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김선우 작가입니다. 김선우 작가는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강원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열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비롯해 산문집, 동화, 그리고 최근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다룬 『나는 춤이다』 장편소설집까지 모두 10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2007년 제9회 천상병시상을 수상하였고, 현재 '시힘' 동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박인규 : 반갑습니다. 벌써 등단한 지 12년 되셨는데 그동안 시집, 산문집, 동화, 상당히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셨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최승희를 다룬 '나는 춤이다'라는 장편소설을 내셨는데, 우선 왜 최승희를 다루게 됐는지 궁금하고, 주목받는 시인이었는데 왜 소설이란 형태를 취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김선우 : 어느 나라나 시대를 잘못 만나서 불우했던 예술가들, 특히 여성 예술가들이 많죠. 조선시대 허난설헌이나 일제시대 나혜석이나 최승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일 텐데 시대적으로는 불우했지만 개인의 재능이나 열정, 자기의 갈망이나 예술적 성취 같은 것에서 굉장히 눈부신 존재들이었어요. 최승희가 1911년생인데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서 일제시가 가장 화려하게 월드스타로 도약했던 사람이죠. 그동안 우리에겐 금기돼 왔던 인물이기도 해요. 월북인사기 때문인데요, 87년 이후 90년대 들어서면서 월북작가들과 예술가들에 대한 해금조처가 이뤄지잖아요. 그러면서 조금씩 우리에게 이름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죠. 그 전까진 저도 최승희를 최00, 최XX 이렇게 봐왔던 인물이에요. 식민지시대에는 식민지 무용가로서의 고통이 그녀에게 있었고 냉전시대에는 월북무용가라는 멍에를 지고 있었던 여자가 만약 2000년대에 우리에게 존재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요, 최승희는 바로 오늘날의 감각, 그러니까 21세기의 감각을 갖고 20세기의 근대를 살아내야 했던 인물이란 생각이 들어요. 이 인물이 보여주는 치열하고 모순적인 행보가 소설로 구현해볼 만한 가치가 굉장히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박인규 :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었고 불우한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관심이 갔다. 김선우 시인이 시인으로 등단하면서 여성성, 그리고 생명과 관능에 대해서 굉장히 강렬한 언어로 쓰신다는 평을 들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소설을 한 번 써보라고 권유하신 분이 조세희 선생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김선우 : 조세희 선생님과 굉장히 특별한 인연이죠. 제가 2000년 첫 시집 나온 다음해부터 산문들을 좀 많이 쓰기 시작했어요. 한 일간지에 북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칼럼을 읽으신 조세희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전화를 해오셨어요.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라고 합니다. 이렇게 너무나 겸손하시고 아주 담백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어오셔서 가슴이 철렁했죠. 아, 이 분이 조세희 선생님이신가? 정말 그런가? 굉장히 제가 존경하던 분이었기 때문에, 또 난쏘공을 굉장히 사랑했던 독자기 때문에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됐는데, 선생님께서 김선우 시인의 문장이 소설로 구현되면 어떨지 굉장히 궁금하고 꼭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박인규 : 나는 춤이다라는 책의 뒤에도 발문을 써주셨는데 이번 작품 보시고는 어떤 말씀을 하시던가요
김선우 : 굉장히 말을 많이 아끼시는 분이세요 원래. 그러니까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믿고 작품을 계속 써가면 굉장한 것을 만날 것이다, 이런 격려를 해주셨죠.
박인규 : 이번 책을 보죠. 이번 책을 보면 소설의 형태인데, 주로 다룬 건 46년부터 52년까지라고 해요. 저희가 알기론 최승희라는 예술가는 일제시대에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고 하는데 그 시기를 잡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선우 : 아니오. 실존인물을 재고하는 방식이 사실 소설가들에게 큰 고민거리일 거예요. 제 소설의 첫 페이지는 8,15 후인 1946년 4월 북경에서 시작하는데, 스토리, 즉 서사의 출발은 1950년 6.25전쟁 이후 중국 북경에서 출발해요. 46년 북경이 첫 페이지에 있지만 서사의 시작은 50년 북경에서 출발하죠. 50년 11월에 북경으로 6.25의 피난을 갔던 최승희 일행을 중국 최고 경극배우인 매란방 아시죠? 그가 최승희를 맞아주고 총리가 피난온 최승희를 국빈으로 조처하면서 북경생활을 시작하게 돼요. 이때부터 최승희가 1952년 가을까지 북경에서 무용대학 교수를 하면서 중국인들에게 무용을 가르치게 되죠. 중국 무용계에서 최승희를 스승으로 하는 춤의 계보가 만들어지는 게 바로 이 시점이에요.
