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枼(엽)/桑(상)/乘(승)/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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枼(엽)/桑(상)/乘(승)/奔(분)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63>

전회에서 世(세)가 '잎'인 葉(엽)의 본래자라는 설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중간의 枼(엽)이라는 글자를 전제한 얘기다. 葉은 '풀'인 艸(초)가 의미 요소인 형성자임이 분명하고, 거기서 枼 부분이 발음기호이자 그 본래자가 되는 것이다. 다시 枼에서는 世가 발음이자 본래자고 木(목)이 의미 요소일 수밖에 없다.

枼은 <그림 1>이 옛 모습인데, '엽'이라는 발음과 함께 보면 윗부분은 世=劦의 변형이며 그것이 발음기호라고 할 수 있다. 葉에는 '섭'이라는 발음도 있는데, 이는 世 발음의 앞부분과 劦 발음의 뒷부분을 합쳐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림 1>은 '뽕나무'인 桑(상)의 옛 모습(<그림 2>)과 구분하기 어렵다. 桑은 木 위에 걸쳐 있던 세 개의 十이 세 개의 又(우)로 변형돼 지금 서로 다른 모습이 된 것이다. 操(조)·燥(조) 등의 발음기호로 쓰이는 喿(소)는 <그림 4>와 같은 모습이지만 桑의 역삼각형이 네모꼴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桑의 변형이다. 나무 위에 새떼가 올라앉아 시끄럽게 지저귀는 모습이라는 상형적 설명은 믿기 어렵다. 나무(木) 위에 입(口)을 세 개(여럿) 올려놓아 그런 의미를 나타냈다는 회의자식 설명도 전달력이 없다. 아무래도 桑의 또 다른 옛 모습(<그림 3>)과 비슷한 생김에 눈길이 더 간다. 한자에서 둥그런 모습이나 세모나 네모는 지금 도형에서처럼 명확히 구별되는 요소가 아니다.

桑은 뽕나무를 그렸다는 설명이지만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위의 十자나 屮(철)자 비슷한 것을 뽕잎으로 봐달라는 건가. 다른 나무라고 잎이 안 달렸을 리 없고 이 그림만 가지고 그것이 뽕잎이라고 규정할 근거는 없다. '뽕나무'라는 현재의 뜻에서 거꾸로 찾아올라간 것일 뿐, 그렇게 그려 놓고 '뽕나무'로 알아들으라는 것은 무리다.

그런데 뽕나무는 잎이 중요한 나무다. 옷은 천(옷감)에서 나오고 천은 실에서 나오고 실은 누에고치에서 나오는데, 그 누에고치가 되는 누에가 먹는 잎이 바로 뽕잎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농사와 누에치기가 農桑(농상)으로 나란히 일컬어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멀쩡히 木이 들어가 있는 枼이 '잎'의 뜻이라는 게 좀 이상했는데,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그 잎은 바로 뽕잎이고 枼은 뽕나무를 가리키는 글자다. <그림 1>(枼)과 <그림 2>(桑)가 구분되지 않았던 것은 그 둘이 같은 글자였기 때문이다. 본래는 木을 의미 요소로 해서 '뽕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였는데, 의미 요소 艸를 더해 '뽕잎'이라는 뜻의 형성자 葉을 만들었고, 뽕잎이 워낙 중요한 것이어서 그것이 나뭇잎의 대명사가 됐으며 마침내 일반적인 '잎'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葉의 아랫부분은 桑인 셈이다.

'오르다'인 乘(승)은 사람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림 5>를 보면 영락없이 그런 모습이다. <그림 6>도 같은 그림이다. 그런데 같은 그림을 놓고도 예쁜 처녀와 노파의 모습으로 다르게 보듯이, <그림 6>도 관점에 따라서는 다르게 볼 수 있다. 다리와 나뭇가지를 합쳐 양쪽에 十자를 분리해내면 위쪽에 또 하나의 十자가 드러난다. 다시 말해 乘의 옛 모습인 <그림 6>은 木 위에 十자 세 개를 얹은 枼=桑과 같은 글자다.

전회에서 卉(훼) 역시 十(사실은 才다)을 셋 합친 世와 같은 글자라고 했으니, 奔(분) 역시 그 파생자다. 그런데 이 奔에 대해서는 특히 코미디 같은 해석을 붙이고 있으니 한번 감상하고 넘어가자.

<그림 7>이 그 옛 모습이다. 아랫부분에 세 개의 十=才가 보인다. 그런데 <그림 8> 같은 모습이 문제다. 아랫부분이 세 개의 止(지)로 보이는 것이다. 奔은 '달리다'의 뜻이어서, '발'인 止는 의미상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인다. 윗부분은 사람이 달려가는 모습이니 奔은 발이 세 개로 보일 정도로 빨리 달리는 것을 나타낸 글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아직 코미디가 아니다. 역시 '달리다'인 走(주)는 <그림 9>와 같은 모습인데, 발의 개수만 다를 뿐 똑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발이 하나 그려진 走는 보통 속도로 달리는 것이고, 발이 세 개 그려진 奔은 아주 빨리 달리는 것이란다. 말하자면 走는 시속 10킬로미터, 奔은 시속 30킬로미터다.

정상급 마라토너가 40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풀코스를 달리는 데 두 시간 남짓 걸리니 대략 시속 20킬로미터쯤 되겠다. 走는 일반인의 마라톤, 奔은 초인의 마라톤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림 8>의 止로 보인 부분은 <그림 7>처럼 十=才로 봐야 한다. 그 세 개의 才, 곧 卉=齊(제)는 속도를 가리키는 계기판이 아니라 발음기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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