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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북핵 '딜 메이커' 할 수 있을까?

'딜 브레이커나 안 되면 다행' 혹평도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10일 베이징에서 시작된다. 이번 회담에서는 북한이 지난 달 26일 제출한 핵 신고서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집중 논의한다. 누가 비용을 대고, 어떤 나라들이 검증에 참여할 것인지를 정한다. 쉽지 않은 의제들이다.

북한이 신고서 제출, 핵 시설 불능화 등 자신의 '행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유 제공 등 다른 나라들의 의무 이행이 늦어지는 문제를 적극 제기할 경우 회담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난제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회담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북핵 문제만이 외교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과감한 태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숙원을 풀 기회가 눈앞에 와 있는 상황이어서(8월 11일 최종 결정) 필요 이상 '까칠하게' 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속속 베이징에 집결했다. 왼쪽부터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 ⓒ연합뉴스

"한국이 먼저 지원하는 게 도리다"

관건은 한국의 역할이다. 회담을 진전시키겠다는 북미간의 의지가 아무리 높더라도 대화가 암초를 만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물길을 터주곤 했던 한국이 이번에도 그렇게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6자회담 참가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정권이 바뀐 뒤 맞는 첫 회담이기 때문에 그런 의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2006년 11월 이후부터는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해 왔던 터라 6자회담은 북미간의 협의 결과를 나머지 4개국이 추인하는 무대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안 보인다는 지적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간 6자회담과 북미관계 등에서 여러 성과가 나왔던 것은 한국이 북미 양측을 오가며 '딜 메이커'(deal maker) 노릇을 톡톡히 했기 때문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위기가 격앙됐으면 진정시키고, 각종 타협책과 아이디어를 제공하며 돌파구를 마련해 준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북한이 60일 내에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면 중유 5만 톤을 먼저 주기로 했다. 내가 귀국하면 우리가 이걸 책임져야 한다고 (청와대에) 건의하겠다. 당사국인 우리가 먼저 하는 게 도리다. 왜 먼저 돈을 내느냐고 (언론이) 비판하려면 해라."

작년 2.13합의가 나온 직후 협상의 주역이었던 한 당국자의 말은 협상 진척에 있어 한국이 했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북한이 과연 약속을 지킬 것인가, 중유는 누가 줄 것인가에 대해 5개국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먼저 하겠다'며 치고 나가 합의를 주도해버린 것이다.

"언론이 비판하려면 하라." 외교관으로서 좀처럼 하기 힘든 말을 했던 이 당국자는 이렇게도 얘기했다.

"중유 (100만 톤) 제공 의무를 참가국이 공동 분담한다는 원칙도 합의했다. 언론에서 한국이 다 독박 쓴다고 했는데, 미리 그렇게 써줘서 고맙다. 나를 성공한 협상가로 만들어 줬으니 말이다. 우리가 처음부터 공동 분담 원칙을 얘기했더니 모든 대표단이 제발 참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행 못할 합의를 만드는 건 무책임한 자세라고 치고 나갔다."

"우리가 4개국을 대표해 북에 제시하는 문안을 만들었다. 우리가 저자니까 저자의 특권으로 동등 분담 원칙을 넣었다. 몇몇 나라들이 물을 타려고 온갖 사정을 했지만 결재권을 가진 우리가 막았다. 실패한 협상가로 낙인찍히면 가서 살아남을 길이 없으니 반드시 관철해야겠다는 각오로 했다."


'대중 공조, 북미 설득, 일본 제어'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약속했던 10.3합의가 만들어질 때에도 한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당시 6자회담 한국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박선원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은 "합의문 내용이 예상보다 좋았는데 북한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었다"라며 "(북한 수석대표) 김계관에게 '불능화와 비확산 의지를 분명히 밝혀야 합의가 된다. 남북정상회담도 있고 하니 어떻게든 합의를 만들어 정상들의 부담을 덜어주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소개했다.

한편 당시 미국에는 '이걸 꼭 해야 하느냐', '남북정상회담에 얽힐 수 있으니 하지 말자' 등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그러자 한국 대표단은 "북한이 이 정도로 양보했는데 합의문을 못 만들면 되겠냐"라며 "정상회담도 있으니 북한을 밀어붙이면 만들 수 있다"고 미국을 적극 설득했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6자회담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 "중국과 게임플랜을 짜고, 북한과 미국을 설득하고, 납치 문제 때문에 강경한 일본을 제어하는 게 한국의 역할"이라고 정리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좋아 한국의 입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의 이런 역할은 비단 6자회담 무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만큼 쉬운 상대가 또 없다. 미국을 그렇게 비난하다가도 김정일 앞에 '미스터'만 붙여주면 회담에 나오는 게 북한이다. 그래서 내가 미국한테 북한 여자축구팀을 초청해 한 번 져주고, 미국 쌀을 차라리 북한군에게 대놓고 지원해주면 북한의 대미 적개심은 순식간에 녹을 거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

앞의 당국자가 후일 털어놓은 농담 섞인 얘기 속에는 북미 대화의 길목 길목에서 한국이 무엇을 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회담 악재 착착 쌓는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북미 양측의 소통이 원활치 않을 때 '통역사'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회담이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간 이 정부가 보여준 모습만 볼 때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놓은 사실상의 '협상지침'을 보면 그렇다. 이 대통령은 8일 <도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문제 해결 후 국제사회에 나오려면 납치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 신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핵무기가 포함돼 있지 않아 다소 불충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통령이 6자회담을 코앞에 두고 납치문제를 직접 제기한 것은 이례적이다. 다른 참가국들의 눈총을 받으면서도 국내정치적인 이유로 납치 문제를 제기해 회담을 어렵게 만들었던 일본이야 드디어 원군을 얻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겠지만, 한국마저 이 문제를 거론한다면 회담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일본 제어' 역할을 날려 버린 것이다.

핵무기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미국도 꺼내지 않는 '물정 모르는' 얘기다. 9.19공동성명에는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분리해 접근하도록 되어 있고, 그 '행동계획서' 격인 10.3합의에는 핵 프로그램만 신고하도록 규정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MB정부, 북핵 합의문 읽어보긴 했나?")

핵무기 신고가 빠진 게 잘 됐다는 건 아니지만, 대통령이 합의의 기본 구도조차 모르는 듯한 발언을 공개리에 한 것은 회담에 또 다른 장애를 조성할 수 있다.

6자회담에서 필수적이었던 '한중협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한미 전략동맹'을 만들겠다며 미국 편향의 외교를 맹목적으로 추진해 온 이명박 정부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있기 때문이다.

꽉 막힌 남북관계는 한국의 입지를 축소시킬 결정적인 요소다. 한국의 대북설득이 먹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간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2번 만났고, 한국이 의장국인 경제·에너지지원 실무회의에 참여했다. '6자회담 무대에서의 남북접촉'은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거칠게 토로하는 북한이 그같은 만남에 대해 '접촉'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납치 문제 때문에 회의장을 겉돌며 '커피나 축낸' 일본의 모습을 한국이 답습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혼자만의 '개인기'가 아니라 청와대의 훈령에 따라야 하는 김숙 본부장으로서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다.

한국이 그간 보여줬던 '딜 메이커'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딜 브레이커(deal breaker, 협상 결렬 요인)'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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