박인규 : 지금도 최승희의 춤을 잇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깁니까?
김선우 : 그렇죠. 중국 현대 무용계의 시발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최승희가 중국 무용계에 끼친 영향이 굉장히 크거든요. 하여튼 소설의 외연으로 보자면 1950년 북경 피난에서 52년 북의 요청으로 다시 평양으로 되돌아가기 직전까지의 상황이 소설 속에 설정되는데 이건 서사의 바깥라인이에요. 이 라인 속에서 최승희의 춤인생이 서사 속에 서사의 방식으로 어렸을 때 첨을 시작했던 때부터 절정기 월드스타로 도약하던 시기를 거쳐서 고뇌와 고통의 시기까지가 점철되죠. 그러면서 가장의 주인공들과 인연들이 얽히면서 약간 추리소설 같은 방식과 함께 전개돼요. 어느 한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기보다 생애 전체에 좀 골고루 무게중심이 가 있는 거죠.
박인규 : 실제로는 다 다루고 있군요. 소설을 보니까 8할은 허구다, 그런 말씀을 하셨던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일반 사람들은 궁금할 수도 있고. 아무래도 실존인물도 나오고, 남편인 안막이라든가 일본에서의 스승 그런 분들하고.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도 나오는데 가상의 인물들에 대해서 관심들이 많은 것 같아요
김선우 : 맞아요. 최승희나 남편 안막이나 스승 이시바쿠는 실존인물이죠. 굉장히 무게감들이 컸던 당대 실존인물들인데 최승희를 중심으로 얽혀있는 기생 예월, 예월의 아들인 민, 사진작가인 기타로, 기타로의 애인이면서 최승희를 사랑했던 류 같은 창조된 인물들이 등장해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은 그가 움직인 동선의 탐구가 굉장히 중요해서 최승희가 움직인 동선을 팩트를 가능한 존중하면서 서사가 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스토리들은 가상인물들과 얽혀서 진행되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이 조선의 기생 예월과 최승희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고 하시는데
김선우 : 벌써 팬들이 그렇게 나눠져요. 예월에 대해서 관심을 아주 많이 갖는 독자들하고 민을 사랑하는 독자들, 기타로, 가상인물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오더라고요.
박인규 : 말하자면 예월은 조선의 전통을 상징하고 최승희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예술가 그런 겁니까?
김선우 : 맞습니다.
박인규 : 굳이 따지자면 김선우 작가는 어느 쪽 편입니까?
김선우 : 글쎄요 저는 전통예술의 뿌리와 모던하고 현대적인 예술의 창조가 균형있게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인규 : 어느 한편을 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정답이네요.
김선우 : 너무 식상한 정답이죠.
박인규 : 이 소설 나는 춤이다를 쓰기 전에 최승희를 주제로 한 시나리오를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승희를 시나리오로 쓰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어떤 거였습니까?
김선우 : 일단 내적인 욕구가 있었고요, 제가 여성 예술가들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애정이 있는데, 나혜석이나 허난설헌, 최승희가 대표적인 케이스에요. 최승희는 여러 면에서 금기돼왔던 인물이어서 문화적 혹은 문학적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 정면돌파해보고 싶은 욕망이 일단 있었어요. 그런 때 마침 영화사에서 당대의 무희이자 세계의 무희였던 최승희는 언제든지 우리의 문화적 노력에 의해서 복권될 수 있는 인물인데 아직까지 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2011년이 최승희 탄생 100주년이에요. 그 전에 뭔가 작업들을 진행하려고 했고 그런 흐름이 저와 딱 맞아떨어졌어요. 저에게 시나리오를 요청해왔고 제가 시나리오를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들과 취재를 할 수 있게 됐죠.
박인규 : 시나리오를 먼저 쓰시고 소설을 쓰신 거네요?
김선우 : 네. 2006년 말에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완성됐어요. 그리고 2007년 초부터 소설 구상에 다시 들어가기 시작한 거죠.
