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주를 배웠고, 인간이 우주의 극히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광대한 우주에서 티끌도 되지 않는 우리가 놀랍게도 의식적으로 우주를 파악하고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의식과 우주의 연결, 아트만(Atman)과 브라만(Brahman)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네요.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정신현상이란 상상력과 논리적 추론을 포함하는데 우리 머릿속의 두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집단에서 일어납니다. 두뇌는 궁극적인 복잡계로서 수백억에서 천억에 이르는 신경세포들이 얽혀서 신경그물얼개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놀라운 협동현상이 떠오릅니다. 정보를 처리하고 생각하는 등 정신현상은 신경그물얼개에서 떠오른 집단성질이라 할 수 있지요.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신경세포들의 집단이 심지어 스스로 성찰하기도 합니다. 전체 우주, 그리고 우리 자신 및 정신현상 자체에 대해서도 해석하려 하지요. 참으로 놀랍고 생각할수록 수수께끼 같은 현상인데, 이렇게 스스로 성찰하는 메타적 기능을 통해서 이론과학도 만들어졌고 삶의 의미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과학을 통해서 엄청난 보편지식 체계를 구축했고 그에 따라 자연의 해석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기술이라는 행위능력을 얻었습니다. 과학의 응용이 매우 빠르게 앞서 나갔기 때문에 인간의 행위능력은 막대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 전체를 파괴할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한 능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판단해야 하며, 여기서 우리의 사명은 극히 중요합니다. 옛날같이 인간의 행위능력이 그리 크지 않을 때에는 판단을 잘못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인간의 행위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판단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완전히 파멸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를 잘 활용하면 한층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체 생태계를 개체에 비유하면 생태계에서 인류는 개체에서 세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위의 두 가지 가능성은 암세포와 신경세포에 비유할 수 있겠지요. 신경세포는 두뇌에서 우리 몸 전체를 파악하고 정신현상을 포함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는 메타 수준에서 인류를 포함한 전체 생태계와 우주를 고찰하게 됨을 뜻하지요. 반면에 암세포란 자신을 포함해서 전체를 파멸로 이끌고 갑니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인간이 암세포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이네요.
현대사회는 사회주의보다 신자유주의로 상징되는 자본주의가 우월하다고 증언하는 듯합니다. 사회주의라는 체재는 모두 망했습니다. 옛 소련은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너무 거리가 멀었지만, 아무튼 망해서 러시아라는 자본주의 국가가 됐고 중국도 명백하게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온세계가 자본주의로 된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워낙 우수하고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필연이고 이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사실 자본주의의 역사는 길지 않습니다. 대략 200년 남짓한가요? 길게 잡아도 300년에는 미치지 않으니 인류의 역사에서 보면 매우 짧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수백만 년이고, 역사 시대만 고려해도 수천 년이니까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유럽에서는 봉건체제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했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어느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자본주의도 많은 모순을 지니고 있으므로 언젠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세포가 정상 세포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암세포는 매우 우수한 세포입니다. 생존과 번식 등 생명의 기본 속성에서 정상 세포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세포가 일단 생기면 정상 세포가 사라지고 모두 암세포가 됩니다. 마치 세계가 자본주의화하는 현상과 비슷하지요. 그러나 암세포의 결말이 무엇인가요? 바로 죽음입니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암으로 만들어서 모두 같이 죽음으로 끌고 갑니다. 자본주의, 특히 무한경쟁을 지향해서 첫째와 꼴찌로 나누는 신자유주의는 암세포처럼 우수한 능력을 지니지만 인류를 어떤 길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림 6은 다시 에셔의 작품인 ≪판화 화랑(Print Gallery)≫입니다. 소년이 화랑에서 전시된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림에는 항구가 있고 건물이 있습니다. 건물 2층의 창가에는 소년의 어머니라는 설이 있는 아주머니가 밖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의 1층은 바로 소년이 있는 화랑이네요. 이 그림에서 소년은 보는 주체일까요, 보이는 대상일까요? 소년이 관람객으로 그림을 보고 있지만 소년 자신이 그림의 일부로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른바 야릇한 고리를 집대성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지성, 상상력과 논리, 과학의 발전과 자연의 해석 따위 문제가 포괄적으로 그려져 있는 듯합니다.
최후의 질문
이제 마지막으로 왔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최후의 의문은 무엇인가요? 아마도 인류의 최후의 질문은 이것이겠지요.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인류의 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답을 추구하였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분야, 예를 들어 문학, 예술, 철학, 종교, 그리고 과학을 통해서 그 답을 얻으려 노력해왔지요.
예술에서 이를 나타낸 것으로 유명한 고갱Paul Gauguin의 작품을 그림 7에 보였습니다. 제목이 바로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지요. 이 질문이 처음 문헌에 나타난 것은 불교 경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싯다르타가 품었던 의문이었다고 하지요. 그림에는 어떠한 답이 있는지 흥미롭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왼쪽 아래 갓난애가 있어요. 우리는 무엇인가? 성장한 어른이 나무 열매 따먹고 살고 있네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오른쪽에 끝에 죽을 날이 멀지 않아 보이는 늙은이가 있습니다. (나도 조만간 이렇게 되겠지요.) 이 그림에는 여러 가지 상징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에 이르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학이 보여주는 자연, 우주와 물질, 그리고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살피고 삶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가지기 바랍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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