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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번 지방도로를 지나며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7> 정령치~육십령 / (5.27~30)

산행 넷째 날

우리는 가드레일 밖 낮은 비탈에 앉아 견인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사고였다. 주행 중 타이어가 터졌다. 고속 주행 중이었다면 차가 전복될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낮은 비탈에는 여린 풀들이 곱게 피어 있었다. 토끼풀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클로버도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세 잎 클로버들이었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모습이 한가로웠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이 행복이라고 했지...

토끼풀은 불어오는 바람에 여린 고개 흔들며 내게 말을 건네고 있는 듯 했다.
지금... 행복하세요?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낮은 비탈길에 무릎을 감싸고 앉아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았다. 견인차가 와서 우리를 실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불빛이 보였다. 목적지인 선유민박산장이었다. 너무 늦은 도착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한문희 대장의 말이 들려왔다.

"내일 아침 4시에 기상해서 5시에 정령치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하겠습니다. 큰고리봉을 지나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한 후 산행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미 들어 아시겠지만 이번 주에는 4일 간 산행을 할 예정입니다. 육십령까지 산행 한 후 금요일 오후에 귀경하겠습니다."

배낭과 옷가방을 방에 들여 놓고 너른 마당의 한 편에 놓인 평상에 앉으니 하늘에서 별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눈에 별 가득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별들은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오십 년이 넘도록 밤하늘을 보았지만 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별에 대해서만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지리산을 지나면서도 지리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수많은 나무와 풀들, 물과 바람, 구름과 하늘 그리고 무너진 성벽과 잊혀진 역사를 만났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어디 모르는 것이 그것뿐이랴. 돌이켜 보면 지나 온 내 삶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왜 그 때 사랑을 택하지 못했는지...
왜 그 때 그렇게 분노하고 좌절했었는지...
왜 그 때 그처럼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했었는지...
왜 그 때 삶이란 신념이나 생각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 길을 따라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었는지...
하늘에 별 흐드러진 밤이었다.
▲ 해를 바라보다 ©이호상

정령치를 지나 큰 고리봉을 눈앞에 두고 일출을 보기 위해 능선에 섰다. 아침 5시 17분이었다. 안개 낀 산들이 물러설 듯 나서고 나설 듯 물러서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른 아침 능선을 타고 넘어 온 바람에 나무들은 흔들리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숲도 분주했다. 새들도 나뭇잎들도 저마다 아침을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지난 밤 내린 이슬을 털어내느라 날갯짓 푸드덕 거리는 소리로 요란스러웠다. 우리도 아침을 맞고 있었다.
해가 떠올랐다.

붉은 진달래보다 더 붉었다. 장엄했다. 너무 장엄해서였을까. 너무 붉어서였을까. 슬퍼 보였다. 붉은 해가 정령치 위로 올라왔다. 잃어버린 역사 때문이었을까. 슬퍼 보였다.

정령치는 진한과 변한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온 마한의 왕이 정씨 성을 장군을 보내 지키게 한 고개라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정령치(鄭嶺峙)이나 지금은 정령치(正嶺峙)라고 고쳐 부르고 있다. 기원 전 84년의 일이라니 참으로 아득하기만 한 옛 일이다.

눈부신 햇살을 그대로 남겨 두고 걸음을 재촉하여 큰 고리봉에 오르니 아스라하기만 했던 지나 온 길이 선연했다. 천왕봉도 보이고 반야봉도 보였다. 그 뒤에 자리한 토끼봉도 보이고 서부 지리산의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만복대도 보였다. 노고단도 보였다. 덕두산도 보이고 스님들의 엎어 놓은 밥그릇 모양을 닮았다는 바래봉도 보였다.

길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

우리는 산장으로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한 후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걸었다. 대간 길이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기준으로 길을 낸 것이다. 60번 도로를 기준으로 섬진강과 낙동강이 나뉜다. 왼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백두대간의 마루금으로 차들이 지나는 것을 보니 묘한 기분이 되었다.
▲ 60번 도로를 지나며ⓒ이호상

"한 대장님, 이처럼 대간 길에 도로가 들어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잘못됐지요.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사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길을 내기는 내야겠지요. 그러나 이 길이 백두대간의 마루금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지판이라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 지날 수 있는 길도 도로 곁에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고요. 차가 많이 지나지는 않지만 도로를 걸어야 하니 위험하기도 하고요. 한 사람이 백두대간을 간다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을 위해 배려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백두대간이 한반도를 품어 키운 이 땅의 등줄기이지만 백두대간을 걷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도상거리 약 690km, 실제 거리 약 1,000km라는 긴 거리 때문이 아니다. 백두대간에 대한 합의된 사회적 견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출입통제 때문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품어 키운 이 땅의 등줄기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조상들이 백두대간이 품은 산들에 기대어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산으로부터 생명을 존중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치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단군이 하늘로부터 산으로 내려 온 것을 받아들인다면 백두대간은 당연히 이 민족의 자부심이고 긍지이고 정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이 땅에 몸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랑이고 긍지이고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백두대간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돌려져야 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지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어떠한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정책으로 인해 곳곳이 출입 제한 지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를 보호하고 숲을 보호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산을 사랑해서 산을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생태계의 주인은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다. 자연의 주인 역시 자연 그 자체이며 숲의 주인 또한 숲 자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어디에 속해 살아가고 있는가.

