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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의 복지는 정말 유지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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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의 복지는 정말 유지될 수 없나?

[새움의 '인도, 우리에게 말을 걸다'] <7> 새로운 '케랄라 모델'이 필요하다

(* 이 연재의 원고는 세미나네트워크 새움에서 진행하고 있는 아시아 저항운동 세미나의 결과물입니다. 또한 그린비 출판사에서 출간될 "인도의 사회운동들(가제)"의 원고 일부를 수정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폭넓은 지지기반을 근거로 성공적으로 발전해온 케랄라 모델도 1980년대 경제위기로 흔들립니다. 이제 케랄라 발전모델은 학자들과 정치인들로부터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CPI-M조차도 케랄라의 낮은 경제성장과 인도경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인 공격으로 케랄라 모델이 점점 더 지탱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은 힘들게 얻은 재분배성과를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1980년대 이후의 경제 위기는 1990년대의 새로운 정치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CPI-M 내부에는 노동조합을 근거로 한 집단과 시민사회를 배경으로 한 분파가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본 케랄라 모델은 노동조합 분파가 주도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케랄라 모델이 위기를 맞고 당의 지도자인 남부디리파드가 입장을 선회하면서 풀뿌리 분파가 당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풀뿌리 분파는 기존 케랄라 모델의 대안으로 대중적 참여를 강조하고 지역의 주도권과 자립을 권장하는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주도발전모델로부터 참여적 조직화를 요구하는 사회주도적 발전모델로 당의 노선을 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소련의 붕괴도 이런 전환의 원인 중 하나였지만 무엇보다 인도 중앙정부가 신자유주의적 발전전략을 받아들인 것이 압력을 증가시켰습니다.

▲ 인도 공산당원들이 지난해 11월 하이데라바드 시(市) 남부에 있는 바티 월마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풀뿌리 분파가 더욱 목소리를 높인 것은 1992년 주의회 선거에서 패배해 권력을 우파에게 넘겨준 다음입니다. 선거 패배 직후의 14차 당 대회에서 CPI-M은 세계적 상황과 인도정부의 경제정책 변화가 전 세계에서 인도의 역할을 약화시켰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 구조에서 참여 민주주의적 메커니즘을 강조하면서 국가기구와 경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배를 주장했습니다. 한국 시민운동 진영의 주장과 흡사하죠? 인도공산당의 새로운 입장과 한국 시민운동 진영의 주장이 우연히 닮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의 원천에서 배워온 것입니다. 바로 세계은행의 발전모델이 그것입니다.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산의 주역이라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당이나 진보적 시민운동이 세계은행에서 개발된 전략을 받아들인 것은 왜일까요?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앞으로의 연재에서 계속 이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CPI-M은 자신들의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옹호는 사회의 하위 집단들이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영역 둘 다에서 의사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분권화가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라고 보았습니다.

CPI-M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는 네 가지 테마가 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발전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사회적 필요에 지향된 경제, 참여민주주의가 그것입니다. 차례대로 보겠습니다.

새로운 발전국가

CPI-M은 국가기구의 민주화는 민주적 분권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관료제와 행정기구를 변화시켜 새로운 참여제도를 만들었고 지역정부기관까지도 변화시켰습니다. 1990년대가 되자 당은 위계적인 명령구조의 국가라는 개념을 버리고 보조적인 역할(affirmative role)을 수행하는 국가관을 채택합니다. 이 국가관에 따르면 국가의 역할은 대중의 참여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 내고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수단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기존 케랄라 모델의 발전국가는 선택된 소수가 지배하는 관료적인 국가이고 헌신과 조직적 통일성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비판하면서 더 포괄적이고 더 확장된 발전국가로 이를 대체하고자 했습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

CPI-M은 1990년대 초에 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혁명적 단절이라는 전망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상당 기간 공존하는 이행기를 생각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적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발전을 보장하고, 동시에 대안적 축적의 논리를 발전시킬 조건을 만들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후의 전개과정을 보면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보다도 후퇴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적 필요에 지향된 경제

CPI-M은 경제적 엘리트가 지배하는 경제로부터 시민사회가 지배하는 경제로의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당은 협동조합적 형식의 경제적 조직, 작업협동체, 민주적 관리 그리고 생산에 있어서의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국유화와 사유의 대립을 넘을 다양한 소유방식을 모색했습니다. CPI-M은 시민사회가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사회주의적 경제를 그렸습니다. 또 국가와 시장 외에 시민사회라는 경제주체를 설정합니다. 즉 CPI-M은 시민사회가 사회적 필요를 위해 경제에 전략적으로 개입하고 국가의 경제활동을 통제하는데 있어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여민주주의

1990년대에 CPI-M은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 하위주체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시민사회가 국가의 자원을 더 민주적으로 배정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위기를 참여민주주의의 강화로 극복하려는 것은 새로운 케랄라모델이 복지를 일부 포기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강화시켜 경제적 문제를 회피하려 했다는 비난도 제기됩니다.

참여민주주의와 관련해서 새로운 케랄라 모델에서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케랄라 모델의 위기는 경제 침체에서 비롯되었는데 당은 정치 영역에서 참여의 확대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입니다. 이런 대응 역시 인도공산당만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두드러지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가장 많이 제출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심화'입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이런 주장이 확산되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경제영역으로부터 대중들과 저항세력의 관심을 멀어지게 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낳았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되면 많은 정당들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조직적 이슈들의 갱신에만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결국 경제적 문제를 등한시한 민주주의 논의는 사회적 위계들과 불평등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대로 남아있게 합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를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로 보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퍼진 관점입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문제에 대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심지어 문화적 대응만이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진보진영 안에 횡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인도의 사례를 통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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