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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형도 칭찬한 최고의 속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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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형도 칭찬한 최고의 속풀이

[강제윤의 '통영은 맛있다'] <9> "곧잘 술병을 고치는" 통영 물메기국

▲ 추도 덕장에서는 겨우내 물메기가 말라간다. ⓒ이상희

겨울엔 온통 물메기, 곰치, 물잠뱅이, 물미거지…

"어찌 추도 왔으꼬?"
"물메기가 많이 난다 해서 구경 왔습니다."
"아, 그래 왔습니까."


통영시 추도(楸島) 미조마을 부둣가, 노인 한 분이 통발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노인은 물메기 잡는 통발 그물이 찢어진 것을 이어 붙이는 중이다. 추도는 통영에서도 이름난 물메기의 고장이다. 추도 어선들은 모두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다. 다른 지역의 어선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통발을 쓰지만 추도만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나무 통발 어법을 고수하고 있다. 물메기를 잡는 데 썼던 대나무 통발을 손질하는 노인. 노인은 오랜 세월 물메기 잡는 어부로 살았다.

물메기의 표준어는 '꼼치'다. 꼼치는 동서남해 모든 바다에서 난다. 지역마다 그 이름은 각각이다. 동해에서는 곰치, 물곰, 남해에서는 미거지, 물미거지, 서해에서는 잠뱅이, 물잠뱅이 등으로 칭한다. 통영에서는 흔히 '미기' 혹은 '메기', '물메기'라 부른다. 물메기는 동중국해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의 연안으로 올라온다. 12월에서 3월까지의 물메기가 맛있는 것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보통 수명은 1년 남짓이다. 대부분 산란 후 죽는다.

늘그막에 어부 생활에서 은퇴한 노인은 이제 통발 그물 손질하는 일이 소일거리다. 강만식(80세) 할아버지. 장갑을 끼어도 손이 시린 12월 중순. 엄동의 한복판에 찬 바닷바람 맞으며 노인은 맨손으로 그물을 깁는다. 장갑을 끼고는 바느질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노인의 손은 마른 가죽처럼 질기고 두텁지만, 사람의 손인데 어찌 시리지 않겠는가.

"내가 본토배긴데(본토박인데) 할아버지 대부터 기술이 그만 메기잡이 기술이요. 문어잡이 기술이요."

노인의 할아버지가 추도에서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고, 노인의 아버지도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고, 노인도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다.

"추도는 그때도 멘 메기였소."

▲ 은퇴한 노어부는 한겨울, 장갑도 없이 추도 전통의 대나무 통발을 손질하고 있다. ⓒ강제윤

살이 타락죽처럼 살살 녹는 최고의 술국

통영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는 물메기를 생선 취급도 않고 버렸다는 소리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인의 증언처럼 물메기잡이는 옛날부터 이어져온 통영 지방의 전통어업이다. <자산어보>에도 물메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잡히면 버리는 하찮은 물고기가 아니라 술병까지 고치는 명약으로 대접받았다.

"고기 살은 매우 연하다.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 (다산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 중)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우리나라 호남 부안현(扶安縣) 해중에 수점(水鮎, 물메기)이 있는데, 살이 타락죽(찹쌀 우유죽) 같아 양로(養老)에 가장 좋다"고 했다. 옛 기록들이 아니더라도 물메기국은 그야말로 해장에 최고다. 물고기들이 흔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귀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겠지만, 물메기 또한 어류의 가계에서 제법 족보 있는 물고기였던 셈이다.

추도에서 태어난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뱃일을 하며 자랐다.

"쪼맨할 때부터 뱃일했어요. 학교도 못 댕기고. 살기가 딱해서."

노인이 어릴 때도 추도에서는 물메기가 많이 잡혔다. 문어단지로 문어도 잡았다. 노인은 소년 시절 배에서 밥을 짓는 화부로 어부 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세월 남의 배만 탔다.

"넘의 집살이만, 순 넘의 집살이만…."

그러다 나중에는 돈을 모아 동네 사람 한 명과 동업으로 물메기잡이 배를 운영했다.

