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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정신이 중요"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9/03] 산악인 엄홍길씨

안녕하십니까, 박인귭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개봉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씨가 이번에는 소외 어린이와 산악인들을 돕기 위해 나섰습니다.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해 산악인으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산악인 엄홍길씨를 초대해 휴먼재단을 설립한 배경과 구체적인 계획 등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얘기 나눠봅니다.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산악인 엄홍길씨입니다. 엄홍길씨는 1960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외국어대 중국어과를 졸업했습니다.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0년 칸첸중가와 K2를 오르면서 아시아에서 처음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히말라야 8000급 14좌를 모두 올랐습니다. 또 2004년에는 제 5위봉인 얄룽캉 도전에 성공했고 작년 5월 31일 히말라야 로체샤르를 등반해 세계에서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체육훈장 맹호장과 청룡장, 대한민국 산악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5월 엄홍길 휴먼재단을 창립했습니다.

박인규 : 저희가 좀 더 일찍 모셨어야 되는데 늦게 모셔서 죄송합니다.

엄홍길 : 아닙니다.

박인규 : 요즘 재단 일 때문에 바쁘신가요?

▲ ⓒ프레시안

엄홍길 :
예. 재단 일도 그렇고 휴먼재단을 5월 28일에 창립했거든요. 그 재단의 기초를 다지는 것도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방향도 모색해야 되고 준비하느라 많이 바쁩니다. 가끔씩 강의도 나가고 2학기부터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있거든요. 그 학교 강의도 해야 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작년에 히말라야 8000미터급 봉우리 16개를 모두 오르면서 이제 더 이상 산에는 목표가 없다. 하산하셨다는 말이 있는데 산에는 이제 안 가시는 겁니까?

엄홍길 : 아니죠. 산은 제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을 맺으면서 살아야 될 것 같은데 내가 계획했던 8000미터는 다 성공했기 때문에 높은 산은...

박인규 : 말하자면 커다란 목표를 가진 건 아니고 즐기기 위해서 산에 간다.

엄홍길 : 특별한 기획으로 주변사람들과 어울려서 갈 수 있는 산행은 계속 가야지요.

박인규 : 일단 언론보도를 보니 산에서 내려와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게 엄홍길 휴먼재단이라고 보도되고 있는데 뭐하는 뎁니까?

엄홍길 : 제가 이걸 설립한 계기는 방금 전 말씀하셨듯이 제가 히말라야 8000미터급 고봉을 16개 등정하면서 수많은 엄청난 실패와 좌절, 사고와 희생, 더 나아가 많은 눈물도 흘렸거든요. 그런 가운데서도 제가 목표를 이루고 성공하고 크게 다치지도 않고 산에서 문명 속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산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고 산이 저를 살려보내주신 건 분명 제게 문명세계에 내려가서 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 할 일이 남아있다. 앞으로 산을 위해서 이만큼 많은 은혜를 줬으니 되갚을 일이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저를 문명세상으로 내려보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제가 그동안 등반하면서 산간 오지 마을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열악한 환경도 많이 보고 사고도 많이 나고 그런 걸 생각하면서 아 제가 재단을 설립해서 기금을 마련해서 산에서 제가 받은 은혜를 되돌리는 사업을 해야겠다 그런 목표를 세우게 된 겁니다.

박인규 : 소외된 어린이와

엄홍길 : 등반다녔던 산간 오지마을에 교육환경시설이 굉장히 열악하거든요. 학교 건물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몇 시간씩 가야 되고 멀고, 굉장히 열악하고. 교육환경시설도 열악하다 보니 아이들 위생 보건시설도, 또 의료시설도 굉장히 열악하고, 의료, 학교 시설 지원이라든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제가 그동안 산을 통해서 받은 도전정신이라든가 깨달은 모험정신 개척정신을 직접 청소년들을 자연으로 산으로 끌어들여서. 요즘 아이들이 덩치는 크지만 정신적으로는 나약하지 않습니까

박인규 : 체격은 크나 체력이나 정신력은 떨어진다.

