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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쟁점: KTX의 경우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83> 과학과 기술 ②

핵심 쟁점

현대 사회에서 기술에 관련된 핵심 쟁점으로 여러 가지 들 수 있겠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기술과 관련된 쟁점에는 어떤 것들이 생각나나요?

학생: 인간복제요.

좋아요. 일반화해서 말하면 유전공학 기술이죠. 그리고 또 뭐가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핵 문제가 걱정이잖아요? 이른바 핵에너지. 그리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학생: 사생활 침해요.

사생활 침해란 결국 인권의 침해 문제죠. 그리고 덧붙이면 환경 문제를 생각할 수 있겠지요. 환경과 생태계 문제. 이런 것들이 현대 사회에서, 특히 우리나라에서 핵심 쟁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유전공학은 분자생물학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은 근본적으로 양자역학에 바탕을 둔 것이지요. 한편 핵에너지는 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두었고요. 그리고 환경과 생태계는 여러 가지로 복합적입니다. 인권 침해 문제는 대부분 전자기술 때문에 생겼고, 전자기술은 기본적으로 역시 양자역학입니다. 반도체, 컴퓨터 따위 모두 양자역학과 관련되지요.

인권 침해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요? 몇 해 전에 '나이스'인지 '네이스'인지 하는 것이 있었지요.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요새 우리말 이름을 버리고 영어 약자를 쓰는 것이 유행인 듯합니다. 사기업 회사는 그렇다 해도 공기업, 그리고 정부 기관과 학교에 이르기까지 국적 불명의 야릇한 용어와 로마자 약어가 난무하는데, 글쎄요, 그런 것이 세계화이고 미국화인가 보지요. 아무튼 국가교육정보체계라고 하면 될 텐데 NEIS로 쓰고는 나이스로 읽어야 되는지 네이스로 읽어야 되는지 싸우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마트카드(smart card)라는 것 들어봤죠? 생체 인식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기술의 통제가 가능한지는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을 겁니다. 집에서 뭐 했고, 아침에 뭘 먹었고, 잠은 몇 시간 잤고, 무슨 책을 봤고, 몰래 어디에 침을 뱉었고, 누구와 만나서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다 나오겠지요. 정보의 통제는 참 두려운 문제인데, 그것이 집중화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진행한다면 정말 무서운 사회가 될지 모릅니다. 전체 사회 구성원이 저항해야 할 문제이지요. [최근에는 여권에 생체정보를 수록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자여권은 심각한 문제의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지요.]

한편 환경과 생태계의 문제는 갈수록 자주 나오는데, 이른바 개발이냐 보존이냐 문제와 관련되어 있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몇 년 동안 계속 불거진 문제로 새만금 간척이 대표적이고, 지율스님 때문에 유명해진 천성산 터널 문제도 있습니다. 사실 서울대학교도 캠퍼스 확충 공사와 관련해서 관악산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최근에는 한반도 대운하라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얘기까지 나왔지요.]

이런 예를 들자면 끝도 없지만, 여러분은 새만금이나 천성산 문제 같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지요?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고 사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개발해서 이용하며 사는 게 좋겠어요? 어느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학생: 장기적 안목으로 봤을 때는 개발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하면 결국 잘 될 테니까 개발하는 게 좋겠다, 여기에 반대하는 학생 있어요?

학생: 환경오염이 불가피하다면 그 필요 정도랑 개발 이익 정도를 따져서 얼마만큼 개발하고 얼마만큼 안 할 건지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환경 파괴가 될 것 같으면 나중에 기술이 발전해서 무공해 형식으로 손실을 적게 주면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더 나을 것 같고요.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내려면 과학에 대한 이해가 정말 중요합니다. 예컨대 지속가능성에 대해 과학이 우리한테 무엇을 말해 주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 사회는 도대체 과학적이지가 않습니다. 과학이란 말을 자주 언급하고, 모든 게 과학 - 생활도 과학이고, 침대도 과학 - 이라고 떠들지만, 사실은 한 번도 과학적인 적이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 같은 문제는 과학이 나빠서 생겼으므로 과학을 때려 부숴야 한다는 생각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 사회가 과학적이지 않아서 생겨나는 거지요. 다시 말해서 과학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본격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예를 들어 새만금 간척 사업이나 천성산에 경부고속철도 터널을 건설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 여러 가지 과학적 면에서 고려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 우리 삶을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는지를 과학적 사고로 평가하자는 거지요.

새만금 사업은 논란이 많았으므로 무언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무엇이 얼마나 문제인지는 개발논리에 파묻혀 버렸지요.) 반면에 경부고속철도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없는 듯, 아무런 논의조차 없네요. 그러나 사실 그것도 문제점이 많고 반성해야 할 사업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건설비가 얼마쯤 들게 될 것 같아요? 아직 잘 모르지만 원래 예상의 두 배가 훨씬 넘으리라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10조 원 아래로 얘기했는데 지금은 24조 원쯤 되던가요? 중국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에 고속철도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기존 경부선이 445 km이고 고속철도는 이보다 조금 짧은데 베이징과 상하이 사이는 훨씬 멀어서 1000 km가 넘을 겁니다. 그런데 건설비가 십 몇 조 정도로 추산됩니다. 희한하게도 같은 길이로 비교하면 경부고속철도 건설비가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 건설비의 세 배는 되는 것 같네요.