박인규 : 그럼 그동안 나는 춤이다를 쓰기 위해서 들인 시간이 3년 반 4년 될 수 있겠네요
김선우 : 그렇죠. 그리고 그 전부터 최승희란 인물의 이 모호하고도 모순적인 강렬한 이 인물에 애정을 가졌던 시기까지 친다면 퍽 길었죠.
박인규 : 많은 분들은 방송을 들으시면서 그렇다면 김선우 작가가 쓴 최승희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언제 나올까 궁금하실 텐데요
김선우 : 저는 문학판 사람이라 영화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년 정도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최승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던 쪽에서 얘기를 들었어요. 빨리 진행되면 내년 말쯤에는 영화로 최승희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인규 : 최승희의 생몰연도를 보니까 김선우 작가와 비교해 보면 한 60년쯤 먼저 태어나셨고 김선우 작가는 최승희가 돌아가신 다음해에 태어났는데, 한 60년의 차이.. 두 세대 차이를 둔 여성 예술인 아닙니까? 대개 어떤 인물에 대한 작품을 쓰다 보면 자기가 그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느낀다고 하던데 예를 들어 김선우 작가가 일제시대 또는 남북 분단의 시대에 아주 탁월한 예술가였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런 고민 같은 건 안 해보셨어요?
김선우 : 해봤어요. 시나리오 쓸 땐 잘 몰랐는데 소설을 쓰면서는 정말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이 너무나 자주 되어서, 무엇보다 그녀의 마지막이 굉장히 비극적이고 불우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녀의 영혼이 너무 아프구나 아직, 그리고 뭔가 애도받기 원하고 추모해줘야 하는 어떤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구나, 이런 것들을 느낀 순간이 많았죠. 영혼이 아프다고 생각되면 몸이 아파지고 이런 경우들이 종종 발생하더라고요. 소설 집필과정에서
박인규 : 3년 반 동안 최승희하고 씨름하면서
김선우 : 씨름 아니고 춤췄어요.
박인규 : 결론적으로 최승희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물론 그걸 알려면 나는 춤이다를 읽어봐야겠지만 그걸 한두 마디로 요약한다면 어떤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선우 : 정말 어려운데요, 제가 저자 서문에 밝혀 놓은 내용들이에요. 최승희는 우리가 가진 최초의 한류스타, 월드스타라는 얘기는 이미 떠돌고 있죠. 그런 스타성이 그냥 주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개인의 재능과 시대가 잘 만났을 때 가장 행복하게 피는 것인데 최승희의 경우는 너무나 시대를 앞서온 천재였단 생각이 들고, 예술가의 가장 최고의 재능, 열정이 너무나 풍부하고 샘솟는 사람이었는데 시대적 모순 속에서 겪어야 했던 고통들이 너무 커서 그런 불우를 헤쳐나갈 수 있는 조건들이 됐다면 어떻게 비상했을까가 너무나 궁금해지는 사람이에요
박인규 : 최승희의 고향이 강원도 홍천이죠? 최근에 보니까 친일인물사전 펴내는 데서 최승희를 친일파로 분류해서 여러 가지 논쟁이 많던데, 최승희의 친일행적. 물론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것 같지만 친일과 예술과 최승희. 관계가 있다고 봐야 되겠습니까?
김선우 : 이 부분은 굉장히 까다롭게 얘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친일문제가 굉장히 적극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해명되고 해결돼야 하는 규명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원칙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최승희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에게 가해지는 친일논란은 아주 섬세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뭐랄까요, 친일문제를 규명하는 방식에서 의식의 성숙이 필요한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그 의식의 성숙의 단초가 돼 줄 수 있는 것이 또한 최승희라는 사람의 친일행적에 대한 규명이나 혹은 그것을 해명해 주는 것의 중요한 키가 있다고 생각해요
박인규 : 단순 무식하게 질문한다면, 최승희는 친일을 한 겁니까 안 한 겁니까?