엄홍길 : 네. 그래서 직접 자연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그들 스스로 깨닫고 느낄 수 있게끔

박인규 : 첫 번째 프로젝트가 히말라야 오지에 있는 어떤 마을에 학교를 지어준다고 보도가 났던데요 거기가 어떤 지역입니까?

엄홍길 : 제가 그때 재단 창립발기인대회를 하면서 거기서 일차적 목표사업을 말씀드렸는데, 방금 전 말씀하셨듯이 해발 3950미터 되는 에베레스트를 가는 길목인데요. 그 끝자락 부분의 마을인데 그 지점에 학교가 하나 있는데 굉장히 열악합니다. 아주 초라하고 열악해서 그쪽에 제대로 된 건물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왜 그 지역을 선정하게 됐냐면 제가 1985년도부터 히말라야 원정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 도전한 산이 에베레스트산이에요. 그 산에 처음 가서 한 번 실패했습니다. 85년도에. 86년도에 또 가서 또 실패했어요. 두 번째 갔을 때 실패원인이 같이 등반하던 동료 셀파를 사고로 잃고 시신도 찾지 못했죠. 그런데 그 동료의 고향이 거깁니다. 현재 거기에 어머니도 살아 계시고 형제들도 있고 그 당시 결혼을 해서 결혼한 지 그때 3개월 밖에 안 됐었습니다. 부인도 아직 거기 살고 계시고 재혼도 안 하시고 어머니 모시고 살고. 제가 그 인연으로 해서 그쪽에 사업을 해야겠다

박인규 : 해발 3950미터 지역에 마을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거기다 학교를 짓는다면 이게 자재운반 이런 게 비용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기금 같은 건 마련돼 있습니까?

엄홍길 : 재단의 기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이것은 재단기금과 별개로 이벤트적인 행사로 기획해서 재원을 별도로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지으려고 하는데, 모든 자재를 헬리콥터로 수송해서 날라야 되고 다음부터는 사람이나 그 고산에 사는 야크라는 동물을 이용해서 물자를 수송해야 되겠지요.

박인규 : 일단 목표를 세워놓고 필요한 자금은 동시에 말하자면 모금하시는 거군요.

엄홍길 : 네. 모금해나가면서 계속 공사를 진행하면서 건립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어느 정도 예산이 들지 감이 잡히세요?

엄홍길 : 예산은 현지 설계사를 현장으로 올려보내서 모든 설계도면이 돼 있고, 예산도 다 얼마나 들 거라고 나와 있고. 자금을 준비만 하면 됩니다.

박인규 : 저희 프로그램에서 엄대장을 처음 모신 게 박무택 대원인가요? 히말라야 원정대 때 돌아가신 분을 수습하기 위한 때인데. 산악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힘드신 분도 많고 산행 중에 돌아가신 분도 많아서 돌아가신, 또는 어려운 처지의 산악인들을 위한 활동도 계획하신다고

엄홍길 : 재단에서 하는 일에 그것도 포함돼 있습니다. 제가 히말라야 등반하면서 여러 명의 동료들을 잃었거든요. 현지 셀파들도 있고 국내에서 산에 같이 다니던 산악인들도 있고. 그래서 그들의 자녀들이라든가 유가족들이라든가, 그들에게 학비 지원이라든가 생활비지원, 이런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체계적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인규 : 장애인이나 소외된 어린이들과 같이 산행하시는 계획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최근에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엄홍길 : 네. 제가 그동안 히말라야 8000미터를 등반하면서 많은 엄청난 걸 스스로 도전을 통해서 깨닫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것을 앞으로 사회에 환원해서 일반인들에게 좀 더 자연을 친숙하고 가깝게 할 수 있게끔 교두보, 가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한 것이 바로 장애인들, 신체적 정신적 부분이 좀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서 그들을 자연으로 산으로 좀 친숙하게 가까이 할 수 있게끔 행사를 해야겠다 해서, 제가 장애인들과 행사를 한 게 네팔 지역의 3440미터 지점, 안나푸르나 쪽에 장애인들을 데리고 한번 갔다 왔어요. 행사가 참 성공리에 마무리되고 갔다 온 장애인들이 너무너무 참여할 때 일반인들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적인 것, 마음 이런 부분이 상당히 열린 마음이 아니고 닫혀 있고 굉장히 불안하고 스스로도 굉장히 힘들어하고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직접 현장에 가서 현실에 부딪치면서 몸소 행동하면서 자기 자신도 몰랐던 능력이라든가 자신감, 용기를, 행위를 보고 굉장히 놀라고 감동받은 것 같더라고요. 그때 굉장히 결과가 좋아서 그 이후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도 갔다 오고 백두산도 갔다 오고 한라산도 가고 여러 번

