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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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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길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6> 천왕봉~정령치(5.20~22)

산행 셋째 날

나뭇잎을 들여다 보았다. 저마다 잎 둘레에 영롱한 물방울들이 달려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내 모습,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도 비춰질 것 같았다. 맑고 투명했다. 나무는 지난 밤 흙으로부터 받아들인 물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증산작용이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도 햇살 비취면 사라지겠지.
아쉬움에 손 내밀어 나뭇잎을 만지자 잎 둘레에 달려 있던 물방울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손은 이내 젖어 들었지만 물방울의 맑은 기운이 전해졌는지 정신이 맑아졌다. 몸도 가뿐해지는 것 같았다. 수면과 휴식으로 인해 피로가 많이 풀려 있었지만 아침 산책 내내 무거웠었다.
노고단 대피소의 아침은 탁 트인 시야 탓인지 시원하고 산뜻했다. 숲도 싱그러웠다. 지난 저녁 힘들게 내려왔던 돌길을 바라보니 빛 바랜 옛날 사진을 보는 듯 아득하기만 했다. 아주 오래 전 일처럼 느껴졌다. 슬그머니 웃음 지었다.
▲ ⓒ이호상

산행 준비를 마치자 한 대장이 여느 때처럼 산행에 대해 말했다.

"오늘 산행은 만복대구간입니다. 종석대, 성삼재, 작은 고리봉을 지나 만복대에 올랐다가 정령치와 큰 고리봉을 거쳐 고기리까지 갈 예정입니다. 오늘도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백두!"

모두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랑합시다!"

대피소에서 함께 밤을 보냈던 다른 등산객들이 우리의 구호에 놀란 듯 쳐다보았다. 산행을 시작했다. 백두대간 종주 산행의 첫 주 마지막 날이었다. 우리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는 황 감독을 뒤에 남겨 두고 숲 사이로 난 길로 들어갔다.

성삼재로 가는 길은 잘 닦여 있었다. 40분 정도 걷자 성삼재에 도착했다.

"이곳이 성삼재입니다. 옛날 삼한 시대에 마한의 왕이 성이 다른 세 명의 장군에게 지키게 했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휴게소를 등지고 보이는 저 골짜기가 달궁 마을로 이어지는 곳입니다. 달궁 마을은…"

달궁 마을이 여기 있었구나.

이쪽으로 내려가면 달궁 마을에 갈 수 있구나.

지리산은 오랜 옛날인 삼한 시대의 흔적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성삼재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 옛날 변한과 진한에게 쫓기던 마한의 왕은 지리산으로 들어와 성을 쌓고 여러 장군들을 보내어 군사적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지명들 속에는 당시의 정황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8명의 장수를 보내 지키게 한 곳은 팔랑치, 황장군을 보내 지킨 곳은 황영재, 성이 다른 세 명의 장수를 보내 지킨 곳은 성삼재가 되었다.

당시 마한 왕조가 쌓았던 성의 흔적들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만복대(萬福臺)에서 정령치(鄭嶺峙), 고리봉(環峰)을 지나 여원재(女院峙)에 이르는 능선 곳곳에 남아 있다. 기원 전 78년에 쌓았던 옛 사람들의 흔적들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무심한 우리들의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후손들의 그런 무심함이 부끄러웠던 탓일까.

무성한 억새풀만 바람에 흔들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는 듯 말이다.

무너진 옛 성벽들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 역사를 알려야 하지 않을까. 기원 전 78년 아주 오래 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우리의 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 무너진 성벽들은 우리들의 역사이고 정신이니 말이다. 지금도 달궁 마을의 주차장 바로 아래에 마한의 궁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버려진 역사가 슬프다.

삼한의 역사는 겹겹이 쌓이고 쌓인 이천 년이 넘는 세월을 넘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역사가 성삼재, 황령치, 정령치와 달궁에, 지리산의 곳곳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아 그들이 살아 왔던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이호상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 배를 묶어 놓는 고리가 있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는 1,248m의 작은 고리봉에 오르니 만복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3,3Km가 남았다.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거리였다.

만복대로 향했다. 만복대로 오르는 길은 아늑하고 오붓했다. 좁은 길 사이로 늘어진 나뭇가지들은 부드러웠고 나뭇잎들은 다정했다. 그 뿐인가. 빽빽이 늘어선 조릿대 사이를 지날 때에는 마치 오랜 시간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이의 손길이 닿은 듯 몸이 달뜨곤 했다. 나는 지금도 그 길이 그립다.

"얼마 안 남았어요. 힘내세요."

