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씩 계속 되는 산행에 견디지 못한 몸이 퉁퉁 부어올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기만 했던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순간에도 내 마음은 그저 산에 머물러 있었다.
몇 주씩 이어지는 산행의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다른 촬영일정을 핑계 삼아 산행을 멈추고 쉬었던 날들도 나는 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산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산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산행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백두대간으로 들어가기 전 많은 신체적인 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내 몸은 계속되는 산행을 견디지 못하였다. 허벅지의 근육통은 끈질기게 계속되었고 무릎의 통증 역시 뼈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고통은 깊어지고 있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다. 뗄 수 없는 다리를 스틱에 기댄 채 걷고 걸었지만 길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길은 늘 내 앞에 있었다. 내가 걷기를 멈출 뿐이었다. 내가 걷기를 끝낼 뿐이었다. 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길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그 길을 걷지 않을 뿐이었다.
희망처럼 말이다. 희망이 존재하지 않아 희망을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지 않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길이란 걸을수록 살갑게 다가오는 것이다. 품을수록 깃드는 따스한 희망처럼 말이다.
이제 백두대간 산행의 반을 넘어섰다.
긴 산행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지나 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길게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지나 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욱 많게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산행의 반을 넘어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허벅지와 무릎의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 순간에도 말이다.
지난 5월 20일 이후 산에 머물러 있는 내내 산은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길을 품은 채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지나고 듣는 것은 오직 우리들 자신의 몫이라는 듯 구름을 따라 흐르고 바람에 흔들리며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땅 백두대간도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백두대간이 품고 키운 그 아름다운 숲들 또한 그저 바람에 흔들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무섭도록 조용했던 그 깊은 침묵 때문이었을까.
그저 산을 지날 때에는 들려오지 않던 울림들이 느껴지곤 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는 울림들도 있었다.
그 울림들이 때로 커지기도 했다.
그 울림들은 무엇일까.
깊은 산 고요한 숲을 지날 때마다 전해지던 내 마음의 울림은 무엇이었을까.
이 울림 때문일까.
산에서 내려와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산이 그립다.
사무치도록 그립다.
나는 백두대간의 반을 지난 이제야 이 이야기들을 서투르지만 아주 조금씩 털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야 겨우 내 마음 속에 울려나던 울림들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고 이제야 겨우 몸과 마음이 약간이나마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경부터 연재될 계획이었던 이 글이 8월이 된 이제야 실리는 것은 오로지 백두대간을 가벼이 본 나의 오만함과 무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행여 이 글이 연재되기를 기다리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과 본의 아니게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프레시안 측에도 마음 깊이 송구한 마음 전한다.
필자 이메일 : from-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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