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는 이미 알려진 방통위의 사과 결정문을 그대로 보도하면서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이를 계기로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등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보다 좋은 프로그램을 방송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내보냈다. MBC 노조는 "더이상 사측과 함께 갈 수 없다. 퇴진 투쟁을 벌이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원들 속여가며 '사과 방송' 튼 MBC 경영진
이날 MBC 경영진은 방통위의 '시청자 사과' 징계를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직후 '사과 방송을 저지하겠다'는 MBC노조의 강한 반발에 맞닥뜨리자 자회사인 'MBC 플러스'를 이용해 사과방송을 내보내는 등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가며 사과 방송을 강행했다.
이날 MBC 노조는 방송을 송출하는 서울 여의도 MBC사옥 2층 주조종실과 5층 뉴스센터 앞에 각기 조합원 40여 명을 배치하고 사과 방송 화면이 담긴 방송 테이프가 전달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조는 경영진이 보통의 뉴스 방식으로 사과 방송을 내 보낼 것으로 예상하고 MBC가 국가기간방송시설임을 감안해 주조종실을 점거하거나 물리력을 동원하는 등의 대응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경영진은 노조의 대응 방식을 간파한듯 MBC 자회사인 'MBC플러스'에서 주조종실로 영상을 송출하는 식으로 사과 방송을 냈다. 이에 앞서 편성국장, TV 편성부장 등은 방송 직전에도 테이프를 들고 주조종실 앞을 지키고 있는 노조원들을 찾아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MBC 노조는 사과방송 직전까지도 '방송 저지'를 확신하고 오히려 그에 앞서 <뉴스데스크>에서 엄기영 사장의 발언이 담긴 보도를 내보내야 하느냐로 보도국장 등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MBC 조합원들의 저항은 <뉴스데스크>가 끝나자마자 '사과 방송'이 나오면서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이에 MBC 조합원들은 분노를 넘어 경악한 분위기였다. 5층 뉴스센터 앞에서 농성을 벌이며 DMB 등으로 방송을 보던 노조원 40여 명은 밤 10시 40분께 <뉴스데스크>가 끝나고 사과 방송 고지가 나오자 "이게 뭐냐, 어떻게 된 것이냐"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곧 이어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PD수첩> 책임자 징계까지…'정권 눈치보기'"
이날 MBC 경영진이 노조의 반발을 감수하고 무리수를 둬가며 방통위원회의 징계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법원의 반론·정정보도 결정과 검찰의 압수수색, 일부 보수단체의 민사소송 등 <PD수첩>을 겨냥한 이명박 정부의 전면적인 압박이 가해지는 상황에서 파장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엄기영 사장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MBC의 미래를 총체적으로 판단해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MBC가 앞서 '정치 심의'로 규정해온 방통심의위, 방통위의 결정을 받아들인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엄기영 사장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PD수첩> 최종 책임자인 조능희 CP, 송일준 PD를 보직 해임하고 송 PD의 MC자격을 박탈하는 등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징계 결정까지 내린 것은 지나친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 해임하는 것을 보고 엄기영 사장이 졸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또 <PD수첩>을 빌미로 MBC를 겨냥하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검찰, 법원, 조·중·동 등 거대신문의 논리가 모두 동일한 상황에서 방통위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제스처'로 향후 파장을 줄여보고자 하는 '계산'도 '판단 오류'라는 지적이다.
이날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MBC PD협회는 "농식품부가 검찰에 PD수첩을 수사의뢰한 것, 법원이 정정 및 반론 결정을 내린 것, 방통위의 시청자 사과 이행명령은 얼굴이 조금 다를 뿐 몸통은 본질적으로 같은 '샴쌍둥이'"라며 "공영방송 MBC가 스스로 무릎 꿇고 항복하라는 요구를 서로 다른 표현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MBC 노조 "엄기영 사장 퇴진 운동 벌일 것"
'사과문'이 방영된 것을 확인한 직후 MBC 노조원들은 1층 로비로 내려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긴급 총회를 열었다. 박성제 노조위원장은 굳은 얼굴을 풀지 못했고 노조 집행부와 노조원들은 제각기 고개를 숙인 채 바닥만 바라봤다. 그간 '방송의 공영성'을 강조해온 엄기영 사장 등 MBC 경영진과 어느정도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노조로서는 배신감과 충격이 컸다.
MBC 박성제 노조위원장은 "죄송하다. 정상적인 경로를 통한 방송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사과방송이 나가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앞선 방송 보도에 대해서도 "노조 집행부가 잘못 판단했다는 지적을 수용한다"고 사과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엄기영 체제 출범 이후 노동조합은 사내외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원만한 노사관계를 위해 음양으로 노력해왔다"며 "그러나 앞으로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노동조합은 절대 함께 가지 않겠다. 경영진의 비굴함을 미리 밝히지 못해 결과적으로 이런 사태가 오게된 점 유감스럽다"고 했다.
그는 "엄 사장과 경영진은 MBC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정권의 압력에 굴복한 MBC의 적으로 규정하고 퇴진 운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노조는 "엄 사장이 밝힌 'MBC의 미래를 위해'라는 구호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며 "정권실세인 청와대의 누군가와 밀실에서 뭔가를 주고받았다는 의혹이 선명하다"고 주장했다.
<PD수첩>의 김보슬 PD도 발언에 나서 "경영진은 오늘 선택한 이 행위가 어떻게 평가받을지 잘 알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간 <PD수첩> 팀은 '경영진의 결정을 따르라', '올바른 판단을 할 것이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까지 지내왔으나 오늘의 결정을 보고 더이상 경영진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비판했다.
그는 "<PD수첩>은 엄기영 사장 퇴진과 공영방송 수호를 위해 끝까지 갈 것이라고 말씀드린다"며 "<PD수첩> 방송이 옳지 않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끝까지 믿고 지지해달라"고 호소했고 발언 도중 목이 메기도 했다.
한편 이날 MBC 노조의 총회 도중 MBC 내에 전투경찰차가 배치되면서 노조원들의 분노를 키우기도 했다.
노조원들은 "어떻게 언론사 사내에 전투경찰차가 들어올 수 있느냐"고 항의했고 경찰 관계자에게 "누가 요청해서 들어온 것이냐"고 따졌다. 이 와중에 "사측이 요청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안전관리국 책임자는 "사측에서 요청한적 없다"고 부인했다. 곧 경찰차는 노조의 항의에 MBC 사옥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13일 MBC노조는 특보를 발행해 △사과 방송 결정 경위 △사과 방송에 편법까지 동원하게된 경위 △심야에 전경버스를 회사에 배칱록 경찰에 요청한 경위 △향후 남부지법 판결과 검찰 수사에 대응 방안 등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인사개편안과 사내 혁신안등 사측이 제안한 모든 노사협의 일정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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