"그때는 메기 잡아봐야 돈도 안 됐어요. 이때까지 살아나는 역사가 이래요. 요샌 세상이 좋아져서 경매도 하고 메기를 잡아도 돈이 되는 기라."

노인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칠십 살 때 뱃일에서 은퇴했다. 고된 뱃일로 얻은 허리 병 때문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갖고. 척추뼈가 닳아 없어져 버렸어. 수월케 살아온 사람들은 팔십 되도 멀쩡한데."

이제는 더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지만 노인은 여전히 손에서 어구를 놓지 못한다. 조업에서 돌아온 어선들의 대나무 통발을 손질해 주는 것이 일과다.

"내야 뭐 손 운동한다고 꼼지락꼼지락하지. 내가 하고 재면 와서 쪼깬식 거들어 주지. 가만히 있으면 지겨버서. 점심 때 되면 집에 가서 요기도 좀 하고. 춥고 손 시리면 집에도 있다오고."

노인은 운동 삼아 쉬엄쉬엄 통발 손질을 하신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겨울 추위 속에서 맨손으로 하는 작업이 어찌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 겨울 추도는 온 동네가 물메기 덕장이 된다. ⓒ강제윤

빨래보다 물메기를 더 많이 말리는 겨울 추도

새벽에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이 점심 무렵이면 통발을 걷어서 귀항한다. 오늘 추도의 물메기잡이 배들은 모처럼 만선이다. 어선에서 물메기를 내리면 동네 여인네들은 물메기를 손질한다. 물메기의 등을 따서 내장과 알, 아가미 등을 꺼낸다.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담고 몸체는 몇 번이고 민물에 깨끗이 씻어낸 뒤 건조장으로 보낸다. 조기나 민어 같은 생선들은 손질한 뒤 소금 간을 해서 말리지만 물메기는 북어나 황태처럼 소금을 뿌리지 않고 민물에 씻어서 바로 말린다.

"메기는 바닷물에 씻으면 맛이 없어요. 짭아서 간을 하면 못 먹어요."

동네 사람들은 물메기를 손질해준 뒤 품삯을 돈이 아니라 물메기로 받는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아마도 물메기가 현금으로 바로 통용될 수 있기 때문에 이어져온 풍습이지 싶다.

추도는 물이 좋기로 유명한 섬이다. 산에 나무도 울창하다. 가래나무가 많았다 해서 가래 추(楸)자를 써 추도다. 추도 희망봉 꼭대기에는 드넓은 고원이 있다. 옛날에는 고구마밭이나 보리밭으로 활용했었지만, 지금은 묵정밭이 되었다. 희망봉 고원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9부 능선에서 물이 솟구친다. 용천수다. 산에서 솟아나 흐르는 염기가 전혀 없는 추도의 물은 다디달다. 그래서 추도 물로 위장병을 고쳤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작은 섬이지만 물이 많아 논농사도 곧잘 지었다.

추도 사람들은 그 좋은 물로 씻어 말리니 추도 메기가 다른 지역 메기보다 더 맛있는 것이라 믿는다. 맛있으니 추도 메기는 다른 지역 메기보다 한 축(10마리)에 2~3만 원을 더 받는다. 생물은 주로 국거리로 사용되고 마른 메기는 찜이나 조림용으로 쓰인다.

세척하느라 쌓아둔 물메기 더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물메기 한 마리를 잽싸게 낚아채 간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저건 고양이가 아니라 쥐다. 훔쳐 먹은 물메기 덕에 어찌나 살이 쪘는지 쥐가 고양이만큼이나 크다. 덩치 작은 고양이는 감히 덤비지도 못하겠다.

▲ 빨랫줄에서 문어와 빨래가 함께 말라간다. ⓒ강제윤

통영에서도 추도 물메기는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겨울 추도는 물메기 섬이다. 겨울 추도에서는 비탈진 언덕만이 아니라, 길가와 담벼락, 텃밭, 빈집 마당까지도 어디나 물메기 건조장이 된다. 겨울이면 추도 사람들은 빨래보다 물메기를 더 많이 널어 말린다. 어떤 집에는 빨랫줄에도 물메기 몇 마리가 걸려 있다. 빨랫줄에서 옷과 물메기, 문어가 같이 말라간다.

