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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보내서 'People said that…'하게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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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보내서 'People said that…'하게 해야죠"

[정세현의 정세토크] <2> ARF 파동과 '금강산' 대책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회의를 계기로 남북관계가 오히려 나빠지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10.4 남북정상선언에 입각해 남북대화가 잘되기를 적극 지지한다는 표현을 빼는 과정에서 그렇게 돼버렸어요.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대체 뭐냐는 얘기가 북쪽에서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대북 메시지가 혼란스럽다는 게 북쪽 사람들 얘기였습니다. '어느 것이 진심이냐. 이때는 이 말하고, 저때는 저 말하고 하는데, 뭐가 진심이냐.' 또 5월 초 얘기지만, 내가 평양 갔을 때 '청와대 얘기 다르고 한나라당 얘기 다른데 어떻게 되는 거냐'면서 혼란스럽다는 거예요.

7월 11일 연설은 이명박 대통령의 이전 대북정책에 비해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뀐 겁니다. 6.15선언과 10.4선언에 대해서 '존중한다고 한 적도 없지만 부정한 적도 없다'면서 중요한 건 기본합의서라고 말했던 것에 비해, 북쪽의 요구가 백 프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6.15와 10.4선언의 이행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정도로까지 나갔으니까 상당히 전향적으로 바뀐 겁니다. 비핵-개방-3000 얘기도 빠졌거든요.

그런데 금강산 문제 때문에 10.4선언 얘기를 ARF 의장성명에서 빼려다 보니까...의장국 입장에서는 상호주의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10.4선언에 입각한 남북대화의 진전을 적극 지지한다는 대목을 빼버렸단 말예요. 북에서 볼 때는 11일 얘기와 또 다른 얘기가 나온 겁니다. 보름도 안 돼서 뒤집어지니까, 그럼 본심이 뭐냐는 얘기를 반드시 하게 돼있다 이겁니다.

지금 청와대는 '우리는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외교부가 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데, 차라리 그게 실체적 진실이라면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그건 책임소재 규명과 문책으로 끝나는 문젭니다. 난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청와대가 일체 관계 안 했다고 해야 대통령의 입장이 삽니다. 대통령 국회 연설이 유효하다는 얘기를 하려면 청와대 무관이 입증돼야 합니다. 그럼 북쪽도 할 말이 없습니다. 외교부는 원래 모든 문제를 국제사회와 협조한다면서 이 나라 저 나라에게 부탁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칩시다. 이번 ARF 문제가 어떻게 정리될지 모르지만, 차라리 청와대는 진짜 몰랐었다는 식으로 결론이 난다면 남북관계와 관련해 혼란스럽다, 의심스럽다, 진정성이 없다는 얘기를 북쪽도 할 수 없게 되고...그렇게 되길 제발 바랍니다.

그런 식으로 빨리 정리가 돼야 합니다. 10.4선언과 금강산 문제가 차원이 다르고 별개의 문제이고 성격도 다른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사실상 연계가 돼버렸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금강산 문제가 풀릴 수 있는 모멘텀이 그럭저럭 형성될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악화 가능성이 더 커졌습니다.

북한이 '사과' '유감' 표명했던 과거 사례들

어쨌든 금강산 문제는 긴 호흡으로 한 번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과거에 북쪽이 남쪽에 대해 조금 잘못을 해서, 시인-사과-유감표명 같은 것들을 했을 때, 일정한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해결 수순을 밟을 수 있었다는 것을 한 번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11일 일어난 사건인데, 최소한 한 달은 지나야 하지 않겠나하는 감이 옵니다.