박인규 : 내일인가요? 9월 4일인가에도 백두산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엄홍길 : 내일이죠. 장애인들... 지적장애인들 위주로 해서 일부 신체장애인도 있는데 같이 한 9명 정도 해서 백두산 쪽 등반하러 갑니다

박인규 : 장애인들이 산에 오르는 게 쉽지 않잖아요. 특히 지체장애인들 같은 경우는. 갔다 오면 사람들이 좀 달라집니까? 자신감이 생깁니까?

▲ ⓒ프레시안

엄홍길 :
네. 제가 직접 처음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진행할 때 저 스스로도 마음속으로 굉장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과연 될까, 괜히 제 욕심만 가지고 제 생각만 갖고 진행하다 사고라도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안 하니만 못한 거고 그들 마음에 상처만 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런 기회 아니면 이들에게 언제 저런 자연을 산을 히말라야 같이 아름다운 곳을 직접 볼 수 있게 체험할 수 있게 할 수 있겠냐 해서 시도해서 밀어붙였는데 상당히 결과가 좋았어요. 갔다 오고 나서 그들의 정신적인 부분이나 육체적인 부분이 완전히 눈에 딱 드러날 정도로 굉장한 자신감을 갖고 매사 모든 일에 적극적인 사고를 갖고. 그리고 굉장히 맑고요. 또 비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가 마음이 열리는 겁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박인규 : 히말라야 지역에 있는 오지도 돕고 산악인들도 돕고, 장애인들과 산행도 하고 휴먼재단으로서는 할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아무리 뜻이 좋아도 사람과 돈이 좀 모여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무선 휴먼재단에 엄홍길 대장만 있으신 건 아닐 텐데, 도와주시는 분이 많이 있으신가요?

엄홍길 : 네. 제가 이것을 계획하고 창립발기인대회를 갖고 많은 주변에서 입으로 입으로 전해지게 되고 언론에 보도되다 보니 굉장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많이 동참하시겠다고 말씀도 하시고. 저희가 이번에 초대 이사장님이신 김앤장 대표 이재후 변호사님이라고 그 분도 산을 좋아하시고 히말라야도 다녀오시고, 다 관련되신 분들이 동참하시겠다는 분들이 자연을 좋아하시고 산을 좋아하시고 히말라야를 꿈꾸고 다녀오신 분들. 고향쪽 선배님들, 이런 식으로 저와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

박인규 : 하긴 한국사람 치고 산을 안 좋아하시는 분은 없는데 4천만이 다 회원이 될 수 있겠지만 현재 회원은 많이 모였습니까?

엄홍길 : 발기인대회 할 때 한 100여 분 정도 모셨어요. 계속적으로 많은 분들이 동참하시겠다고 해서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박인규 : 대기업이랄지 이런 데서 많이 도와주면 엄대장의 경험을 많이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도움이 들어오고 있습니까?

엄홍길 : 이제 시작단계라 곧 본격적으로 얘기하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획하고 준비해야 될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이제 5월 28일이니까 재단 창립한 지 3개월 남짓인데 이제부터 말하자면 시동을 걸어서 일을 많이 하셔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청취자나 이런 분들에게 부탁의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죠.

엄홍길 : 나눈다는 것 돕는다는 것 자체는 행복하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은 우리 인간의 생명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문명 속에서 행복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도 좋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자연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자연에 대한 소중함,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거든요. 여러분들이 많은, 휴먼재단 자체도 우리보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는 일이니까 관심을 갖고 많은 동참 부탁드립니다.

박인규 : 엄홍길 대장한테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개 봉우리를 완등했다는 수식어가 붙는데, 85년데 첫 도전을 시작해서 2007년 5월 31일. 22년이 걸렸어요. 엄청난 프로젝트를 완수하신 건데 히말라야 8000미터급 16개봉 등정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겠지요. 가장 힘들었던 건 언제였습니까?

