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꼿꼿한 보리 이삭이 가지런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이라는 글자도 있다. 齊(제)는 본래 중앙 아래쪽의 二 부분이 없는 글자였는데, 지금은 각기 모양이 달라졌지만 세 개의 같은 요소로 이루어진 글자였다. <그림 2>는 모양을 내느라 나란한 맛을 없애버렸지만 <그림 3>은 분명 나란한 모습이다. 지금 글자꼴을 기준으로 가운데 亠와 丫를 합친 게 그 하나의 모습이고, 왼쪽은 刀와 丨, 오른쪽은 알 수 없는 글자와 丨으로 제각기 바뀌어 전혀 가지런함을 찾을 수 없게 돼버렸다.
어떻든 그게 보리 이삭을 그린 것이라면, 來자의 모델이었던 보리와는 품종이 전혀 다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리를 모델로 했겠다. 마름모꼴이 이삭, 밑의 세로획은 줄기다. 나중에 추가된 二 부분은 그림이 점차 가지런한 맛을 잃어가면서 '가지런하다'라는 의미를 살리려고 집어넣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것 역시 '장면상형'이라는 것이다. 이 꼬리 달린 마름모꼴은 바로 才(재)자와 일치하는 모양이어서(<그림 4>), 齊는 才를 셋 겹친 글자로 보이는 것이다. 발음이 거의 비슷함을 말할 필요도 없다. '같다' '가지런하다'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상형 시대에 글자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才와 발음이 같아 그것을 가차해 썼다가 마침 의미가 그러니 글자 세 개를 겹쳐 표현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림 5>는 그것을 간략화한 모습이다. 그것은 <그림 6>과 구분하기 어렵다. <그림 6>은 世(세)의 옛 모습인데, <그림 7> 같은 모습을 거쳐 지금 글자꼴로 정착했다. 世를 卋나 丗로 쓰기도 하는 까닭은 이런 변화 과정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림 6>과 같은 모습에서 世는 十(십)을 셋 겹친 글자라고 한다. 30년을 1세대로 보는 관념을 끌어들인 것이다. 매듭지은 세 가닥의 줄이라는 얘기도 설명은 상형이지만 같은 관념의 소산이고, 나뭇가지에 매달린 세 개의 나뭇잎을 그려 葉(엽)의 본래자라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모양과 발음이 齊와 일치하는데 이런 상상력 자랑에 기댈 이유가 없다. 世=齊=3才다. 才는 옛 글자꼴에서 十과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그림 8>은 協(협)·脅(협)의 발음기호 劦(협)의 옛 모습이다. 이건 또 쟁기(力) 셋을 나란히 놓은 모습이라고 한다. 힘을 합쳐 일을 하는 모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力(력)이 쟁기가 아님은 이미 얘기했지만, 설사 그것이 쟁기라 하더라도 무척 추상적이어서 전달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글자 만들기다. 초성 ㅎ/ㅅ이 가까운 발음이고 받침 ㅂ이 떨어져나가기 쉬운 요소라고 보면 劦은 世의 변형이다. 힘을 '합하다'라는 의미는 '가지런하다'(齊)와 '세상'(世)의 두 의미를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다.
奔(분)·賁(분)의 발음기호인 卉(훼)는 芔가 본래 모습이라 해서 '풀'인 屮(철)을 셋 합친 글자로 보지만, 글자 모양과 발음이 世=劦과 비슷해 그 변형으로 봐야 한다. <그림 9> 같은 소전체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屮과 十을 구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災(재)는 川(천)의 본래자라는 巛과 火(화)를 합친 글자로 본다. 巛은 홍수를, 火는 화재를 나타내, 인간에게 가장 큰 재앙이었던 두 가지에서 '재앙'이라는 의미를 끌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 10>을 보면 윗부분은 川의 변형이라고 보기 어렵다. 川의 중간 부분에 一자가 질러져 있다. 이런 모습은 甾(치)의 윗부분도 마찬가지다(<그림 11>). 甾는 '꿩'이라는 뜻이지만 이는 가차로 보이고, 글자 구성으로 보아 '묵정밭'인 菑(치)의 본래 글자로 보인다. 그렇다면 윗부분이 발음기호가 되고, 災 역시 윗부분이 발음기호일 가능성이 높다. <그림 10, 11>에서 巛에 질러진 一을 좀더 길게 해보면 이 부분은 十을 셋 겹친 모습이 돼, 齊=世=劦과 같은 요소가 되는 것이다.
災의 윗부분 巛 역시 川의 다른 모습이 아니라 齊의 변형이고, 災는 巛=齊가 발음, 火가 의미인 형성자가 된다. 따라서 災는 일반적인 재앙이 아니라 '화재'가 본뜻인 글자다. 현대 중국에서 간화자로 뽑아다 쓰는 災의 이체자 灾는 집(宀)이 불(火)에 타는 것을 나타낸 글자라고 하나, 宀(면)은 '집'이 아니라 巛가 잘못 변형된 모습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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