76년 8월 18일에 있었던 미군 장교에 대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는 이틀만엔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이름으로 미국에 직접 사과를 했었어요. 워낙에 미국이 세게 나가니까. 항공모함 띄우고 전투기 2개 대대가 오키나와 같은 데서 들어오고 그랬거든요. 실제로 북한을 칠 것 같은 움직임이 감지되니까 김일성 이름으로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고 그랬는데, 내 기억에 한 이틀? 굉장히 빨리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 남북간에 일어났던 사건 중에 인공기 게양 사건이라는게 있습니다. 95년 6월 25일 북에 쌀을 보내기 위해서 2000톤을 싣고 동해항을 출발한 첫 배인 씨-아펙스호가 북한에 들어가는데, 북측 군인이 남북간의 합의를 모르고 인공기 게양을 강요한 사건이 있었어요. 26일 새벽에 사건이 일어났는데, 짐을 다 풀고 돌아온 후인 30일에 결국 북한이 사과했습니다. 굉장히 빨리 했어요. 쌀 때문에 그랬어요. 쌀이 15만 톤이 계속 들어가야 하는데, 2000톤 싣고 들어간 배를 그렇게 만들어 놓고 다급하니까 사과를 한 겁니다. 당국자도 아니고 대외경제정책추진위원회 무슨 고문 이름으로 했는데, 어쨌건 북한에 민간은 없으니까 그건 뭐 시비할 거 없습니다.

96년 6월 18일 정동진 해안에 나타난 잠수함 사건 때는 사과를 하는데 딱 100일이 걸렸어요. 12월 29일엔가 사과성명이 나왔을 거요. 그것도 외교부 대변인 이름으로. 그때는 통미봉남 시대이다 보니까 통전부라든지, 아태라든지, 대경추, 민경협 같은 걸 쓰지 않고 느닷없이 외교부 이름으로 해서 미국한테 사과를 했다고.

그 담에 2002년 6월 29일 서해상에서 꽃게잡이가 한창 진행되던 때에, 월드컵 결승전 하루 전날 서해교전이 일어났잖아요. 거기에 대해선 핫라인으로 바로 그 다음날 '평양과 무관하니 오해 없길 바란다'고 얘기해 놓고도, 7월 25일 날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 이름으로 남측 수석대표인 통일부 장관 내 앞으로 사과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주 사이가 좋을 때도 26일이 걸린 겁니다. 사이가 나쁠 때는 100일이 걸린 거죠. 남북관계가 당국 차원의 핫라인이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을 때도 26일, 남북관계가 끊어졌던 통미봉남 시절에 100일 걸렸던 걸로 보면 이번에도 일정한 정도의 시간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한없이 기다린다고 그냥 삭아서 저절로 어떻게 무슨 해결책이 나오는 건 아니고, 역시 뭔가 움직여야 하는데, 북한이 먼저 움직일 것이냐 우리가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 2006년 핵실험 이후에도 직항로를 통해 방북길에 오르고 있는 민간단체 회원들 ⓒ연합뉴스

책임은 누구에? 해법은 어떻게?

기본적으로 잘못한 것은 물론 북한이죠. 금강산에 간 관광객에 대해서는 2004년 1월 29일자로 체결된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에 의해 신변안전이 보장되게 돼 있습니다.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전투복이나 운동복 차림도 아니고 150여 센치의 왜소한 체구에 검은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어서 위험분자가 아니라는 것이 육안으로 쉽게 식별 가능한 상황에서 두 발 이상의 총격을 가했다는 것은 입이 열 개라도, 백 개라도 북한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2004년 출입 및 체류 합의서를 보면 11조에는 관광지역 이외의 지역으로 출입하는 문제에 관해선 자기네 규정을 적용한다고 아주 포괄적으로만 돼있어요. 그러니 북한은 아마 나중에 법리 시비가 나오면 11조에 의해 총격을 가했다고 핑계를 대겠죠. 합의서 10조는 관광지구 펜스 안에서의 얘깁니다. 거기서는 철저히 보호를 받고 문제가 있어도 현대아산에 인계해서 남쪽에 보내고 처별 결과를 통보해주면 되게 돼있어요. 그러니 북쪽은 11조에 저촉된다고 떼를 쓰고 그러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여자고 그러면 일단 위협사격 정도로 정지시킨 다음에, 도망가더라도 쫒아가서 고함지르고 세워가지고 이유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정조준해서 총격을 가한 것은 잘못한 거예요.