김선우 : 이렇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예술가에게 부과하는 친일논란은 시대성과 자기이념의 두 측면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대에 의해서 강제된 친일과 자기 이념에 의한 자발적 친일은 구분돼야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식민지 무용가로 최승희가 공연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친일혐의를 두고 있는 국방헌금납부나 위문공연 같은 걸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니면 공연을 할 수 없고 춤을 출 수 없는 거였죠. 더구나 최승희는 당대 최고 스타였어요. 이 덫을 피해갈 수 없었죠. 일제가 이용하기에 가장 가치가 높은 스타였기 때문에, 하지만 최승희는 자발적인, 자기 이념에 의한 적극적인 친일은 하지 않았어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녀의 모든 무용작품 중에서 황군이나 천황을 찬양하거나 전쟁을 미화한다거나 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어요. 그녀의 예술언어, 즉 무용으로서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거죠. 예술가에게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나눠서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인규 : 또 하나 문제되는 건 이 분이 월북을 했다는 부분인데 남편 안막을 따라갔고 안막 때문에 숙청된 것으로 알고 있긴 하지만 그런 부분은, 최승희의 예술과 남북 사이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하는 겁니까?
김선우 : 정말 복잡한 인물이에요. 일제시대 사실 안막은 카프 회원이었고,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일제시대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에요. 민족해방운동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의 부인인 최승희가 친일혐의를 갖고 있고, 이것 자체가 굉장히 역사의 아이러니인데요. 최승희는 마지막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일제에 굴복시키지 않았죠. 그러다가 돌아온 경성에서 예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아니라는 판단에 예술을 하기 위해서 북에 가게 돼요. 김일성과 만나 담판을 하는 자리에서도 내가 예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평양에서 주어진다면 예술을 하겠다, 이런 자세를 견지했던 사람이거든요. 최승희의 말년이 굉장히 불우했죠. 숙청을 당했죠. 남편 안막이 숙청당한 후 몇 년 후 숙청당하게 되는데 제 생각에 남편 안막의 숙청은 당내 역학관계 이런 것으로 차근차근 숙청되는 과정의 정치적인 숙청인데 최승희의 숙청은 남편 안막과 연관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숙청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자신의 예술활동이 북의 체제가 강요하는 것을 결국 따르지 않았었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예술가로서의 최승희로 숙청당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죠.
박인규 : 여러 모로 불우하고 불행한 예술가였군요.
김선우 : 불우하고 불우한데 당대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도 해요. 너무나 모순적이고
박인규 : 시나리오와 소설을 쓰시면서 최승희와 함께 춤을 추셨다고 하는데 최승희와 분야는 다르지만 후배로서 최승희의 예술세계와 김선우의 예술세계를 감히 비교해볼 수 있을까요
김선우 : 비교할 수 없어요.
박인규 : 그렇다면 혹시 이번에 나는 춤이다라는, 문학 관련 인터넷 방송도 진행하셨다고 해서, 이번에 나온 책 중에서 한 구절을 읽어주실 수 있으세요? 어느 부분인지 말을 하시고 읽어주시죠
김선우 : 작품의 엔딩을 읽어드릴게요.
<여자가 느끼는 불안이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녀도 이미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여자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뭔가 해줄 수 있을까? 기타로가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국경 안쪽에 함께 있는 것보다 바깥쪽에 있는 것이 나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이었다. 떠나기 전날 여자가 기타로에게 목조각 인형을 하나 주었다. 춤추는 여인이었다. 어느 새벽 여자를 데려갔던 등을 조각한 이의 솜씨였다. 아람다웠다. 있잖아, 기타로. 내가 이 말을 했던가?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권력은 아무 것도 구할 수 없어. 기타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염려하지 마. 나는 내가 구할 거야. 여자의 목소리가 얼음자갈처럼 차고 단단했다. 나는 내가 구할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받듯 여자가 한 번 더 또박또박 끊어 말했다. 예리하게 벤 칼금으로 순식간에 핏물이 배듯 기타로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타로가 여자를 향해 웃어 주었다. 여자가 떠난 빈 방 어디서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 아래 나란히 놓인 다섯 개의 둥근 등에 기타로가 천천히 불을 붙였다. 세상에 온 첫 번째 바람을 밟듯이 나비가 가만히 눈을 떴다. 빈 방 한 가운데로 나비가 떠올랐다. 빛의 나비와 검은 나비 그림자. 그러니까 몸을 버리는 순간 몸이 얻어지는 거야. 고치에서 춤을 꺼내듯 이 순간의 몸과 다음 순간의 몸이 그렇게 연결되는 거야. 따스한 붉은 핏물이 스민 검은 나비가 텅 빈 벽을 날았다. 기타로가 가만히 나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박인규 : 시를 쓰시다가 소설을 도전하셨는데 우선 분량이 다른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김선우 : 힘들더라고요. 일단 소설가들이 소설 쓰는 일을 엉덩이 힘으로 쓴다는 얘길 하는 걸 절감했어요. 하지만 시인은 사실 시를 오랫동안 생각해도 쓰는 시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하여튼 시건 소설이건 다른 몸이긴 하지만 인간학이라는 면에서는 동질적이고 형식적인 옷이 길거나 짧은 것으로 변하긴 하지만 그 외에는 이 넘나들기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느낌이 저는 들었어요.
