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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핵심요소와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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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핵심요소와 단위

[최무영의 과학이야기] <81> 생명현상의 이해 ③

생명의 핵심요소

이제 생명이란 무엇인지 알았습니까? 그렇다고요? 생명에 대해 지금 다섯 가지를 말했는데 그것으로 생명이 무엇인지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다섯 가지는 생명의 속성이지요. 생명의 속성이 무엇인지 지적했지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논의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시험문제에 "해란 무엇인가?"라고 나오면 답을 뭐라고 쓰겠습니까? 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은 어떨까요? 그에게 해란 무엇인가 어떻게 설명해주겠어요? 해라는 것은 지구를 비춰주는데 크기가 얼마쯤 되고 지구에서 얼마쯤 떨어져 있고, 밝기가 얼마쯤 되고, 빛깔이 어떻고, 지구에서 보면 어떻게 움직이는지 따위를 제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죠. 그러나 그것은 대체로 해의 속성이지 본질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해는 붙박이별로서 주계열별의 하나이고, 핵융합 반응으로 수소가 결합해서 헬륨이 되면서 질량이 줄어들고 그만큼 에너지로 되어서 빛을 내비친다, 그리고 해의 온도가 얼마쯤 되고 그것 때문에 핵융합 반응이 어느 정도 일어나며,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빨강장다리별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요.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의 기술 중에 앞의 것이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기술한 것과 같은 방법입니다. 해의 속성을 제시하듯이 생명의 속성을 제시한 것이고, 본질에 대해 논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이론과학과 현상론을 구분 짓는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현상론적 성격이 많은 천문학이나 생물학에서는 해나 생명의 속성에 대한 기술이 주된 관심이라면 이론과학으로서의 물리학에서는 보편적 체계의 관점에서 해석하려 하므로 속성에 대한 기술이 끝이 아니라 그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생명이란 무엇인지 논의하지 않은 것이지요.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을 만들어서 아인슈타인과 비견할 만한 업적을 지녔는데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라는 뛰어난 저서도 남겼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생명의 핵심 개념으로 네겐트로피 및 코드(code),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알다시피 네겐트로피는 음(-)의 엔트로피로서 정보에 해당합니다. (에너지도 고려해서 자유에너지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코드는 정보의 저장을 뜻하는 것인데 바로 DNA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슈뢰딩거는 1944년에 이 책을 펴내었는데 DNA의 존재 및 구조가 알려진 때는 이보다 뒤인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슈뢰딩거는 훨씬 앞서서 DNA 처럼 정보를 저장하는 코드가 필요하다고 예측한 거지요. 사실은 왓슨과 크릭은 바로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알아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슈뢰딩거는 놀라운 통찰력을 가졌네요.

네겐트로피와 코드는 모두 본질적으로는 정보입니다. 따라서 생명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슈뢰딩거가 처음으로 지적한 것이 아니라 19세기에 이미 볼츠만이 지적하였고, 슈뢰딩거도 이를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은 내 5대 선조인 볼츠만이 정말 놀라운 분이란 얘기죠. 사실 과학사에서 볼 때 볼츠만이 아인슈타인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생명의 단위

이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해봅시다. 홑세포, 곧 세포 하나가 따로 있다면 살았나요, 죽었나요? 우리 몸의 세포가 하나 떨어져 홀로 있어도 살아있나요? 그런데 원생생물(Protista)이라는 것이 있지요. 아메바(amoeba)나 짚신벌레(paramecium caudatum) 같은 것 들어봤죠? 이들은 세포 하나로 구성된 홑세포생물인데 당연히 살아있다고 보아야겠지요? 생명의 다섯 가지 속성을 다 만족합니다. 짜여있고 신진대사도 하고 번식하고 외부자극에 대해서 응답도 하며, 변화도 합니다. 그러니까 홑세포도 살아있는 것 같네요, 모두 동의해요?

그러면 바이러스(virus)는 어떨까요? 바이러스도 짜여있죠. 대체로 DNA에 담긴 유전정보와 이를 둘러싼 흰자질 외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DNA 대신에 리보핵산(ribonucleic acid; RNA)을 지닌 바이러스도 있습니다. 보통 DNA에서 RNA로 흐르는 정보의 이동을 거스른다 해서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라 부르는데 후천성면역결핍증(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을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uman immunodeficiency virus; HIV)가 널리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번식도 합니다. 물론 외부자극에 응답도 하지요. 변화도 하니까 살아있는 것 같은데 그러나 신진대사는 하지 않습니다. 에너지 대사가 없으므로 살아있다고 말하기 난처하네요. 그래서 환경이 좋지 않으면 유전정보를 둘러싼 흰자질의 결정으로 되는데 유전정보나 흰자질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심지어 흰자질 외투도 없이 더 간단하게 RNA로만 이루어진 바이로이드(viroid)라는 것도 있습니다.) 그냥 분자일 뿐입니다. 수소, 탄소, 질소 및 산소 따위가 결합되어있는 분자이니 도저히 살아있다고 여길 수는 없어요. 그러나 그것이 생체에 들어오면 자기 유전정보를 이용해서 번식하고 일반적으로 생명이 보이는 여러 성질을 대부분 나타냅니다. 그러니 바이러스가 생명이냐 아니냐 말하기는 어렵네요.

