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엽기적인' MB외교…'금강산피격' 포기할 정도로 10.4선언 싫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엽기적인' MB외교…'금강산피격' 포기할 정도로 10.4선언 싫다?

ARF 의장성명서 10.4선언·금강산 문구 빠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서 10.4남북정상선언과 관련된 항목이 한국의 일방적인 요청에 의해 빠지고, 그에 따라 금강산 피격 사건에 관한 내용까지 삭제되는 되는 일이 벌어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25일 "이용준 외교부 차관보가 오늘 싱가포르 외교부를 공식 방문한 자리에서 '왜 논의도 안 된 10.4선언을 의장성명에 넣었냐'고 따졌고, 싱가포르측에서 그 의견을 받아들여 10.4선언 항목을 뺀 의장성명 최종본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싱가포르 외교부는 이 차관보의 말을 듣고 '그럼 금강산 피격 사건도 남북간의 문제니까 같이 빼자'고 해서 금강산 항목도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금강산 항목을 포기할 정도로 10.4선언을 빼는 게 그리 중요했냐' 혹은 '값어치가 다른 사항을 교환하는 실속 없는 외교를 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10.4 선언에 대한 거부의 뜻을 국제사회와 북한에 명백히 보여준 것으로 '최악의 대북 시그널을 보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의장성명 초안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사태의 발단은 24일 ARF 외교장관회의 직후 조지 여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발표한 의장성명에서 시작됐다. 여 장관은 ARF 의장국 외교수장으로서 회의에서 나온 의제들을 묶어 20개 항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과 10.4남북정상선언을 주목한다. 10.4선언에 기반을 둔 남북대화의 지속적인 발전에 강력한 지지를 표한다"는 항목이 들어갔다.

성명에는 또 "참가국 외교장관들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에 관심을 표명하며, 이 사건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도 명시됐다.

10.4정상선언과 금강산 문제를 동시에 포함시킨 것인데, 전자는 북측의 요구에 의해, 후자는 남측의 요구에 의해 들어간 것이다.

이같은 결과가 나오자 평가가 엇갈렸다. 일부 언론들은 금강산 사건이 포함됐다는 점을 부각하며 한국이 외교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이 북한과의 '외교전쟁'에서 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대표적으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5일 <KBS> '라디오 정보센터 이규원입니다'에 출연, "금강산 문제에 대해선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까지 밖에 안 갔지만, 북한이 맞불을 지르는 차원에서 제기한 6.15나 10.4선언의 이행문제는 존중한다는 표현까지 나왔다"며 "외교적으로 패배를 당한 셈"이라고 말했다.
▲ ARF 외교장관회담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 ⓒ연합뉴스

청와대 '진노'로 황급히 수정 요구

그러나 이같은 평가가 나오기 전부터 청와대의 반응은 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같은 기류는 싱가포르 현지까지 감지됐고, 회담팀은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 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귀국길에 오르며 이용준 차관보에게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만나 10.4선언 문제를 제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 차관보는 외무차관을 만나 그 이야기를 꺼냈고, 금강산 사건도 같이 빼자는 싱가포르측의 역제의를 받아들여 의장성명에서 둘 다 빠지게 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왜 10.4선언을 빼자고 했냐'고 묻자 "10.4선언에 관한 논의는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만 했고, 금강산 얘기는 5~6개국이 했기 때문에 그랬다"라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왜 금강산까지 빼는 걸 받아들였냐'는 질문에 대해선 "(의장성명에서 삭제돼도) 이미 여러 나라가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에 외교적인 효과를 다 봤다"라며 "남북 양쪽의 균형을 잡기 위해 의장국이 같이 뺐나 보다"고 말했다.

그는 또 "ARF 의장성명은 서명도 없고 의장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며 외교적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그러나 이 당국자는 '의장성명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면 10.4선언도 굳이 빼라고 할 필요가 있었냐'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 금강산과 10.4선언이 둘 다 들어가는 것과 둘 다 빠지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바람직하냐'는 질문에 "우리가 (의장국에) 요청한 사항이 수용됐으니…"라며 뺀 게 더 낫다는 식으로 답했다.

"본전도 못찾은 외교 행태"

그러나 어떤 게 더 낫다고 평가하기에 앞서 한국의 그같은 행위는 '금강산 사건이 담기는 걸 포기할 정도로 10.4선언이 들어가는 건 싫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되어 남북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같은 행태는 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의 이행에 관해 북측과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과도 충돌한다.

이는 곧 정부가 금강산 사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사실상 취소했다는 의미이고, 대북 강경노선을 본격화하겠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문구를) 그대로 두면 앞으로 몇 년간 두고두고 인용이 될 것 같아 오늘 노력한 것"이라는 당국자의 말은 10.4선언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10.4선언은 유엔에서 지지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로 긍정적인 것이라서 의장성명에 포함시키기 쉽지만, 금강산 문제 같은 네거티브한 주제는 국제사회의 입장이 갈리는 것이어서 집어 넣기 쉽지 않다"라며 "그렇게 힘들게 넣었을 텐데 쉬운 것을 없애기 위해 어려운 것을 포기하는 건 실속없는 외교다. 본전도 못찾았다"고 평가했다. 값어치가 다른 걸 교환하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다.

김연철 소장은 또 "10.4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부정적인 인식을 국제사회와 북한에 명확히 보여준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전문가는 "지난 3월 김태영 합참의장 후보자의 대북 '선제공격' 발언과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개성공단 2단계는 어렵다'는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에 이어 가장 안 좋은 신호가 북한에 보내졌다"라며 "청와대가 지침을 내린 것 같은데 '실용외교'가 또 한 번 헛발질을 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10.4선언 관련 문구를 제안자의 동의도 없이 삭제토록 요구한 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건 반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다자회담에서 나온 문서를 한 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경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싱가포르 모두 외교 관례를 깼다는 눈총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야당들, "망신" "참사" 비난

이에 대해 민주당 김현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10.4선언에 기초해 남북대화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빼기 위해 금강산 피격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셈"이라며 "또 한 번의 망신외교"라고 비난했다.

김 부대변인은 "아무리 전 정부가 싫고, ABR(Anything But Roh)를 국시쯤으로 생각하는 정부라 해도 이건 아니다"라며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국회 개원 연설에서는 남북 대화를 제의했나"라고 따져 물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의 비전도 전략도 없는 외교력의 한계가 빚어낸 참사"라며 "남북대화 채널이 꽉 막힌 상황에서 금강산 사건의 '진상 규명' 을 위해 국제공조 카드를 꺼내들고, '총력적인 외교전'을 펼치다가 망신만 당했다"고 혹평했다.

박 대변인은 "이번 ARF 사건은 정말 국제무대에서 북한이 고립되어 있는가, 하는 의문점마저 남긴다"며 "ARF에서 펼친 우리 정부의 외교전은 실익이나 실용은커녕 역대 그 어느 정권보다도 못한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