立이 '止+一'의 구조라면 이와 똑같은 구조의 글자가 之(지)다. 지금 모습은 많이 변형돼 전혀 알아볼 수 없지만, 옛 모습인 <그림 1>을 보면 분명하다. 여기서 一은 출발선을 나타낸다는 설명이 있는데, 立에서나 마찬가지로 이를 凵의 변형으로 보지 못할 까닭이 없다. 之 역시 出의 변형인 셈이다. 之의 의미가 '가다'라면 같은 出의 변형인 去의 뜻과 정확히 일치한다.
之는 처음에 㞢로 썼다. 전설시대 인물 蚩尤(치우)의 이름으로 낯익은 蚩(치)는 의미 요소 虫(훼)와 발음기호 㞢를 합친 글자로 㞢의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그러나 志(지)에서는 발음기호 之가 士(사)로 변했다.
이 士는 도끼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림 2> 같은 모습에서 나온 설명인데, 아래 가로획이 도끼날이라는 얘기겠다. 도끼는 권위의 상징이어서 죄를 다스리는 법관을 의미했고, 학식을 갖춘 선비라는 개념도 나왔다. 반면 도끼를 무기 그대로 보아 그런 무기를 지닐 수 있는 남자 즉 '무사'로 보기도 한다. 이 밖에 '수컷'의 뜻인 牡(모)의 오른쪽 요소와 결부시켜 남성의 생식기라는 설도 있다.
이밖에도 많은 상형설들이 있지만 거의가 상형 범위를 너무 넓게 잡고 있는 것들이어서 믿기 어렵다. 다른 글자의 변형일 가능성이 높고, 특히 志의 경우에서 시사되듯이 之 곧 '止+一(凵)'의 변형일 가능성이 높다. 之의 옛 모습 㞢에서 凵 부분을 一로 펴기만 하면 바로 士가 되는 것이다. 士의 중국말 발음은 '시'고 之는 '지'여서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士가 之의 변형이라면 묘한 문제가 하나 생긴다. 之는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出의 변형이라 했는데, 吉(길) 역시 出의 변형이다. 士와 口를 합친 吉과 士 자체가 같은 出의 변형이라는 얘기니 일견 모순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옛 글자꼴은 끊임없이 변하면서 획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했기 때문에 吉=士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겉으로만 봐선 분명히 획이 하나 빠진 古(고)가 告(고)와 같은 구조의 글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吉과 士는 그 정도가 조금 더 심했다는 것뿐이다. 去의 윗부분과 寺(사)의 윗부분도 같은 土(토)로 정리됐지만, 寺의 윗부분은 '止+一'인 之의 변형이고 去의 윗부분은 止의 변형이다. 역시 그런 글자 정리 과정에서의 오차 때문에 생긴 문제다.
여기서 土자도 함께 살펴보자. 이 글자도 상형자라고 하는데, 일정한 형체가 없는 흙을 어떻게 상형했을까? 땅에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모습이라고 한다(<그림 3>). 마치 럭비 공을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이다. 왜 그런 모습으로 흙을 뭉쳐 놓은 것인지 의문이 들지만, 토지신을 숭배하는 상징물이라는 설명이다. 간혹 점이 몇 개 찍혀 있는 모습도 있는데, 이는 제사를 지내면서 술을 뿌리는 것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럭비 공 모양은 나중에 세로획 중간에 점을 찍어 놓은 모습으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十자로 변해 지금 모습이 됐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상형설 자체가 조금 미심쩍은 얘기인데다, 士와의 관계로 볼 때도 문제가 있다. 士와 土는 두 가로획의 길이 차이로 구분되는 글자인데, 초기 한자에서는 이런 식으로 획의 길이 따위로 글자를 구분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또 土의 파생자 社(사)의 발음이 士와 일치하는 점이나, 지금 서로 다른 글자로 정리된 志·寺의 윗부분이 같은 之의 변형이라는 점 등도 의문을 부추긴다.
士가 '止+一'의 변형이라면 十 부분이 止의 변형인데, <그림 3>의 럭비 공 부분이나 여기에 점이 몇 개 찍힌 모습은 止의 변형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림 4>와 같은 土의 또 다른 모습은 위의 火 형태가 大와 비슷해 '大+一'인 立(립) 등 出의 다른 변형들을 떠올리게 한다. 술을 뿌리는 것을 나타냈다던 점들은 바로 이런 모습에서 점의 개수가 다소 늘어난 것일 뿐이다. 土 역시 出의 변형이고, 土=士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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