혹시 여러분들 프리온(prion)이라고 들어봤어요? 소가 미치는 미친소병(광우병)은 들어봤지요? 병의 공식 이름은 소해면상뇌증(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이라고 합니다. 뇌가 해면, 곧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개가 미친개병(광견병)에 걸리면 날뛰면서 막 물게 되는데 사람도 이에 물리면 바이러스에 의해 옮습니다. 소도 미치면 (사람을 물지는 않지만) 성질이 사나워지는데 결국 걷지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소의 뇌나 척수, 피, 또는 고기를 먹으면 사람에게 옮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공식 이름은 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콥병(variant Creuzfeld-Jacob disease; vCJD)인 인간광우병에 왜 걸리는지 이유를 잘 몰랐는데 알고 보면 놀랍습니다.

병에 걸린 소가 지닌 프리온이라는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두뇌로 가서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식합니다. 그런데 프리온의 정체는 뭐냐면 단지 흰자질입니다. 흰자질인데 마치 생명체처럼 번식합니다. 참으로 놀랍지요. 프리온이 일단 들어오면 마구 증식해서 두뇌의 신경세포를 마구 파괴해버립니다. 신경세포가 파괴되면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몸의 조절도 하지 못하므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뇌를 다 파괴하는 것입니다. 프리온이 과연 생명일까요? 프리온은 단지 흰자질입니다. 유전자고 뭐고 없지요. 그러나 번식을 합니다. 프리온은 정상상태에 있을 때는 상관이 없는데 모양이 이상하게 변형되면 문제가 되지요. 정상적인 형태에서 변형되어 굵은 밧줄처럼 꼬이는데 일단 그런 것이 생기면 주위 흰자질을 모두 같은 형태로 만들어버립니다. 흰자질은 변형이 되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변성(denaturation)이라고 부르는데 프리온의 경우 치명적으로 뇌세포를 파괴합니다.

바이러스나 특히 프리온의 예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러한 것을 비롯해서 어떤 대상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판단할 때 그 자체의 특징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분은 환경과 결부해서 판단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지요. 이것은 사실 바이러스나 홑세포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살았나요, 죽었나요? 하나의 개체로 보아 누구나 다 살아있다고 믿겠지만 사실 살아있다는 것은 현재 환경에 국한되어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환경이 바뀌어 바다 깊이 들어가든지 달이나 화성으로 가든지 또는 남극 지방으로 간다면 여러분은 살아있을 수 없음을 압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경과 함께 말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홑세포나 바이러스 같은 경우에는 그 중요성이 명백하지요. 그래서 보생명co-life이라는 표현을 쓰며, 한편 개체 하나하나는 낱생명(individual life)이라고 합니다. 개별적인 낱생명은 독립적인 생명으로서 기능을 가질 수 없고 보생명과 같이 합쳐서 이른바 온생명(global life)을 이룹니다. 이 수준에서 봐야 참다운 생명현상의 본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은 듯합니다. 생물학자 중에는 거의 없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를 제안하신 분은 서울대 물리학과에 재직하시던 장회익 선생님입니다. 생명의 본질을 비롯해서 과학의 철학적 조명에 대해 깊이 고찰하셨고, 이는 생명에 관한 핵심적인 통찰력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흐트러지지 않고, 엔트로피도 늘어나지 않고 어떻게 적절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커다란 의문입니다. 그것에 대해 물리학에서는 에너지와 정보의 흐름을 답으로 제시하지요. 엔트로피가 늘어나지 않고 낮은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에너지 및 정보를 환경과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사실 생명이란 눈물겨운 존재라 할 수 있어요. 내버려두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엔트로피가 늘어나고 결국 죽게 되지요. 참으로 피나는 노력, 힘겨운 투쟁을 통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환경에서 계속 정보를 받아 그것을 끊임없이 이용하기 때문에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위에 있는 무수히 많은 생명체들 하나하나는 놀랍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하면서 생물권에 군림하고 생명체를 마음대로 죽이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행동입니다. 온생명 개념에 따르면 인간이란 개체도 보생명, 곧 인간을 제외한 나머지 생명체들 없이는 절대로 존재할 수 없지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 삶의 자세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연재기사는 지난 2008년 12월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으로(책갈피 출판사) 출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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