북한도 지금 켕기는 데가 있다는 소위 방증을 내가 제시할 수 있어요. 왜냐?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이) 유감이란 단어를 먼저 썼어요. 인도주의 차원에서 사람이 죽었으니까 의례 내놓은 얘기라고 볼 수 있지만, 유감이란 건 사실상 자기네들이 이건 뭔가 좀 과했다는 얘기 아녜요?

그리고 거꾸로 우리한테 사과하라고 해놓고는, 그렇게 외마디 소리 한 번 질러놓고는 숨어버렸단 말예요. 일체 움직이지 않고. 그 얘기는 뭐냐? 자기네가 일방적으로 버티고 밀어붙인다고 해서 이쪽이 불문곡직하고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그쪽도 알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딱 현장을 조사해서, 현장 보존은 안 됐겠지만, 좌우간 정황을 설명하고, 이쪽에서 과학수사까지 해 놨으니까, 그 결과랑 대조해 가면서 '자 이 사건과 관련해서 당사자는 얼마의 책임이 있는가. 돌아가신 분이지만. 그리고 거기 넘어가는 것과 관련해서 현대 쪽에서는 왜 사전 주의를 주지 않았는가'도 따지긴 따져야 할 겁니다.

현대 책임이 얼마, 당사자 책임이 얼마, 그 다음 북한 당국. 그렇게 이른 새벽에, 오히려 그럴 때 적이 침투할 수 있다는 군대 내 판단이 있을 수 있지만, 하여튼 지나치게 대응하지 않았나 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책임 소재를 따져야 합니다. 그리고 듣자하니 해수욕장 개장을 그 날부터 하게 돼있었다고 하더구만. 그런 얘기가 있어요. 그날부터 개장하는데, 물론 해수욕장이 2002년부터 있었기 때문에 관례대로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쨌건 정부 당국으로서는 새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조금 예전 같지 않으니 혹시라도 북쪽에 빌미를 줄 수 있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특히 그 구역 넘나드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전에 철저히 대비를 하라는 식으로 왜 얘기를 안 했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북쪽 당국과 남쪽 당국, 그리고 현대와 당사자 이렇게 4자간의 책임 소재를 밝히는 그런 프로세스는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정부에서는 그게 바로 당국간 공동조사라고 얘기해 놨지만, 북쪽이 4월 초부터 남쪽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월선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해서 다 쫓겨 나오지 않았어요?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지만, 그런 상황에서, 당국자가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당국간 공동조사 해야 한다는 식으로 불쑥 얘기 해 놓고, 대안 없이 그러고 있는 정부 당국자들도 조금은 사려 깊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여튼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하고 금강산관광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떤 식으로건 공동조사 내지는 경위조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서 당장 당국간에 그게 안 되면, 또 새 정부 들어서서 당국간 대화 채널 끊어진 상황에서 안 되면, 그 뭐, 준(準) 당국 성격을 띠는 단체들을 앞세워서 할 수는 없겠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없었던 일로 하고 북쪽의 일방적인 설명을 토대로 넘어가자니 국민 정서가 용납하지 않을 거예요. 뭔가 미진하더라도 그래도 절차는 밟아야 합니다. 적십자 같은 데서 나설 수도 있고, 또 뭐 북쪽의 민화협과 남쪽의 민화협 식으로. 어차피 북쪽 민화협은 당국 아닙니까. 남쪽의 민화협은 당국은 아니지만 200개 보수·진보 단체가 총망라됐기 때문에 대표단을 잘 꾸리면, 편향되게 북쪽의 말만 들어준다는 비난은 안 나오게...그렇다고 북쪽을 무조건 잡도리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낄 수 없겠지요. 이런 식으로 절차를 밟는 것, 다시 말해서 한반도 안보상황의 안정적 관리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정부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해법을 찾아보려는 고민도 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간 선례를 보면 사과문제는 다 결국 양비론으로 끝났어요. 재발방지도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서로 노력하자는 식으로 다 양시론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인 항복문서 같을 걸 받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간 북쪽의 일방적인 공격성 행위에도 불구하고 표현은 언제든지 양비론, 양시론으로 끝났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간에도 처음에는 서로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버티면서 기싸움이나 욕설을 하다가도 막판에는 양비론·양시론으로 마무리되는 경우 많지 않습니까? 중요한 건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튼튼히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금강산관광지역 출입·체류 합의서의 11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서 본의 아니게, 가령 관광지구 이외의 지역으로 멋모르고 넘어갔을 때 어떤 식으로 단속할 것인가에 대해 조항을 세분화해서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소련도 '버르장머리' 못 고쳤어요"

