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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성린 의원, 당신이 창피합니다"

[기고] 종부세가 창피하다고?

이명박 정부의 주요 인사들,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대표적인 부동산 시장만능주의 학자들, 보수 언론들이 총궐기한 느낌이다. 무엇을 위해?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현 여권 인사들은 보유세 무력화 카드를 내밀었다가 도로 집어넣곤 하는 '치고 빠지기' 식 행태를 여러 차례 보였지만, 이번에는 그 의지의 결연함이 도드라진다.
  
  엉성하고 치졸한 현 여권의 보유세 무력화 전략
  
  그러나 의지의 결연함에 비해 이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나 논리는 너무 엉성하고 치졸해서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간의 언행을 종합해 보면, 이들이 타깃으로 삼는 것은 분명 종부세를 중심으로 한 보유세 강화 정책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정부 여당이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종부세 감면은 물론이고, 종부세 부과 기준의 상향 조정, 세대 합산의 폐지, 장기적으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재산세와 통합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 방안들은 모두 종부세 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치들이다.
  
  최근에는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이 국회 답변 과정에서 종부세 부과 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해서 검토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고, 주무 장관인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조세제도를 부동산 정책에 쓰는 것은 …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종합부동산세 인하에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는 종부세를 후퇴시키겠다는 말을 감히 하지 못한다. 대신 이들은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자의 양도세를 완화해 준다든지, 재산세 강화를 중단한다든지, 1세대 1주택 장기 보유 은퇴 고령자의 종부세를 면제해 주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계속해서 변죽을 울려댄다.
  
  소위 '선의의 피해자'들과 '서민'들을 빌미로 계속 제도에 '구멍내기'를 하다가, 때가 되면 종부세 제도의 근간을 허물어 버리려는 속셈이 엿보이는 치졸한 전술이다. 종부세가 정말 문제 있는 제도라면 그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설명하고 당당하게 폐지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옳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까지 현 여권 인사들 가운데 종부세를 비롯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력화시켜야 할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지역구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한나라당 강남 출신 의원들이 내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검토할 가치가 없다). '논리적 이유는 간데없고 당위(當爲)만 나부끼는' 이상한 상황이 몇 달 간 계속되어 온 것이다.
  
  검토할 가치가 있는 강만수 장관-나성린 의원의 질의 응답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적 이유는 무엇일까 애써 찾다가, 마침 7월 28일 국회 민생안정대책 특별위원회에서 강만수 장관과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이 주고 받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나성린 의원은 강만수 장관에게 질의하면서 "종부세는 지난 정부에서 고액 재산가들에게 징벌적으로 부과한 높은 세금이다. 세계 역사상 없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징벌적인 세금이다", "부동산 보유과세를 강화해서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 사례가 있는가?",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금융정책으로 하는 거다", "재산세는 모든 나라가 지방세고 단일세율이다", "우리나라만이 누진세로 하고 있다. … 이런 나라가 없다", "부동산 세금을 조금 낮추자는 것은 부자를 위해서 낮추자는 것이 아니고 징벌적인 조세를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라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재정학자로서 창피해 죽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강만수 장관은 "조세제도를 부동산 정책에 쓰는 것은, 물론 어느 정도 영향이 있겠지만 적절치 않다", "부동산 투기는 투기대로 막지만, 조세 정책은 원래 고유한 기능으로 써야 한다", "과문한지 모르겠지만 조세 정책을 통해서 부동산 안정을 위한 정책을 쓰는 나라는 선진국에서는 별로 없다"고 화답했다.
  
  짧은 시간 이루어진 질의 응답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이긴 하지만, 종부세 폐지의 논리적 근거가 비교적 분명하게 들어 있어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두 사람이 주고 받은 이야기의 핵심은 '부동산 보유세를 부동산 가격 안정화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처럼 국세 보유세를 누진세율로 부과하는 나라는 없다. 종부세는 참여정부가 고액 재산가들을 겨냥해서 도입한 징벌적 세금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재산세는 모든 나라가 지방세'라는 말은 거짓말
  
  나성린 의원이 한 말 가운데, 재산세는 모든 나라가 지방세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OECD 국가만 따져도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멕시코, 슬로바키아 등이 국세 보유세를 징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만이 누진세로 하고 있다는 것은 지나친 과장이다. 보유세 누진과세는 우리나라 제도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이런 성격의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부동산 세제로 유명한 대만은 토지 보유세를 누진세율로 부과하고 있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주장하는 대로 종부세를 부동산에 부과하는 부유세로 취급한다면, 고액 재산가에게 누진세율로 세금을 부과하는 나라는 더 많아진다.
  