박인규 : 앞으로 소설을 더 쓸 수 있겠구나. 그런 자신감을 가지신 거군요.
김선우 : 네
박인규 : 첫 시집이 12쇄까지 찍은 걸로 알고 있는데 물론 조세희 선생님의 난쏘공 100쇄만큼은 못하지만 시집으로는 대단한 것 같아요. 본인이, 요즘 시집을 잘 안 읽는다고 하는데 대중적으로 성공한 이유는 어디 있다고 보세요?
김선우 : 글쎄요. 성공 이유라고 하니 쑥스러운데, 저는 그런 것 같아요. 문학이 존재하는 가장 좋은 이유가 시독자들에게서 보는 것 같아요.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시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일상에 매몰되지 않아요. 자신의 정체성에 민감하고 내면의 풍요를 돌볼 줄 알죠. 창작자와 독자는 궁극적으로 동업자 아닌가 생각되는데 좋은 독자들이 좋은 시인을 살려주는 것 같아요.
박인규 : 아직도 한국에는 좋은 문학동업자들이 있다.
김선우 : 있어요.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규 : 소설 속에 보면 말이죠. 최승희가 하는 말 중에,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는 아무 것도 구원할 수 없어요. 이런 말을 했어요. 혹시 요즘 세태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닌가 느낌이 들었는데
김선우 : 그렇기도 해요. 저의 세계관이 투영된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죠.
박인규 : 요즘 정치가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십니까?
김선우 : 그렇죠.
박인규 : 부연설명을 할 수 있을까요?
김선우 : 그런 건 다른 데서 기회가 된다면 하기로 하고요. 하여튼 아름다움의 밭을 구현하는 것, 그것을 통해서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일이 문학이 하는 일 같아요. 좋은 문학가로 좋은 독자들과 아름다움의 밭을 열심히 일구다 보면 정치인들도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 오지 않을까요?
박인규 : 글쎄요. 3년 반 동안 씨름해 왔던, 본인의 표현으로는 춤을 춰왔던 시나리오, 소설이 탈고됐고 일단 후련하실 텐데 앞으로의 작품활동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세요?
김선우 : 작년에 세 번째 시집을 내면서 1년 정도 시 발표를 쉬겠다고 공언했어요. 일부러 쓰지 않고 참으면서 지냈거든요. 마음 속에서 익고 있는 시들을 겨울호부터는 꺼내놓을 생각이고 다음 소설 구상에 들어갔어요.
박인규 : 많은 분들이 관심있을 것 같은데 혹시 다음 소설은 어떤 소재인지
김선우 : 구체적인 소재는 지금 굉장한 비밀이니까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요
박인규 : 영업비밀인가요?
김선우 : 세 가지 커다란 얘기가 마음 속에 들어왔는데 어떤 이야기부터 소설로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것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 러브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박인규 : 마지막으로 김선우 작가에 대한 시나 소설 독자들, 팬들이 많을 것 같은데 못다 하신 말씀 있으시면 정리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선우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창작자와 독자는 동업자인 것 같아요. 한 배를 타고 가는 존재들이고 우리 앞에 놓인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음식을 취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가장 무력한 존재들이 문학가와 독자들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고요, 또 앞으로도 사랑의 힘으로 아름다움을 구현하는 힘으로 오래오래 세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박인규 : 주목받는 시인에서 화제의 소설가로... 앞으로도 많은 좋은 작품활동 기대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선우 : 고맙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오늘은 김선우 작가를 초대해 소설 <나는 춤이다>에서 전설적인 무용가 최승희를 오늘날 부활시킨 배경과 작품 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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