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의제] 21세기 한미전략동맹을 어떻게 할 것인가
8월 5일 데니스 와일더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태평양 담당 선임보좌관은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상회담에서는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핵심의제"라고 했다. 이미 7월 31일 와일더 선임보좌관은 의제 중 하나가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변환) 문제'라고 했었다.
5일 기자와의 문답을 보자.
"한미 연합전력 변경과 기지 이전도 그런 맥락인가?"
"물론이다. 우선은 (한미 전력은) 한반도 방어가 최우선 목표다. 그 다음, 한미 전력이 변경 이후에도 한반도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음이 보장되면 한국군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미국을) 도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확한 핵심이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이고,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변경' 문제이며, 최근 용어로는 '주한미군 지위 변경' 문제이다.(보수 언론과 청와대는 굳이 '변환'이라고 해달라고 한다.) 주한미군은 대북억지력인가, 아니면 동북아신속기동군인가? 바로 여기에 대한 답변이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라는 것이다.
물론 6일 정상회담 후에 발표된 공동성명은 대단히 외교적이고 추상적이다.
"양 정상은 21세기 안보환경의 변화와 미래 수요에 보다 잘 대처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전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구조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물론 양국 정상 사이에 어느 정도 수준의 논의가 있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한다. 다만 미국이 바라는 결론은 '한국군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미국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함께 가자'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꿈꾸는 전략적 유연성의 최종결정판이다. 함께 갈 것인가, 아니면 따로 갈 것인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 1993년부터 '지역적 역할'은 강조되기 시작했다
1993년 제2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은 주한미군의 지역적 역할을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전쟁 억제와 동북아 지역안정 유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전까지는 "한국 안보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주축"이라는 표현에 머물고 있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바뀐 것이다.
2003년 11월 제35차 SCM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지속적으로 중요함을 재확인"하며, 2007년 11월 제39차 SCM은 "전략적 유연성 등 동맹 현안을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변화하는 안보환경과 양국의 미래안보 수요에 부합하도록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변환해 나가고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고 최종 정리했다.
그 이전 노무현 '행'정부는 2006년 1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의 전략대화를 통해 공동성명의 형태로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 수용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두고 마이클 그린 전 미국 NSC 선임보좌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의미에선 전두환, 노태우 정부)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한미 간 신뢰회복이라는 현 정부의 구호는 무가치하다.
[전략적 유연성의 개념] 장기적으로 양국군의 공동전개까지를 포함한다
2001년 10월 미국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프간 전쟁을 개전한 이후 미국은 당시 이태리에 주둔 중이던 173 공수여단을 아프간에 적시에 투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당시 이태리 정부는 각료회의 승인 등의 이유로 일주일 이상 절차를 지연시킨다. '압도적 무력'으로 조기에 전쟁을 종결시키려던 미국의 전략에 커다란 차질이 생긴 것이다. 일부에서는 공군기지 사용의 협조를 얻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미국이 절감하게 된 결정적 이유다.
더구나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의 전제되는 전 세계적 미군재배치의 '모범사례'이자 '모의사례'였다. 한국과의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제시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 군대 및 병참지원을 대한민국으로, 대한민국으로부터 또는 대한민국을 통해 배치 또는 배치해 내기 위한 유연성'을 의미했다. 이는 전쟁 발발 시나 우발사태 때나 교육훈련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이었다.
풀어 설명하자면 좁게는 주한미군의 전입과 전출, 주한미군 물자와 장비의 입출입, 좀 더 나아가면 주한미군의 한국 내 기지와 시설의 전속 혹은 공동사용, 더 나아가면 양국군의 공동전개까지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의 통제권 행사는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은 끊임없이 '지역 제한'이나 혹은 '사전협의' 등을 요구했지만 여기에 미국이 화답했다는 증거는 없다. 앞선 와일더 보좌관의 발언은 미국이 생각하는 전략적 유연성의 최종목표가 어디인지를 너무도 쉽게 드러내보였다.
[현재의 논쟁] 동북아지역분쟁 시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는가
여전히 논쟁의 불씨는 있다. 현재까지의 논쟁은 동북아지역분쟁 시 주한미군이 한국민의 의사에 반해 개입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당시 훈령의 최고책임자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과 협상의 최종책임자였던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장관의 해석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협상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동북아분쟁에 대한 개입가능성은 차단시키되 최대한 사전협의방안을 제도화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모호성 원칙'을 견지하도록 입장을 유지한다. 이런 부분은 당시 이종석 전 NSC 사무차장의 기자들에 대한 백그라운드 브리핑 발언록을 통해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 그래서 현시점에서 동북아지역분쟁에 있어서만큼은 전략적 유연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2006년 8월 27일자 최종입장이다.