사람 또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일원으로 숲의 한 부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숲과 사람은 떼어 낼 수 없는 한 몸이다. 그런데 관리공단은 사람과 숲을 떼어놓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숲과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관리 방식이 잘못되었다.

산길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한다. 더욱이 백두대간은 이 민족의 자랑거리요 자긍심의 원천이 되는 이 땅의 등줄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관리공단은 관리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출입을 통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땅의 산들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백두대간을 사랑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막힌 산길을 열어야 한다. 산을 사랑하여 산을 다니는 사람들은 산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을 살리는 사람들이다. 관계 당국은 생태계를 보존하고 숲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홀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산을 지키고 숲을 가꾸는데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만이 아니다.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해야 한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한다. 산과 숲을 사랑하는 국민들의 지혜와 높은 의식을 믿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꾸준히 이루어질 때 우리의 숲은 더욱 아름답게 보존되고 풍성해질 것이다.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그리워하듯 백두대간도 사람들이 그리웠던 것일까?
고리봉을 지나며 백두대간은 몸을 낮추어 길가로 내려와 있었다. 길을 걸으며 나누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기나 한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이 정겹고 살갑게 느껴졌다.

60번 지방도로를 벗어나 논 사이로 난 길로 접어드니 노치(蘆峙)마을이 한 눈에 들어왔다. '갈대 노(蘆)'에 '언덕 치(峙)'를 썼으니 '갈대가 많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운치 있는 이름이다. 가재마을('갈대'의 전라도 사투리가 '갈재'이다. '가재'는 '갈재'의 변형으로 보인다.)이라는 순 우리말로 된 예쁜 이름도 갈대가 많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마을은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는 유일한 마을이다. 동쪽은 운봉읍 서쪽은 주천면에 위치해 있어 한 집안에서도 행정구역이 갈리는 곳이다. 그래서 주천 부엌에서 밥을 지어 운봉 안방에서 밥을 먹는다는 우스개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 마을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지 않는다는 노치 샘이 있다. 한 모금 정성스레 마신다. 뜨거웠던 몸이 서늘해진다. 가슴이 차가워진다.
▲ ⓒ이호상

가슴 벅찬 숨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치 샘의 깊고 차가웠던 물 맛 때문이었을까. 804m의 수정봉을 오르는 길에 신범섭 촬영감독이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오전 10시 21분이었다. 우리 모두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웃었다.

수정봉 정상 부근의 소나무 숲은 깊고 울창했다. 이성계가 왜장 아지발도를 죽였다는 황산벌이 굽어 보였다. 입망치(笠望峙)를 거쳐 고남산(古南山)으로 가는 길에 해발 641m의 높이에 세워진 합민성(合民城)을 만났다. 동학농민혁명 때 운봉 민보군의 거점이었다고 알려진 성이다. 당시 쌀을 저장해 두었던 곳이라 하여 합미성(合米城)이라고도 불리는 성이다. 성은 무너져 있었다. 역사를 담고 있는 그 돌들은 돌계단이 되어 지난 시간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지나는 이들을 위한 배려일까.
역사에 대한 무지일까.

마음 서글펐다.

돌들을 만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돌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을 지켜주던 성벽이었던 돌들이다. 그 염원, 희망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 온기가 느껴졌다.

돌계단을 따라 고남산으로 향했다.
▲ 여원재 버스정류장에서ⓒ이호상

여원재의 장성 버스 정류소에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점심 식사를 한 후 846.4m의 고남산 다섯 봉우리를 지나 정상에 오르니 지나 온 길이 눈앞에 가득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나 온 길이 틀림없는데 이 산이 저 산인지 저 산이 이 산인지 그저 산이기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서부터 온 거에요?"

"고남산은 전체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저곳이 반야봉입니다. 그리고 그 곁이 만복대이고 뚝 떨어지면 정령치이지요. 거기서 다시 올려치면 고리봉입니다. 고리봉에서 내려오면 고기리(古基里)이지요. 저쪽에 식수 댐 보이시지요? 댐 바로 앞에 있는 게 수정봉입니다. 그리고 능선을 타고 이곳 고남산까지 온 것이지요."

지나고 지나 온 길이 그저 첩첩하였다.

"고남산은 전후좌우로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산입니다..."

한대장의 설명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바람 탓인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망연히 늘어선 산들을 바라보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나 온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산을 지나왔다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위로가 되었다.
구름조차도 맑기만 한 하늘에 저녁이 오고 있었다.
통안재로 내려가는 길 뒤로 구름이 지나고 있었다.
▲ ⓒ이호상

필자 이메일: chamsu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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