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연재를 시작하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연재를 시작하며

[최창남의 '백두대간을 따라 걷다'] <1>

지난 5월 20일 이후 나는 늘 산에 머물렀다. 일주일에 3일 혹은 4일의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세탁을 하는 등 다음 산행을 위한 준비로 분주할 때에도 내 몸은 산을 걷고 있었다.

며칠씩 계속 되는 산행에 견디지 못한 몸이 퉁퉁 부어올라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기만 했던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순간에도 내 마음은 그저 산에 머물러 있었다.

몇 주씩 이어지는 산행의 누적된 피로를 이기지 못하여 다른 촬영일정을 핑계 삼아 산행을 멈추고 쉬었던 날들도 나는 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 산골을 열어주는 새벽에 빛이 닿은 지리산 ⓒ이호상

산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산을 떠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산행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는 백두대간으로 들어가기 전 많은 신체적인 훈련을 하였다. 그러나 내 몸은 계속되는 산행을 견디지 못하였다. 허벅지의 근육통은 끈질기게 계속되었고 무릎의 통증 역시 뼈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듯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고통은 깊어지고 있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다. 뗄 수 없는 다리를 스틱에 기댄 채 걷고 걸었지만 길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길은 늘 내 앞에 있었다. 내가 걷기를 멈출 뿐이었다. 내가 걷기를 끝낼 뿐이었다. 내가 가지 않을 뿐이었다. 길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그 길을 걷지 않을 뿐이었다.

희망처럼 말이다. 희망이 존재하지 않아 희망을 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지 않아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길이란 걸을수록 살갑게 다가오는 것이다. 품을수록 깃드는 따스한 희망처럼 말이다.
▲ 길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이호상

이제 백두대간 산행의 반을 넘어섰다.

긴 산행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지나 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길게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지나 온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욱 많게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산행의 반을 넘어선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허벅지와 무릎의 통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 순간에도 말이다.

지난 5월 20일 이후 산에 머물러 있는 내내 산은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저 길을 품은 채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지나고 듣는 것은 오직 우리들 자신의 몫이라는 듯 구름을 따라 흐르고 바람에 흔들리며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었다.

산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땅 백두대간도 내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 능선을 따라 만복대로 가는 길에 앉아 ⓒ이호상

백두대간이 품고 키운 그 아름다운 숲들 또한 그저 바람에 흔들리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말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무섭도록 조용했던 그 깊은 침묵 때문이었을까.

그저 산을 지날 때에는 들려오지 않던 울림들이 느껴지곤 했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는 울림들도 있었다.
그 울림들이 때로 커지기도 했다.
그 울림들은 무엇일까.
깊은 산 고요한 숲을 지날 때마다 전해지던 내 마음의 울림은 무엇이었을까.
▲ 숲에는 울림이 있다. ⓒ이호상

이 울림 때문일까.
산에서 내려와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산이 그립다.
사무치도록 그립다.

나는 백두대간의 반을 지난 이제야 이 이야기들을 서투르지만 아주 조금씩 털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야 겨우 내 마음 속에 울려나던 울림들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고 이제야 겨우 몸과 마음이 약간이나마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경부터 연재될 계획이었던 이 글이 8월이 된 이제야 실리는 것은 오로지 백두대간을 가벼이 본 나의 오만함과 무지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행여 이 글이 연재되기를 기다리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과 본의 아니게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프레시안 측에도 마음 깊이 송구한 마음 전한다.

필자 이메일 : from-it@hanmail.net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