  사실 보유세 제도는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유세를 지방세로 하는 나라가 많다는 것과, 선진국일수록 보유세 부담이 무겁다는 것을 제외하면, 각 나라의 보유세 제도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보유세를 100% 국세로 징수하고 있으며, 영국은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 지방세인 카운슬세(council tax)를 부과하고 사업용 부동산에 대해서는 국세인 사업용 레이트(non-domesticated rate)를 부과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이런 경우에 대해 나성린 의원이 어떻게 평가할지 무척 궁금하다.
  
  재정학자로서 정말 창피하게 여겨야 할 것은 우리나라 보유세 부담이 매우 낮다는 점, 부동산 세입 구조가 보유세는 낮고 거래세는 지나치게 높은 기형적 구조를 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 나성린 의원은 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단기 가격 조절 정책 아니다
  
  부동산 조세를 부동산 가격 안정화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금융정책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반은 맞다고 하는 이유는 단기적인 가격 조절을 위해 부동산 조세제도를 개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주택 담보 대출 규제와 같은 미시적 금융정책은 단기적인 가격 조절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결코 단기적인 가격 조절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이 아니다. 참여정부의 보유세 강화 정책도 단기적으로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 참여정부가 보유세를 단기 정책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2017년까지 보유세를 계속 강화하는 장기 로드맵을 만들어 법제화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는 일이다. 단기 정책이라면 집값이 오를 때는 강화하고 내릴 때는 완화하는 것이라야 할 텐데, 장기간 지속적으로 강화하도록 되어 있으니 말이다. 참여정부가 보유세를 집값 잡기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공격을 퍼붓는 것은 전형적인 허수아비치기다.
  
  오히려 현 여권이 부동산 조세 정책을 단기 정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종부세 제도 개편 방침을 밝히면서도 부동산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번 천명했고, 보유세 완화를 통해 침체 기미를 보이는 부동산 시장과 건설 경기를 활성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이니 말이다.
  
  부동산 정책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보유세 강화 정책
  
  부동산 조세를 부동산 가격 안정화의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금융정책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대해, 반은 틀렸다고 하는 이유는 부동산 가격 안정화는 단기 가격 조절 정책뿐만 아니라 정책 인프라, 즉 장기 정책을 필요로 하며, 여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보유세 강화 정책이기 때문이다. 보유세 강화 정책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함으로써 투기를 근절하고 부동산 가격을 장기적으로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다. 보유세 부담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나라들은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책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는 나라들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나라는 이 중요한 정책 인프라는 갖추지 않은 채, 부동산 값이 폭등할 때는 온갖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투기 억제에 나서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할 때는 그 동안의 투기 억제 정책을 전부 철회하고 적극적인 부동산 시장 부양 정책을 펼치는 일을 반복해 왔다. 역대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보유세 강화의 의지를 보였지만, 그때마다 기득권층의 조세저항에 부딪쳐 좌절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 정책 인프라를 최초로 구축하는 데 성공한 정부가 바로 참여정부다.
  
  보유세 강화 정책의 후퇴는 부동산 정책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일
  
  정부 여당이 종부세를 중심으로 한 보유세 강화 정책을 무력화시킨다면, 그것은 어렵게 구축한 소중한 정책 인프라를 허물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엄청난 실책이 될 것이다.
  
  나성린 의원은 창립 이후 꾸준히 보유세 강화를 주장해 온 경실련의 정책위원장 출신이다. 그러므로 나 의원은 현행 보유세 강화 정책에 대해 창피해 죽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장기 정책으로서의 보유세 강화 정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밝히는 것이 순서다. 만일 그가 보유세 강화 자체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면, 필자는 부동산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로서 '나성린 의원, 당신이 창피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보유세 누진과세는 1990년부터 시작된 일
  
  사족을 덧붙이자면, 누진세율로 고액 재산가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의 기원은 참여정부의 종부세가 아니다. 1990년 종합토지세가 도입되면서 보유세 누진과세가 본격 시행되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한 일은 토지ㆍ건물의 통합과세를 실현하면서 보유세의 형평성을 달성했고, 기존 보유세의 누진 구조의 윗부분을 국세로 포착해서 종합부동산세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과표 현실화를 추진한 것이다. 혹 나성린 의원이 보유세의 누진 과세를 두고 창피하다고 말했다면, 과거에 그런 '창피한 제도'에 대해 그가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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