또 하나. 지금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가 조금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오히려 해법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나 싶어요. 우선 이걸 ARF로 들고 간 것부터가 현명치 못했습니다. 기껏해야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 하는 얘기밖에 더 나오겠어요. 총 쏘고 사람 죽은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제3자들이 할 수 있는 얘기는 '그래 대화를 통해 잘 풀어야지 그냥 있을 수는 없지'하는 얘기밖에 더 나오겠냐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대통령 국회연설과는 다르게 10.4선언에 대한 일종의 부정의 의미가 있는 행동까지 해버렸는데...

통일부에서 두 가지를 잘 못하는 것 같아요. 하나는 개성관광 중단을 할 수도 있다는 카드를 자꾸 만지작거리면서 북한을 압박하려고 하는 게 과연 실효성이 있는 전략·전술이냐. 그거 별로 도움 안 될 겁니다. 금강산관광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개성관광도 끊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나중에 가서 사소한 사건에...그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라도 자기가 한 말 때문에 끊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현실적 타당성보다도 말의 영(令)이 서도록, 자기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도 그걸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면 개성공단에 대해서 북한이 몽니를 부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북 압박하려다 근근이 버티는 개성공단 진출 우리 기업에 피해를 주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에도 안 좋은 영향이 돌아 들어온다는 계산도 해야 한다 이겁니다.

장기나 바둑을 둬도 내가 이렇게 두면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최소한 두 수 세 수는 내다보면서 두는 거 아닙니까. 아니, 오목을 둘 때도 내가 이렇게 놓으면 상대방이 어떻게 둘 것인 지를 생각하면서 두는 건데, 자기 계산만 자꾸 밀어붙이려고 하면 되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개성관광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처럼 자꾸 메시지를 보내면서 그걸 카드인 줄 알고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나중에 한반도 상황을 더 긴장으로 몰아넣는 결과가 될 겁니다.

지난 주 KBS 일요진단을 보니까, KBS 기자가 최근에 청와대 핵심당국자를 만났는데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면 2~3년은 말할 것도 없고 한 5년 쉬면 어떠냐. 이 정부 아니면 버르장머리 못 고친다. 이번에 확실히 이 사건 계기로 버르장머리 고치겠다'고 했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버르장머리가 고쳐질 수 있냐 하는 것은 한 번 면밀하게 따져 봐야 됩니다. 금강산관광 중단하고 개성공단 중단해서 북한의 버르장머리가 고쳐지느냐? 어....글쎄...허허..버르장머리를 고치기로 한다면야 중소분쟁 시기에 중국과 소련 둘 중의 하나가 이미 고쳤겠지. 그런데 오히려 북한이 거꾸로 이용했잖아요. 등거리 외교 하면서.

지금 북한이 미중간에 등거리 외교 하면서 미국에서 50만 톤, 중국에서 얼만지 모르지만 분명 식량지원 약속을 받았을 거예요. 시진핑이 빈손으로는 안 갔을 거예요 절대로. 그 사람,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내정된 사람이요. 그런 사람을 사실상 급파한 이유는 북미관계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전되는 것에 대해 쐐기를 박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국가주석이 될 사람을 보내 북한 체면을 세워 주면서 틀림없이 경제적으로 뭔 약속을 했을 거라고. 그 사람들은 소리 없이 하니까. 미국은 WFP로 보내느니 선적식이니 요란하게 하지만, 중국에서는 육로로 들어가기 때문에 국가간 무역이나 성(省)급에서 변경무역 내지는 보따리장수를 허용하는 방법,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실질적으로 30만 톤 내지 50만 톤 정도 최소한 주고, 다른 경로로 기름을 좀 더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북한 경제를 지탱해 줄 거예요.