왜 그럴까요? 돈을 많이 떼어먹었기 때문이라고요? 글쎄요, 그런 면도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산악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경부고속철도 구간의 70% 가량이 다리와 터널입니다. 조금 과장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지하철 및 고가철로를 놓은 거지요. 그런데 건설 및 유지보수도 문제지만 특히 터널의 경우는 공기의 저항 문제가 심각합니다. 긴 터널에서 열차가 달리면 나들통 속의 나들개 같이 공기를 압축하게 되므로 속도를 제대로 낼 수가 없고, 반면에 에너지는 엄청나게 쓰게 되지요. 고속철도가 전기를 얼마나 쓸 거 같아요?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주도 전체에서 쓰는 전력이 경부고속철도가 쓰는 전력의 불과 두세 배 밖에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로 막대한 에너지를 쓰는 거지요.

따라서 고속철도의 문제는 막대한 건설비 뿐 아니라 운행비도 엄청나게 든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세계화'에 발맞추어 KTX라는 영어 이름을 붙인 고속열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데 요금이 얼마죠? 5만 원쯤 받나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10만 원 정도 받지 않으면 수지를 맞추기 어려울 겁니다. 호남선 경우는 한번 운행할 때마다 수천만 원을 손해 본다고 하지요. 그러니 건설비는 고사하고 운영만으로도 하루에 수억 이상, 해마다 엄청난 적자가 쌓이니 국가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겠네요.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기존의 경부선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새마을호가 얼마나 걸렸는지 알아요? 가장 빠른 것은 4시간 5분 걸렸습니다. 그런데 경부고속철도로 다니는 고속열차는 얼마나 걸리나요? 현재 가장 빠른 것은 2시간 40분이지만 대부분 세 시간 걸립니다. 결국 새마을호에 비해서 불과 한 시간 남짓 단축했네요. 글쎄요, 20조 원 들여서 한 시간 단축하는 게 정말로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서울 시내를 관통해서 서울역까지 나가는 데 보통 한 시간 이상 걸리는데, 이를 단축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중요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고속열차 때문에 새마을호는 느리게 바뀌었습니다. 새마을호가 네 시간 만에 부산까지 가면, 한 시간 단축하기 위해서 요금이 비싸면서 앉는 자리는 좁고 불편한 고속열차를 누가 타겠습니까? 그래서 새마을호를 옛날 무궁화호처럼 다섯 시간 정도 걸리도록 늦추고 운행회수도 크게 줄여서 타기 어렵게 만들었지요. (이에 맞추어 무궁화호의 운행 시간은 통일호 수준으로 바꾸었나요. 통일호는 아예 없애버렸지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고속철도를 놓지 않고서도 기존의 경부선을 전철화하고 개량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열차가 고속철도에 비해 빨리 달리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철도의 굴곡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속철도는 직선화가 필요하고, 따라서 산악 지형에서 다리와 터널을 많이 건설하게 되는데, 이는 건설비 및 유지비가 높아지는 원인이 됩니다. 기존의 경부선은 반대로 다리와 터널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굴곡이 많은 거지요. 그런데 굴곡이 있어도 속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기울이기(tilting) 열차로 굴곡이 있는 부분에서 열차를 적절히 기울이는 겁니다. 물리를 배운 학생은 구심력이라는 것을 기억할 겁니다. 커브를 돌려면 구심력이 필요한데, 열차를 도는 안쪽으로 기울이면 중력이 구심력의 역할을 하게 되므로 속도가 높아도 무리 없이 커브를 돌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기울이기 열차를 이용하면 기존의 경부선을 전철화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세 시간 이내에, 아마도 두 시간 반이면 주파할 수 있습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논리 이전에 순수하게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경부고속철도가 얼마나 잘못된 사업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도 경부고속철도를 놓는 비용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철도를 고속화할 수 있을 겁니다.

고속철도를 처음 입안한 게 언제였죠?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는데,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이제는 될 수 있으면 고속철도를 타도록 유도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그럼 당연히 운임을 올릴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철도공사 - 이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화'해서 Korail이라고 하든가요 - 재정이 파탄이 날 겁니다. [그래서 이른바 적자 노선은 운행을 크게 줄이거나 아예 중단해 버렸고, 적자 역은 모조리 폐쇄해 버렸지요. 공공성을 이렇게 내던지면 도대체 세금을 걷어 가는 정부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네요.] 더 희한한 것은 고속철도 노선이 경주에 들르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속철도의 핵심은 부산까지 최대한 빠르게 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대구에서 부산까지 직선으로 가야 하는 건 코흘리개에게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경주로 돌아가게 만든다니 천성산 터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시간이 15분에서 20분은 더 걸리고 그만큼 에너지도 더 듭니다. 모두 개통되어도 현재보다 20분가량 밖에 줄어들지 않겠지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건데, 참 답답합니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비과학적, 아니 반과학적일까요? 과학의 핵심은 합리성이고, 이는 별다른 것이 아니라 단지 올바른 상식을 의미합니다. 경부고속철도는 과학적 사고, 쉽게 말해서 상식에 배치됩니다. 경주를 거쳐 가야 경주가 발전한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고속철도가 지방의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서울 집중을 오히려 심화시키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대구를 지나는 승객 중에 사실 경주에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부산에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그 모든 승객들의 시간과 운임 낭비는 엄청난 거죠. 경주를 위해 좋은 방법은 대구에서 기존 대구선과 중앙선을 경유해서 경주까지 가는 철도를 복선 전철화하는 것입니다. 대구에서 갈아탈 수도 있고, 일부 열차편은 경주로 가게 해도 되겠죠. 경주로 돌아가게 고속철도를 건설한 후에 몇 년 지나면 대구에서 부산까지 직진하는 노선을 또 놓을 겁니다. 그럼 경주를 거쳐 가는 노선은 거의 안 쓰게 되겠죠. 이렇게 하면 엄청난 액수의 세금을 낭비할 뿐 아니라 아무 의미 없이 환경도 파괴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지 보여 주는 사례라 하겠습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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