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가치 관념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고 지적했지요. 과학 활동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해 있는 과학자 사회의 규범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 관념, 곧 시대정신과도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우리가 어떤 과학적 지식을 추구할지 동기와 방향은 기존 가치의 영향을 받아 정해집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신자유주의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지요. 그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뭘까요? 결국 돈, 그리고 권력이 아닐까합니다. 무한 경쟁을 통해 돈과 권력 전체를 지배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가치의 영향을 받으며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지요.
진정한 의미의 과학지식은 현재의 가치 관념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가치 관념과 무관하게 지식을 얻으면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게 됩니다. 이른바 객관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검증이 되면 새로운 가치 관념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겠고 이것은 기존가치보다 클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좀 의외라 할 수 있지요. 기존가치에서 출발하면 논리적으로 아무리 추구해봤자 다시 기존가치로 돌아와야 할 것 같은데 더 큰 가치를 얻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100에서 출발했는데 120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흥미로운 문제입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가치가 기존가치를 대체하고 이를 되풀이하면서 점점 가치가 커지게 된다고 겁니다. 곧 단순한 순환이 아니라 점점 커지는 나선형 순환으로서 이것이 바로 과학의 발전을 기술한다는 거지요.
여기서 기존가치보다 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순수한 논리로는 불가능합니다. 논리적 추론으로는 A에서 출발해서 그보다 큰 B가 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상상력으로는 가능합니다. 이는 과학에서 가치 관념이 상당히 느슨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순수논리 외에 가치 관념의 영향을 받는다면 과학이 뭔가 엄밀하지 않고 불완전하다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거기에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숨어있다고 할 수 있지요.
논리적 추론과 결정불가능성(undecidability)을 재미있게 표현한 구조를 호프스타터(Douglas R. Hofstadter)는 '야릇한 고리(strange loop)'라고 불렀습니다. 아래 그림 1에 보인 에셔의 판화 ≪그리는 손(Drawing Hands)≫을 보면 손이 펜을 가지고 손을 그리고 있는데, 한 부분만 보면 이상할 게 없습니다. 손이 그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전체를 보면 놀랍게도 그림을 그리는 손 자체도 그림의 일부입니다. 말하자면 그림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야릇하게도 어느 한 곳만 보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으나 전체를 보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딘가 잘못돼 있지요. 여러분이 만일 그 안에서 (그림의 일부가 되어서) 보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고 이상하겠네요. 실제로 여러분은 그림 위에서 전체를 보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을 금방 알 수 있는데, 이는 메타 수준(meta-level)에서 본다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논리의 잘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곧 논리 자신의 수준에서는 잘못을 찾을 수 없으며, 이는 현대과학에서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림 2도 비슷한데, 옥상에 계단이 있습니다. 역시 에셔의 작품으로 ≪오르내리기(Ascending and Descending)≫인데 사람들이 끝없이 계단을 올라갑니다. 한 바퀴 돌아서 계단을 계속 올라가는데 결국은 제자리에 오게 됩니다. 끊임없이 계단을 올라가고 있네요. 이것을 보면 그리스 신화에서 시시푸스(Sisyphus)가 생각납니다. 시시푸스가 돌을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굴러 내려가고 이것을 다시 반복하는 겁니다. 그리스 신화를 쓴 사람들이 이를 알았다면 이러한 계단에서 돌을 끝없이 굴려 올라가도록 나타내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였던 펜로즈(Lionel S. Penrose)와 펜로즈(Roger Penrose)가 처음으로 발표했는데 - 사실은 다른 사람이 그보다 먼저 고안했다고 하지요 - 아들 펜로즈는 호킹과 함께 '특이점(singularity) 정리'를 발표한 유명한 물리학자입니다. 그림 1과 마찬가지로 국소적으로는 잘못된 점이 없습니다. 한 단계 위에서 전체를 보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이것이 바로 이른바 나선형 순환, 야릇한 고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3도 에셔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폭포(Waterfall)≫입니다.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다가 물레방아에서 떨어지는데 원래로 돌아오게 되고 따라서 계속 물레방아를 돌릴 수 있겠네요. 말하자면 영구기관이 됩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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