하지만 외교통상부 입장은 처음부터 달랐다. 용산기지 이전의 비용분담 문제에 대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사실 용산기지 이전은 미국 측의 이전요구가 강력했고, 미국의 협상책임자였던 롤리스 부차관보는 최소한 '서로 다른 동기와 이유가 있었다'고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비용은 전적으로 한국 몫이었다.) 전략적 유연성 인정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다음에는 더 이상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에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구체적 훈령 없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각서의 초안을 미국 측에 건넸다가 국정상황실의 문제 제기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이런 입장에 선 외교통상부, 더구나 반 전 장관의 입장에서 전략적 유연성은 당연히 인정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다만 한국군이 따라갈 수 있느냐 마느냐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라는 것까지였다. 현재까지는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말이 진실이다.
문제는 미국과 이명박 행정부가 꿈꾸는 '한미전략동맹'의 내용이 전력의 일체화 혹은 공통의 지역안보동맹을 지향할 경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결국 한국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노무현 행정부 시절 제기된 미측 협상대표단 일각의 입장에서는 단계적 접근방법을 취하되 한국은 한국 방위의 주된 책임자로 미국은 동북아지역안정의 주된 책임자로 책임을 분담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지역안보동맹으로서 공동방위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법무부 의견]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필요로 한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 측의 선제적 요구였다. 2003년부터 한국 측에 요구하기 시작해서, 2006년 1월에야 공동성명의 형태로 동의를 받아냈던 의제였다. 물론 당시 노무현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가 사회적 논쟁으로 비화되고,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필요로 하며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사안임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워했다. 이로부터 파생된 논란에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대단히 투명하지 못했다. 밀실에서 이 문제를 만지작거리다 끝냈다. 이 문제를 공론화시켰던 이종헌 외교관은 정치적 보복에 시달렸다.
하지만 대한민국 법무부의 공식의견은 역사적 자료이다. 지난 2006년 2월 용산기지이전협정 위헌확인소송에서 헌법재판소에 낸 법무부의 의견 제시가 있었다. 2005헌마268사건에서 법무부는 "용산기지이전협정 제2조 제9항 이 협정의 목적상 임무와 기능이라 함은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합중국 군대의 임무와 기능을 말한다. 여기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정해진 임무와 기능이라 함은 타국이 대한민국의 행정지배 하에 있는 영토를 공격할 경우 미합중국은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아 이에 대응하여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주한미군의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군으로 기능하는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개정되지 않는 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법무부가 의견을 바꿀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한국과의 협상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외전개를 금지할 만한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미측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제4조를 근거 삼았다.(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 영토 내와 그 인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주한미군에 대한 배치여부를 미국의 수락(accepts) 여부에 중점을 둔 일방적, 배타적 권리로 이해한 것이다.
참고로 일본은 미일안보조약 제6조가 '극동지역 유사시'라고 규정하지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는 '태평양 지역 내 한국 또는 미국의 영토'라는 문구로 지역적 범위를 한정하고 있음을 밝혀둔다.
[근본과제] 한미전략동맹의 미래에 대한 토론과 비전 제시가 먼저다
주한미군의 지위 변경에 대한 근본적 문제는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우리 사회의 토론 부재, 확신 부재에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행정부는 한미동맹의 미래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인가. 공론화의 장을 펼쳐야 한다. 한국군과 미국군의 관계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좁은 의미로 주한미군의 역할을 어떻게 변경할 것이며, 그 역할 변화에 대응하는 한국의 태세는 어떻게 가져가겠다는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지금은 청와대 대외전략 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태효 교수의 이야기다.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성격변화에 대해 우리의 입장과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주한미군과 주일미군간 상호운용성의 제고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관건은 한국이 그러한 군사공조태세의 강화를 희망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인가가 문제인 것이다."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수 시절 자신의 입장이 정책으로 실현되길 희망한다. 더구나 반일감정이 극대화된 지금 일본 변수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 인정은 도리어 북측과의 대화에 있어서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통일 이후 주한미군의 주둔을 사실상 용인하는 입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대북적대시전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이 아니라 동북아신속기동군으로서의 주한미군이라면 훨씬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전협정의 한 당사자인 중국의 입장에서는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남주 교수는 "중국 변수를 고려하면 주한미군의 동북아기동군으로서의 재편에 대한 의구심을 감소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 한반도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는 기본입장을 계속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미동맹은 지금 엄청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안보동맹에서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각 분야로 폭을 넓혀야 함은 물론, 변화되는 국제정세에 조응하는 새로운 전략안보동맹에 대해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 그리고 6자회담의 진전에 맞춰 통일지향적인 평화프로세스에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도 우리의 과제다. 세계경제 13위 대국으로서 고양된 국민적 자의식과 강화된 국방력을 어떻게 평화적으로 이용해나갈지도 우리의 과제이다. 주한미군의 성격변화가 지역안보동맹이라는 단순한 전략동맹으로 이어질 때의 위험성 또한 누구나 예상하는 바고, 그렇다고 한미동맹 강화가 대한민국 외교안보질서의 핵심이라는 것 또한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토론이다. 공론화다. 절차다. 숨길 필요가 없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토론에 부치고, 공론을 이끌어가며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낼 때가 왔다. 이 점에서 노무현 행정부의 대미군사안보외교는 실패했다. 만일 이명박 행정부가 'ABR(Anything But Roh)'이라면 이 점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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