물메기를 말리는 건조대를 덕장이라 한다. 덕장은 물메기를 걸기 좋게 소나무로 짜서 세운 건조대다. 덕장 다리에는 소나무 가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뾰족한 소나무 잎으로 고양이나 쥐가 타고 오르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물메기는 생물로도 출하하지만 설날 전까지는 대부분 말려서 내보낸다. 품은 많이 들어도 마른 메기가 값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생물이 한 마리 7000원 정도면 마른 메기는 2만 원을 호가한다.

햇빛과 해풍을 맞으며 말라가는 물메기는 5~7일 정도면 바짝 마른다. 바람이 불면 5일 만에도 마르지만 바람이 없으면 일주일은 말려야 제대로 바짝 마른다. 마른 메기는 크기별로 분류해서 한 축, 10개씩 묶은 뒤 추도 물메기란 상표를 붙여 통영 위판장으로 출하한다.

추도의 물메기잡이는 보통 동지 무렵부터 3개월 정도 이어진다. 설날 전까지는 마른 메기가 많이 팔리지만 설 이후에는 마른 메기 수요가 떨어진다. 설날 전까지 마른 메기가 잘 팔리는 것은 차례 상에 마른 메기를 올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날 이후에는 대부분 생물로 내보낸다.

▲ 생물보다 세 배나 비싸게 팔리는 마른 메기. ⓒ강제윤

지친 속을 달래주는 물메기국

겨울 통영은 물메기국 끓이는 계절이다. 동해안에서는 곰치, 물곰이라고도 하는 물메기. 곰치국이든 물메기국이든 해장국으로 그보다 더 시원한 음식은 드물다. 물론 대구나 복국이 있지만 시원하고 담백하기로는 물메기국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지방이 아주 적고 아미노산이 풍부해 감칠맛이 난다. 통영에서 마른 메기는 잔치음식의 대표다. 전라도 잔칫상에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것 없단 소리를 듣듯이 통영의 잔칫집에서는 마른 메기찜이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미조마을보다는 많지 않지만, 대항마을도 온통 말라가는 물메기 세상이다. 당산나무 옆 집 담벼락 아래 양지 녘, 할머니 한 분이 마른 메기를 분류해서 한 축씩 묶고 있다.

"남해 사람이 와서 그래요. 이상하게 추도 메기가 맛있다고."

할머니도 추도 물메기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메기 말고 딴 거는 아무것도 없어요. 해 먹을 게 없어요."

추도 사람들은 오로지 물메기에 의지해 산다. 난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다 보니 양식을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겨울 한철 물메기잡이가 추도의 일 년 살림살이를 좌우한다. 그러니 추도 물메기에 대한 추도 사람들의 자부심이 큰 것은 당연하다.

"묵어본 사람은 서울이고 인천이고 주문 들어옵니다."

할머니는 마른 메기 꼬리에 쇠꼬챙이로 구멍을 뚫은 뒤 줄에 꿰어서 꾸러미를 만든다. 대항마을에서도 조업 나갔던 물메기잡이 어선들이 들어올 시간이다.

▲ '술병도 곧잘 고치는' 시원한 통영 물메기국. ⓒ강제윤

물메기국은 맑게 끓여야 제맛이다. 너무 매운 '땡초'(고추)도 넣지 말아야 한다. 팔팔 끓는 물에 무를 어슷하게 썰어 넣고 소금 간을 한 뒤 무가 익을 즈음에 손질해둔 메기를 넣고 익힌다. 살이 무른 생선이니 너무 끓이지 않고 살이 익을 정도로만 끓인다. 다진 마늘을 넣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국을 낼 때 대파를 얹는다. 그래야 맑고 시원한 메기국이 된다. 양파 등 다른 채소를 넣지 않는 것도 물메기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함이다.

겨울 통영에서는 일 년 내내 세파에 시달려 지친 사람들의 속을 물메기국이 달래준다. 술병도 곧잘 고쳐주는 물메기국의 유혹을 누군들 피해 갈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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