중소분쟁이 끝나고 이제 미중경쟁 시대에 들어와서는 북한이 딱 가운데서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지금 버르장머리 없는, 소위 약자의 공갈 외교를 해서 살고 있습니다. 이걸 한국이 무슨 힘으로 고칩니까. 여기 틀어막는다고 해서? 여기 틀어막아도...금강산관광, 개성관광 해서 들어가는 돈이 1년에 3000만 달러 정도 될 텐데, 물론 적지 않은 돈이에요. 그러나, 북한이 그것 때문에 남쪽에 굴복을 할 것이다? 그걸 끊으면? 노. 그건 북한이라는 정치집단의 특성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에요.

돈이면 다가 아닙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렵고 여기저기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하는 건 틀림없지만, 그거 아니면 지탱이 안 되는 나라지만, 남쪽과의 관계에서는 쉽게 얘기해서 비굴하게 돈 안 받으려고 해요. 딴 데다가는 그렇게도 하는지 모르지요. 동남아 어느 나라에서 들은 얘기니까 확인은 안 되지만, 쌀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니까 거기 사절로 갔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래도 어떻게 좀 해 달라고, 그야말로 인민들을 위해 굴욕적인 외교를 했다는 얘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남쪽에 대해서는...이게 동족이기 때문에 그래요. 또 통일문제를 가지고 경쟁관계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먹는 것 가지고, 돈 가지고 북한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북한에 주는 것은 정치·외교적 보상보다는 지금 당장은 경제적 보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관광 중단하면 아쉬우니까 공동조사에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자는 대로 나올 것이다...공동조사 하나 끌어내고 재발방지 하나 끌어내기 위해서 압박하다가 오히려 잘못되는 경우엔 진짜 공동조사도 필요 없고 재발방지도 무의미해지는 그런 긴장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 좀 강력하게 말해 주시라요' 할 겁니다"

또 정부는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사실상 불허하면서도 형식은 '여론이 이렇게 나쁜데 가서 되겠냐?'고 얘기한다지만, 그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일입니다. 물론 총을 쏜 데 대해서는 여론이 나쁩니다. 그러나 9월 달 이후 금강산관광 예약은 절대 줄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벌써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잊어가는 게 좋다는 건 아닙니다만,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쇠고기 문제도 지금 이렇게 요란하지만, 한 1~2년 지나면 또 다 잊어버려요. 마찬가지예요. 서해교전 때 월드컵 결승전 전날 그랬다고 해서 얼마나 비분강개했어요. 물론 유가족들은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아프고,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북쪽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그러지만, 많은 사람들은 또 잊고 산다고.

그래서 거꾸로, 금강산 총격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 국민들의 여론이 진짜 나쁘다, 정말 배신감 느끼고 있다, 당신네 이러면 진짜 안 된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민간단체들의 방북을 허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있느냐고 반문만 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 않았지요, 이미. 금강산관광 중단시켰지 않습니까? 강경하게 북한을 압박하는 조치를 이미 취했으면, 이제는 유연하게 압박하는 방법도 좀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국이 앞쪽에서 공동조사하라고 압박을 넣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거꾸로 오히려 민간단체들 중에 가기로 약속된 사람들이 가도록 해서, 가서 볼일 보면서 '너희들 11일 날 총 쏘고 12일 날 저녁 때 명승지지도국 대변인 담화 형식으로 한 마디 해놓고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하고 있는 게 해결책 아니다. 유감이란 말을 했고, 우리 쪽에 사과를 요구했는데, 그러면 우리가 사과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서라도 (현장을) 봐야할 거 아니냐. 뭐를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냐. 당국이 잘못했는지, 현대가 잘못했는지, 당사자가 잘못했는지 알아서 책임 소재를 파악해야 서로 어느 수준으로 사과하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될 수 있는 것 아니냐. 아니면 그냥 양쪽이 잘못했으니 서로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자고 약속하며 끝날 것인지 결론이 날 거 아니냐'고 따지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을 보내야 합니다. '유감이란 말을 했으면 너희도 일부 책임이 있단 얘긴데, 그렇다면, 자신이 있으면 왜 공동조사를 못 받아 들이냐. 당국간 공동조사 못 받아들이면 민간 차원에서라도 좌우간 이 절차는 건너 뛸 수 없다'라는 얘기를 누가 합니까. 해야 할 거 아녜요. 마침 예정에 있어서 가게 돼있는 걸 왜 막아서냐 말이야.

