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閏(윤)/弄(롱)/靈(령)/卬(앙)/頃(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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閏(윤)/弄(롱)/靈(령)/卬(앙)/頃(경)

[한자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57>

지난 회에 呈(정)·廷(정)에 들어 있는 壬을 '정'이라는 별개의 글자로 볼 게 아니라 '임'과 같은 글자라는 얘기를 했다. 徵(징) 역시 王 부분이 壬의 변형이었다. 徵은 그 壬을 발음기호로 하고 微(미)의 생략형을 의미 요소로 해서 '조짐'이라는 뜻을 이어받은 글자다.

徵의 경우처럼 壬이 王으로 변신해 엉뚱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또 있다.

'윤달'의 뜻인 閏(윤)이 그 하나다. 윤달에는 임금(王)이 매달 초하루에 지내게 돼 있는 제사를 종묘에 가서 지내지 못하고 궁궐(門) 안에서 지내는 것을 반영한 글자라거나, 집안(門)에 재화(王=玉)가 넘쳐나는 것을 나타내 '윤택하다'의 뜻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王을 徵에서처럼 壬의 변형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발음기호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의미에서는 門과 연결시킬 단서를 찾기가 어렵다.

弄(롱)은 두 손으로 옥(王=玉)을 갖고 노는 모습이라고 한다. 역시 장면상형이다. 壬이나 閏의 중국말 발음 '런'

'룬'을 보면 壬을 발음기호로 하는 형성자다. 廾(공)은 두 손이니 '가지고 놀다'라는 의미와 맞아떨어진다. 다만 옥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으니, 옥을 가지고 논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靈(령)은 霝(령) 부분이 발음이고 霝은 다시 口를 셋 나란히 놓은 아랫부분이 발음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림 1>과 같은 霝의 모습을 보면 雨(우)자를 좀더 실감나게 그리기 위해 아랫부분을 빗방울로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 霝은 雨의 변형일 뿐이며, 그 발음은 역시 '비가 내리다'의 뜻인 零(령) 같은 사투리 발음에서 온 듯하다.

그렇다면 靈은 霝=雨와 巫(무)를 합친 글자가 된다. 그런데 靈의 옛 모습 가운데 <그림 2>와 같은 것이 있다. 아랫부분이 王으로 돼 있고, 徵·閏·弄의 경우를 보면 그것은 壬의 변형일 가능성이 있다. 靈의 중국말 발음 '링'은 壬 발음과 가깝다. 靈의 아랫부분은 巫와 王뿐만 아니라 示(시)·心(심)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데, 이는 모두 발음기호 壬의 변형이다. 이를 玉으로 보고 무당의 주술 도구 운운하는 것은 상상력 자랑일 뿐이다.

靈에서 壬이 발음기호고 霝이 雨의 변형이라면 雨가 의미 요소라는 얘긴데, 雨가 신령스러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이는 아무래도 기우제 같은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가뭄이 심하면 하늘에 기우제를 지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인데, 그런 기우제 끝에 단비가 내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비가 오는 것은 하늘의 신령(靈)이 응답한 것이고, 그 기우제를 주관한 무당은 영험(靈)한 것이다. 靈은 零과 마찬가지로 '비가 오다'의 뜻에서 이런 주변적인 의미로 옮겨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壬의 다른 모습인 工(공) 역시 '잃어버린 핏줄'이 있는 듯하다.

仰(앙)·迎(영) 등의 발음기호인 卬(앙)은 서로 다른 포즈의 두 사람을 그린 것으로 본다. 역시 장면상형이니 이미 결격이지만 더 들어보자. 오른쪽 무릎 꿇은 사람이 왼쪽 서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그림 3>). 이를 <그림 4>의 印(인)자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卬을 발음기호로 쓴 仰의 옛 모습 가운데 <그림 5>와 같은 것이 있자. 왼쪽 亻과 오른쪽 卩(그림엔 邑으로 바뀌어 있다)을 뺀 가운데 부분이 工으로 돼 있다. 그러고 보면 卬의 왼쪽은 匕(비)의 변형 같은 것이 아니고 工일 수 있다. 昂(앙)은 속자로 昻으로 쓰는데, 卬의 왼쪽이 본래 工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글자꼴이다. 발음도 앞서의 장면상형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그걸 工으로 보면 바로 工이 발음기호다.

卬의 본래 모습일 昻의 아랫부분은 다시 오른쪽이 ⻏=邑(읍)인 邛(공)이 변한 것으로 보이는데, 邛은 '언덕'의 뜻이어서 卬의 '오르다' '우러러보다'와 접점이 있다. 오른쪽이 본래 邑이었음은 仰의 옛 모습인 <그림 5>에서 이미 확인한 바다. 결국 卬은 邛에서 양쪽 요소가 모두 조금씩 달라진 모습일 수 있다.

卬의 왼쪽이 工의 변형이라면 頃(경)의 왼쪽 匕도 工의 변형일 수 있고, 그렇게 보면 설명이 좀더 매끄러워진다. 頃은 머리가 '삐뚤어지다'의 뜻이라고 하는데, 匕를 사람의 모습으로 인정해 주더라도 그런 의미를 끌어내는 것은 상당히 자의적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匕가 工의 변형이라면 頃은 '목'의 뜻인 項(항)과 같은 글자가 된다. 頃에 남아 있는 의미 가운데 경작지의 넓이를 나타내는 '백이랑'이라는 뜻은 어떤 구획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項의 '항목'이란 뜻과 연관되고, '잠깐' '이마적' 등도 시간의 구획이어서 연관이 있다. 頃=項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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