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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들이 출몰하는 시대와 모모타로(桃太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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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도깨비들이 출몰하는 시대와 모모타로(桃太郞)

[김민웅 칼럼] <개+원숭이+꿩>들의 힘

모모타로 이야기
  
  "무카시 무카시 (むかし、むかし.)", 일본말이다. 이렇게 "옛날, 옛적에." 라고 시작되면 듣고 있던 아이들은 그 다음이 무엇인지 금세 떠올린다. "어느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 이야기 "복숭아 도련님 또는 복숭아 소년 모모타로(桃太郞)"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도깨비를 퇴치하러 떠나는 영웅 소년 모모타로 이야기를 모르는 일본 아이들은 없다. 산마을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어느 날 우연히 주어진 복숭아 아기가, 마침내 악귀를 몰아내는 용맹스러운 마을 수호신이 되는 전래민담이다.
  
  이 이야기에서 물론 정작의 주인공은 아이지만, 출발지점에 서 있는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다. 어찌해서 그럴까? 그리고 이 모모타로 이야기는 다만 복숭아소년의 도깨비퇴치 모험담으로 그치는 것일까?
  
  웬만하면 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긴 하나, 우선 이 모모타로의 이야기 자체부터 분석해보자.
  
  노부부의 기쁨
  
  "옛날 옛적에, 어느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셨고 할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시고 할머니는 냇가에 빨래하러 가셨습니다." 이게 기본설정이다. 산에 나무하러 간 할아버지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노동의 노고로 힘겹다. 할머니 역시 누구 하나 돌봐주는 이 없이 그 무슨 대단한 빨래가 있다고 냇가에 홀로 나간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즐거움이 있는 것도 아닌 노부부다. 이제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할머니가 빨래를 하시던 냇물에서 커다란 복숭아가 떠내려 왔습니다." 복숭아는 오래 전부터 동양에서 신비스러운 열매로 알려져 있다.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에서도 나오듯이, "천도(天桃) 복숭아"는 "도(桃)"자와 "복숭아"가 겹쳐 2중 표현이기는 하나 하늘의 기운을 담은 열매라는 의미다.
  
  게다가 복숭아는 생긴 모양새가 여성의 아름다운 엉덩이를 닮아 있고 색깔도 불그스름한 부분이 있어, 색(色)과 생명을 모두 상징해준다. 그러니 보통 보는 것보다 "커다란 복숭아"는 이미 그 전제가 단지 먹을 과실이 아니라 무언가 하늘의 기운과 생명이 어우러진 영험한 존재의 출현을 예고해준다.
  
  물 위로 떠내려 온 복숭아
  
  정신분석학적 접근으로 따지자면, 냇물은 그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 흐르는 생명의 물, <양수(羊水; liquor amnii)>이기도 하다. 여기서 "양(羊)"자는 "상서럽다"의 뜻이다. 더러운 빨래를 씻는 깨끗한 냇물이 커다란 복숭아를 세상 밖으로 운반하는 생명수가 된다. 세상을 맑게 하는 힘이 나타나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냇물에 둥실둥실 떠내려 온 복숭아를 등에 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할아버지와 함께 복숭아를 먹기 위해 칼을 들고 복숭아를 가르려는 순간, 그 안에서 큰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으나 두 노부부는 매우 행복해했다. 슬하에 자식도 없던 판에, 이 아기의 출현은 기쁜 일이었음은 당연했다. 복숭아(桃; 모모)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이름도 소년, 도련님 등의 뜻을 가진 "타로(太郞)를 붙여 "모모타로"라고 하게 된다.
  
  도깨비 퇴치와 기비당고
  
  역시 하늘이 내린 영웅인지라 남보다 빠르게 쑥쑥 자란 이 모모타로는 어느 날 마을을 괴롭히는 귀신 섬의 도깨비를 처치하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한다. 할아버지가 도깨비가 얼마나 사람들을 못살게 하는지 말하자 모모타로는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무섭고 강한 힘에 억압받은 채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 지쳐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민중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할머니는 어떻게든 모모타로가 위험한 곳에 가지 않기를 바란다. 자식을 사랑하는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다.
  