적국 간에도 최악의 상황을 피해가도록 심지어 전쟁 중에도 대화를 하지 않습니까. 당국끼리도 하지만 남북간에는 민간단체들이 하는 역할이 제법 있어요. 교량 역할을 합니다. 특히 당국 차원에서 대화가 끊길 때에는 민간 차원에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막아주고, 다시 대화가 복원될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역할을 지금까지 적잖게 해왔어요. 그걸 왜 막느냐 이거야.

그러니까 정부는 모른 척 하고 '그래 가서 얘기 좀 잘하시오. 이게 뭐요 이게. 그리고 가서 혼 좀 내주고 오시오. 북한 사람들도 정신 차리게 얘기를 좀 하시오. 세상이 지금 어느 시긴데...물론 신병이고 새벽에 방어하는 입장에서 취약 시간대니까 과하게 방어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렇지, 이렇게 서로 불편하게 해놓고 12일 날 외마디 담화하나 내놓은 뒤에 꼭꼭 숨는 법이 어디 있느냐'는 식의 얘기를 하도록 권장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안 좋은 여론을 전달하러 가게 하라 이겁니다. 여론이 안 좋은데 왜 가려고 하느냐고 하면, 그건 참 방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 금강산 출입·체류 합의서를 직접 만드셨는데, 10조에 나온 공동위원회는 왜 구성이 안 됐죠? 그리고 관광구역 외 사항을 정한 11조는 왜 구체적인 조항을 못 만들었죠?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는데, 북쪽 사람들은 약속을 해놓고 계속 미루는 습관이 있어요. 경협 관련해서도 청산결제, 이중과세방지, 투자보장, 상사분쟁 조정절차에 관한 합의서가 4대 경협 합의서인데, 2001년엔가 합의해놓고 서명·발효시킨 건 내가 있을 때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동족간에 무슨...협의해서 하면 되지 꼭 법에 의해서....'라는 식으로 피해갑니다.

또 공동위원회 같은 게 관할권, 주권 침해 같은 문제가 나올 수 있어서 자꾸 '우리가 선의로 알아서 하면 되지'라고 하면서 남쪽이 동등한 자격으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거부반응이 좀 있어요. 자기 구역이다 이거야. 물론 남쪽 사람들한테 내줬지만. 그것 때문에 접점을 찾지 못해서 그렇게 됐고.

또 당시만 해도 펜스 안에서만 돌아다니고 해수욕장에서도 안 넘어가리라고 생각한 거죠. 피격 지점이 200m라면 상당히 먼 거립니다. 굉장히 많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2004년만 해도 그런 경우를 상정 못했어요. 펜스 밖으로 넘어가리라고 생각을 못했고, 펜스 밖으로 넘어가는 게 11조에 해당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 정도 포괄적으로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해서 그런 겁니다. 그런데 작년, 재작년 관광객이 해마다 불어나서 작년 말 180만 명 넘어가고 그렇게 되면 북한이 11조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 최승철 같은 사람들이 건재하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최승철 등 남북정상회담 주도 北 대남라인 건재") 지금 대남라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 ⓒ프레시안

과거에 북한이 현대에다가 윤만준 사장을 자르라고 어쩌고 할 때 보니까 최승철도 일단 국방위원장에게 보고된 사항을 뒤집는 걸 굉장히 어려워합디다. 일단 입력이 된 것에 대해, 사정이 변경돼서 바꿔야겠다는 얘기를 쉽게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더구나 이번 사건은 국방위원회가 관장을 했을 겁니다. 국방위원회가 초기 판단을 쫙 해서 김정일에게 입력을 해버리면, 최승철이 현직에 있다 할지라도 그걸 뒤집기엔 시간이 아직은 짧습니다.

