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盧(로)/周(주)/會(회)/黑(흑)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盧(로)/周(주)/會(회)/黑(흑)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67>

盧(로)·慮(려)·虜(로)·膚(부)는 윗부분 虍(호)가 공통이다. '범가죽 무늬'의 뜻이라지만 虎(호)의 간략형일 뿐이다. 慮는 아래 思(사)를 의미 요소로 보고, 虜는 아래를 男(남) 또는 '毌(관)+力(력)'으로 보아 꿰맞추기를 한다. 膚는 盧의 생략형과 月=肉(육)으로 분해하고 盧는 皿(명)이 의미, 나머지가 화로의 모습을 그린 상형 부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들은 우선 자연스럽지가 않다. 慮의 경우만은 思가 의미 요소라 해도 무리가 없지만 나머지는 대부분 어거지다. 더욱 큰 의문은, 이 글자들의 중간 윗부분이 공통인데 이런 사실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盧는 <그림 1>처럼 皿 부분이 없는 것이 본래 글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글자들은 이 盧의 본래 모습에 心(심)·力·肉을 붙인 글자일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글자 구성도 어느 정도 자연스러워진다. 盧는 皿을 의미 요소로 해서 '밥그릇'의 뜻이고, 慮는 心으로 '생각하다'를, 虜는 力으로 '사로잡다'를, 膚는 肉으로 '살갗'을 나타낸 것이다. '虍+田'인 윗부분이 공통의 발음기호다.

그러면 '虍+田'은 어떤 글자일까? 田이 由(유)의 변형인 경우가 많았음을 상기하면 田=由가 발음, 虍가 의미인 형성자로 추측해볼 수 있다. <설문해자>에는 田 부분이 甾(치)인 '虍+甾' 형태의 글자를 '술독'인 罏(로)의 본래자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盧 등의 윗부분 즉 <그림 1>과 같은 글자로 보인다.

由는 田 형태로만 변한 것은 아니다. 周(주)에서 口를 제외한 부분은 '冂+土'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한덩어리로 합쳐 보면 바로 田이 된다. 周는 田 밑에 口를 더한 모습이고(<그림 2>), 田이 由의 변형이라고 보면 그것이 발음기호다. 由를 발음기호로 쓴 宙(주) 등과 일치하는 발음이다.

周는 경작지에 농작물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모양이라는 얘기를 비롯해서 염전의 모습, 상자 안에 패옥을 가득 넣은 모양 등 여러 설이 난무하고 있다. 농작물 얘기는 周가 나라이름으로 쓰였고 그 나라가 중국에서도 농업 생산력이 매우 높은 나라였다는 것에서 끌어다 붙인 얘기다.

그러나 윗부분이 발음기호 由의 변형이라면 이런 어설픈 얘기들은 모두 허무한 노력들이다. 周가 '둘레'의 뜻이라고 보면 口 부분은 '城邑(성읍)'을 뜻하는 囗(성/정)이다. 口가 없는 글자꼴도 많은데, 이는 由를 가차해 썼던 흔적이다.

會(회)는 글자를 세 토막으로 나누어 그릇(曰)과 거기에 담긴 물건(중간 부분), 그리고 뚜껑(亼)으로 보고 '그릇'인 盒(합)의 본래자라고 한다. 合(합) 역시 같은 모습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다만 중간의 '담긴 물건'이 없을 뿐이다. 담긴 물건이 제사용 고기라며 膾(회)의 본래자로 보거나, '시루'인 曾(증)에 뚜껑인 亼(집)을 더한 모습이라는 설명도 있다. 글자 전체가 창고의 모습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데 會의 옛 모습은 <그림 3>처럼 중간 부분이 여러 가지로 장식된 모습도 있지만 <그림 4>처럼 분명하게 田자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가지의 장식들은 田자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田은 다시 由의 변형이고 그것이 발음기호다. 會는 合자에 발음기호 由를 더한 형성자가 된다.

여기서 合이 의미 요소라면 지난 회에 다룬 畜(축)에 대해서도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윗부분 玄(현)은 동그라미 두 개를 붙여 놓은 듯한 모습이었는데, 이를 合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由+合'의 글자에서 발음기호 由가 중간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會로, 위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畜으로 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쌓다'(畜)와 '모으다'(會)의 의미 일치가 눈에 띈다.

黑(흑)은 얼굴에 墨刑(묵형)을 당한 죄수의 모습을 그렸다는 설명이다(<그림 5>). 예전에는 불에 그을린 창 또는 굴뚝을 나타낸 것으로도 봤다. 囱(창)과 炎(염)을 합친 글자라는 <설문해자> 얘기의 해설판이다. 역시 상형 치고는 매우 복잡한 의미를 끼워 넣은 상형이라 믿기 어렵다.

<그림 5>를 보자. 윗부분이 낯이 익다. 많이 봐왔던 田=由의 네 칸에 점을 찍은 모습이다. 黑은 발음기호 由에 의미 요소 炎을 더한 형성자로 보인다. 黑의 윗부분과 會의 중간 부분이 같은 모양으로 나타난 점이 눈에 띈다. 발음은 由 계통 軸(축)과 비슷하다. 불에 '그을리다' 정도가 본뜻이거 거기서 '검다'가 파생된 것이겠다. 글자를 너무 '그림'으로 보려 해선 안 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