엄홍길 : 물론 저는 매번 산에 갈 때마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봉우리 중에서 여태껏 제가 총 8000미터를 36번을 도전했습니다. 그 중에서 8000미터 정상에 간 게 20번이거든요. 에베레스트 같은 경우는 제가 세 번을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이 많은 등반을 하면서 저한테 많은 봉우리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안나푸르나라고, 8091미터 네팔에 위치한, 풍요의 여신이란 의미를 지닌 굉장히 아름다운 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산이 저에게 엄청나게 많은 실패와 사고와, 4전5기한 산입니다. 결국 그 과정에서 제가 세 명의 동료를 잃고 저도 해발 7600미터 지점에서 추락하는 셀파를 구하려다가 로프가 발목에 감겨서 떨어져서 정신차려 보니 발목이 180도 돌아가고, 오른쪽 발이 완전히 돌아가서 한 발을 가지고 2박3일 동안 줄에 매달린 채로 기적과 같이 살아 내려와서 국내로 후송되고요

박인규 : 사고가 난 게 언제시죠?

엄홍길 : 98년도 봄입니다.

박인규 : 발목이 180도 돌아갔는데도 다시 걸으시고 산에 또 가신 거예요?

엄홍길 : 네. 그 당시 완전히 정신차려 보니 다리가 돌아가 있더라고요. 뽑아서 다시 원위치로 돌려서 신발을 벗겨내고 덜렁덜렁거리는 다리를 마침 옆에 부목 비슷한 게, 부목은 아니라도 대나무 같은 게 있어서 대고 한 발로 로프를 매달려서 2박3일 동안 내려왔는데

박인규 : 고통이 대단했겠네요

엄홍길 : 말도 못했죠. 저는 거기서 그 당시 포기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거죠. 저는 그때 당시 내려오면서도 안나푸르나 신이시여 제발 살려주십시오. 제가 살아 돌아가겠다 보내달라 하는 건 다시 산에 안 오겠다는 게 아니고 저는 이 다리를 고쳐서 안나푸르나 정상에 다시 가야 됩니다. 저는 목표와 꿈이 있습니다. 해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살아서 돌아가야겠다는 겁니다. 수없이 머릿속으로 최면을 걸다시피 반복을 하면서 이를 악물고 내려왔어요. 그 당시 발목뼈가 다 동강이 났어요. 그래서 한국까지 후송되는데 나중에 수술하고 나서 의사선생님이 절대 산에 못 간다고 했어요. 뛰는 것도 안 된다고 했어요. 걸어다니는 정도나 어느 정도 될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결국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저로서는 굉장히 참담하고 너무 고통스러웠죠. 그러나 결국 저는 다시 이를 악물고 재기하고 물리치료와 트레이닝을 받아서 10개월 만에 안나푸르나에 다시 도전한 겁니다. 3월에

박인규 : 안나푸르나가 그렇게 어려운 산이어서 그런가요 아니면 엄대장과 악연이 있어서 그런 겁니까?

엄홍길 : 글쎄말입니다. 그 산이 저한테는 유난히, 저를 발목을 잡고 놓지 않고. 그런 걸 볼 때, 가끔 생각하는 게. 산을 다니면서 제가 어릴 때 좋아하는 선배님이 계셨어요. 그 분이 안나푸르나에서 84년도에 등반하다가 눈사태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것과 연관지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계속 그 산을 다시 가게 되고 다시 가게 되고. 형이 내가 여기를 성공하면 두 번 다시 안 오니까 계속 또 보자고 계속 붙잡는 건가

박인규 : 그 형의 원령이 자꾸 부른다

엄홍길 : 네. 자꾸 저한테 시련을 주고. 그 당시 저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제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아마 제가 이런 목표도 이루지 못했을 거고 중간에 포기하고 그렇지 않았으면 저 역시도 무슨 사고로 인해서 산에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제가 엄청난 사고를 겪으면서 저는 산을 다시 보게 되고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도전하게 된 거죠.