  결국 할머니는 모모타로의 청대로 일본 제1의 수수경단, "기비당고(きび團子)"를 만들어 준다. 가는 길에 배곯지 말라고 마련해준 비상식량이었다. 도깨비 퇴치를 위해 귀신 섬에 가는 모모타로는 자신에게 태생적으로 주어진 사명을 깨우친 존재가 되고, 할아버지는 이 소년에게 역사의 현실을, 할머니는 모모타로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을 공급해주는 사랑이 된다.
  
  할머니에게 "일본 제1의 수수경단, 기비당고"를 만들어 달라는 모모타로의 말은, 일본 민중의 힘을 최대한 과시하는 대목이다. 모모타로는 단지 혼자의 능력만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 속에서 만들어진 최고의 힘으로 도깨비를 물리치는 존재다. 모모타로는 그래서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저 멀리의 위압적인 영웅이 아니라, 민중의 곁 바로 옆에 있는, 민중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기비당고를 좋아하는 친근한 벗이다.
  
  개+원숭이+꿩
  
  모모타로가 도깨비들이 있는 곳을 향해 발길을 옮길 때, 도중에 개, 원숭이, 꿩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이들이 주머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모모타로는 일본 제1의 수수경단이라고 대답하게 되는데 그러자 이들 동물들은 그걸 주면 모모타로와 동행하면서 그의 부하가 되겠다고 한다. 모모타로는 "자신의 부대를 거느린 장수"가 된 셈이다.
  
  도깨비 집단이라는 거대한 적을 이기는 데 혼자 단기필마로 나서서 승리할 독불장군은 없다. 주변의 조력이 필요하다. 개는 두려움이 없고 원숭이는 지혜로우며, 꿩은 네 발 짐승이 할 수 없는 비상(飛翔)을 통해 멀리 본다. 모모타로는 자기 힘만 믿고 설치는 자가 아니라, 민중과 함께 하는 영웅이다. 마침내 모모타로 부대는 승리하고 도깨비들이 그동안 약탈했던 보물들을 모두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도깨비로 인한 마을의 공포는 드디어 사라지고, 모모타로로 해서 마을에는 평화와 생기가 다시 감돌게 되었다.
  
  일본의 에도(江戶)시대에 민중들 사이에 유행했던 이 이야기는 그 뿌리가 그보다 훨씬 오래지만, 그 줄거리가 겨냥하고 있는 현실은 늘 현재적이다. 다시 말해서 모모타로의 이야기는 "옛날 옛적에"라는 이미 지나간 멀고 먼 시간을 빌리고 있지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민중들의 삶을 괴롭게 하는 탐관오리나 자기욕심만 채우는 권력에 반격을 가하는 민중의 담론이다.
  
  모모타로가 가진 것은 수수경단, 기비당고와 부하인 개, 원숭이, 꿩 셋에 불과하지만 그는 하늘의 기운을 타고 났으며, 할아버지가 들려준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채 세상을 맑게 하라는 사명을 각성하고 있다. 그와 함께, 권력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으나 모모타로와 하나로 뭉친 "의리의 동지" 셋이 있다. 이렇게 해서 모모타로는 도깨비들 앞에서 무적(無敵)의 용사가 된다.
  
  영웅은 지배자가 아니다
  
  본래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보자. 어찌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이야기의 처음에 등장하는가? 이들은 단지 모모타로를 돌보는 부모의 역할에 그치는가? 자식이 없이 쓸쓸하게 늙어간 노년의 부부를 불쌍히 여긴 하늘의 복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옛날이야기이니까 그 옛날이야기를 잘 알거나 해주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설정 상 필요했던 것일까? 모모타로는 그저 신비롭게 태어난 용감한 소년의 기이한 모험담인가?
  
  이미 분석과정에서 언급한 것을 통해 짐작하겠지만, 할아버지는 그 늙은 나이에도 여전히 나무해서 내다 팔지 않으면 안 되는 힘겨운 삶을 감당해야 하는 민중 자신이다. 할머니는 생명의 기력을 거의 다 소진해버리고 후사 또는 내일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미래부재의 현실이다.
  
