걸 비축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준 걸 먹고 자기네 것은 비축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쌀은 오래 보관하면 방아 찧어 봐야 싸라기로 부서지거나, 푸석푸석해서 죽이나 끓여야 돼요. 우리 걸 먹고 자기들 것은 비축한다? 아니 아무리 북한 지도자가 밉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이 굶어 죽어 나가는데도 그런 짓을 할 거라고 단정하면서 지원을 하지 말자고 하는 건 상당히 지나친 거죠.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現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 화요일마다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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