내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좀처럼 먼저 말하지 않는 김 대장이 말을 건넸다. 나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3일 동안 계속된 산행에 몸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몸 뿐 아니라 마음도 지쳐있었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한 것은 가파른 오르막이나 떨어지듯 내리 꽂는 내리막이 아니었다. 높은 산은 더더욱 아니었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한 것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3일 동안 걸어온 이 길을 가고 또 가도 걸음을 멈출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이 길이 결코 끝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 만복대로 가다ⓒ이호상

만복대로 오르는 길은 솟아오른 젖무덤처럼 완만하고 부드러웠다. 길은 키 작은 관목들과 억새풀 사이로 나 있었다. 햇빛을 받아서인지 풀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부시고 시렸다. 햇살은 풀잎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고 저마다 빛나는 풀잎들은 바람에 유유히 몸을 뉘이고 있었다. 아직 가을을 만나지 못해 황금물결을 이루지 못한 억새풀들이지만 은빛으로 출렁이며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바람이 오기 전 먼저 눕고 바람이 지나기 전 먼저 일어나고 있었다. 아름다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산행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신범섭 촬영 감독은 만복대로 올라오는 우리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다. 사진가 이호상도 역시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그들 뒤로 벌써 만복대에 올랐던 한대장의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노고단과 함께 지리산의 서부를 이루고 있는 높이 1,238.4m의 만복대에 올랐다.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지나 온 길을 돌아보았다. 멀리 천왕봉에서부터 서쪽으로 흐르고 흘러 노고단에 다다른 산줄기가 급하게 북으로 방향을 틀어 내 앞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저 산들을 전부 걸어 왔구나.

저렇게 많은 산들을 지나고 지나 왔구나.
▲ 지나 온 길을 바라보다ⓒ이호상

지나 온 길들이 참으로 아득하기만 했다. 지나 온 길들을 바라보며 가야 할 길들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백두대간의 끝나지 않는 길은 나를 지치게 하고 절망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위로하며 희망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멀리 반야봉도 보였다. 들리지 못해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서 좀 쉬겠습니다."

한대장의 목소리가 지나 온 길에 머물러 있던 나를 불러 앉혔다.

"그런데… 김대장! 여기 있던 돌탑이 왜 없어졌냐? 여기 틀림없이 있었지?"

"어, 정말이네요. 돌탑이 없어졌네요. 누가 무너뜨린 것 같은데요. 돌들은 깔아 놓고 깨끗이 치웠잖아요."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탑을 무너뜨린 것은 틀림없는 사실 같았다. 돌들이 깨끗이 치워지고 정돈 되어 있었다. 의도되지 않은 사고로 무너진 것이었다면 그대로 두었거나 다시 세웠을 것이다. 탑이 무너졌다고 해서 돌들을 함부로 치울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돌들은 그저 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고 정성이고 사랑이고 염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이들은 그 탑에 돌 하나를 올려놓기 위해 만복대에 올랐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슬픈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담아 쌓은 돌탑이 무너진 것도 슬픈 일인데 흔적조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더더욱 슬픈 일이다. 처음 만복대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었던 돌탑이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곁에 두고 있던 마한의 역사도 잃어 버렸고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도 잃어버렸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오랜 세월 백두대간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백두대간을 회복하고 되찾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이 이 민족과 우리 역사 안에서 온전히 회복되기를 기대한다.

백두대간은 곳곳이 끊어져 있다. 시멘트공장이 들어선 자병산에서도, 채석장이 들어선 금산에서도 군사시설이나 정부시설이 들어선 설악산이나 지리산 성삼재 지역에서도 마루금은 없어졌거나 끊어져 있었다. 지날 수 없었다. 자병산은 이미 산 하나가 파헤쳐져 사라져 버렸고 금산은 산의 절반이 갂여나갔다. 또한 많은 곳에서 고랭지채소밭과 과수원 등으로 길이 사라졌다. 그 뿐인가. 하나로 흐르던 백두대간은 남과 북으로 허리가 잘려 더 이상 지날 수 없는 땅이 되어 있었다. 길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었지만 갈 수 없는 길이 되어 있었다.

이 땅 한반도의 등줄기이자 백두에서 지리까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진 생명의 통로 백두대간은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길이 되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생명들이 오고가며 하나가 되던 길은 더 이상 오고 갈 수 없는 길이 되어가고 있었다. 산도 마루금도 무너지고 끊어져 있었다.

무너져 내린 산들 만큼, 끊어진 마루금들 만큼 사람들의 마음 길도 끊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소통하고 하나가 되려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서로를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싸우고 해치고 때로 죽이기까지 하는 것은 아닐까. 무너진 산이 회복되고 끊어진 마루금이 다시 이어진다면 끊어졌던 마음들도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갈래갈래 찢기고 끊어진 마음 길이 다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시린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을 때 한대장의 말이 들려왔다.

"원래는 고기리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모두들 지쳐있기 때문에 오늘은 정령치에서 산행을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얼굴이 환해졌다. 겨우 정오를 넘긴 시간이었다.

만복대를 둘러보았다. 지나 온 길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햇살은 풀잎에 부서져 내려 눈부셨고 억새풀은 바람을 맞으며 출렁이고 있었다. 물결이 일렁이는 듯 했다.

나는 그 눈부신 모습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앉아 있었다.
내 마음도 억새풀과 함께 출렁거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가야 할 길이 보였다.
백두대간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길이 거기 있었다.
끝나지 않는 길이 거기 있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호상

필자 이메일 : from-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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