▲ ⓒ프레시안

박인규 :
80년대에는 사실 에베레스트만 올라도 엄청난 사건이었고 거의 TV로 중계를 하고 그랬어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세 번째로 88년도에 20대의 나이에 에베레스트에 오르셨고 20년 가까이 지나서 로체샤르를 오르면서 완등하셨는데 히말라야 8000미터급 첫 번째 봉우리 에베레스트 오를 때와 16번째 로체샤르에 올랐을 때 느낌 어땠습니까? 달랐을 것 같은데

엄홍길 : 저는 산을 항상 갈 때는 처음 가는 느낌이에요. 그런 기분이고. 항상 설레고 새로운 느낌이 들고, 제가 그렇게 많은 등반을 하고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항상 8000미터 등반할 때는 긴장되고 마음이 설레고 잘 돼야 할 텐데 사고가 안 나야 할 텐데 그런 마음을 갖고 가거든요. 그런데 그 당시 8000미터 에베레스트를 실패하고 세 번째 정상 갔을 때 그때 기분이란, 로체샤르 같은 경우도 제가 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성공한 산입니다. 두 번째 도전할 때 거기서 동료들을 또 잃었어요. 8250미터 지점 바로 정상을 150미터 남겨 놓은 지점에서 눈사태가 나서 눈앞에서 동료들이 쓸려내려가는 걸 보고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고. 네 번째에 작년 5월 31일에 종지부를 찍었는데요. 그때 88년도 로체샤르 정상에 섰을 때는 정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더라고요. 그 당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오직 감사한 마음. 감사합니다. 신에 대한, 모든 산에 대한 감사, 모든 동료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 스스로 겸손해지고

박인규 : 정복한 건 아니군요.

엄홍길 : 그럼요. 산이 저를 받아주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박인규 : 그런데 엄대장이 중요한 기록들을 다 세워서 후배 산악인들은 뭐합니까? 목표가 없어져서

엄홍길 :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전, 목표라는 건 항상 자기와의 싸움이니까

박인규 : 어떻습니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체격은 좋아졌지만 체력은 형편없고 정신력은 더 아닌 것 같다. 그런 말씀들 하시는데 우리 젊은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엄홍길 : 항상 제가 그런 걸 느끼는데 젊은 친구들 데리고 등반도 많이 가거든요. 8000미터 등반도. 이 친구들 국내에서 산행도 잘 하고 해외경험도 한두 번씩 있는 경험있는 친구들을 데려가기도 하는데 결정적일 때 근성이 없더라고요. 오기가. 쉽게 포기하는 겁니다. 뭔가 하다가 안 되면 그냥 지레 겁먹고 미리 포기하려고 하고. 그래서 항상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굉장히 중요하고 할 수 있다는 의지 신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표에 대한 확신, 자신감 가지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용기와 희망이 생길 거라는 겁니다. 내가 이것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강한 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엄대장께서 산악학교나 이런 걸 통해서 자신감을 많이 퍼뜨려줬으면 좋겠고요

엄홍길 : 그런 일도 할 겁니다.

박인규 : 앞으로의 계획이나 혹시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마지막 말씀 부탁드립니다.

엄홍길 : 여태껏 말씀드렸듯이 휴먼재단을 잘 만들어서 얘기했던 부분들 오지 산간지역의 학교시설, 의료시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도전정신, 모험정신, 또 단체생활에 취약하지 않습니까.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든가 양보심, 이해심이라든가 더 나아가 희생정신 같은 것이 취약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들을 자연 속에서 탐험하고 산에서 생활을 통해서 깨닫고 느끼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고. 제가 여태껏 8000미터의 많은 산을 올라갔듯이 앞으로의 인생의 8000미터의 또 다른 산은 재단을 잘 만들어서 일을 하는 것이 목표이자 꿈입니다.

박인규 : 엄대장님 말씀 들어보니 물론 8000미터급 16개봉을 오른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정신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미 현실의 산은 내려왔으니까 사회에서 새로운 8000미터급 산에 오르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엄홍길 : 감사합니다.

박인규 :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휴먼재단을 설립한 산악인 엄홍길씨를 초대해 재단을 설립한 이유와 구체적인 계획 등 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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