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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 후보는 왜 패배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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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복 후보는 왜 패배했는가

[창비주간논평] '교육대통령'이라는 수사의 함정

지난주 7월 30일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가 간발의 차이로 공정택 후보에게 패했다. 이로서 학생간 경쟁을 심화하고 사교육비를 치솟게 만드는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수도 서울에서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이번 교육감선거 결과는 6월 4일에 있었던 재보선 결과와 매우 대조된다.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 이해식 후보는 과반 득표에 성공하며 한나라당 후보를 13% 차이로 여유있게 따돌렸다. 그런데 7월 30일 있었던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후보는 보수 후보가 4명으로 난립한 상황에서 사실상 '촛불후보'로서의 상징적 지위를 독점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택 후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6월 4일 선거와 7월 30일 선거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이를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물론 7월 30일의 사회적 분위기를 촛불정국이 한창 가열되고 있던 6월 4일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6월초나 그때나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있으며, 더구나 '교육'은 이명박정권에 대한 불만이 제일 먼저 터져나온 영역이었다. 오죽하면 학생들이 '미친 소 미친 교육'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거리로 먼저 나섰겠는가.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전교조'와 '강남'의 프레임을 넘어
  
  교육감선거가 끝난 뒤, 많은 언론에서 선거결과를 '전교조'와 '강남'이라는 두가지 용어를 이용해 설명했다. 주경복 후보를 '전교조 후보'로 낙인찍은 보수진영의 집요한 공격 그리고 이에 호응한 '강남 아줌마'들의 몰표가 공정택 후보를 당선시키고 주경복 후보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의 '전교조 공포증' 조장이 주효했다는 주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보수진영에서 '전교조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기 전에도, 여론조사상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에게 거의 우위를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남 몰표'에 대한 해석 또한 매우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강남에서 두배 이상의 차이가 난 것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8개 자치구에서 공정택 후보가 우위를 보였다. 주경복 후보가 우세를 보인 지역에서도 공정택 후보와 10% 이상 차이가 난 곳은 3개 자치구에 불과했고, 5% 이내의 접전을 벌인 지역이 많았다. 즉 공정택 지지자들의 결집도보다 주경복 지지자들의 결집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이다.
  
  결국 '전교조'와 '강남'을 이용한 설명은 부정확하고 기껏해야 반쪽짜리에 불과하며, 이번 선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을 은폐할 위험성이 있다. 나는 주경복 후보가 공정택 후보에게 패배한 것은 이번 선거가 '정책선거'였기 때문이라고 보며, 교육감선거의 특성과 한계를 정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주경복 후보 본인과 선거캠프의 안이하고 게으른 정책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책선거에서 패한 주경복 후보
  
  강동구청장 선거는 명백히 정책선거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구청장이 한나라당 출신이건 민주당 출신이건 간에 정책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투표를 통해 순수하게 이명박정부에 대한 반감을 대중적으로 표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육감선거는 달랐다.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의 정책은 거의 극단적으로 상반되었으며,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서울시 교육이 크게 달라질 상황이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단순한 '이명박 심판론'에 경도되지 않고 '직관적으로' 이해득실을 계산했고, 2개월 전에 민주당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던 강동구민들이 이번에는 이명박 교육정책의 화신이라 할 만한 공정택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택 후보의 정책에 비해 주경복 후보의 정책이 가진 약점은 무엇이었는가? 주경복 후보의 정책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이 여러가지 있다고 보았다. 내 눈에 띈 약점들 가운데 선거결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 요소를 세가지 정도 짚어보자.
  
  첫번째 약점은 정책이 전반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정책만으로 보면 70대의 나이든 공정택 후보가 오히려 더 정력적이고 많은 일을 추진할 것으로 보였다. 자립형 사립고, 국제중학교, 일제고사, 수준별 이동수업, 교원평가, 영어교육개혁 등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것들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창의적 정책이라기보다는 이명박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에 가깝긴 하지만, 어쨌든 서울시의 교육을 나름대로 뒤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반면 50대의 젊은 주경복 후보는 반대하는 것만 많이 눈에 띌 뿐 도대체 서울시 교육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했다. 공정택 후보는 스스로 포지티브 공약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에게 '전교조 후보'라는 네거티브 올가미를 던짐으로써 상당히 효율적으로 선거를 이끌어갔다.
  
  두번째 약점은 '강남용 공약'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강남'은 단순히 지리적인 영역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선거결과가 보여주듯이, 강남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강남 이외의 지역에도 상당히 폭넓게 분포해 있다. 이들을 지지기반으로 삼은 공정택 후보는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도 상당히 선전할 수 있었던 반면, 이러한 지향과 가치관에 반하는 주경복 후보는 강남 지역에서 참패를 자초했다. 강남적 가치관에 따르면 어쨌든 수월성 교육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경쟁이 필수적이다. 이같은 강남적 가치관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수월성'을 수용하고 '경쟁'을 버리는 전략이 필요했다. 즉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최대한 경쟁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이같은 '비경쟁적 수월성 교육'에 가장 눈에 띄게 성공한 나라가 바로 핀란드이다). 그런데 주경복 후보는 '수월성'과 '경쟁'을 모두 버리는 오류를 범했고, 이는 대중에게 정책의 현실성을 불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세번째 약점은 장안의 최대 관심사인 영어교육 관련공약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경복 후보 선거캠프가 설마 우리나라 영어교육에 문제점이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닐 텐데, 현재의 영어교육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정말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공식 선거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영어, 학교에서 책임지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걸어 대조를 보였다.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딜레마
  
  그런데 이같은 주경복 후보의 정책적 약점들이 우연히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주경복 후보 진영이 이 선거의 의미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상당히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었다고 추정한다. 교육감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강조하기 위해 '교육대통령'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곤 했는데, 주경복 후보 진영에서는 이를 단순한 수사로 여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고 믿은 것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교육감은 초중등교육에서 거의 전권을 휘두를 수 있지만, 대학교육에서는 전혀 권한이 없다. 즉 제 아무리 초중등교육에서 경쟁을 경감한다 할지라도, 대학입시 경쟁은 교육감이 어찌해볼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입시 경쟁은 서울 학생들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경쟁을 경감해야 한다는 원칙론에 동의할지 몰라도 그 결과 자기 자녀들의 대학입학 실적이 저하될 가능성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 엄중한 사실에 대하여 주경복 후보 진영에서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해보았는지 의문이다.
  
  이번 선거결과를 '전교조'와 '강남'이라는 두가지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피상적이다. 강남을 타자화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게으른 설명을 제공할 뿐, 실질적으로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천적 지침은 없다. 내가 보기에 주경복 후보 진영은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한계를 정면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즉 대학입시 문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초중등교육만 좌우할 수 있는 교육감의 근본적 딜레마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내세운 정책은 결과적으로 반대파의 집결을 유도해내는 데는 효과적이었으나 지지자의 집결을 유도하는 데는 한계를 노출하고 말았다.
  
  이로써 이명박정부 교육정책의 기세를 꺾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일단 사라졌다. 여러개의 국제중과 자사고 설립이 인가된 뒤인 2010년에 다시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교육감이라는 직위의 딜레마와 선거정책의 대중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2010년에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을 저지할 기회를 잡기는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 나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이인규 후보의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선거운동 방법론상의 견해 차이로 7월 4일 정책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사임 직전인 7월 3일 《프레시안》에 〈주경복 후보는 촛불을 하이재킹하려는가?〉라는 글을 통해 주경복 후보의 정책을 비판한 바 있다. 이인규 후보의 정책은 시민사회단체들의 공동 정책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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