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은 세계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이 시기에 유럽인들이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을 뿐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의 500년은 유럽인들의 힘이 전 세계로 팽창해 나간 시대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메리카를 정복하여 식민지화 했으나 점차 힘이 커지며 나중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에도 식민지들을 건설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르러 몇몇 유럽 국가들은 본국의 수십 배 크기의 광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하며 강대국이 되었다.
식민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이렇게 해외에 식민지들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이념이나 실천을 말한다. 즉 군대와 관리들을 파견하여 식민통치 체제를 만들고, 본국인을 옮겨 살게 하거나 토착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여 식민지가 본국에게 쓸모 있게 만들려는 이념이나 실천이다.
콜럼버스로부터 시작된 유럽의 식민주의는 1520, 30년대에 스페인인이 중남미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궤도에 올라갔다. 포르투갈인은 아시아 무역에 참여하며 곳곳에 무역거점들을 만들었으나 이는 식민지라고 하기는 어렵다. 유럽인들이 아시아의 대제국들에 범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7세기에는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 북아메리카 지역의 식민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본격화한 것은 1757년에 영국인이 인도의 벵골 지역을 시작으로 인도 전체를 식민화하면서부터이다. 1780년대에 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이에 큰 힘을 실어 주었다. 산업화로 인해 가능해진 강력한 군사력이 세계의 힘의 균형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9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화는 가속되었다. 특히 1880년대부터 시작되는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아프리카의 거의 전 지역이 유럽국가들에게 경쟁적으로 분할되며 비서양지역의 95% 가량이 유럽국가들이나 미국, 일본의 식민지나 반식민지로 떨어졌다.
식민주의는 2차대전 후에야 끝나게 되었다. 식민지인들의 끈질긴 저항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 식민국가들의 약화, 냉전체제로 바뀌는 국제정치의 흐름이 더 이상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영국은 시대의 흐름을 알아차리고 이에 순순히 따랐다.
그러나 프랑스나 네덜란드, 벨기에 같은 나라는 끝까지 식민지를 내놓지 않으려고 했으므로 장기간의 가혹한 식민지 해방전쟁이 뒤이었다. 그럼에도 식민지 해방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결국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의 거의 모든 식민지가 해방되기에 이르렀다.
식민주의의 유산
독립을 얻은 식민지인들은 해방이 되기만 하면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다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정치적 무질서나 억압, 경제적 빈곤, 사회적 불평등, 문화적 예속 같은 모든 문제들을 다 식민통치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과거의 식민지들인 대부분의 제 3세계 국가들은 아직도 과거와 비슷한 상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식민국가들인 선진국에게 정치,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식민통치라는 과거의 직접지배가 이제 보다 교묘한 간접지배로 모습을 바꾸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가까운 장래에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사실 지난 수 십 년 사이에 제3세계 후진국들과 선진국들 사이에, 즉 남·북 사이의 경제적 격차는 더 커졌다.
제3세계 국가들은 빈곤과 기아, 자연재해로부터 계속 고통을 받고 있고 그것이 완화될 조짐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같이 식민지에서 시작해 거의 선진국에 근접한 경우는 희유한 예이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식민주의는 겉으로는 사라졌으나 아직도 제 3세계인들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다.
그러면 제3세계국가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제3세계 학자들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식민주의에게 돌린다. 식민주의가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생적인 정치적, 경제적 발전을 가로막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 창조성도 억눌렀다는 것이다.
반면 많은 서양학자들은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식민지배에는 부정적인 영향도 있고 긍정적인 영향도 있으나 긍정적인 점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식민지를 근대화하고 문명의 혜택을 가져다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서양학자들 가운데 양심적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유럽중심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온갖 엉터리 이론이나 주장을 내세우며 식민주의를 옹호하고 정당화한다.
사실 식민주의 문제는 제3세계 학자들과 서양학자들 사이에 원천적으로 첨예한 의견대립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물론 제3세계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무조건 식민착취에 돌리는 것도 옳지는 않다. 그러나 서양학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그럼에도 일부 국내학자들 가운데에는 이런 잘못된 서양이론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요사이 일부 학자가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나 '협력이론'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일제 시대에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친일파는 근대화를 추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근대화만 이루어지면 주권은 아무 관계도 없다는 식의 이야기이니 참으로 한심한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태도에는 현실정치적 이해관계도 관련되어 있겠으나 한 편으로는 서양이나 일본학문을 선진학문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일제의 식민시대를 경험했고 아직도 그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렇게 무비판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식민주의에 영합하는 태도는 참으로 몰지각한 일이다.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