남북간의 일은 삭아야 합니다. 숙성이 되고 식어서 이쪽의 분노도 가라앉고, 저쪽이 초기에 책임이 일체 없는 것처럼 기고만장했던 것도 시간이 가면서 여기저기 몇 군데서 빈 구멍이 나오고, 우리가 계속 떳떳한 것만 아니라는 식으로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최승철이 있어도 십여일 상관에 김정일 위원장의 결심을 바꿔서 '적절한 수준으로 절차 밟아서 재발방지 약속하고 관광을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통 크게 나가라'하는 비답을 과연 받아낼 수 있겠느냐. 국방위원회의 결정을 아태가 지금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 더구나 남북관계가 상당히 긴장돼 있으니까, 소위 협상론자들이 나오긴 조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협상론자들이나 아태, 통전부 사람들의 입장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남쪽 사람들이 가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해서 그런 여론이 보고되도록 해야 돼요. 남쪽 신문에 안 나면 통전부나 아태 사람들이 만들어서 쓸 수가 없어요. 남쪽 사람들이 자꾸 가서 얘기를 해서 '듣자하니 오는 사람들마다 이런 얘길 하니까 이건 안 됩니다. 국방위원회 초기 결정대로 하면 득 될 게 없습니다'하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보가 들어가게 하려면 계속 북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는데 왜 이걸 막느냐 이거야. 북한 체제에서 어떤 식으로 디시전 메이킹이 되는지에 대한 연구도 좀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밉다고 밀어붙이려고만 하지 말고.

실제로 남쪽 사람들이 북에 가서 무슨 얘기를 하면 '그걸 좀 강력하게 얘기해 주시라요'한다고 합니다. 자기네가 판단 못한다 이거야. 말하자면 'People said that'이나 'He said that'이라고 하는 게 훨씬 중립적이고, 상부의 뜻을 바꾸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고 해요. 나는 당국자여서 그런 경험은 없었지만, '그런 얘기 좀 강력하게 해서 우리가 쓸 수 있게 좀 해라. 그거 좋은 얘기다'라고 한대요.

왜냐면, 이런 상황을 원만하게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주도권은 누가 행사해야 하느냐? 북한한테 주도권 넘길 겁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돼요. 우리가 우위에 있잖아요. 우위에 있는 쪽에서 해야지. 지금 어떻게 보면 (북한이) 일을 벌려놨지만 국제적인 위상으로 봐서나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북한의 항복을 요구한다는 게 비현실적이다 이겁니다.

- 지난주에 민화협 상임의장들이 대표 상임의장에 복귀하라고 만장일치로 결정했는데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만장일치로 복귀하라고 했다니 거절하기 어려운데...거기에다가 통일부 고위당국자도 복귀해서 남북관계에 역할을 해달라는 뜻을 전해 와서 목하 고민중입니다. 8월 6일 상임의장 회의 열고 8월 8일 공동의장단 회의 열기로 했다고 연락이 왔으니, 그 때까지는 결심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반반입니다. '모양새가 아주 나쁘게 되었다. 그렇게 된 바에 차라리 자유롭게 정부 대북정책 비판해주는 게 더 의미있다'는 분들도 계시고, 정부의 초기 소행은 문제가 있지만 남북관계가 꽉 막혀있는데 대승적 입장에서 복귀해가지고 뭔가 역할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들도 계십니다. 둘 다 맞는 얘깁니다. 그래서 아직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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