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정부는 지난 2일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로 가장한 군 정보요원들이 비밀작전을 펼쳐 무력충돌 없이 베탕쿠르를 포함한 15명의 인질들을 극적으로 구출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정부가 인질구출 발표와 함께 공개한 3분짜리 비디오 내용을 지켜본 현지 전문가들은 모든 게 허점투성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우선 7년에 가까운 인질생활로 건강이 악화되어 생사의 갈림길을 헤맨다던 베탕쿠르가 정글 속에서 인질로 잡혀있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건강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문제로 삼았다.
그의 모습은 인질로 잡혀있다 갑자기 구출된 모습이 아니라 마치 상당기간 동안 인질상태에서 벗어날 준비를 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지런한 그의 치아는 장기간 동안 정글 속에 억류된 후 영양부족 상태에서 각종 질병을 앓아왔다는 사실을 비웃고 있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또한 일정부분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붙잡고 있던 최고의 거물 인질이었던 베탕쿠르를 빼앗긴 FARC의 지휘부가 아직까지 아무런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사작전 아닌 협상결과'
콜롬비아 군부와 무장혁명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현지 전문가들은 이번 작전을 주도한 건 콜롬비아 국방부가 아닌 콜롬비아 비밀정보국의 작품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들은 베탕쿠르 석방 2~3일전부터 FARC의 최고사령관 알폰소 까노와 콜롬비아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과의 접촉설이 파다하게 퍼진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FARC 지휘부는 지난 3월까지 베탕쿠르 석방에 긍정적이었고 상호 협상의 명분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관련 기사 : '국제 핫이슈로 떠오른 베탕쿠르트 석방 문제') 이들은 장기간 동안 국제적인 화제 인물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해 확실한 명분, 혹은 대가만 주어진다면 베탕쿠르를 석방하겠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FARC 지휘부는 콜롬비아 정부군과 미군에 의해 체포된 500여명의 게릴라 석방과 무장혁명군 자치구 보장 등 콜롬비아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인질교환 조건들을 내세웠다.
그 후 콜롬비아 정부는 미군의 지원을 받아 무장혁명군 지휘부를 공격, 2인자인 라울 레졔 등 20여명의 게릴라를 살해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게 된다. 정부군은 실력을 한번 보여줌으로써 인질교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한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의 강경작전에 대항해 FARC 지휘부가 협상의 문을 닫아버리자 이번에는 베탕쿠르의 가족들이 나서 프랑스 정부를 움직이게 했고 인질석방 협상은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베 정권의 위기탈출 노림수?'
현지 전문가들은 베탕쿠르 석방 조건에 대해 일정기간 동안 자차구 인정과 일정한 수의 게릴라대원 석방, 혹은 2000만 유로 이상의 거액을 건네고 베탕쿠르와 14명의 인질들을 인계 받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왜 인질 맞교환에 부정적이었던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정부가 정치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협상이라는 무리수를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우리베 정부가 최근 정치적인 위기에 놓여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이 이해가 간다는 게 현지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자신이 재선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에게 광범위한 뇌물 공세를 편 사실이 최근 콜롬비아 사법기관에 의해 밝혀졌고, 해당 의원이 유죄 판결을 받아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따라서 콜롬비아 국내여론은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나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들끓기 시작했다. 자칫 우리베 대통령의 정치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베는 위기를 벗어날 국면전환의 돌파구가 필요했고 베탕쿠르 석방이라는 핵폭탄 급 이슈를 터드려 자신의 정치위기를 단숨에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콜롬비아 현지에서는 우리베에 대한 신임 문제가 베탕쿠르 석방이라는 축제분위기에 가려져진 것은 물론 우리베의 인기가 급상승, 오히려 그의 3선이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한편 전통적으로 야당가문이었던 베탕쿠르 가족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베 정권과 한배를 탈것이라는 설도 힘을 받고 있다. 우리베 정권이 위기를 벗어나 차기에서도 재집권에 성공한다면 베탕쿠르트가 외무장관을 맡게 될 거라는 설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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