  다시 말해서 이들 두 노부부는 일본 역사의 현실 그 한 복판에서 도깨비들처럼 야만적인 권력의 공격과 억압 앞에서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지내야 하는 사람들의 아픔과 절망,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대한 지푸라기 같이 초라한 갈망을 상징한다. 모모타로의 출현은 당연히 이러한 현실을 뒤집는 혁명적 영웅의 등장에 대한 민중들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존재를 드러낸다. 그렇지 않아도 모모타로 이야기가 가장 널리 퍼지게 되는 18세기 말 에도시대는 극한의 기근과 빈궁한 민중들의 삶이 이어진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03년 창설한 바쿠후체제(幕府體制)의 역사적 생명력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였다.
  
  그런데 모모타로는 영웅으로 나타났다가 민중들에게 포악한 지배자로 변모해버리는 무수한 권력자들의 모습을 반복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바쿠후체제의 영주나 그 중심에 있는 쇼군(將軍)등이 난세를 극복하고 영웅으로 자기를 내세우지만 결국 민중들의 피를 빠는 도깨비가 되어버리는 사태를, 수수경단을 먹고 이를 개, 원숭이, 꿩과 나누어 먹는 모모타로 이야기로 일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은 민중들에게 자신을 섬기게 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민중과 늘 함께 하는 친근한 이웃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모타로는 다만 일본민담의 영웅적 존재로 그치지 않는다. 민중들에게는 어디에서나 갈망되는 존재의 일반적 표상이다.
  
  민중의 벗,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감독이 1954년 만든 영화 <7인의 사무라이>는 16세기 전국시대에 전란이 휩쓸고 간 시대, 산적이 출몰하는 마을을 지켜내게 되는 떠돌이 사무라이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16세기 전국시대이지만, 영화의 현실은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난 패전 일본의 황폐한 현실이다. 영화에서는, 전국시대가 마감되어가면서 일자리가 사라진 사무라이를 초청해서 산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마을 회의에서, 마을의 일부는 산적을 물리치겠다고 사무라이를 괜히 데려왔다가 도리어 이들이 마을의 새로운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토로하고 반대한다.
  
  그런데 정작 이들 거리의 사무라이들은 가난한 마을의 보잘 것 없는 보수약속을 경멸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 희생을 각오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산적 퇴치가 끝난 뒤, 이들은 자기들 각자의 길로 표표히 흩어져 떠난다. 이를테면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즉 공을 세우고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이다. 모모타로의 전설, 그 뒤를 잇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승리를 얻고 민중의 환호 앞에서도 왕이 되려 하지 않는 겸손한 영웅, 권력이 강하다고 해서 지배자가 되지 않는 무욕의 용사, 민초들은 제쳐두고 예쁜 공주만을 구하지 않는 용감하고 잘 생긴 사나이, 혼자 영광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 하는 동지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장수, 그래서 결국 할아버지와 할머니 곁으로 다시 돌아와 수수경단을 함께 먹고 나누면서 마을의 평화를 진정으로 기뻐하는 이야기의 주인공, 현실에서는 그 어디에 없을까? 그러기 전 우리에게 우선 그런 이야기부터 만들어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모모타로는?
  
  오늘의 때는 마치 흉악한 도깨비들이 여기저기 출몰해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거나 산적의 무리들이 떼 지어 약탈하는 전란의 시대를 닮아있기 때문이다. 뜻을 가진 이들은 개 취급 받거나 원숭이처럼 모욕 당하든지 아니면 꿩처럼 사냥 당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수수경단은 병든 수수를 수입해서 못 먹을 판이다.
  
  사람들은 모모타로 이야기의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힘을 잃고 늙어가고 있으며, 산으로 가거나 냇가에 나가 노동하며 신세한탄 한다. 이때, 저기 냇물에 떠내려 오는 커다란 복숭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수박이라도 괜찮다. 또는 참외라도 상관없다. 가운데가 쩍 갈라지면서 역사의 분수령이 될 그런 기운 하나 홀연 태어났으면 "얼쑤, 좋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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